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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뜨고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멍하게 눈만 깜빡였다. 눈을 떴을 때, 난 여전히 변백현의 방이었고 변백현은 내 손을 꽉 잡곤 침대에 얼굴만 기댄 채 자고 있었다. 변백현이 깰까봐 일어나지도 못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무 것도 못하는 거 같아서 쉽게 뺏어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옥에 사는 네가 불쌍하니까.’

 


 혼란스런 와중에 언뜻 들리던 팀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꿈을 꿨는데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난 팀장님의 목소리를 찾아 한없이 걸어 꽃을 만났었다. 푸르게 빛나는 꽃이었다. 그 꽃향기가 무슨 향기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난 그 향기에 취해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그 꽃 앞에 있었던 거 같다. 그러다 들려오는 변백현 목소리에 난 뒤를 돌았고, 나는 잠에서 깼다. 처음에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한참을 멍했던 거 같다. 변백현이 그런 나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했고, 그 순간부터 온몸을 감싸는 두려움에 몸이 절로 떨렸다.

 

 변백현을 보고 잔뜩 비아냥거리던 게 정말 팀장님이 맞나 의심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건 명백히 팀장님이었다. 잠깐 나를 향했던 그 눈을 보고 난 알 수 있었다. 팀장님은... 대체... 이때까지 팀장님이 우리를 속이고 아니, 센터를 속인 반정부였던 걸까. 하지만 그의 의료내역서는 이미 15년 전, 처음 각성했을 때의 기록부터 지금까지 센터에 있었다는 게 증명되는 기록이 남겨져있는데... 센터에 들어오기 전부터 반정부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중간에 반정부가 됐다고 해도... 왜 중앙관리실 팀장 자리에서 현장팀으로 자리를 옮긴 거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팀장님이 반정부라면 센터의 정보를 훨씬 더 빼내기 쉬운 중앙관리실에 계속 남으려 했을 텐데...

 


“으응...”

 


 변백현이 몸을 뒤척였다. 내 손을 잡은 변백현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 그렇다고 깨울 수는 없고. 변백현의 흩어진 앞머리가 눈을 찌를 거 같아 걷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을 결국 변백현의 머리카락에 닿지 못한 채 거두어졌다.

 


‘각인 하자고 했지. 지금 해.’

‘말했지. 난 사랑, 못 한다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오만가지 감정이 섞여 눈물을 흘리던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말하던 변백현의 뒷모습이 내 가슴 깊숙이 내리꽂혔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 한 글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확연히 달라지는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이해하지 못 했다. 내가 이렇게 이해하지 못 하는 것도 내 잃어버린 과거 때문인 걸까.

 


- 윤이새! 너 여기 있냐?

 


 밖에서 들려오는 재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시계를 확인 했다. 아 밥 해줘야지. 저러다가 저들끼리 밥을 해먹으려고 한다면... 뒷감당 못 할 거다. 안 그래도 오늘 임무가 일찍 있어서 팀원들 깨기 전에 먼저 밥을 해뒀어야 했는데. 그런데... 너무 곤히 자고 있는 변백현을 깨우려니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변백현을 깨운다 생각하고 내 손을 잡고 있는 손을 반대 손으로 덮어서 살살 쓸어내렸다. 그러자 나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풀린다. 깬 건가 했지만 여전히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가 아직 그가 자고 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냥 나가려다가 이불도 덮지 않은 채 불편하게 잠든 변백현의 뒷모습이 추워 보여서 잠깐 방을 살피다가 의자에 걸쳐져 있는 분홍색 담요가 눈에 들어왔다. 변백현 취향이 이런 거였던가? 담요를 훑어보고 펼쳤는데 너무 귀여운 강아지 캐릭터의 등장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닮았네, 주인이랑. 숨죽여 웃다가 변백현의 어깨 위로 담요를 덮어주곤 방을 나왔다.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에도 깨지 않는 변백현에 또 마음이 무거워지는 듯 했다. 센티넬은 일반인을 뛰어넘는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어 오감이 모두 발달해있다. 그래서 이 숙소도 방마다 방음 처리가 되어있는 거고... 하지만 변백현은 센티넬임에도 불구하고 신체반응이 뒤떨어진다. 어쩔 때는 일반인과 신체 능력이 비슷한 나보다 둔할 때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이건 모두 나 때문이라는 걸. 변백현은 나를 위해 능력을 계속 발현하면서 불안정한 수치와 피로를 달고 살았다. 그에 따라 당연히 몸은 계속해서 망가지고 신체능력도 저하된 거다.

 


"야! 왜 안에 있으면서 대답 안 해."

 


 부엌에서 불쑥 튀어나온 재현이 여전히 변백현의 방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서있는 나를 보고 몸을 떨며 놀라더니 곧 인상을 구기며 투덜거린다.

 


"안에 변백현 자고 있어서 말하기가 좀 그래서... 근데 너희 지금 뭐하고 있니...?"

 


 부엌 쪽에서 지금 달그락 거리는 소리 들리는데...? 종인이가 인하를 말리는 소리도 들리고... 식기가 이리저리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재현아, 너희 설마...

 


"아, 너 없어서 그냥 우리가 알아서 해먹으려,"

"아!! 김인하, 김종인! 그만!"

 


 파괴의 손들이 지금 뭘 한다고 했냐. 요리를 한다고 했냐?  난 곧장 부엌으로 달려가 인하와 종인이의 파티를 막았다. 아아... 이미 늦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말린 게 어디야... 지금이라도...

 


"이새야 마침 잘 왔어. 이거 내가 만들었다?"

"...계란 후라이?"

"응! 맞아. 와- 이새도 내 요리 이제 알아본다. 나 좀 쩌는 거 같지? 종인아."

"형 제가 구운 빵이 더 대박이거든요?"

"인하야."

"응?"

"계란 후라이 하는데 왜 국자를 들고 있어...?"

"어? 그런가? 히히-"

"종인아."

"네?"

"빵을 굽는데 왜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가 올려져 있어?"

"...어... 그럼 뭐로 굽는데요?"

 


 아... 울고만 싶다. 이미 잔뜩 어질러진 싱크대와 바닥에 머리가 다시 지끈거린다. 계란을 굽는데 국자를 쓰는 김인하도, 토스트기가 버젓이 있는 데도 후라이팬도 아닌 냄비에 빵을 굽는 김종인도... 그리고 무슨 일인지 1도 모르겠다는 듯이 식탁 위에 수저를 올리고 있는 박재현도... 

 

 내 눈 앞에서 꺼져주라.

 







약해빠진

 






 부엌을 치울 틈도 없이 인하와 종인이를 가스레인지 앞에서 나오게 하고는 빠르게 아침을 준비 했다. 대충 토스트를 만들어주자 또 맛있다고 웃으며 좋아라한다. 참나... 저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수도 없고. 결국 천천히 먹으라는 한 마디와 함께 홀로 어질러진 부엌을 치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스트를 다 먹은 듯 빈 접시를 가져다주는 인하가 아 맞아! 하며 제 손바닥을 맞부딪친다.

 


"아까 연락 왔는데 원래 다음 주부터 개인 임무였는데 팀장님이 갑작스럽게 출장이 앞당겨져서 오늘부터 개인 임무 나가. 그리고 너한테 온 팩스도 있던데. 저 위에 올려놨어."

 


 거실에 있는 탁자를 가리키며 말하는 인하에 고개를 빼꼼 내밀어 올려 져 있는 종이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하야."

"응?"

"팀장님 말이야... 그...,"

- 야! 김인하. 빨리 나와!!

"잠깐마안!! 이새야 뭐라고?"

"...아, 아니야. 조심하고 무리하지 말고."

 


 팀장님의 이야기를 꺼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팀장님의 그런 모습은 나와 변백현밖에 알지 못할 텐데... 괜히 말 꺼냈다가 혼란스럽게만 만들 거 같았다. 나중에 다 같이 있을 때 얘기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나중에.


 설거지까지 다 마치고는 뻐근한 목을 돌리며 거실로 나와 탁자에 올려 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아, 교육... 오늘이 교육 받는 날이었나?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공고가 내게만 온 것이 아니라 변백현에게도 와 있었다. 변백현도 같이 교육을? 개인 임무에서 제외된 대신인가. 시계를 보니 아직 시간이 여유가 있어 먼저 씻은 후에 변백현을 깨우자는 결론을 내렸다.

 

 방으로 돌아와 욕실로 들어왔다. 욕실에 들어와 옷을 벗고 씻었다. 어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잔 탓에 몸이 꽤 찝찝해 평소보다 더 오래 씻었던 거 같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틀어 올리고 대충 물기를 닦아내 옷을 입으려는데 깜빡 잊고 옷을 안 들고 왔다. 한숨을 내쉰 난 결국 선반 위에 올려 져 있는 샤워 가운을 걸치고 욕실을 나왔다.

 


“...”

 


 거울 앞에 섰는데 샤워 가운 사이로 왼쪽 어깨의 흉터가 보였다. 샤워 가운을 왼쪽으로 끌어내 이제는 완전히 보이는 흉터를 바라보았다. 흉터는 지워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보기 싫게 흉터로 얼룩진 쇄골 바로 아래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 날을 떠올리니 다시 왼쪽 어깨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불현 듯 팀장님이 생각났다. 고통 속에 헤매던 나를 어루고 달래주던 팀장님의 따스했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팀장님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 내게 보여주던 모습은 모두 진실이 아니었던 건가. 어느 쪽이 진짜 팀장님일까. 다정하던 모습? 아니면 미치도록 차가웠던 모습? 어쩌면... 둘 다 팀장님의 모습이 아니었던 걸까? 

 

 왼쪽 어깨의 상처를 계속 쓸어내리며 또 생각에 잠겨있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방문 바로 옆에 있던 거울에 서있던 난 놀라 그대로 굳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변백현이었다. 뭔가에 하얗게 질린 듯한 얼굴을 하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보는 변백현에 곧 방문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추위를 느낀 난 곧 샤워가운만 입고 왼쪽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상태임을 깨달았다. 변백현도 방금 그걸 알았는지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가 싶더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다. 아까의 굳은 얼굴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옷 입고 나와..."

"어, 어..."

 


 문을 닫고 나간 변백현에 나는 한참 거울 앞에서 붉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식히느라 고생을 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나가니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변백현이 보였다. 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서로 신경 쓰지 말고 지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스스럼없이 말 걸어야 하나? 깊은 한숨을 겨우 참아냈다. 나와 변백현의 사이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어디가."

"부엌에. 뭐라도 먹을래? 난 토스트 먹을 건데."

 


 내 말에 변백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를 스쳐 지나가 식탁에 앉아서는.

 


"나도."

"..."

"먹을래."

 


 변백현의 행동이 조금 달라진 게 확연히 보였다. 뭐지... 좋은 거야... 아니면 나쁜 거야? 말투는 여전히 무뚝뚝한데 행동만 보면 예전 같아지기도 한 거 같고. 뭐, 상관없다.

 


"그럼... 기다려."

"..."

 


 어쨌든 변백현과 단 둘이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은 소중하니까.

 








약해빠진

 








“지금부터 제 1회 센티넬/가이드 실험체 문제 실황에 대한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센터에서 가장 큰 강의실에서 열리는 교육은 교육을 들으러 온 센티넬과 가이드들로 가득 찼다. 아무래도 센터가 실험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강력한 대책을 세우려는 모습을 보여 모두가 흥미를 가지고 교육을 들으러 온 모양이다. 간부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꽤나 보였다. 나와 변백현은 나란히 손을 잡고 들어와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벌써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 앞으로 갈 것도 없었지만.

 


“...”

 


 사실 아까부터 내 손을 꼭 잡은 변백현의 손이 조금, 아니 엄청, 매우매우 신경 쓰인다. 숙소에서 나서는 순간부터 변백현은 돌연 내 손을 잡아챘다. 놀란 내가 변백현을 바라봤지만 변백현은 내 눈을 마주하지도 않은 채 그저 나를 당길 뿐이었다. 왜 손을 잡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어쩌면 변백현의 행동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물었다가 또 상처받으면 오늘도 혼술 할 거 같거든.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 중에 아직까지 실험체에 대한 지식이 없으신 분 계신가요?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걸 알려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니까요. 부끄러워 마시고 손 들어주세요.”

 


 괜찮다는 강사의 말에 스멀스멀 손들이 올라왔다. 하긴 요즘은 반정부들이 워낙 비밀리에 실험을 하는 탓에 센터도 여러 반정부 기관 중에 어느 반정부가 센티넬/가이드 실험을 하는 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센터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센티넬이나 가이드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센티넬/가이드 실험은 한 마디로 일반인을 센티넬과 가이드의 세포를 가지고 만든 게놈을 통해 센티넬과 가이드로 강제 각성 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이미 20년이 넘도록 진행되고 있는 반정부의 불법 실험이고, 이로 인해 희생된 일반인들, 심지어는 센티넬과 가이드들도 많습니다. 15년 전 센티넬/가이드 실험체 중 센티넬로 강제 각성된 실험체의 폭주로 인해 반정부의 한 연구소가 폭파된 이후로 잠잠해진 듯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곳곳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임무를 나가는 현장팀들이 반정부를 처리하고 실험체를 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이 자리에 선 저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실험체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흥미가 없어지는 순간, 이 문을 나가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육은 꽤 오랜 시간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내내 변백현과 나는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내가 손을 꼼지락 거릴 때마다 나를 달래듯 변백현은 제 손에 힘을 주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그런 변백현의 행동에 어이없게도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이 두근거림을 들키기 싫어 교육에 집중하는 척 했다. 가끔 가다가 훔쳐본 변백현은 교육을 듣는 건지 아니면 딴 생각을 하는 건지 멍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초반에 언급했던 15년 전 실험으로 인해 센티넬으로 강제 각성된 실험체는 현재 본센터에 등록되어있습니다. 아쉽게도 초청은 하지 못 했습니다. 이 자리에 서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셔서... 그만큼 그들에게는 끔찍한 기억일 겁니다. 센티넬/가이드 실험을 당했다는 것은. 그리고 반정부에서 실험을 당한 실험체들 중 구조된 실험체의 일부는 이 실험이 모두 센터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된 것이라고 알고 있으며, 상당한 적대심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한 후에도 그 적대심이 사라지지 않을 경우는 혹시 모를 테러에 대비해 그들의 기억의 일부를 지우고 있습니다. 비인도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들을 위해,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절차입니다. 센티넬의 폭주, 테러가 얼마나 위험한 지는 다들 알고 계실 테니까요.”

 


 하품이 절로 나왔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 이 교육 또한 보여주기식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언론의 주체가 되고 있는 게 바로 센티넬/가이드 실험이고 반정부고, 센터니까. 시계를 바라봤다. 2시간, 벌써 2시간이나 지났다고? 쉬는 시간도 없는 교육에 진이 빠지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강사는 1시간은 더 말할 것 같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공기도 답답하고... 2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가지 못 했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같이 가.”

“아냐 금방 올게. 기다려.”

“...”

 


 변백현의 얼굴이 왜인지 또 구겨진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 따라오려고 할 줄은 몰랐다. 나는 내 손을 겨우 놓아주는 변백현을 뒤로 하고 강의실을 나왔다. 바깥 공기가 꽤 차가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저 안에 탁한 공기보단 훨씬 좋아. 화장실로 가는 걸음을 빨리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고 손을 씻고 나오는데 아이가 혼자 벽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혼자 있지?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한데...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아 아이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는 인기척을 느낀 건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한...결이?”

“...누구세여?”

 


 저번에 봤던 그... 실험체... 가이드로 강제 각성된 아이였다. 아이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혀 쭈그려 앉았다. 아이는 훌쩍거리며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음... 저번에 봤는데 기억 못 하겠어? 그런데 왜 혼자 있어? 혼자 있는 건 위험한데.”

“잃어버렸어여... 힝.”

“길 잃었어?”

“녜... 삼촌 엄써져써여...”

“삼촌?”

“녜에... 우리 똥꼬 삼촌... 한결이가 한 눈판 사이에 어디 가버려써여...”

 


 아이는 또 금세 울상이 되어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나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 아이의 볼 살을 마구마구 만지고 싶었지만 그럼 아이가 더 울 거 같아 관뒀다. 그나저나 똥...꼬 삼촌이라... 저번에 아이를 안고 가던 그 의료국 센티넬을 말하는 걸까? 일단 아이를 의료국으로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안아들었다.

 


“삼촌 찾으러 가자. 알았지? 그러니까 뚝.”

“언니 똥꼬 삼촌 알아여?”

“음... 알 걸?”

 


제발 의료국에 있어주세요. 똥꼬 삼촌.

 









 







“삼초온!!!!”

“한결이 너!! 어디에 있었던 거야. 삼촌이 얼마나 걱정 했는데!!”

 


 다행히 의료국에 가자 저번에 봤던 센티넬이 발을 동동 굴리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이동고. 의료국 센티넬의 신분증 목걸이에 적힌 이름을 보고 왜 아이가 그를 똥꼬 삼촌이라고 불렀는지 알 거 같았다. 아마 잊지 못할 거 같다. 저 이름.

 


“감사합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엄청 걱정 많이 했거든요... 안 그래도 경호팀에 가서 CCTV 뒤져달라고 연락하고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저번에도 그렇고.”

“아니에요. 당연한 일 한 건데요. 뭐.”

“들어가서 차 한 잔이라도...”

“아, 아니에요. 제가 교육을 받다가 나온 입장이라서... 다음에 얻어먹으러 올게요.”

“아!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언니 빠빠!”

“한결아 다음에 보자.”

“네!”

 


 한결이의 작은 손을 잡아 흔들곤 옆의 센티넬에게 꾸벅 인사하고 의료국을 빠져나왔다. 다시 강의실로 가기 위해 몸을 트는데 급하게 뛰어온 듯 헐떡거리는 변백현이 눈앞에 보였다. 변백현이 왜 여기에...? 분명 강의실에 있어야할 애가.

 


“윤이새...”

“너, 왜 여기있,”

“너야 말로, 왜, 여기 있어.”

“아, 그 아기가 길을 잃,”

“금방 온다고 했잖아.”

“...”

“금방 온다고 했는데, 너... 너 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이 말하던 변백현이 그대로 주저앉는다. 깜짝 놀란 난 변백현 앞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빠르게 기어를 확인했다. 수치는 정상인데... 나를 찾는다고 이렇게 달려 온 거야?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괜찮아? 걱정 많이 했어? 미안해, 내가,”

“제발...”

“...”

“제발 기다리라는 말 좀... 하지 마.... 제발.”

“...”

“불안해 미치겠으니까... 네가 사라질 거 같아서 불안해 미쳐버릴 거 같아...”

“변백현...”

“너를 또 눈앞에서 놓쳐 버릴까봐... 그럴까 봐...”

“미안해. 미안해... 백현아 내가 미안해.”

 


 난 그제서야 깨달았다. 변백현이 오늘 내내 내 손을 놓지 않았던 이유.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다고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진 나를 찾아 다리에 힘이 풀리도록 달려온 이유.

 


‘이새 양은 곧 다시 데리러 올게요.’

 


 불안했구나. 내가, 내가 팀장님에게 갔을까 봐... 무서웠구나. 왜 변백현이 그런 감정을 느낀 건지의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변백현이 팀장님이 나를 데려갔을 까봐 걱정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변백현을 진정시키기 위해 토닥이는 내 손에 변백현의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 불안하게 뛰는 심장이 그의 현재 심리를 말해주고 있었다. 난 변백현을 조심스럽게 안았다.

 


“제발, 제발 사라지지 마.”

“그럴게.”

“나 두고 가지 마.”

“응.”

 


 너를 사랑하는 내가 널 두고 어떻게 떠나.

 

 안 떠나.

 아니, 못 떠나.







약해빠진








 잠에서 깨자마자 난 숨을 헙- 하고 들이마셨다. 나를 끌어안은 채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자는 변백현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여긴 분명 내 방인데 왜 변백현이 있는 거지. 어제 자꾸만 불안해하는 변백현을 겨우 달래어 교육을 받고 숙소로 돌아와서 개인 임무 마치고 돌아오는 팀원들 가이딩해주고... 그냥 평소처럼 방으로 돌아와서 씻고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에 들었던 거 같은데.

 


“야, 변백현.”

“...”

“야야.”

“...아아... 왜에...”

“일어나 봐.”

“으응-”

“너 왜 여기 있는데, 응?”

 


 변백현은 내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내 품에 더 파고 들어왔다. 지금 깼으면서 이러는 거 맞지? 응? 참나. 그새 또 잠이 든 건지 옅은 미소와 함께 새근새근 일정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어이가 없어 힘 빠진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변백현을 깨우지 않았다. 다시 원래의 변백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나만 보면 빙그레 미소 짓던 변백현으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까와 다른 행복이 묻어나는 웃음이.

 

 변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얼굴을 관찰 했다. 어제의 변백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게 안겨 제발 사라지지 말라던 변백현의 모습이. 그 말에 난 얼마나 벅찼던가. 정말 어이없게도 변백현의 눈 끝에 매달렸던 눈물이 나를 향했던 것이라 생각하니 손끝, 발끝이 짜릿했다. 변백현이 나를 걱정해준다. 이 사실만으로도 내 가슴은 폭주 기관차라도 되는 마냥 뜀박질 했다. 아, 지금 이 순간에도 콩콩 뛰는 내 심장이 느껴진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갑자기? 아니면... 원래부터?

 


“헐- 시간... 미쳤나 봐.”

 


 한참을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누워 있다가 불현 듯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시계가 눈에 띄었다. 시계는 벌써 1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개인 임무를 나가야하는 팀원들이 떠오르자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나를 안고 있던 변백현의 팔이 떨어지고 그에 잠에서 깬 건지 변백현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왜 그래?”

“미쳤어... 하...”

 


 난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왔다. 거실은 고요했다. 하... 이미 갔구나... 팀원들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머릴 헝클였다. 요즘 너무 팀원들에게 소홀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 거 같아 안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허탈하게 부엌으로 걸어가는데 식탁 위에 놓인 검은 봉지와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일어났냐? 밥은 우리가 알아서 먹고 간다. 

아, 물론 니가 걱정할만한 짓은 안 했고 편의점에서 사와서 대충 먹었어.

내가 그냥 너 자고 있다고 애들한테 말 해둠~ 

둘이 화해한 거 같은데 싸우지 좀 마.


PS. 아 봉지 안에 든 건 남은 건데 먹든가 말든가


-박재현





 

 편지를 다 읽자마자 덮어버렸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거 같다. 하... 그럼 박재현이 나랑 변백현이랑 아까처럼 끌어안고 있는 걸 다... 다 봤다는 거잖아. 으으...

 


“왜 그래? 어디 아파?”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앓는 소리를 내던 내 옆으로 변백현이 다가와 묻는다. 나를 걱정하는 듯한 말투에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거두고는 변백현을 바라봤다. 잔뜩 헤집어진 머리가 볼만 했다. 난 대충 고개를 가로젓고는 내 뒤, 식탁 위에 올려 져 있는 쪽지를 빠르게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이걸 변백현이 보게 해서는 안 된다.

 


“뭐, 뭐라도 먹을래? 여, 여기 애들이 뭐, 뭐 사두고 갔네!!”

“그래? 웬일이래. 평소 같으면 자기들 것만 사와서 먹고 갈 놈들이.”

“그, 그러게...?”

“도시락도 있네. 먹을래?”

“응.”

 


 변백현은 봉지 안에서 도시락 두 개를 꺼내어 전자레인지 앞으로 갔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변백현의 뒷모습을 보며 눈치만 살폈다. 아, 막상 이렇게 또... 한동안 안 나누던 대화 나누려니까 어색하네. 이게 뭐람...

 


“머리 아프거나 그런 건 없어?”

“나?”

“그럼 너 말고 여기 누가 더 있냐?”



 바보 같은 나의 반문에 변백현이 웃으며 나를 뒤돌아본다. 그게 뭐라고 또 이렇게 설레는 건지... 그나저나 머리? 갑자기 왜 머리 아프냐고 묻지? 내가 원래 어디 아팠던가.

 


“음... 아니? 안 아픈데?”

“그래. 그럼 됐어.”



 다시 고개를 돌린 변백현이 전자레인지 안에 포장을 뜯은 도시락을 넣는다. 저 뒷모습이 항상 나를 아프게 했는데. 곧 변백현은 데워진 도시락을 들고 와 식탁 위에 내려놓고는 내게 수저를 건넨다. 수저를 받아 들고는 따끈하게 데워진 반찬을 한입에 넣었다. 아, 맛있어. 오랜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밥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 맞다."

"응?"

"너 왜 내 방에서 잤어?"

 


 한참 아무 말 없이 밥을 먹다 내 방에서 함께 아침을 맞았던 변백현이 생각나 묻자 당황한 듯 내 눈을 피한다. 그냥 잔 것도 아니고 나 안고 잤잖아. 응? 얼른 해명해라.

 


"기억 안 난다거나 그런 거 소용없어."

"..."

"너 나 싫다더니 좋,"

"그런 거 아니야."

"..."

"오해 하지 마."

 


 변백현이 다 먹은 도시락 통을 들고는 싱크대로 향한다. 분리수거 통에 쓰레기를 넣은 후 부엌을 빠져나가는 변백현을 그저 난 바라보기만 했다.

 


"...짜증나."

 


 변백현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난 다시 남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냐. 사람 무안하게...아니면 아닌 거지. 그리고 이미 알고 있거든 네가 나한테 이성으로서의 감정 없다는 거... 그냥 혼자 한 번 오해해보고 싶었던 거뿐이야.


 결국 다 먹지 못한 도시락의 남은 음식물을 버렸다. 너 하나 앞에 없을 뿐인데 어느새 반찬은 차갑게 식어 아까의 맛있는 그 맛을 잃었다. 음식이 식어서 맛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내 입맛이 떨어져서 맛이 없어진 건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 마음도, 네 마음도.

 








약해빠진

 









"아 피곤해. 윤이새애~ 윤이새~~"

"어어, 왔어? 윽... 너 옷 상태가 왜 그래..."

"몰라. 오늘 이리 저리 좀 굴렀어."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방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재현의 목소리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현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뭔 임무를 어떻게 했길래 옷이 걸레짝이 됐냐.

 


"인하랑 종인이는?"

"곧 올 걸? 뭐 먹을 거 사온 다 던데."

"걔들도 이 꼴이야?"

"음... 나 정도까진 아니고 뭐, 나보다 조금 덜 한편?"

"오늘 임무가 대체 뭐였길래."

 


 나를 지나쳐 소파에 털썩 앉은 재현에 인상이 확 구겨졌다. 지금 그 더러운 옷으로... 소파에... 화를 억눌렀다. 내게 손을 뻗는 재현의 손을 잡고는 나도 그의 옆에 앉아 가이딩을 시작했다. 방에서도 소리가 들렸는지 변백현이 방에서 나온다.

 


"오늘도 뭐 똑같지... 반정부 소탕."

"오늘은 좀 컸나 봐?"

"말도 마, 너나 변백현이나 요즘 현장에 안 나가서 그렇지... 반정부 그 자식들 미쳤어. 실험체도 실험체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수도 늘었고 느낌이 달라졌어. 뭐랄까... 더 이상 만만하게 볼 정도가 아니야."

"..."

"움직임이 뭔가 수상해. 확실히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게 분명하단 말이지."

"센터에서도 알고 있어?"

"안 그래도 오늘 같이 임무 뛴 교관님이 보고 드린다고 하셨어. 그 교관님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셨나 봐.”

 


 반정부. 그 단어에 팀장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직까지 팀장님이 반정부라고 단정 짓는 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자꾸만 팀장님이 변백현에게 했던 말이,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지옥에 사는 네가 불쌍하니까.’

 


 지옥, 팀장님이 말했던 지옥은 대체 어딜까. 변백현이 살고 있는 지옥? 그건 센터 혹은 나. 둘 중 하나다. 만약 그 지옥이 센터라면 팀장님이 반정부일 확률이 크다. 하지만 그게 만약 나를 뜻한다면? 그렇게 되면 팀장님이 나와 변백현의 사이의 일을 알고 있다는 건데... 팀장님이 그런 나를 좋아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말이 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어? 아니...”



 곁눈질로 나를 본 재현이 내게 물었지만 난 얼버무리며 대답을 피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다 마주친 변백현의 눈이 싸늘하다. 그런 변백현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혹시 변백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걸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 이 모든 상황과 팀장님에 대해서. 그러다 문득 처음부터 팀장님을 의심하던 팀원들이 생각났다. 왜 난 팀원들의 의심에도 팀장님에게 마음을 준 걸까. 팀원 모두가 같은 말을 했으면 나도 어느 정도 의심해봤을 텐데... 난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팀원들에게 의심을 받는 팀장님이 안쓰럽다는 것밖에...

 


“야, 변백현. 아까부터 거기 서서 뭐하냐?”

“...”

“뭐야 쟤. 야! 야아!”

 


 재현이 멍하게 서있는 변백현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변백현은 그런 재현의 행동에 반응조차 하지 않고 숙소를 나갔다. 재현은 자신을 무시하고 나간 변백현의 행동에 입을 비죽이며 욕을 읊어댔지만 난 변백현이 서있던 자리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재현을 가이딩 해주고 변백현을 찾기 위해 나가려 했지만 개인 임무를 마치고 뭔가를 잔뜩 사들고 돌아온 인하와 종인이를 가이딩 해줘야하는 탓에 그러질 못했다. 기어를 확인했다. 분명 변백현의 수치는 정상적인데도 난 변백현의 수치가 바닥이라도 치는 것 마냥 불안해했다.

 


“개인 임무 너무 힘들어... 팀 임무보다 더 힘들어어... 팀장님은 왜 출장을 가셔가지고오...”

 


 인하가 소파에 축 늘어져 징징거렸다. 축축하게 젖은 앞머리가 오늘 임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주는 듯 했다. 수치도 확실히 낮았다. 임무를 나가지 않고 집에만 남아있는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온 종인이의 상태도 인하와 다를 바 없었다.

 


“누나, 팀장이 언제 온다 그런 소리 없었어요?”

“...응.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뭐야 그런 게 어딨어. 하- 다음 주 스케줄표 받으면 알겠죠?”

“아마 그럴 거야.”

 


 말을 아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래야할 것만 같아서. 조용히 가이딩만 해주는 나를 의아하게 보던 셋에 나는 아, 오늘 먹은 게 체해서 조금 속이 안 좋네... 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 뒤로는 나를 걱정하는 말들이 오갔다. 나는 그에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야했다. 팀원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듯한 느낌에 양심이 찔렸지만 난 아직까지... 아직까지 팀장님을 믿고 있나보다. 의심하고 있지만 난 아직까지 팀장님이 반정부가 아니라고 믿고... 아니, 믿고 싶나보다.

 







약해빠진

 








“하... 진짜야. 그거?”

“그럼 내가 이걸 너한테 거짓말 하겠냐.”

 


 백현이 제 머리를 헤집었다. 백현은 재현의 말을 한참 생각하다 경수를 찾아왔다. 제 생각에는 분명 민석은 반정부다. 하지만 그 증거가 너무 부족했다. 아까 재현의 이야기를 듣고 더 확실해진 민석의 반정부 소속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경수에게 온 백현이 다짜고짜 민석의 행적을 물었다. 민석이 반정부라는 증거는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존재하지 않았다. 백현은 민석이 반정부라면 이번에 출장을 핑계로 팀장 자리를 잠깐 비운 것이 거짓일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민석은 현재 출장 간 것이 맞으며, 방금까지도 센터와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분명 반정부야. 확실해.”

“그럼 뭐해. 물증이 없는데.”

“...이새가 당했어... 팀장한테.”

“...”

“그 새끼... 분명 이새에게 능력을 썼어. 이건 내가 확신할 수 있어.”

 


 그런 게 아니라면 윤이새가... 이새가 그런 놈이랑 그렇게 진하게 키스를 나눌 리가 없잖아. 백현은 현실을 부정했다. 분명 그 키스는 이새의 의지 따위는 묻지 않은 일방적인 것이었다. 이새의 텅 빈 눈이 그렇다고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이새, 어제도 이상했어.”

“무슨 말이야.”

“팀장... 하... 형한테 말 안 했는데 저번에 팀장이... 그러니까...”

“말 똑바로 해.”

“...팀장, 그 새끼가 이새를 데려가려고 했어. 정확히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새 데려가려고 하다가 나 때문에 실패했고 그대로 사라졌어. 그런데 어제 밤에 이새가 뭐에 홀린 사람처럼 테라스로 나갔어. 처음에는 몰랐어... 그냥 자다가 답답해서 그런 줄 알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뛰어내리려고 했어... 난간에서... 뛰어내리려고...”

“...그 뒤로는.”

“내가 억지로 끌고 내려와서 멈출 때까지 잡아두긴 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기억 못 하는 거 같더라. ...분명 그 새끼 짓이야.”

 


 경수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처음부터 중앙관리실 팀장 자리에서 A팀 팀장을 자진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반정부? 경수는 생각에 잠겼다. 반정부라기엔 그는 센터에서 있은 지도 오래된 센티넬이고,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중앙관리실의 팀장을 맡았는데도 중앙관리실의 정보가 새어나간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정말 그가 반정부일까.

 


“형도 이상하지. 응? 나만 지금 오버 떠는 거 아니잖아.”

“...느낌이 이상해. 그 팀장 말이야. 더 이상한 점은 없었어?”

“아, 프로필에 적힌 능력이랑 달랐어. 프로필에는 분명 하나만 적혀 있었는데, 이새한테 사용한 능력은 프로필에 등록된 능력이 아니었어. 눈앞에서 순간이동 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봤고. 이렇게 되면 이미 드러낸 능력만 3개야.” 

“...”

“자가 가이딩도 되는 멀티야.”

“뭐?”

“그러면서 일부러 이새를 홀리려고 이새한테 가이딩을 받았던 거 같아. 하... X발, 진짜...”

 


 백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새를 저렇게 만든 것이 마치 자신이 이새를 방치했기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새를 끝까지 말렸어야 했다. 자꾸만 팀장에게 가려는 이새를 막았어야 했다. 겉으로는 멀쩡한 이새를 보면서 아무런 의심 없이 팀장에게 보냈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새와 민석이 긴 시간 접촉하는 동안 이새는 민석의 능력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식되어 갔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 너 다시 이새한테 돌아가. 그 팀장은 내가 다시 한 번 조사해볼게. 아무래도 느낌이 쎄해. 센터 기록 뒤져볼 테니까 넌 다시 이새한테 돌아가.”

“...고마워 형.”

“네가 고맙다는 인사도 할 줄 알았냐.”

“...”

“너 때문에 해주는 거 아니고 이새 일이라서 해주는 거야.”

 


 경수의 장난 섞인 말에 백현은 그제서야 굳어 있던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그만 가보라는 경수에 백현은 팀장실에서 나와 숙소로 내달렸다. 혹시 몰랐다. 또 어제처럼 이새가 민석의 능력에 정신이 지배될 지는.

 






 









- 이새 양.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이새의 눈이 떠졌다. 희미한 눈동자가 잠깐 푸르게 빛을 냈다. 의식 없는 채로 침대에서 일어난 이새가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새가 창문 앞에 서자 저절로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불어 닥치는 바람에 이새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맨발로 테라스로 나온 이새의 발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난간에 손을 얹은 이새가 단숨에 난간 위로 올라섰다.

 


- 어서

 뛰어내려요.

 


 이새의 몸이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버티고 섰다. 흩날리는 바람에 이새의 몸도 조금씩 흔들렸다. 그리고 제 머릿속에 울리는 민석의 목소리에 이새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하아... 하아...”

 


 그 순간 누군가 이새의 손을 붙잡았다. 떨어지던 이새의 손을 겨우 잡은 백현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미 이새의 방문은 활짝 열린 채 세차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백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 건 백현의 손 뿐, 이새의 손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백현이 조금만 힘을 풀어도 미끄러져 떨어질 것만 같았다.

 


“윤이새!”

“...”

“윤이새!! 손에 힘 줘!”

“...”

“힘 주라고!!!”

 


 백현의 외침에도 이새는 그저 백현이 잡은 제 손을 바라볼 뿐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았다. 백현은 제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지금 이대로는 제 힘이 아무리 남아돌아도 이새의 손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컸다. 백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이대로 이새를 빼앗길 순 없었다. 이대로 민석이 이새를 데려가는 꼴을 볼 순 없었다. 두 번이나... 두 번이나 이새를 눈앞에서 놓칠 수는 없었다.

 


“...이새야...”

“...”

“착하지, 이새야?”

“...”

“나 봐봐. 응? 나 좀 봐봐.”

“...”

“변백현이야. 나 백현이.”

“...”

 


 조금 가라앉은 부드러운 백현의 목소리에 이새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부른 백현에 이새가 조금씩 잠에서 깨려고 하고 있다. 정신만 민석에게 지배당하고 있을 뿐 이새의 의식은 아직 잠에 취해 깨어나지 않았으니까. 그 의식만 깨우면 된다.

 


“이제 일어나야지.”

“...”

“안 일어나면 미워할 거야.”

“...”

“안 일어나면 너... 너,”

“...”

“사랑 안 할 거야.”

 


 거짓말처럼 백현의 마지막 말에 이새의 의식이 깨어났다. 잠에서 깬 이새는 난간에서 떨어진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백현과 바람에 허공에 뜬 채로 바람에 흔들리는 자신의 몸을 자각하고는 눈이 커졌다. 그 순간 조금 미끄러진 백현과 자신의 손에 이새는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던 백현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이제야 나 보네.”

“...백현아.”

“잘했어.”

“...”

“기다려. 올려줄게.”

 


 옅은 미소를 지은 백현이 곧 이새와 마주 잡은 손을 끌어올렸다. 당겨지는 팔에 이새가 고통을 삼켜냈다. 문득 본 아래에는 꽤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과 백현을 바라보고 있는 민석이 보였다. 이새는 그런 민석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고, 곧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민석에도 이새는 제 몸이 완전히 끌어올려질 때까지 민석이 서있던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백현에 의해 난간에 걸쳐진 이새의 몸이 조심스럽게 테라스에 내려놓아졌다. 제 어깨를 붙잡고 깊은 숨을 내쉬는 백현에 이새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백현을 바라보기만 했다.

 


“...대체, 대체 팀장 새끼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

“무슨 짓을 어떻게 했길래...!!”

 


 점점 숨이 가빠지는 백현을 이새가 끌어안았다. 잔뜩 흥분한 백현의 가슴이 크게 울렁였다. 이새는 그런 백현을 빈틈없이 안았다. 제 손이 떨려옴이 분명히 느껴지는 데도 그런 자신을 챙길 여유 따위 없었다. 자신 때문에 또 한 번 좌절을 느꼈을 백현을 진정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이해가지 않는 상황을 이해할 시간이 없었다.

 


“네가, 네가 자꾸 멀어져... 응?”

“진정해.”

“왜 나한테서 떠나려 해...?”

“나 안 떠나.”

“하......”

“여기 있어. 변백현 나 여기 있잖아. 숨 좀 쉬어. 응?”

 


 백현에게 제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백현의 쉴 새 없이 떨리는 손을 부여잡은 이새가 천천히 그를 달랬다. 조금씩 진정되는 백현에 이새가 그제서야 백현의 품에서 떨어져 백현의 얼굴을 마주했다. 저번과 같이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꽁꽁 얼어 손끝이 새하얀 이새가 백현의 볼에 제 손을 가져다댔다.

 


“변백현.”

“...”

"백현아."

"...응."

"나 안 가. 아니, 못 가."

"..."

"나 이제 아무데도 못 가."

"..."

"네가 있는 곳에 나도 있을 거니까."




 이새의 말에 백현이 손을 올려 제 볼을 잡고 있는 이새의 손을 덮어 끌어내린다. 그대로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가 온전한 제 심장의 울림을 전한다. 이새의 손이 잘게 떨려왔고, 백현은 그를 느끼곤 이새의 손을 더욱 꽉 부여잡았다. 백현이 천천히 이새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온 백현에 이새가 눈을 감았다. 곧 입술에서부터 퍼지는 온기에 백현에게 잡혀있는 제 손을 빼낸 이새가 백현의 손을 깍지 껴 잡아왔다. 서로 맞닿은 입술은 서로를 애타게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잘게 떨리는 백현의 입술에 이새는 고개를 비틀어 더욱 깊게 백현에게 다가갔다.

 

 한참을 붙어 있던 둘의 입술이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떨어졌다. 한동안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말이 없었지만 맞잡은 두 손은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꼭 붙잡고 있었다.

 


“춥다. 들어가자.”

 


 먼저 입술을 뗀 백현이 이새의 손을 이끌었다. 맨발인 이새의 발은 이미 꽁꽁 얼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런 이새의 발을 본 백현이 이새를 침대에 앉혀두곤 욕실로 들어가더니 곧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아 나온 백현이 이새의 발 앞에 대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이새의 발목을 붙잡곤 끌었다. 왠지 모를 수치심에 이새는 발을 뒤로 뺐지만 백현은 그런 이새의 발을 더욱 끌어당겨 물에 담갔다.

 


“그냥 두면 동상 걸려.”

“...”

“넌 네 몸이 일반인이랑 다를 거 없다는 거 알면서도 제대로 챙기지도 않지.”

“...”

“일부러 챙겨주길 바란 거였다면 성공이야.”

“...”

“사람 자꾸 신경 쓰이게 만들고 말이야.”



 백현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이새의 얼굴은 어느새 미소를 띠었다. 붉어진 백현의 귀가 추위 때문인지, 이새와의 키스 때문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서로 맞닿았던 입술이, 손이 아직까지 온기를 잃지 않은 채 여운을 남겼다.

 


“변백현 부려먹기.”

“...”

“성공.”

“...참나.”

 


 백현의 얼굴에도 결국 웃음이 터졌다. 어쩐지 그 웃음이 너무 쓰게 느껴졌다. 백현은 보지 못했지만 백현의 웃음에 이새의 얼굴은 조금씩 굳어갔다.

 









약해빠진

 








 그 날 이후로 변백현과 나 사이는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다. 뭔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생겼다. 난 그런 변백현과 나 사이를 조금이라도 오해하고 싶어 했지만 변백현은 그럴 때마다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사랑이라고 해도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난 괜찮았다.

 

 변백현에게 들었다. 내가 어쩌다 그날 그 난간에서 떨어졌고, 정신을 지배당했던 건지. 모두 팀장님에 의한 것이었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팀장님이 내 정신을 앗아갔다고? 이때까지? 그러다 문득 또 팀장님의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팀장님 편에 서려는 나 자신에게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변백현의 말을 믿지 않을 리 없는데 말이다. 변백현은 내게 앞으로는 더, 더 혼자 다니면 안 된다고 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에게 정신을 지배당했던 내가 다시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내가 만약 다시 정신을 지배당한다면 누군가 옆에서 나를 통제해야 했다. 그게 변백현이라면 난 얼마든지 믿고 나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내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일은 잠깐 미뤄두기로 했다. 나와 변백현, 그리고 도팀장님은 팀장님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대면해야했다. 주로 정보를 구해오는 건 도팀장님이었고, 나와 변백현은 그 자료를 보면서 팀장님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만한 단서를 찾아냈다. 하지만 센터에 등록된 팀장님의 자료는 흠잡을 데 없이 깨끗했다. 반정부라고 의심될 만한 항목은 손톱의 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너희들 앞에서 쓴 김팀장의 능력만 3가지. 빙결, 순간이동, 페서네이트. 앞의 두갠 명확하고 페서네이트는 추정일 뿐이야. 마인드 컨트롤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

“그래서 지금 위치는.”

“여전히 현장 임무에 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김팀장의 능력이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면, 만약 아직 밝혀지지 않은 능력이 더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하겠지. 퍼펫마스터와 같은 능력이라면 충분히.”

*퍼펫마스터 : 꼭두각시를 만들어 조종하는 능력, (꼭두각시의 외형은 퍼펫마스터의 능력으로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다.)

 

“아니... 말도 안 되잖아. 능력을 그 만큼이나 가진 센티넬이 존재하긴 해?”

 


 변백현이 이마를 감싸며 말해왔다. 도팀장님은 한숨을 내쉬며 자료를 뒤적거렸다. 하지만 곧 원하는 내용이 없는지 허탈하게 자료를 내려놨다. 난 그런 자료를 가져와 읽어봤다. 저번에 한 번 본적 있는 팀장님의 의료내역서였다.

 






김민석 31세

멀티 센티넬/가이드

빙결 SS 이상


...

...

...


15년 전 (20XX.XX.XX) - 각성으로 인한 폭주, 센터로 긴급 이송 되어 검진 후 센터 소속. 능력/수치 측정 불가.

...







 

 그때는 변백현의 의료내역서를 보는데 정신이 팔려서 대충 보고 넘겼던 팀장님의 의료내역서를 다시 훑었다. 15년 전 처음으로 기록된 것 말고는 어느 센티넬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특히나 팀장님은 원래 중앙관리실에서 일했기 때문에 15년 동안 기록된 의료내역서는 2장이 전부였다. 그 중 가장 신경 쓰이는 첫 번째 기록. 15년 전... 왠지 이 숫자가 낯설지 않았다.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난 어쩐지 그 15년이라는 숫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

“아... 이거. 왠지 이 15년 전이라는 거 말이야. 뭔가 자꾸 신경 쓰여.”

“... 15년 전?”

 


 내가 제 쪽으로 종이를 돌려 보여주자 변백현은 내 손 끝에 닿은 부분을 읽어 내렸다. 나 또한 변백현을 따라 다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변백현과 나의 시선이 동시에 서로를 향했다. 

 


“...설마.”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어느 정도 말이 되지.”

“뭔데 그래.”

 


 나와 변백현이 나누는 대화에 도팀장님이 왜 그러냐며 물어왔다. 그런 도팀장님에게 나와 변백현은 동시에 시선을 옮겨 눈을 반짝였다.

 


“...말로 해. 말로.”

 







 







“나 형한테 갔다가 올게. 저번에 부탁했던 거 자료 찾았대.”

“같이 가.”

“안 돼. 지금 센터 분위기 안 좋은데 괜히 나갔다가 다칠지도 몰라.”

“...알았어.”

“오늘은 숙소에 종인이랑 김인하 있으니까 붙어 있어. 조금 오래 걸릴 지도 몰라.”

“응. 너도 조심해서 다녀와.”

“내가 누구냐.”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이새에 백현이 이새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어보였다.

 

 며칠 전, 센터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현재 센터 분위기가 어수선 했다. 몰래 센터에 잠입한 반정부 센티넬이 센터에서 난동을 부려3명의 센티넬과 1명의 가이드가 목숨을 잃었다. 처음에 소식을 접한 센터 소속의 사람들은 모두 이를 믿지 못 했다. 아니, 고작 센티넬 한 명이 정작 4명을 죽였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목숨을 잃은 3명의 센티넬 중 한명은 수치가 S인 언령 능력자였다. 소동을 일으킨 반정부 센티넬은 잡았지만 그는 마치 이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듯이 스스로 자결했다고 했다.


 지금 센터에 가이드인 내가 혼자, 아니 변백현과 함께여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혼자 도팀장님께 가버린 변백현이 걱정되긴 했지만 유독 눈썰미가 좋은 백현이기에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아니... 사실 안심은커녕 불안에 다리를 덜덜 떨었다. 그렇게 한참을 걱정 속에서 변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알려드립니다. 현재 센터 본관과 별관 사이의 통로를 모두 차단하겠습니다. 숙소, 혹은 별관에 있는 현장팀 센티넬은 모두 본관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반정부 센티, 윽...!

 


지지직-

 


 저번 반정부 테러로 인해 각 숙소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경보음이 울렸고, 경보음 후에 들려오는 소식에 난 소파에 앉아있던 몸을 곧장 일으켰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던 목소리의 주인의 고통스런 신음을 끝으로 지직거리던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각자의 방에 있던 인하와 종인이도 방송을 들은 건지 놀라 방에서 다급하게 나왔다. 곧 지지직거리던 소리가 멈췄다.

 


-아아, 지금부터 센터를 무너뜨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깔끔하게 10분 겁니다. 막아볼 테면 막아보든가, 우리가 고삐 풀린 미친 개새끼가 아니라 너희들이 목줄에 묶여 센터에 길러진 개새끼라는 걸 알려줄게.

 


 방송은 그대로 끊겼다. 인하와 종인이는 서로 눈을 마주하곤 바로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뒤 따라 가려던 나를 종인이가 막았다. 누나, 안 돼요. 인하 또한 내게 가만히 있으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둘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번과 같은 상황이었다. 혼자 숙소에 남겨진 나, 위험한 불구덩이와 같은 곳에 뛰어 들어간 팀원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 그 자리에 한참을 서있었다. 결국 뒤돌아 거실로 돌아왔다. 나갈 수 없었다. 내가 저 밖으로 나가면... 그러면 나만 위험해질 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위험해질 지도 모른다.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 그저 변백현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잉-

 


“변백현! 너 괜찮아?!” 

- 너 숙소에서 절대 나오지 마.

“너, 너 어딘데!”

- 나 지금 형이랑 같이 있어. 본관이야.

“..."

- 절대 숙소에서 나오면 안 돼. 무슨 일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바로 연락하고. 

“...백현아...”

- 나 안 다쳐. 걱정하지 마. 내가 누군데.

“...”

- 그리고 그 팀장 말이야. 맞았어. 15년 전에,

 

콰앙-

 

“변백현! 괜찮아?”

- 별 거 아니야. 난 무사하니까 진정하고... 기다려. 곧 갈게.

“아, 안 돼... 안 돼....”

- 끊을게. 좀 있다가 보자.

“변백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폭파음과 사람들의 비명소리, 고함지르는 소리.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선명히 들려오는 변백현의 목소리에 휴대폰을 두 손으로 쥐고는 벌벌 떨었다. 위험하다. 변백현이 위험해. 하지만... 하지만 난... 붙잡을 틈도 없이 끊어진 전화에 휴대폰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소파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거실의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햇빛 때문에 쳐놓은 커튼을 거두어내고 본관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셔터가 내려간 센터 본관의 창문 곳곳이 깨져 있었다. 가장 오른쪽 외벽에 한차례 폭발이 있었는지 연기가 자욱했다. 다행히 변백현이 있을 곳과는 정 반대인 곳이었다. 커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저 안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창문을 열지 않아도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가 지금 본관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직감하게 했다. 다급하게 울리는 총소리, 고통에 찬 누군가의 신음소리, 반정부 센티넬으로 추정되는 기합 소리. 그 속에서 나는 변백현의 숨소리를 찾을 수 없었다.


 벌써 수십, 아니 수만 번의 고민을 했다. 발만 동동 굴리며 기어를 확인했다. 아직 어느 누구도 수치가 평균 이하가 된 이는 없었다. 미친 듯이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께에 손을 얹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안 돼, 안 돼. 내가 저 곳에 간다면... 분명 위험해질 거야. 섣부른 행동은 안 돼.

 


- 아아... 제발...

 


 그때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파왔다. 누가 둔기로 내 머리를 뒤에서 쉴 새 없이 내리치는 마냥 울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뇌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귀가 아닌 머리에서부터 그 목소리가 온 몸을 울리곤 들려왔다. 고통에 찬 목소리에 나 또한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 흐으... 제발... 제발 좀...


“...팀... 장님.”

 


 울음 섞인 목소리는 분명 팀장님이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이 목소리는 분명 팀장님이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거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팀장님이 설마... 본관에...

 


- 제발... 누가 날... 날 좀,

 


 심장이 아까만큼이나 쿵쾅거렸다. 팀장님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진다. 머릿속을 울리던 팀장님의 목소리가, 살려달라는 그 울음 섞인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다. 아, 안 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팀장님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팀장 말이야. 맞았어. 15년 전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당장 팀장님을, 김민석을 찾아야 한다.









김민석

멀티 센티넬/가이드

센티넬/가이드 실험체



빙결 SS이상 (수치 측정 불가)

페서네이트 (수치 측정 불가)

순간이동 (수치 측정 불가)

??


前중앙관리실 팀장


現 A팀 소속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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