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들 뭐해?

애들이랑 집에

누나는 친구들이랑 놀이공원 왔지롱

ㅋㅋ

부럽찌?

또 형들이랑?

박지성 버릇없다

넌 내가

친구들이 걔들밖에 없는줄 아냐?

어이없음

언니 쟤 잘못 키운듯

맞잖아..

친구 형들밖에 없으면서..

ㅇㅇ

ㅋㅋ

사실 나두

우정뽀렙 모르니?

큰누나는 밖에 좀 나오고

작은 누나는 집에 좀 있어

또 대답 안하네….






주니의 하루는 오늘도 루즈하다






"넌 동생들한테 이응이응이 뭐냐. 정 없게."

"몰라. 귀찮아."


옆에 누워 내 카톡을 슬쩍 훔쳐보는 김도영 볼을 살짝 밀었다. 날 보면 할 말이 잔소리밖에 없는지 김도영은 어째 날이 갈수록 잔소리가 늘었다. 삶이 변변찮긴 하지만 그래도 스물 일곱이나 먹었는데... 맨날 밥 먹어라, 산책 좀 해라, 누워만 있지 마라, 하는 잔소리가 울 엄마보다 더 했다.


그치만 차마 뭐라 하지 못하는 건, 히키코모리 마냥 이불 속에 파묻혀만 지냈을 인간이 그나마 김도영 덕분에 바깥 공기 한 번 마시고 살아서 그랬다. 너 없으면 나 누구랑 이런 거 보냐, 이런 거 먹냐, 이런 델 와보냐 등등 인프피 감성 돋아서 충동적으로 내뱉은 감동 문구만 수십 개였다.


물론 대부분의 멘트는 주로 새벽 시간에 이루어졌고, 그다음 날 점심 때쯤 느지막이 일어나서는 또 극딜 주고받는 사이긴 했다. 초등학생 코흘리개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네 친구니까 얼마나 서로에 대해 잘 알겠냐고. 입만 터트리면 특종감이다 보니 서로 알아서 자제하는 편이었다.


"아니 니 절로 좀 가라고. 왤케 붙어."

"아 나 자리 없어어. 옆에 맨바닥인 거 안 보여?"

"안 보이는뎅. 누워 있는데 어케 봄?"

"하... 진심 초딩이냐?"


또 나를 애 취급하는 김도영을 온 힘을 다해 밀어봤지만 꿈쩍도 안 했다. 지는 대기업 다니는 개어른이고 나는 알바나 전전하는 애샛끼라 이거지. 감히 내 말을 개무시해? 세로로 눕혔던 몸을 기어코 가로로 만들어 김도영 배를 깔고 누웠다. 옆에서 작위적인 한숨 소리가 들렸다. 니가 한숨 쉬면 어쩔 건데. 무시하고 카톡이나 하려는데 아까 박지성이 보낸 카톡 말고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껐다.


인생 진짜 덧없네...... 마음과 다르게 화창한 날씨에 원룸에 단 하나뿐인 창문 너머로 쨍한 햇빛이 들었다. 내가 언젠간 암막 커튼 설치하고 만다 진짜. 카톡 하던 핸드폰을 대충 던져놓고 이불을 휙 뒤집어썼다. 맨바닥으로 쫓겨난 것도 모자라 이젠 이불까지 빼앗긴 불쌍한 중생 김도영이 춥다고 칭얼거렸다.


"왜 이불까지 뺏어가. 나 진짜 추워어."


저리 좀 떨어졌으면 좋겠어서 이 난리를 친 건데 김도영은 영 눈치가 없었다. 나한테 이런 하찮은 대접을 받고도 끄떡없다니. 게으름이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저 멀리서 지켜보던 김정우가 다가와 일으켜주니까 김도영은 그제야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야나두."


손을 내밀었더니 김정우는 별말 없이 웃으며 나도 일으켜줬다. 김도영 같으면 이런 것도 혼자 못하냐고 겁나 꿍얼거리면서 해줬을 텐데. 김도영이 맹하게 앉아 정전기 잔뜩 오른 머리를 정리하는 걸 보다가 습관처럼 핸드폰 배달앱을 켰다.


"점심 뭐 시켜 먹을까."

"날도 좋은데 나가서 먹으면 안 돼?"


날이 좋든 안 좋든 주말엔 집 밖으로 안 나가는 게 국룰이다. 인생의 반을 침대에서 지내온 극한의 침대순이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미션이었다. 동족인 김도영은 가끔 내 말을 들어줬지만 짤없는 정재현은 말로 설득하기 어려웠다. 정재현의 말에 메타몽처럼 다시 맨바닥에 퍼질러졌다.


"굳이? 나 이미 누웠는뎅."

"와. 진짜 얄미워."


정재현 대신 김도영이 극딜을 박았다. 나를 쿨하게 무시한 정재현은 목표를 바꿔 뚠뚠이랑 놀고 있는 김정우를 꼬시러 갔다. 지금까지 여기 와서 한 일이라곤 뚠뚠이 배 만지는 게 전부인 김정우는 여전히 뚠뚠이 배를 주물거렸다.


쟨 뚠뚠이 때문에 여기 온 게 분명해. 합리적인 의심이 나날이 늘어간다. 김정우가 날 보며 뚠뚠이에게 다정하게 뽀뽀했다. 그게 꼭 뚠뚠이는 지꺼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김정우가 뚠뚠이를 조금 힘겹게 안아 들었다.


"뚠뚠이 살쪘어?"

"요즘 츄르를 너무 많이 줬더니 애가 돼지가 됐어."


뚠뚠이로 말할 것 같으면 길냥이 출신의 뚱냥이 되시겠다. 고양이 답지 않게 하찮아서 세 얼간이에게 꽤 귀여움을 받는 존재였다. 애가 돼지가 됐다는 내 말을 듣긴 한 건지 정재현은 협탁에 올려진 츄르를 또 하나 까줬다. 방금 전에 김정우가 주는 거 봤는데. 이래저래 뚠뚠이만 신이 났다.


"그만 좀 줘. 왜 다들 쟤만 보면 못 먹여서 안달이야? 나 먹을 거나 사주지..."

"방금 날 되게 불쌍하게 쳐다봤어."


그니까 왜 쓸데없이 뚠뚠이한테 감정이입하고 있냐고. 예전에 고양이 닮았다고 해서 그런가. 쾌남 정재현은 유독 뚠뚠이에게만 친절하게 굴었다. 너의 절친인 나에게도 좀 그렇게 대해주겠니? 그럼 또 무시하겠지. 보나 마나 뻔했다.


"그럴 거면 데리고 가든가."

"좋은데?"

"대신 원플원이야. 나도 데려가야됨."

"응. 거절할게."


네카라쿠배 중 하나 골라잡았으면 먹고 살길 막막한 죽마고우를 한 번쯤은 거둬줄 만 한데. 정재현은 천사같이 웃으면서 빠르게 손절했다.


"그래서 뭐 먹을 거냐고... 나 진짜 배고프다고..."


배도 고프고 거절당한 마음도 아프고... 고양이보다 못한 처지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이불을 돌돌 말아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뚠뚠이랑 다 놀고 온 정재현이 나가서 먹자고 김도영까지 꼬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재현은 한결같이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그러나 의외의 복병은 김도영의 귀차니즘이었다.


"아 좀 귀찮은데."

"밖에 나가면 분명 나오길 잘했다 그럴 거면서."

"그건 맞긴 한데... 그럼 쭈는 어떡해?"

"니가 사준다고 해."


그런 걸로 내가 넘어갈 거라 생각하나 본데. 사실 맞았다. 방이 좁아서 조그맣게 말해도 속닥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렸다. 정우야, 이리 와 봐. 둘이서 또 무슨 작당을 한 건지 김도영이 김정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 나가. 절대 안 나가. 한 손엔 핸드폰을, 다른 한 손엔 이불을 꼭 쥐고 끝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능글맞은 김정우만 아니었다면.


"진짜 안 일어나?"

"나 진짜 나가기 귀찮아."

"웅? 뭐라고? 뚠뚠이처럼 뽀뽀해달라고?"

"이 미친,"


느닷없이 입술 들이대는 김정우를 실컷 두들겨 팼더니 어느새 바닥에 두 발 딛고 서 있다. 아놔. 오늘은 진짜 안 일어나려고 했는데. 부글부글 끓는 내 머리 위로 정재현이 자연스럽게 패딩을 얹었다.


"어제 회식한 사람."

"나."

"어, 그럼 해장할까?"

"잠만. 생각 좀 해보고."


정재현이랑 김도영이 메뉴를 정할 동안 방구석에 쓰러져있는 김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든가 말든가. 조금 퉁명스러운 내 말에도 김정우는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아까와는 사뭇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몸을 일으켜주려는데 김정우가 물었다.


"왜 뚠뚠이도 안 하는 밀당을 니가 해? 고양이야?"

"내 맘."

"...아직이야?"

"......"


뒤를 돌아보니 김도영과 정재현은 점심 메뉴 정하느라 바빴다. 다행히 잠깐 떨어졌던 심장을 다시 주워 왔다. 아무래도 김정우는 일어날 생각이 없나 보다. 잡힌 손을 빼려니 김정우는 되려 힘을 줬다. 표정으로 온갖 욕을 다 해봤지만 여전히 헤헤 웃기만 했다.


"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제발 좀 닥쳐 정우야... 반대쪽 손으로 김정우 입을 틀어막았다. 뒤에서 둘이 티격태격하는 목소리가 조금만 작았어도 들렸을 거다. 김정우는 틀어막힌 입술로도 내 손바닥에 뽀뽀를 날렸다. 기겁하며 손을 뗐더니 다시 한번 싱긋 웃었다.


진짜 미친 거 아냐..? 드라이로 곱게 세팅한 머리에 꽃을 달아주고만 싶다. 김정우를 피해 급하게 패딩에 팔을 구겨 넣고 밖으로 나갔더니 뒤에서 김도영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쭈! 혼자 어디가!"


아니 도영아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자마자 현관문이 열리고 김정우가 튀어나왔다. 둘만 있으면 해야 할 얘기가 차고도 넘쳤다. 며칠째 김정우 카톡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있으니 더 그랬다. 아...... 안되는데......


그러나 요리조리 피해 다녀도 빌라 복도가 거기서 거기였다. 맘만 먹으면 빠릿빠릿한 김도영과 맘을 먹어도 느릿느릿한 정재현, 둘 중에 오늘만큼은 김도영이 이기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김정우가 내 앞에 설 때까지 현관문은 열리질 않았다.


"대답 언제 해줄 거야?"

"......"

"나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 불쌍하지도 않아?"

"......"


친구로.. 친구로 지내야 한단 이유로... 2AM 친구의 고백이 비지엠에 깔리려는 걸 대충 무시하고 멍청한 눈으로 천장만 응시하고 있으니 앞에 선 김정우가 축 처진 어깨를 들썩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럼. 내일도 뚠뚠이 보러 올게."

"...뚠뚠이 진짜 좋아하나보다."


그 말은 안 하는 게 나을 뻔했다. 넌 왜 이런 말에만 대답해? 김정우가 싸늘한 눈빛으로 얘기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우리 둘 사이에 냉기가 흘렀다. 아마 겨울이라 그런가보다. 겨울엔 스키를 타러 가야 하는데.. 스키장 갈 돈은 없으니 도영이한테 눈썰매장이나 가자고 말해볼까.. 그런 생각으로 허공을 채우고 있는데 드디어 현관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아직도 점심 뭐 먹을지를 놓고 싸웠다.


"진짜 초딩들 저기 있다 야."


김정우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나름 화해의 손길이었지만 김정우는 두 사람을 잠깐 보더니 다시 땅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발끝을 톡톡. 입을 꾹꾹. 영락없이 삐진 사람이었다.


"너도 어제 술 마셨다며. 그냥 알탕 먹어."

"안냐. 쭈 초밥 좋아하니까 걍 회전초밥집 가자."

"쟤 알탕도 좋아해. 너 알탕 좋아하잖아. 그치."


나한테 묻는 것 같아도 진짜로 묻는 건 아닐 거다. 둘이 말싸움 하면 자주 저랬다. 친구 10년 하니까 이젠 알아서 무시하는 짬이 생겼달까? 아니나 다를까 내 대답 없이도 대화는 알아서 잘 흘러갔다.


"아니 오늘 같은 날은 무조건 초밥집을 가줘야 한다니까? 그래야 다음에도 나갈 거 아냐."

"솔직히 말해봐. 너 니가 초밥 먹고 싶어서 그러지."

"아니라고오."

"솔직히 말하면 가준다."

"오바. 진짜 아냐."


휑했던 복도가 시끌벅적해졌다. 평소엔 귀찮기만 하더니 오늘은 좀 반가웠다. 이 분위기에 슬쩍 탑승해서 다시 한번 김정우의 기분을 풀어주고자 했으나,


"야야. 오늘은 그냥 정우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싫은데?"


아주 가끔, 죽어도 제멋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정재현 때문에 살짝 망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도 없고.. 저걸 때릴 수도 없고..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있었더니 정재현이 소리 내 웃었다.


유독 나한테만 심술궂은 정재현은 가만 보면 내가 하는 말은 죄다 반대로 했다. 주말에 나가는 거 극혐하는 거 알면서 굳이 나가자 그러질 않나, 뚠뚠이 돼지라니까 뜬금없이 츄르를 주질 않나. 지가 청개구리야 뭐야.


"재밌냐."

"응."


복식호흡 하는 정재현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복도를 울렸다. ...그래. 니가 재밌으면 장땡이지. 정재현이 퍽 행복해 보이니까 이번 한 번만 넘어가기로 한다. 사실 한 번이 아니긴 한데... 아무튼, 오늘도 그렇게 됐다.












언니!!!!!!!!

?

존나 미움

술 마셨으면 잠이나 자

죄 없는 제노 부르지 말고

뭐야..

어케 알았어..

니 막내 동생이 울면서 전화 왔다

엄마랑 그만 싸워

싸울거면 독립해

말이 쉽지

어이없어

근데

사실

언니 안 미움

근데 카톡 씹어서

미워짐

ㅋㅋㅋ

하나만 해 하나만

싫음

그래라

청개구리

정재현 같은 놈

욕이야?

ㅋㅋ

ㅋㅋㅋ

ㅡㅡ

근데

정우오빠랑은 어케댓어

사궈기로 햇어????

노코멘트

흥이다

사실

고민중

뭘?

그냥...

머야

싱거워

언니가 모르면 누가 알어ㅡㅡ

나도 내 맘을 모르겠어

근데

김정우말야

나랑 정재현이랑

고딩 때 썸탄 거 알고 있더라?

그건 또 어떻게 아심

설마 그 옵빠 눈치백단?

내 말이

걔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이거 아는 사람

딱 한명 있긴한데

누구?

나 말고 또 있어???!!!!

에바적인부분이네

ㅋㅋㅋ

ㅋㅋ

지금 설마 나를 의심?

이미 늦었어

🔪🔪🔪

아!!!!!!

개억울

무조건 나라고 생각하는 그 마인드

존나실타

너 진짜 아니야?

오늘 직진배송으로 시킨 옷 걸고

진심 아님

도영옵빠랑은 친하지

김정우오빠랑은 그만큼 안 친해

ㅡㅡ

니 반응을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일단 믿을게

억울해

갑자기 사망선고 받을뻔햇어

ㅋㅋㅋ

살아난 김에 걔랑 잘해보든지

아!!!!!!!!

ㅡㅡ

쓸데업ㅎ는 오지랖 다소 짱남

언니나 잘하삼

나 이제

걔 안 좋아한다고 했지!!!!!

몇번말함

ㅋㅋㅋ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ㅠ


핥짝

발랏음ㅋ

김정우 옵빠가

둘이 핥짝 키스한건 모르지?

ㅅㅂ

핥짝

준희야

언니 근데 뜬금업ㅎ이

소신발언 하나 해보도록 할게

잘 들어주깋바란다

되게 중요한 사항임

뭔데 또

개소리 할거면

나가

나는 말야...

나는...

도영옵빠를

형부로 맞이하구싶어

진짜루 진지하게

아맞다

너 취했지

자라

    # 자라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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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 잠귀 진짜 어둡다. 나 여기 한 시간 서있었자너."


누르라고 있는 벨은 안 누르고 문을 두드리길래 택배인가 했더니, 문 사이로 빼꼼 얼굴을 들이민 건 다름 아닌 김정우였다. 어제 점심 먹고 휭 가버린 건 기억도 안 나는지 김정우는 날 보자마자 헤실헤실 웃었다. 일부러 훌쩍이면서 감기 걸린 척 온갖 불쌍한 척은 다 하길래 빠르게 현관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문을 활짝 열어줬다. 불쌍한 척이라 해도 걱정은 됐다. 낡은 복도식 빌라에서 잠깐 마주한 겨울바람이 꽤 찼다.


"왜 전화를 안 해? 벨이라도 누르든가. 한겨울에 그러고 서 있으니까 당연히 춥지."

"그냥... 너 혹시 잠 깰까 봐..."


예전에는 별거 아니던 배려들이 어떤 순간을 맞이한 후로는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안에 녹아든 마음이 느껴져서 그런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멍하니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코트를 벗어둔 김정우가 제일 먼저 뚠뚠이를 안아 들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명분이라고 그걸 또 착실하게 지켰다. 어느새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츄르 한 봉지가 증명했다.


"너 또 츄르 사왔어?!"

"내 손도 데워주는데 이 정돈 해줘야지."

"어제 뚠뚠이 안아보고 혹시 양심의 가책 같은 거 안 느껴졌니?"

"내가 이만큼 키웠구나 싶긴 했어."


먹이주는 사람을 주인처럼 따른다 그랬나. 뚠뚠이가 유독 김정우를 좋아하긴 했다. 벌써 며칠째 츄르를 갖다 바치고 있으니 안 좋아할 수가 없을 거다. 저런 개냥이 같으니라고. 고양이로서의 지조 같은 건 츄르랑 같이 먹어버렸는지 영 물러 터졌다.


"이제 막 점심 먹으려고 했는데."

"응?"

"아니... 뭐... 점심 안 먹었으면 먹고 가든가..."


지금 누가 누굴 탓하는 건지. 예뻐해 주고 정을 쏟는 사람에게 자꾸 마음이 가는 건 고양이나 사람이나 똑같은 모양이었다. 김정우가 빤히 쳐다보는 게 민망해서 바쁘게 부엌 선반을 뒤졌다.


"...너가 해주는 거야?"

"별 건 아니고 그냥 라면이야."


누가 온다고 특별한 걸 준비해 놓을 형편은 안 됐다. 냄비가 어딨더라. 제일 오른쪽 칸에 있는 거 다 알면서 제일 왼쪽 칸부터 하나하나 뒤지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괜히 말 꺼냈나? 마지막 세 번째 칸을 열면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위에서 불쑥 하얀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힘들어 보여서."

"아... 고마워."


김정우가 바로 뒤에 서 있는 게 느껴졌다. 지금 뒤돌아서 라면을 가져올 순 없으니 일단 되는대로 냄비부터 씻었다. 물을 틀고 냄비를 씻는 동안에도 김정우는 그 자리에서 떠날 생각을 안 했다. 그렇다고 냄비를 백날 천날 씻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현관에서 뚠뚠이 궁뎅이만 만지고 돌아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 쭈가 점심을 해준다니. 장족의 발전이다 진짜."

"그거 진짜 엊그제 일 아니야?"

"응. 맞아."

"......"

"니가 생각해도 좀 심했지?"

"몰라. 근데 나 저기서 생수랑 라면 하나만 갖다줘."

"그래."


다행히 내 말을 잘 들었다. 김정우는 금방 생수 한 병과 라면 두 봉지를 가져왔다. 이제는 라면의 신이 되어버린 탓에 물 맞추는 건 일도 아니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넣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나란히 선 우리 둘 사이에 가스레인지 소리만 들렸다. 물이 끓기도 전에 김정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조금은 기대해도 돼?"

"당연하지. 나 못 믿어? 내가 일주일에 라면을 몇 번이나 끓여 먹는데."


쓸데없이 라면 부심을 부려서 그런가. 김정우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 왜. 눈짓했더니 실소를 터트렸다.


"그거 말고."

"그럼?"

"니 마음."

"......"

"나 기대해도 되냐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고백을 받고, 우리 사이에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는 내 물음에 김정우는 그렇게 답했다. 너 정재현이랑도 그랬었잖아. 걔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돼?


열아홉이랑 스물일곱의 차이가 그렇게 컸다. 그땐 수많은 친구들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내 전부였다. 김도영 아니었으면 저녁은 맨날 굶었을 거고 정재현 아니었으면 지금쯤 길바닥에서 자고 있었을 거다. 김정우 아니었으면 깔깔대며 웃지도 못했겠지.


"애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모르겠어."

"이건 우리 둘 문제야."

"아마 아닐 걸."

"...무슨 뜻이야?"

"......"


물이 끓었다. 라면 봉지를 뜯어 스프를 넣고 사리를 하나씩 넣었다. 4분. 4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슬쩍 김정우 눈치를 봤더니 고개를 반대쪽으로 휙 돌렸다. 표정 안 좋은 거 보여주기 싫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도 내 할 일이나 했다. 젓가락을 꺼내서 조금 익은 라면을 휘휘 저었다.


"김도영 프사 바꿨더라."

"그래?"


갑자기 웬 김도영? 무슨 얘길 하려고 그러나 귀가 쫑긋해졌다. 이제 라면은 거의 다 끓어갔다.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그거 니가 찍어준 거라며. 목요일에."

"응."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김정우에게 눈짓했다. 김정우는 다이소에서 산 접이식 테이블을 손수 펼치며 물었다.


"둘이 놀러 간 거야?"

"응."

"어디로?"


받침대 위에 라면을 올렸다. 맞다. 앞접시 가져와야지. 앞접시 두 개에 숟가락과 젓가락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안에도 김정우의 질문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어디로 갔냐고."

"바다 갔어. 동해에 해 뜨는 거 보러."

"단톡에선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그냥... 나 취준 얘기하다가 소원 빌러 가자 그런 말 나와서 갑자기 가게 된 거야. 그때 새벽인데 뭐라고 말을 해."

"새벽에 왜 둘이 같이 있었는데?"


먹으라고 수저를 줬더니 김정우는 받지도 않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김도영이랑 뭐 있어?"

"아니?"

"말 할 거면 지금 말해."

"아무것도 없는데 뭘 말해."


너스레를 떨어봐도 김정우 표정이 풀릴 기미가 안 보였다. 김정우 앞접시에 대충 수저를 올려놓고 나라도 열심히 라면을 퍼담았다.


"김도영 원래 나 저녁 굶는 거 싫어하잖아. 종종 밥 챙겨주러 오는 거 알면서 그래."

"솔직히 싫었어. 너 나한텐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그땐 니가 나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서 그랬던 거고."


본인이 사는 집도 아니고 친구 집 근처에다 직장을 구하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딨냐고. 김정우 말로는 우연히 그렇게 됐다고 하지만 정재현이 그랬다. 그게 우연이면 김정우가 점심시간마다 내가 일하는 빵집에 들르는 것도 우연이어야 한다고. 처음엔 대리님이 시켜서, 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엔 사장님으로 끝난 변명이 진짜일 리는 없으니까.


"근데 나도 궁금한 거 있어."

"뭔데?"

"너.. 나랑 재현이랑 썸 탔던 거.. 어떻게 알았어?"

"......"

"진짜 박준희한테 들었어?!"

"아니? 무슨 소리야?"

"아, 아니야? 아님 말고......"


괜히 버럭했다가 머쓱해졌다. 준희랑 지성이랑 둘 다 착하잖아. 그럴 애들은 아니지 않아? 김정우가 라면을 깨작거리며 물었다. 착하긴. 어릴 때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 그렇게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말해봤자 괜히 내 얼굴에 침뱉기였다.


"그럼 진짜 뭐야? 어떻게 안 거야? 그거 우리 엄마도 모르는 일인데."

"나 그때도 너 좋아했었거든."

"......"

"모를 수가 없던데?"


아... 이건 좀...... 김정우는 가만히 라면 먹던 사람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내가 김정우와 친해진 건 열여덟, 정재현과 썸을 탄 건 열아홉 때였다. 거의 십 년 전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김정우가 눈물 뚝뚝 흘리면서 고백했던 날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젓가락 두 개를 몽땅 떨어트린 나와 달리 김정우는 평온한 얼굴로 라면 한 가닥을 집어먹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은 다 썩어 문들어졌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깨작거리기만 하는 김정우가 신경이 쓰였다. 팍팍 좀 먹으라고 라면을 있는 대로 퍼줬더니 김정우가 질색했다. 웃기시네. 두 봉지도 뚝딱 해치우는 애가 약한 척은.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야. 너 밥 먹었지."

"......아니?"


아니긴. 딱 보니까 아닌 게 아닌데. 싸늘한 눈으로 김정우를 응시했다. 아까 으르렁 대던 사냥개는 어디 가고 주인 눈치 보는 시골개 한 마리가 허겁지겁 라면을 먹었다.


"말이라도 하지."

"아 안 먹었다니까?"

"내가 널 몰라? 모르냐고."


안타깝게도 김정우는 거짓말에 재능이 없었다. 결국 등짝 두 대 맞은 김정우 옆으로 뚠뚠이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김정우 다리에 몸을 비비더니 털썩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꼬리를 바짝 세운 뚠뚠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 친구니까 때리지 말라는 거다.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얘가 주인도 못 알아보고. 야 김정우. 너 얘 데리고 가."

"엇. 그럼 너도 원플원?"

"......"

"...미안."


냐아옹. 김정우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건지 늘 조용하던 뚠뚠이가 말을 했다. 어쩌면 천생연분은 이 둘일지도?












영화 보러 갈 사람

오늘?

ㅇㅇ

몇시영환데?

4시

아 뭐야

나 가족들이랑

교회 가는 시간이자너

그걸 까먹냐?

ㅇㅋ 됐고

다음

@김정우

정우 아까 약속잇다고 그러지 않았어?

?

언제

아까 아침에

친구 만나러 간다고 그랬자너

톡좀 읽으라고ㅡㅡ

걍 누르고 튀지말고

ㅇㅋ 됐고

다음

@박주니

ㅋㅋㅋ

왜 맨날 쭈는 마지막이야?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박주니

십초안에 안나오면

기회 넘어간다

얜 맨날 폰붙들고 살면서

왜 이럴 때만 안나와ㅋㅋㅋ

아ㅏ

실패

머얏ㅂ

이건 사기자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갈거야?

그럼 3시반까지

근데

빌라앞으로 나와

생각해보니

차끌고 갈게

집에 급한일이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유튜브 보는 것도

급한 일로 쳐주나?

유튜브 아니거든 ㅡㅡ

그럼 뭔데

걍 나와

아니 진짜야

집에 친구와있어

?

너 친구 없잖아

ㅋㅋㅋㅋㅋㅋㅋ

기냥 팩폭을 날려버리넹

정우 너 약속 끝났어?

끝났으면 둘이 가든가

그럴래?

나 이제 곧 나가는데

됐어

이미 화남

미안 ㅜ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글은 in your eyes 작가님과의 합작입니다.

https://posty.pe/phq3ma/

동생 (준희) 편은 위 링크 들어가시면 감상 가능합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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