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딱 2번만 뜨는 배를 타야지 들어갈 수 있는 섬.

어른들은 갈매기들이 자주 쉬어간다 해 갈매기 둥지라고도 부르는 자명도.

자명도로 들어가면 여름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들린다.


매미 울음.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히며 또 다른 파도 소리를 만들어 내고 그 복잡한 소리 가운데 익숙한 목소리들이 뒤를 잇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올 거면 말을 해 줬어야지!”

“멀리서 봐도 우리 지명은이네! 어쩜 어릴 때랑 똑같아?”


배에서 내리자마자 이장 아저씨며, 그물을 정리하던 할머니며, 마을의 유일한 슈퍼마켓 주인 아주머니며. 모두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너를 찾아보려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온 거고, 네 성격상 한 번 삐치면 쉽사리 얼굴을 비치지 않으니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다가도 너를 다시 만날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해성이 보러 온 거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 슈퍼마켓 사장님이 내 손에 들려있는 짐 가방 하나를 받아 들며 물었다.


“네. 방학한 김에 왔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교 다니면서 매번 여기까지 오기 힘들 텐데. 너희가 각별하긴 했지.”


앞서 걸어가는 사장님이 중얼거리셨다. 뒷모습이라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그저.


“네. 친구니까요.”


라며. 그럴듯한 대답만 남겨두었다.


“다 왔다. 여긴 다 그대로야. 네가 부탁한 대로 청소해 두긴 했는데 깨끗할진 모르겠다.”


너는 다 꼼꼼한데 막상 청소는 싫어한다. 그런 너를 위해 나는 기꺼이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해 놓았다. 죄송하지만. 번거롭겠지만. 바쁘시겠지만. 가끔 들러서 청소 좀 해 주실 수 있겠느냐고. 그 말에 마을 어른들은 기꺼이 돌아가며 청소를 맡아주셨다.


성아. 너는 이런 내 정성을 알까?

너는 아직도 내가 어린애인 줄로만 알아!

맞지. 어린애. 성이 너는 몇 년이 지나도 어린애야.


너와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대문 턱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항구에서부터 쭉 들어와 가운데 골목 언덕을 타고 올라오면 보이는 남색 지붕 집. 돌로 쌓아 만든 담벼락과 초록색 대문. 유독 키가 작은 느티나무 하나. 뭐를 심었는지도 몰라 잡초만 무성해진 텃밭까지. 모든 게 그대로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마당 평상에 앉았다. 사장님도 내 캐리어를 집 안에 들여놓으셨다.


“감사합니다.”


잠시 평상에 앉아 나와 대화라도 나누실 줄 알았는데 사장님은 뻐근한 어깨만 주무르셨다.


“날이 덥긴 덥다. 그래도 밤 되면 좀 쌀쌀하니까 꼭 이불 덮고 자고. 이불이랑 베개는 압축팩에 담아뒀어. 좀 먹을까 봐. 모기향은 부엌 찬장 밑에 있고... 더 필요한 거 있니?”

“아뇨.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그래. 이따 마을 회관으로 오고. 저녁 먹어야지.”


사장님은 좋은 소고기가 잔뜩 들어왔다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거라 하셨다. 저녁 시간까지는 아직 서너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배를 타고 오느라 지친 내가 슬슬 평상에 눕는 자세를 취하자 사장님은 피식 웃으셨다.


“그럼 쉬어. 필요한 거 있으면 마트로 와!”

“네.”


대문 밖을 빠져나가는 사장님께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가 완전히 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뒤로 누워버렸다.


매미 울음. 풀냄새. 바닷바람의 짠내. 파도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또다시 매미 울음.


평상 위로 드리워진 느티나무 그늘 사이로 보이는 하늘까지 전부 다 똑같다. 이 마을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구나. 마치 이 섬만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다. 변한 건 나 하나.


그래도 은아. 난 어른이 된 네가 좋아.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시간이 흘러야 나를 만나는걸.

그럼 너는 어디에 있어?

이제 거의 다 왔어. 금방 갈게.


네가 웃었다. 선선히 부는 바람에 눈이 조금씩 감겼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그곳에는 18살의 네가 평상에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아. 뭐해?”


특별한 거 없는 하루다. 늘 그렇듯 우리는 네 집 평상에 누워 선생님이 읽어오라 한 고전 모음집을 읽다가 잠들었다가 다시 깨기를 반복했다. 내가 까무룩 잠들어 얼굴에 책을 얹어 놓은 채 누워있으면 너는 항상 그 이상한 애칭으로 나를 불러 깨웠다.

그러면 나는 부스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네게 말하는 거다.


“잠깐 졸았어.”

“빨리 읽어야지. 난 벌써 구운몽까지 읽었는데.”

“뭐? 진짜?”


승부욕을 자극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잠에서 깨 책을 다시 펼쳤다. 매미 울음이 우는 우리의 여름은 대부분 그렇게 흘러갔다.


여름을 닮은 너는. 어느날 갑자기 생겨났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나와 달리 너는 8살 여름에서야 자명도에 발을 들였다. 깡마르고, 검은색 똑단발에, 떡볶이 국물이 잔뜩 묻은 반팔 티셔츠만 걸친 너는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 손에 붙들려 왔다가 그대로 남색 지붕 집 할머니 손에 넘겨졌다. 제 엄마가 그날 이후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했다는 듯, 너는 황급히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도 멍한 눈빛으로 엄지손톱과 입술만 번갈아 깨물댔다. 슬프고 아쉬워서 눈물이 툭 터질 것 같지만 티 낼 수 없을 때마다 하는 네 버릇이었다. 그런 네게 다 녹은 맥주맛 사탕을 건넨 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하얀 피부. 도무지 살이 찌지 않는 몸. 작은 키. 알사탕같이 큰 눈을 가진 너의 이름은 류해성이라 했다. 육지에서 온 애답게 예민하고 까탈스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너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할머니를 도와 익숙하지도 않은 그물을 정리하고 마을 축제라도 벌이면 앞서 나가 춤을 추기도 했다.

항상 해사하게 웃는 네가 좋았다. 너는 우리 둘만의 이름을 만들고 싶다며 서로를 은, 그리고 성 이라 부르자 했다. 바보 같은 별명에 오글거린다며 나는 절대 너를 성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너는 기어코 나를 은이라 불렀다.

마을에 또래 아이가 없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나는 너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서 우리는 마치 서로의 분신처럼 붙어 다녔다.


봄이면 전교생이 우리 둘뿐인 학교 선생님께 빌린 어린이 식물도감을 들고 골목 사이사이 피어난 들꽃의 이름을 찾았다. 가을이면 섬 뒤편 숲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백과사전 사이에 끼워 넣고 책갈피를 만들었다. 겨울이면 섬 뒤편 숲과 마을을 잇는 도랑에 꽝꽝 언 얼음을 깨며 놀았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섬마을 아이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학교 뒤편 개구멍으로 나가면 작은 모래사장이 나온다. 이 마을 주민이 아닌 이상 결코 알 수 없는 장소였다. 게다가 우리가 자주 간다는 사실을 알고 마을 어른들은 이곳에 발을 잘 들이지 않게 되었다. 그 다정한 배려에 힘 얻어 우리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놀 수 있었다.

티셔츠를 벗어 그물을 만들기도 했고 운이 좋으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살살 치는 파도와 아주 오래전에 버려져 시동조차 걸리지 않는 고깃배 한 척이 다였지만 우리는 8살부터 18살까지 그곳에 살다시피 했다.

치마허리를 둘둘 말아 올리고 발끝을 참방이며 파도 가장자리에서 춤추는 너를 보면 나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 너와 있으면 시간이 이상하게 흘렀다. 빠르고도 느리게. 내 나이가 몇이고 너의 나이가 얼마인지도 모를 정도로 이상하게.

그 이상한 시간 속에 고여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은아.”


지평선 너머로 해가 저물 때쯤이면 너는 항상 모래사장에 앉아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바닷가에서는 말이야. 낮에는 육지가 더 따뜻하고, 밤에는 지면의 열기가 식어서 바다가 더 따뜻하대.”


언젠가 과학 시간에 배웠다. 실제로 해가 질 때즈음이면 바람이 제법 차가워서 너는 내 품을 더 파고들었다.


“그럼, 노을이 질 때에는 어떨까? 두 개의 온도가 모두 비슷할까?”


그러게. 내가 이 섬이고 네가 바다라면. 난 평생 노을이 지는 시간에 잡혀있고 싶다. 너와 내 마음이 같을 수 있도록. 영원히. 하지만 서로를 모르고 지낸 시간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더 긴 우리니까 너는 감히 나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할 수 없겠지.

그러니 이건 그저 나 혼자만의 이기심.


“글쎄. 잘 모르겠어.”


가만히 속삭이며 내 어깨에 손만 얹었다.


바위 위에 널어놓은 옷이 마를 때쯤 우리는 마을로 돌아갔다. 숲과 마을을 잇는 도랑. 그리고 그 도랑 위에 놓인 오래된 다리. 난간이 유독 낮은 그 다리 위에 아슬아슬 서서 웃는 너와 이젠 거의 다 저문 해의 분홍빛이야말로 이 세상이 만들 수 있는 제일의 모습이었다.

바람에 맞춰 흔들리는 네 단발머리와 약간 튀어나온 앞니. 묘한 노을빛을 등진 사랑스러운 네 미소.

물이 고인 도랑에서는 졸졸거리는 소리가 나고 여름의 열기를 받아 빽빽이 자란 풀잎이 서로를 스치며 바람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 풍경은 감히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너는 내 친구고, 가족이고, 백 번을 싸워도 이백 번 화해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면 그건 반드시 너일 거다.


“너랑 계속 살고 싶어.”


언젠가의 여름밤. 모기향 냄새를 맡으며 우정을 빌미로 평상에 누워있는 네게 속삭였다. 너는 기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응. 나도. 우리, 하고 싶은 일을 정하기 전까진 이 섬에 머물까?”


이 섬은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자 우리의 자유를 막는 족쇄. 함부로 떠나기 어려운 곳. 하지만 그런 섬에 네가 있다면 난 평생 벗어나지 못한대도 상관없었다.


“좋아. 물고기 잡고. 팔고. 해성이 너 그물 잘 만지잖아. 내가 배 몰게. 어때?”

“너무 좋아.”


네 손을 잡고 철없이 그려보던 그 미래가 우리에겐 최선이었다.


너와 있으면 시간이 이상하게 흐른다.

빠르고도. 느리게.


그래서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를 먹고 바라보는 세상이 넓어질수록 같은 시간일지라도 다르게 흐른다. 우리는 분명 같은 섬에서 같이 나이 들어갔다. 어린 나는 그게 영원할 줄 알았다.

평생 너와 바닷모래를 밟으며 살고 싶었다.

매일 밤이면 네가 해주는 생선구이를 먹고 옆집에서 얻어 온 수박을 누가 더 잘 드나 하는 유치한 내기도 하고 싶었다.

내 모든 여름을 너와 지내고 싶었다. 그게 당연했으니까.


“서울이요?”


그래서 18살 여름방학에 벌어진 이 상황을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너도 고등학생이고... 뭣보다 네 성적 보면... 여기보단 서울이 나을 것 같아.”


하나뿐인 딸을 위해 많이 준비했다며 부모님은 웃으셨다. 딱 한 사람. 나만 웃을 수가 없었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봐도 눈물이 먼저 새어 나올까 무서웠다.


“어... 언제 가는데요?”

“빠르면 다음 주. 이모가 집도 이미 다 알아봤대.”


눈앞이 캄캄했다. 얼마나 캄캄했냐면, 눈을 떠도, 감아도 보이던 네 모습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짧은 몇 마디의 대화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파도이자, 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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