* 취향 타는 글이니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꼭 피해주세요. 제 글을 처음 접하신 분들은 공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전개 상 강압적 장면 (체벌, 기합 등)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구매에 신중해 주세요!

*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과는 전혀 다른 가상의 세계관, 허구적 내용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기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교관, 수감자의 이야기, 어두운 소재가 있습니다. 폭력성 주의
* 이 글에 작가의 가치관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모두 성인입니다.




정서한

진도경(A23)





" 저녁 운동가자. "



서한의 등장에 영도와 형우는 잔뜩 긴장했다. 서한이야 이들이 죗값을 치르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당사자들은 쉽게 잊을 수 없었다. 울고불고 매달리기도 하고 빌고, 또 빌어도 눈 하나 끔뻑 안 하고, 매를 휘두르는 모습은 생각보다 쉽게 잊히지는 않았다. 아마 당분간은 서한과 마주치는 모든 순간에 긴장할 것이 뻔했다. 그걸 알기에, 서한도 부러 말을 더 보태지는 않았다. 자신을 피하는 것 같으면 피하는 대로 맞춰주었다. 그럼 자연스레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도경이는 운동 처음이지? "

" 네, 쟤는 운동 처음이죠. "

" 미호가 잘 좀 챙겨 줘. "



서한의 물음에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 도경을 슬쩍 바라본 미호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대신 대답을 하자, 서한이 미소를 지으며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전히 날이 서 있고, 미동도 없는 도경이 과연 운동을 나가서 사고를 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이유 없이 운동을 가지 말라고 할 수 는 없었다. 그러니 서한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도경이 운동장에서 다른 수감자들과 부딪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 뿐이었다.



" 다들 사고 치지 말고, 안전하게 운동해라. "




답답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웃으며 경고를 남기면서 운동장으로 인솔했다. 저녁 운동이라고 해도, 해가 떠 있는 오후이긴 했다. 운동 시간에는 일이 없는 대부분의 교관들이 전부 운동장에 모이기 때문에 사고 확률이 적긴 했지만, 완벽한 감시 중에도 사고는 늘 발생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



" 오늘 신입 운동 첫날이네? "

" 네, 뭐. 어쩌다 보니 첫날이네요. "

" 첫날부터 사고 치는 거 아니야? "

" 나는 사고 친다는 것에 한 표. "



수감자들이 모두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운동을 하기 시작하자, 교관들도 삼삼오오 한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새로운 신입의 첫 운동 날'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남자 교관들로만 이루어진 곳답게 평소에도 시답잖은 것들로도 모이기만 하면 내기를 하곤 했는데, 오늘도 역시 '사고를 친다' 대 '안 친다'로 팀이 나뉘었다. 정 교관님은 어떻습니까? 정교관 의견이 듣고 싶은데. 동료 교관의 질문에 서한은 속으로는 한숨을 쉬었지만, 그냥 웃으며 넘겼다. 교관들의 내기가 웃겨서 웃었다기보다는 도경이 사고를 안친다 쪽으로 걸고 싶었지만, 오늘 도경이 사고를 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을 하는 자신이 어이없어 웃은 것이다.


정말,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오늘 도경이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서한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그날, 그 곳 : 언젠가는 벌어질 일






" 야, 저 새끼 신입 아냐? "

" 맞네. 내가 들어보니까, 사람 죽였다던데. "

" 여기 사람 안 죽인 새끼가 어디 있는데. "



도경의 등장은 다른 방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이슈였다.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 만으로도 도경을 힐끔거리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정작 도경 본인은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오히려 미호와 영도 그리고 형우까지 그 수군거리는 소리에 귀를 귀 울이고 있었다. 어쩌면 도경보다 훨씬 더 신경을 쓰고 있을지도. 특히 영도와 형우는 혹시라도 싸움이라도 벌어질까 긴장하고 있었다. 징벌은 도경이 받는 거지만, 둘 다 징벌방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혹시라도 자신들에 불똥이 튈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 그, 저런 말은 그냥 무시해. "

" 그래, 뭐 원래 여기가 소문이 무성한 곳이니까. "



별로, 신경 안 써. 도경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무심히 말하긴 했지만, 점점 더 수위 높은 단어들이 귀에 들려오자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싫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 곳에서도 모이기만 하면, 서로에 대한 수많은 소문들, 잊지도 않은 사실들이 난무했었다. 그래서 도경은 눈을 감고 평정심을 찾기 위해 심호흡을 하곤 했다. 크게 효과는 없어도, 나름 도움은 되었다.

다행히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자 수감자들은 각자 자기 운동을 하느라 바빴다. 처음엔 운동에 별 감흥이 없었던 도경의 기분도 평소보다 좋아져 있었다. 매일 방과 교육실 등 실내만 왔다 갔다 하느라 답답했던 마음이 신선한 바깥 공기를 쐬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 너는, 운동 안 해? "

" 신경 쓰지 마. "

" 맨날 신경 쓰지 말래. 그럼 네가 내 앞에서 사라지던가! "



이미 운동장을 뛰고 와서 이마에 땀이 맺혀있던 미호는 가만히 앉아 있는 도경이 신경 쓰였던 건지 짜증을 내면서도 말을 걸었다. 도경의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내가 또 괜히 오지랖을 부렸다며 짜증을 내던 미호가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도경은 미호가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번에도 그렇고, 제가 재수 없게 구는데도 미호는 늘 자신을 챙겨주려고 했다. 원래 오지랖이 많은 스타일인 건지 아니면 정이 많은 건지. 뭔가 이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밝은 아이 같았다. 도경도 미호가 싫지는 않았다. 처음 소개했을 때 기억으로 방에서 유일하게 동갑인 것 같았다. 충분히 친해질 소지가 다분했지만 도경은 전에 있던 곳에서도, 이 곳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울리기 시작하면 이 분위기에 적응이 될 것 같았다. 도경은 현재 제가 처한 이 상황과 환경에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 야. "

" ..... "

" 뭐야, 이 새끼 벙어리야? "

" 얘, 전에 있는 곳에서 사람 거의 죽일 뻔했대. 어디 무서워서, 살겠냐. "



눈을 감고 있던 도경의 눈에 그림자가 생기며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져 천천히 눈을 뜨자, 여럿의 사내들이 앞에 서 있었다. 교관들이 잠시 운동장을 비우거나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을 때 어딜 가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시비를 거는 새끼들이 있었기에 도경은 입을 다물었다. 오호, 이 새끼 봐라. 한 번 해보자는 건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손을 하나 빼서 도경의 머리를 쿡쿡 찌르면서 시비를 걸었다. 하, 그래, 조금만 참자. 운동을 나오기 전까지, 서한의 눈치를 보던 방 사람들과 방금 전 자신을 걱정해 주고 간 미호가 갑자기 떠올라, 최대한 참아보려고 했던 도경은 머리를 미는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자 주먹을 꽉 쥐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 오, 이 새끼 눈깔 봐라. "

" 가자미 새끼냐? "

" 뭘 봐, 새끼야. 무서워서 오줌 지리겠네. "


거기까지는 정말 괜찮았다. 그래, 비아냥거리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말이었다. 얘, 지 아빠 죽이고 들어왔대. 지 엄마는 안 죽였나 몰라. 덩치가 큰 남자가 크게 외친 말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깔깔거리며 웃자 도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다음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도경은 자신의 두 배가 넘어 보이는 덩치에게 덤벼들었다. 갑작스러운 도경의 돌격에 덩치는 바닥으로 넘어졌고, 도경은 덩치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이 개새끼가! 바닥에 넘어진 덩치도 도경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하면서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멀리 떨어져 있던 교관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전을 했다. 긴급 상황 발생. 지원 부탁드립니다. 교관이 호루라기를 불며 그들을 말리기 위해 달려왔고, 미호와 영도, 형우도 급하게 도경에게 다가와 그를 말리기 위해 애썼다.



" 이거 놔! 놓으라고! "

" 야, 야. 진도경! 진정해. "

" 씨발!! 다시 말해봐!! 뭐? "

" A23! 떨어집니다. "



모두의 만류에도 도경은 쉽사리 진정하지 못 했다.

도경이 겨우, 아주 겨우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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