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6.

지은이랑 오며 가며 기타 연습. 확실히 현관 앞에 기타를 두니 한 번이라도 더 잡게 되는 것 같다. 나윤이도 그게 거기에 있고 엄마 아빠가 그걸 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고.

원래 지은이 오전 10시에 기타 학원 가야하는데 선생이 아침에 연락해서 몸이 안 좋다고 내일 12시로 바꿨다. 어디가 아프지? 코로난가? 하다가 아마도 술병이 아닐까 생각했다. 기타 선생님들이란 어쩐지 그런 게 어울린다. 지은이와 내가 마주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했다. 부럽다... 

오후에 나윤이가 피아노 치고 싶다고 해서 심플리 피아노 켜줬는데, 음표 치는 건 안 하고 영상 강의만 보겠다고 해서 옆에 앉아 같이 동영상 몇 번씩 반복해서 봤다. 그러다 나윤이가 싫증 났는지 아빠 하라고 해서 어제 하던 필수 코스3 이어서 했다. 30퍼센트 정도에서 50퍼센트가까이 올렸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코드 코스에 갈 수 있어!

틈틈이 기타 F 코드도 연습했다. 혹시나 그런 게 있을까 싶어서 F 코드 쉽게 잡는 팁을 검색해봤는데 약식 코드 잡는 법만 있고 내가 원하는 내용은 없었다. 카페에 올라온 글 보니까 근육과 신경이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한달쯤 걸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댓글에 누군가는 6개월이 걸렸다고도 했다. 세상에... 과거의 내가 포기했을 법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금의 나는 어떨까? 이제는 많은 면에서 포기를 잘 하지 않게 되었는데, 끈기가 생겼다거나 현명해졌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는 아니고 포기는 뭘 귀찮게... 그냥 하다 보면 되겠지... 안 되면 말고... 하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으로 하니까 조바심 나지 않고 느긋해지면서 오히려 더 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몇 번은 소리가 제대로 나기도 했다. 좀 만 더 연습하면 되겠는데?

자려고 누워서 피아노, 기타, 독학, 등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다가 <지은쌤의 30일 피아노 코드 반주>, <박터틀의 재즈피아노 독학 가이드북> <기타코드를 익히는 방법과 약간의 이론> <나 혼자 피아노 친다> 등등 보관함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알라딘 중고점에 <작곡독학 가이드북 - 크리에이터 박터틀의>이랑 <일산오빠의 실용음악 기초이론 1> 있길래 다른 책들이랑 같이 주문했다. 

이런 책들이다: 
<초보 기타 팝송 여행 >
<17가지 키워드로 쉽게 배우는 실용음악이론>
<하얗고 검은 어둠 속에서>
<재즈 에세이>
<뻔뻔한 작곡법-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달콤한 아이디어들>
<맨땅에 헤딩하리>
<카투니스트를 위한 워크북>

어쩌면 나는 책을 일종의 아이템처럼 생각하는 게 아닐까? 구입해서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스킬을 얻고 능력치가 + 되는 그런 아이템. 그랬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23.02.26.

은평 롯데몰에 있는 키즈 카페 갔다. 오후에는 사람 너무 많아서 대기해야 한다고 해서 개장 시장 맞춰서 간다고 갔는데 조금 늦었다. 벌써부터 대기가 있었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깔깔 거리며 뛰어다니는 나윤이 쫓아다니다가 점심 시간이 되었다. 하늘고래만 타고 밥 먹어야지 생각하고 줄 서 있는데 나윤이가 갑자기 타기 싫다고, 밥 먹으러 가겠다고 했다. 이제 바로 다음이 우리 차례인데…? 했는데 나윤이가 울면서 “이거 안 탈 거라고! 지금 밥 먹으러 가고 싶다고!” 해서 깜짝 놀라서 데리고 밥 먹으러 갔다.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밥을 제대로 안 먹은 상태에서 놀다 보니… 

밥 나오길 기다리는데 당근 마켓에 키워드 알림 설정 해두었던 ‘카세트 데크’가 떠서 보니 티악 W600R 더블 데크가 2만원에 올라왔다. 어라, 이건 어제 올라왔던 거 아닌가. 불발 되고 만원 올려서 다시 내놓은 건가. 생각하면서 채팅을 눌렀다. 앞에 누가 먼저 채팅을 걸었다는 표시가 있어서 신경 쓰였지만 구입 가능하냐고 물었고 5분 후쯤 답이 왔다. “네 구입 가능합니다.” 아싸! 그래서 언제 사러 간다고 해야 하지?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들러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곧바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죄송해요. 먼저 온 챗 이 있네요. 불발 되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어쩔 수 없지… 사실 상우 씨가 선물해준 거 빼면 카세트 테이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집에 있던 것도 다 버렸고 작년 여름이던가? 처가집에서 지은이 옛날 물건 정리할 때도 테이프 (심지어 그때는 CD도!) 버리는 거 도와줬는데… 앞으로 카세트를 새로 사서 들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 상우 씨에게 받은 테이프가 있으니 저렴한 데크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중고 매물을 기다리는데 이렇게 되면 조금 초조해진다… 자꾸 이러면 십수 만원짜리 고가 빈티지 데크를 사게 될 지도 몰라… 물론 그럴 돈은 없지만 앞으로도 계속 돈이 없지는 않을 거잖아… 물론 앞으로도 계속 돈이 없을 수도 있지만... 

집에 와서 기절하듯 쓰러졌다. 일어나서 저녁 먹고 나윤이랑 놀다가, 나윤이 응아 하러 화장실 간 사이 지은이가 “헤이 클로버 뉴진스 노래 틀어줘” 했다. 익숙한 '디토' 전주가 나오는데, 화장실에 있던 나윤이가 말했다. “나 캐치티니핑 노래 듣고 싶어! 헤이 클로버 캐치티니핑 노래 틀어줘!”


22.02.27. 

피아노도 기타도 치지 않았다. 대신 <다시, 피아노>가 일기 형식으로 된 책이라는 사실을 떠올렸고 이번 달 독서평설은 그걸로 쓰기로 했다. 

밤에 습관처럼 알라딘 들어갔다가 때마침 누가 동탄2하나로마트점에 내가 사고 싶은 책을 잔뜩 팔고 가서 주문해버렸다.

<박터틀의 재즈피아노 독학 가이드북 1>
<나 혼자 피아노 친다 - 차차와 피아노독학>
<지은쌤의 30일 피아노 코드 반주 1, 2>

아마 나랑 비슷한 마음으로 책을 잔뜩 샀던 사람이 포기하고 넘긴듯... 주문하는 김에 5만원 넘겨서 무이자 8개월 할부하려고 새책도 같이 샀다.

<악기 연습하기 싫을 때 읽는 책 - 다 큰 어른이 악기를 배운다는 것>
<오디오·라이프·디자인>


23.02.27.

토요일날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에서 선생님이 10시까지 등원 시간이지만 최소한 9시 반쯤 와서 친구들하고 놀면서 마음의 준비하다가 10시부터 일과를 시작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오늘 나윤이 오랜만에 지각하지 않고 갔다. 집에 돌아와서 일을 하지는 않고 황덕호의 <그 남자의 재즈 일기> 읽으면서 재즈 들었다. 어느새 2/5 즈음 읽고 있는데, 소개하는 음반을 들으며 해당 부분을 읽는 게 제일 좋겠지만 이북으로 자기 전에 틈틈이 읽은 탓에 실제로 들으면서 읽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monk’s music] 들으면서 읽는데, 좋았다. 몽크야 워낙 유명하니까 예전에 재즈를 거의 듣지 않고, 본능적으로 기피하던 때에도 베스트 앨범 CD를 사두고 종종 듣긴 했는데 이렇게 들으니 느낌이 또 조금 다르다. 아는만큼 보이고 들린다는 게 맞는 말 같다. 때때로 알기도 전에 보이고 들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은 인생에 몇 번 없다. 앞으로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고… 그나저나 아무래도 같은 일기 형식이다 보니 읽는 내내 바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일기가 떠올랐다. 차이가 있다면 <그 남자의 재즈 일기>는 픽션이고 이것은 논픽션이라는 것. 그보다 더 큰 차이는 <그 남자의 재즈 일기>에는 체계적이고 알찬 정보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그런 건 없고 그냥 주절주절 떠드는 혼잣말 뿐이라는 것. 어쩌면 그래서 조금 재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봤자 지돈 씨가 전해준 친구 분의 감상을 빌리면 “오디오 이야기만 빼면 재밌”는 그런 재미… 마치 동네 새로 생긴 작은 커피숍에서 아포가토를 먹었는데 맛있었다고, 커피만 빼면 다 좋았다고 하는 것처럼… 아무튼 지금은 모두 잠든 밤 12시 12분이고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다…

[monk’s music] 끝나고 알고리듬이 틀어주는 이런저런 재즈 듣다가 이제 슬슬 일을 해야지… 하는데 너무 피곤했다. 그제 엄마가 다크 서클도 심해지고 피부도 뜬 거 같다며 파마 같은 거 해봐야 얼굴이 썩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그러다 죽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냥 좀 잤다. 그래도 죽지는 말아야지 싶어서. 그리고 일어나서 알라딘에서 커피 드립백 주문하면서 켈러 쿼텟이 연주한 [바흐: 푸가의 예술] 현악사중주 버전 주문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나윤이 데리고 왔다.

어제 그제 당근마켓에서 카세트 데크 놓친 기억 떄문에 그랬을까? 나윤이 재우고 오랜만에 당근 마켓이랑 중고나라에서 앰프 검색했다. 오랜만에 봤지만 어쩐지 전이랑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 비슷비슷한 물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앰프가 있었다. diatone da-u480. VU메타랑 양쪽에 손잡이도 달린 빈티지 앰프였는데, 다이아톤이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가격이 12만원이었다! 알고 보니 다이아톤은 미쯔비시에서 만든 오디오 브랜드라고. 1970년대 후반 출시 모델로 당시 38000엔… 그렇다면 전에 사려고 했던 트리오 ka-6100(중고가 28만원)이랑 비슷한 거 아닌가. 검색해도 ka-6100 출시가가 안 나오지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해야지. 직거래만 한다는 것도 좋았다. 문제는 위치가 사당이라는 것…

그래 한 번 갔다 오지 뭐. 안 그래도 [블론드] 엘피랑 기타 등등 작업실 가져다 둘 것들이 있어서 언제 한 번 차에 실어 가야지 생각했는데 그게 내일이면 안 될 이유가 있나? 그래서 바로 구입 가능하냐고 메시지 보냈고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내일 오전 11시까지 가기로. 좋았어! 곧바로 쿠팡에서 강압 트랜스 주문하고 당근 마켓에서 스피커 검색했다. 앰프가 추가 되면 스피커도 추가 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물론 그렇다고 당장 살 건 아니고 그냥 분위기만 좀 봤다. 이제 나윤이가 오늘처럼 어린이집에 늦지 않게 가주기만 하면 되는데…

자기 전에 알라딘 장바구니 보다가 순전히 앨범 커버랑 제목 때문에 담아 두었던 peppino d’agostino [a glimpse of times past] 듣는다. 기타 음악인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애수 어린? 그렇다고 ‘로망스’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느낌은 아니고 조금 황량하며 쓸쓸한, 딱 앨범 커버 같은 음악이다.


23.02.28.

아침부터 마음이 급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나윤이 따라서 7시 반에 일어났다. 11시까지 사당에 가려면 1시에는 출발을 해야 하는데, 2시간 반이나 남아 있었지만 결코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아이와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거다…

다헹히 지난 토요일에 어린이집 오티 가서 선생님이 이제 형님 되었으니 지각하는 습관을 버리고 일찍 다니자고 하신 말씀이 아직 효과가 남아 있었다. 몇 번 고비가 있었지만 늦지 않게 준비해서 9시 반에 집에서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충분히 여유롭게 갈 수 있었겠지만 나윤이가 아침에 목이 조금 아프다고 해서 병원 들렀다 가느라 결국 어린이집에도 조금 늦었다. 10시 7분.

집에 들러서 부랴부랴 나윤이 저녁에 먹을 약 만들어놓고 짐 챙겨서 나왔다. 그리고 제일 빠른 경로로 사당동 대림아파트 찍고 출발헸다. 11시 20분 도착 예정. 어제 저녁에 약속 잡으면서 일산이라 차가 막히면 1-20분 정도 늦을 수도 있다고 얘기해놓길 다행이었다.

왜 그랬을까? 가는 동안 신해철 들었다. 처음엔 늘 그렇듯 뉴진스-아이브-르세라핌-(여자)아이들로 이어지는 플로 내 취향 추천 믹스(그래 내 취향은 안 바뀐다는 거지…) 듣다가 임영웅 나오기 시작해서 다른 노래를 틀어야 하는데 갑자기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듣고 싶어서 들었다. 만약 스포티파이였다면 이어지는 알고리듬에 귀를 맡겼겠지만 똥멍청이 플로는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틀어줘 하면 온갖 엘범에 실린 같은 노래만 주구장창(표준어가 아니란 건 알지만 여기엔 이렇게 쓰는 게 어울린다 주야장천보다는…) 틀어주고 만약 같은 노래가 한 곡밖에 없으면 그냥 그 노래만 무한 반복해주기 때문에 다른 노래를 틀어달라고 헤야 했으므로 뭘 듣지? 하다가 그냥 신해철… 노래 틀어줘 헸다.

나는 늘 내가 신해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상을 밝히기 위헤 블랙박스 영상을 재생했다면 그들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신해철의 팬이라는 사실에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노래를 썩 잘 부르진 못한다는 사실에도…

언덕을 넘어 사당동 대림아파트 도착했다. 11시 25분. 도착했다고 메시지 보내고 조금 기다리니 혹시 앰프 사러 오신 분이세요? 앰프는 생각보다 낡았는데 뭐 세월이 있으니 당연하겠지. 아저씨는 얼마 전까지 본인이 직접 듣던 것이라며 작년에 점검도 받아서 이상 없다고, 그러면서 혹시 다이아톤에 대해서 원래 좀 아세요? 물어봐서 몰랐다고 그런데 검색해보니 미쯔비시 브랜드라고 하던데 맞니요? 하니까 맞죠 미쯔비시 했다. 그러면서 일본 100v 쓰는데 강압기는 있냐고 물었다. 전에 위시티 자이로 로텔 cdp 사러 갔을 때도 앰프는 있는지 앰프랑 연결하는 선은 있는지 물어봤는데 왜 아저씨들이 나를 보면 그런 걸 묻는 걸까.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 같아서? 정확하시네요…

앰프 싣고 계속 신해철 들으면서 작업실 왔다. 박스도 안 뜯은 [블론드]랑 같이 5층까지 날랐다. 가벼웠다. 강압기가 아직 안 와서 일단 그냥 두고 도시락 먹으면서 st.germain [투어리스트]랑 빌 에반스 베스트 앨범 들었다. 빌 에반스 베스트는 음질이 너무 별로였다. 그냥 옛날 음질이 아니라 영상으로 치면 깍두기 같은 음질.

새 앰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아무래도 씨디피 아래에 놓아야 할 것 같다. 옛날 앰프다 보니 바나나 단자가 없는데 기존 스피커들은 케이블 뒤에 바나나 단자 처리를 해놓은 상태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 중이다. 이 기회에 스피커 셀렉터를 사야 하나?

저녁에 재욱이랑 미은 누나 만나기로 해서 차 다시 집에 세워놓으러 가는데 계속 흐르던 신해철 노래가 뚝 끊겼다. 뭐지? 진짜 이해할 수 없는 알고리듬이네… 생각하며 그렇다면, 듀스 노래 틀어줘. 그리고 아까와는 다시 한 번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뉴잭스윙 리듬과 랩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추억 속으로 우리들의 어린 시절 이미 지나 갔고 어른이란 이름으로 힘든 직장 갖고 생활하면서 뽀얀 얼굴은 갔고 그런 걸 갖고 고생이라 말하고…

버스 타고 망원 가면서는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스몰커피에서도 아무것도 안 듣고 <지본주의 동물농장> 읽었다. 라디오헤드와 재즈와 처음 듣는 조용한 노래들이 흘러 나오는 저 북셸프 스피커는 무슨 모델인지 궁금해 하면서…

7시에 프로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미은 누나가 일찍 온다고 해서 둘이 먼저 만났다. 그러다 재욱이 왔고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 하면서 웃고 떠들고 마셨다. 확실히 프로그 선곡이 좀 더 트렌디했다. 카녜, 켄드릭 라마, 캘빈 해리스(feat.프랭크 오션) 등등…

9시 조금 넘어서 사뭇으로 옮겼다. 진짜 오랜만이네. 코로나 이후엔 처음인듯? 사장님은 여전히 멋있으셨다. 그리고 전에 왔을 땐 몰랐는데, 스피커랑 앰프가 상당히 빈티지 하네… AR 스피커인가? 싶었는데 물어보지는 않았다. 주졉스러워 보일까봐… 사뭇에서도 이것저것 먹고 마시면서 옛날 이야기들을 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참 많은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 셋에 석재형까지 넷이서 치퍼 존스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한 게 어언 20년(물론 과장이다. 그런데 2년만 더 있으면 실제로 20년이 된다는 게 소름…)인데 왜 우리는 그동안 밴드 활동을 하기는커녕 악기를 배우려는 흉내도 내지 않았을까? 물론 몇 번의 소소한 시도가 있긴 했지만… 재욱이랑 둘이 나우누리에서 작사 전문 듀오(이름이 뭐더라? crazy says?)를 만든 건 거짓말 안 보태고 25년인데 그 세월 동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1시 반쯤 사뭇에서 나왔다. 계산은 재욱이가 했다. 오늘 진짜 너무 많이 얻어먹었네. 거리는 한산했다. 망원동에 우리만 있는 거 같았다. 노래방? 내가 말했다. 노래방! 미은 누나가 말했다. 노래방… 재욱이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방에 갔다. 이게 얼마만이야? 원래 지은이랑 같이 종종 갔는데 나윤이 태어나고 나서 한 번도 못 갔다가 작년에 지은이랑 둘이 각각 다른 자리에서 술 마시고 들어오다가 집 앞에서 만나 같이 코인 노래방 간 게 전부인데. 이 멤버로 갔던 걸로 치면 최소한 10년은 넘었고… 그러고 보니 <아무튼 택시>에 재욱이랑 둘이 노래방 간 이야기가 있구나…

첫 곡은 오늘 낮에 들었던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옛날 노래부터 요즘 노래까지 이런저런 노래 불렀다. 셋 다 담배 끊은 사람들이라서 재욱이랑 나는 담배를 피우면 어떨까? 가끔 한 대씩 피운다면 그건 바로 오늘일텐데… 같은 말을 했었는데 우리가 담베를 피우지 않아도 방에 이미 담배 냄새가 가득헸다. 꼭 방이 혼자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았고 덕분에 담베 한 모금 피우지 않고 니코틴 하이가 되었다.

니코틴 하이. 그게 아니라면 새벽 4시까지 노래방에서 있을 수 없었겠지 정말… 처음에 계산하고 들어가니 딱 한 시간 넣어주길래 요즘 노래방은 이런가, 보너스 안 주면 추가 해야 하아 생각하고 있었는데 30분 20분 20분 20분 시간을 추가해주셨다. 나중에는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어서 10분쯤 남겨두고 이제 그만 나가자고 했는데 미은 누나가 마지막 곡을 해야하지 않겠느냐며 ‘보헤미안 랩소디’를 틀었다. 마지막 ‘애니웨이 더 윈드 블로우즈…’ 구절을 부르고 나니 1분이었던 시간이 0분이 되었다. 우리가 이겼다… 이겼다고…

노래방 나오면서 택시 불렀는데 택시가 안 잡혔다. 어쩌지 하다가 망원역 앞으로 걸어가는데 마침 빈 택시가 와서 탔다. 이것도 정말 옛날 같은 일이네. 그리고 새벽의 자유로를 달려 집으로 왔다. 노래는 없었다. 그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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