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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22년, 나라의 남쪽에서 큰 물난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바람이 좀 심하게 불고 장마가 길어지는가 싶었지만 밤낮이 바뀌는 게 구분이 가지 않게 비가 멈추지를 않았다. 




 그 해 신기하게도 수도인 평위를 포함하는 북쪽 지역에서는 오히려 비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가뭄이 들었다. 세수의 대부분을 충당하는 곡식을 키우는 들판은 북에 위치하고 있기에 선국은 위, 아래로 재해를 맞이하여 큰 곤란에 빠지었다. 






"전하, 관상관 태감의 말로는 이번 천재는 사특한 것이 왕실에 들어와 벌을 주는 것이라 하옵니다."




"전하! 삼남지방의 관리들이 소를 올리었습니다. 백성들이 가옥과 가축을 잃고 떠돌다 민가뿐만 아니라 관을 위협하고 있다 합니다. 속히 관병을 보내주실 것을 청하였습니다."






사방에서 왕에게 곤란을 호소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전하 황제께서 보내신 사신이 말하길 천국(天國)이 화를 입어 속히 진상을 보내라 명하였습니다."






"전하~!",  " 전하!"






나라의 물자와 사람은 정해져 있는데 사방에서 그를 청하니 곧 국고는 바닥이 나, 곳에서 밤톨 하나라도 빠트리면 안 되게 되었다. 종국에는 관리들의 녹봉이 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위는 매일 더위가 심하였을 뿐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 바는 적었다. 정종은 도성의 대신들이 집안에 틀어박혀 밀린 녹봉을 한탄하기보다는 소임을 다하길 원하여 그들을 사방에 어사로 임명하여 보내었다.






"전하, 신은 전하의 사위 된 자, 특별히 수해가 난 남쪽 지방을 원하옵니다."






각종 재해를 맞은 고장들의 상황이 좋을 리도 없고 가는 길도 편치 않았기에 왕의 명이 오면 그 꺼림칙함이 컸는데, 운영은 새벽같이 입궁하여 어사가 됨을 자청하였다.






"과연! 훌륭하신 부마이십니다."






먼저 나선이가 빛나 보이지 않을 리 없었기에 왕은 즉시 운영에게 어사직을 내려주며 물자도 모자라지 않게 챙겨주었다.




***





"이곳이 이번에 수해를 입었다는 지역인가?"




"네, 어사 나리, 지금은 저쪽 멀리에 보이지만 저 강이 지금 나리가 서계신 곳까지 넘쳤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만 해도 관아의 곳간이 있던 곳인데 보시다시피..."





운영은 그를 안내하는 사령의 말을 듣고 내려다보니ㅣ 발밑에 부서진 나무판자와 가마니와 같은 것들이 진흙에 엉기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남쪽에 비가 많이 왔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구나"





운영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에게 고을의 피해를 말해주던 사령은 나이가 꽤 들어 이제 40줄을 넘어가는 자였는데 운영이 어디를 가든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감탄을 하였다. 




'이번 어사로 온 이가 왕의 부마라 들었는데 이리 세심하다니 선국의 복이로구나'




이 지역은 가끔씩 수해를 크게 입곤 하였는데 곡식을 키우는 큰 평야인지라 평위에서 관리를 보내어 민심을 위로하였다. 그러나 파견 온 어사들은 피해 사실에 대해서 큰 관심은 없었고 어서 일을 끝내고 돌아갈 궁리만 하였다. 그런 높은 분들을 거듭 만나디 운영을 보니 사령은 크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지역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그러나 운영은 사령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계속 한 사람을 찾아서 시선을 가까이서 먼 곳으로 다시 옆으로 옮길 뿐이었다. 그는 시야가 좋고 보이는 세세한 것을 금세 분류하고 구분하였지만 아무리 사방을 바라보아도 그가 원하는 한 남자의 흔적은 터럭 하나 보이지 않았다. 




"원래라면 숙소로 모시는 객청이 있는데 그 또한 이번에 무너져 쓸려 내려간 터라, 협소하지만 향교에 묶으실 곳을 마련하였으니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소득이 없이 해가 져가자 사령도 운영에게 대부분의 일을 보여주었다 생각했는지 그를 마을의 안쪽으로 데려갔다. 이곳은 강에서도 멀찍이 자리 잡았기에 당연하게도 피해를 입은 곳이 없어  멀쩡하였으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채색을 한 집이 많아 화려하였다. 





"어사 나리, 이쪽입니다."





여러 집 중에 사령이 가리킨 곳은 그가 향교라 언급했던 만큼 입구에서부터 장식이 없고 소박한 게 과연 공부를 하는 장소로 보였다. 운영은 먼 길을 왔음에도 아직까지 쉼 없이 여러 곳을 살펴보았기에 피곤함이 목덜미까지 차올라 곧장 향교로 걸어갔다. 그러다 어딘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져 향교의 문을 넘으려는 찰나 멈추어 뒤로 세 발자국을 걸음쳤다.





"무슨 일이십니까? 향교가 아무래도 낡아서 묶으시기에 좀 그렇죠?"





"아닐세"





평위에서 내려왔다는 멀대같이 키가 큰 어사가 들어가려다 말고 뒷걸음을 치는 이상한 행동을 하자 장령이 물어왔다. 운영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향교로 입장하려는 차 또다시 멈추어 서더니 아예 몸을 길 쪽으로 돌리어 섰다.





"저기 보이는 저 집은 무엇인가?"




사령은 운영이 가리킨 곳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의 손끝에 위치한 건물이 가까이에 있지 않고 육안으로도 꽤 자세히 보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곳이 일반 사택이 아니며 문 위에는 편액까지 걸려 있기에 금방 운영이 물어온 곳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리 저 집은 의원입니다."






"의.. 의원? 의원이 맞다고?! 정말인가?"






'뭐야 알고 물어보는 거였어?'






"편찮으신 곳이 있으신지요? 저곳은 민가의 의원이고 관에 속한 이가 있으니 속히 오라고 하겠습니다."






사령은 운영이 거듭 의원을 찾자 그가 긴 여정에 어디가 아픈 듯싶었다. 게다가 안색도 아까에 비해 눈에 띄게 핼쑥하게 바뀌었다.






"아닐세, 일단, 일단 들어가세나"






"관의가 사는 곳도 멀지 않으니 금방 올 수 있습니다. 어사 나리"






거듭 청하는 사령에게 운영은 손을 내저어 거절한 뒤, 그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 향교의 문을 닫았다. 행여나 누가 볼까 봐 싶은 다급한 움직이 이었다. 운영이 보기에 방금 본 민가의 의원 집은 도성에 있는 룡이 주인으로 있는 의원과 그 모습이 같았다. 사람 사는 곳의 생김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 저렇게 똑 닳게 지은 곳이 심지어 의원이라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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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이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며 나간 후 운영은 짐을 뒤져 검은색 야행복을 찾았다. '혹시나' 그에게 일을 의뢰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상이 살뜰히 챙겨준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운영의 체형에 잘 맞아 군더더기가 없어 움직이기에 편하였다. 같이 들어있는 복면을 쓰자. 누가 보아도 나는 수상한 사람이고 좋은 의도가 있을 리가 없다는 모습이 되었다.




'아무리 인력난이 심해도 그렇지 이렇게 한번 움직일 때마다 어떻게든 일을 시켜 먹으려고 하다니 쯧, 그래도 덕분에 옷을 구해야 하는 수고는 덜었군'




흑야에 아무리 많은 인원이 속한다 한들 일류를 넘어 특급으로 분류될 살수는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그렇다 한들 그래도 한 업계의 수장인 그에게까지 맡길 만큼 심각한 의뢰는 잘 들어오지 않았으나 상은 자잘한 것들도 은근슬쩍 운영에게 미루곤 하였다. 


 복면을 한 운영은 지붕에 몸을 낮춰 숨기고 있다가 아래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는 오늘 특별히? 현업을 나서는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왕이 보낸 어사인데 이리 야행을 다닌다는 게 걸리면 면이 팔릴 일이었다. 





"툭"




사람 하나가 떨어져 내려왔는데 막상 바닥에 닿은 소리는 그저 감 하나 정도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룡은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다가 자신의 앞에 검은 복장의 사람이 홀연히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저게, 무엇이지?'




의문의 낙하물은 사람이라기엔 너무 가벼워 보여, 몸통 크기의 가마니로 보였다. 운영은 바닥에 가볍게 착지하자마자 몸을 일으켜 곧장 그에게 달려갔다. 룡이 속으로 '어... 어' 두 번을 외치는 동안 마주한 괴한이 그를 당겨 안았다. 






"왜 말도 없이 떠났는가 자네"






그저 반가움이었다면 어깨나 당기어 가볍게 안고 놓아주었을 텐데, 운영은 커다란 몸으로 양손으로는 그의 등을 휘감아 안는다기보다는 가두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이라는 게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면 혼비백산히도 되지만 때로는 너무나 현실감이 없기에 오히려 침착해지기도 하였는데, 룡의 경우 후자였다. 





"제가 왜 저의 운신을 ... 월성군께 알리고 다녀야 하는지요."





그가 이 모든 일을 겪으며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반응이 즉각적이지 못하였기에 운영을 밀어내지 않고는 안긴 채 답을 하였다. 




"편서라도 보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자네가 떠난 지 한 해가 넘어가려 한다네"




오랫동안 못 보았기에 운영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 이미 움직인 후였다. 그는 룡이 화를 낼 거라 생각했으나 막상 자신을 때리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기에 더욱 강한 힘으로 당겨 안았다.





"저희가 서로 그런 걸 주고받는 처지였던가요?"





얌전한 아가씨처럼 안기어 있건만 룡의 대답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밖에서 보기에 이 뜨거운 해우는 이리 차가웠다. 먼저 항복한 건 운영이라 감은 손을 풀어놓고 나니 그제야 민망함이 뒤이어 해일처럼 그를 덮쳤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리 말하고 떠나면 내가.."






"제가 무엇을 말했다는 건가요?"






무작정 평위를 떠나올 때만 해도 일단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던 룡은 일찍히 은거생활을 하였던 산으로 향하였다.  그와 신의가 오래 머물렀던 집은 나무로 대강 지은 거 같아도 허술하지 않아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는지 보수가 잘 되어 있었으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집안의 한편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룡의 생모를 위한 향을 피우는 곳이 있는데 최근에 분향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얼마 전에 떠나신 듯하구나'






룡은 습관적으로 비어있는 향로에 향을 피우고 창을 모두 열었다. 적채 되어있던 실내 공기가 환기가 되며 청아한 향이 섞였고 룡도 그제야 익숙한 공간에 마음을 놓았다. 




짐을 풀고 침상에 올라 머리를 대자 오래 잠이 들었다. 신의의 성격상 일 년은 가뿐히 머물 식량이 항시 마련되어 있기에 따로 걱정할 것도 없어 하루하루를 보내니 도성에서 끓었던 뜨거웠던 피가 서서히 식어 곧 예전과 같이 서늘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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