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너무나 오랜만에 치트패치(또는 컨티뉴얼) 관련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기승전결 있는 글이 아니라 잡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부담없이 읽으셔도 됩니다. 물론 재미는 없다는 점 미리 고지드립니다.

최근에는 제가 심적으로 많이 여유가 없기도 했고 단편으로 끝내거나 중단편에서 연재하지 않았던 글들을 다시 손대자니 그때의 감성이 살아나질 않아 일단 뒤로 미루고만 있었어요. 사실 제가 프로였다면 감성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글을 못 쓰고 그러진 않았을 겁니다. 일과 생활간 에너지 분배를 잘 해서 쭉 썼을텐데 그러질 못했던 까닭에 본인의 한계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요...

게다가 제 딴에는 생각해 낼 수 있는 다양한 소재로 많이 써놔서 이제 더는 쓰고싶은 것이 없어졌다 라고 판단을 하고 만 것이에요. 이 역시 게으름의 방증…. 저도 글 쓰는 것 자체는 좋아해서 여전히 무언가를 쓰고 다듬고 싶은 욕구는 있습니다만 예전과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이제는 인정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제 글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고 마침 페잉에서 제 글들 중 미처 언급하지 못한 세부 설정이 있는지 질문을 해주신 분도 있고 하여 이것저것 좀 뒤적여보고자 합니다.

 

【신혼부부】

'해산물'을 얼마나 즐기고 잘 먹느냐가 입맛 어른스러움의 척도가 될 수 있다(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만)는 것이 신혼부부 세계관 내의 설정입니다. 그래서 패치는 치트와 데이트 할 때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은대구 스테이크를 시켰지요! 하지만 치트는 제법 험하게 살았고 금세 소화되는데다 맛도 잘 모르겠는 생선살 스테이크를 시킬 이유가 없던 것이었어요. 치트는 소스가 많은 고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패치와 같이 지내면서 여러 식재료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주는대로 잘 먹고 있겠지요. 패치는 크게 입맛 없지만 격식 차린, 고도화된 조리기술로 만들어진 것을 먹고 싶다 할 때 해산물을 시키는 편이고요.

다만 스핀오프에서는 이런 설정이 뒤집어지기도 합니다. 신혼부부 Side B(b급이라)를 보면 둘 다 가리는거 없이 잘 (처)먹고, A의 경우엔 오히려 미식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저는 식욕과 성욕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상대방을 위해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해 주는 것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술 페어링도 신경쓰고요. 정해진 공식에 따르지 않아도 맛 내기에 충실한 따뜻한 분위기를 항상 선호하고 있습니다.

 

【버터크림】

그래서 식사는 항상 제 글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인간의 가장 말초적 본능을 채우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고도화되고 인간적이고 정교화되고 교양있는 행위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비참함을 표현하기에는 그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질 낮은 음식만한 것이 없습니다. 

모자란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마감 직전 샌드위치, 그 안의 양상추와 햄이 시들어 빵에 얼룩이 남아있겠지요. 오래되어 테두리에 녹이 앉은 캔 토마토 수프, 아마 캔을 딸 때 녹이 조금 들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손에 잘못 묻으면 아무리 닦아도 찝찝한 기름기 사라지지 않는 버터크림 케이크. 위에 올라간 딸기가 진짜 딸기겠어요? 젤라틴으로 모양만 잡아놓은 반투명 딸기예요. 한 끼 정도야 저런 걸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는데 매일같이 저런 것으로만 배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항상 배고프고 허전하겠죠.

하편에서는 쓰는 제가 못 견뎌서 동물성 생크림에 각종 베리를 가득 얹은 케이크를 가져왔습니다. 언제든 그런 케이크를 구워 먹을 수 있다는 형편으로 개선시켜 놨지만 그 대신 오늘은 치트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일부터는 영영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지옥에 빠뜨려 놓은 것은 어쨌든 둘이 서로 깊이 사랑하니까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꽉 닫힌 해피엔딩을 좋아하지만 버터크림의 태생적 한계가 있어 이게 가장 행복한 결말이 되었습니다.

 

【1626】

사실 1626은 버터크림의 변주라서요. 거기서 나오는 음식들도 버터크림에서 나온 의미와 비슷합니다. 배경 자체가 어둑어둑해서 아주 좋은 음식이 나오진 않습니다. 패치와 헤어지고 나서 치트가 혼자 비참한 시간을 보내며 먹었던 것들도 정말 좋은 것은 아니었으며...

 

【악역치트】

아무튼 먹을 것으로 사람 서럽게 하는 것이 가장 쉬우니까 그런 요소는 계속 사용되고 맙니다. 아마 악역치트에선 식사 이야기가 많이 안 나와서 크게 신경쓰시지 않았을 거예요. 몇 번 안 나왔지만 그래도 중요한 부분은 시공을 건너온 치트가 임신한 패치와 함께 우범지역 저렴한 식당에서 먹은 것들. 절대 고급 아니었고 냉동식품으로만 이뤄져 있었어요. 거기서도 치트는 구하기 힘든 신선채소를 주문합니다. 고기를 주문했으나 해동된 것을 받은 패치와는 다른 구석이 있지요... 둘의 운명을 단적으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좀 단순하지만 외전 악역은 컨티뉴가(컨티뉴얼!) 부분을 보시면 어쨌거나 세 명(퍼블리랑 컨티뉴, 매뉴얼)이 같이 식사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좋은 음식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정적인 따뜻한 것들을 먹었다고 봅니다. 퍼블리 생일엔 신경쓴 케이크도 챙기지요. 개선이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일이 터지기 전에도 매뉴얼과 컨티뉴는 같이 근무하며 평범한 저녁을 자주 함께 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 역시 미래의 예고가 되지요. 어쨌든 같이 뭔가를 먹는건 식구가 된다는 뜻이거든요.

 

【가솔린】

식사는 심리적 트라우마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치트의 아버지 사망일, 즉 치트의 생일날에 집에 화재가 났거든요. 어린 치트는 재 뒤집어쓴 케이크 상자를 찾고, 버리지 못해서 그걸 좀 먹어보게 됩니다. 오히려 안 좋은 행동이었어요. 이후 케이크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패치와 만나 조금씩 그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생크림 머금은 키스도 하면서 회복의 속도가 붙었습니다. 패치 역시 치트와 부대끼며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마지막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치트와 패치 모두 장례식장 음식을 아주 전투적으로 먹게 됩니다. 원래 장례식장 음식이 벌크로 만들어서 맛있기가 힘듦에도 불구하고 가끔식 그게 그렇게 맛있다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고인이 대접을 하고 싶을 때 그런 현상이 나온다는데...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글에 그런 것을 반영해 보았습니다.

 

【다세대 주택】

해서, 이제는 당연히 짐작이 되시겠지요. 다세대 주택은 사소한 일상의 행복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굴곡, 별로 크지 않은 역경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식사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치트는 아직 어려서 나물반찬 싫어하지마는 어른들은 별다른 알러지도 없거니와 항상 없어서 못먹습니다. 매뉴얼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자극적인 회식음식을 좋아하면서도 컨티뉴가 해놓는 어설픈 나물반찬에도 즐거워하고 치트와 함께하는 무한리필 고기도 잘 먹잖아요. 치트 역시 편의점 삼각김밥부터 동네 패밀리 레스토랑의 피자, 아저씨들 가득한 고깃집 된장찌개까지 가리는 것이 하나 없습니다. 패치도 먹는 양만 적을 뿐 좋은 사람들과 하는 식사는 언제나 행복으로 가득차 설레는 시간인 것이에요.

 

【진주장미】

다만 진주장미에서는 이런 공식이 약간 어긋나게 됩니다. 일단 배경 자체가 다른 이야기들과 많이 다르고 음식이 갖는 의미를 좀 다르게 표현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매뉴얼이 컨티뉴의 저택에서 먹은 음식들은 분명 고급스럽고 맛있는 것이지만 그 저택 안에 있는 것들은 뭐든지 다 가식에 차 있고 거짓된 감정으로만 이뤄진 신기루라서 매뉴얼은 그걸 먹으면서도 딱히 행복하다거나 즐거운 감정을 갖지 못합니다. 그 안에서 진실된 것은 매뉴얼의 존재, 또는 아직 다 드러내지 못한 컨티뉴의 감정뿐이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2부에서 둘이 재회했을 때 매뉴얼이 일하던 중저가 레스토랑 음식이 더 많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본문에 엄청 표현을 해놓진 않았지만요. 그러고 보면 진주장미에선 오히려 자동차, 요트 같은 이동수단이 더 큰 의미가 있네요. 이동하고 싶지만 결국엔 이동은 허상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착하는 사람들 이야기였다고 봅니다.

 

【반말하는 연하】

Code 5 외전으로 썼던 거죠! 여기서는 엔지니어 매뉴얼이 은퇴 후 치킨집(...)을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심지어 엄청 맛있는 가게예요. 이것도 좋은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관계 회복. 이만큼 직관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힘들다 봅니다. 그래서 뭐랄까 좀 노란장판 감성이 느껴지는 '신혼부부-악역치트-그 시각으로 이어지는'을 보다보면 매뉴얼하고 컨티뉴(이 둘은 신혼부부 세계관), 그리고 다른 세계에서 떨어진 매뉴얼(오메가)이 분식집 가는게 나오거든요. 저렴하고 맛있으며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식당입니다. 셋의 운명도 그 이후로 천천히 나아지는 걸 생각했으나... 이후로 제가 쓰지를 않았지 뭡니까.

전오수 치트패치+컨티뉴얼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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