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 나타나

프롬님 :)

민선생과 별사탕

25 [完]




4개월 후.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의 한 번화가. 2월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목적지를 갖고 번화가를 열심히 돌아다니기 바빴다. 카페에도 사람이 가득, 다양한 문화공간이 자리 잡은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한가득.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1층에 가게 하나가 이제 막 개업을 한듯싶었다.



-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 계속 주시해.

- 넵.

- ...

- ...

- 여주 춤 되게 잘 추네요.

- 내가 볼 땐 쟤 지금 즐기는 것 같은데.



그리고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1층 가게 앞에서 인형 탈을 쓰고 열심히 춤을 추는 사람은, 여주. 펭귄 옷을 입고 펭귄 머리까지 덮어쓴 여주는 마치 그곳이 무대라도 되는 것처럼 열심히 춤을 추고 있다. 범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어째 진짜 그냥 춤추면서 놀고 있는 듯.



"오랜만에 춤추니까 넘 재밌는데요?!"

- 그래, 그래 보인다.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여주의 목소리에 남준이 헛웃음을 친다. 범인 쫓느라 뛰어서 숨이 찬 게 아니라, 춤추느라 숨이 찬 목소리가 웃길 수밖에 없었다. 아, 주변 좀 둘러보면서 추라고~! 남준이 한 소리 한다.



"아놔, 내가 펭귄 대가리 쓰고 있어서 안 보여서 그렇지, 선배보다 더 열심히 주변 보고 있거든요?! 선배나 열심히 보라고요!"

- 야, 나도 겁나 열심히 보고 있거든?

- 내가 너네 무전기로 싸우지 말랬지.

"죄송함닷."

- 죄송합니다.



으휴, 이놈들 진짜. 선배의 한숨 소리가 무전을 타고 여주의 귓가로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천천히 펭귄의 고개가 돌아간다. 어, 설마 저 새끼.



"선배, 봤어요?"

- 어? 누구?

"아, 못 봤어요?!"

- 잠깐만!



남준이 진짜 잠깐, 딱 1초 시선을 돌렸을 때 범인이 막 단골 편의점에서 나왔고, 사람 가득한 번화가 속으로 사라졌다. 남준이 급히 화면을 되감기 해 범인의 동선을 파악하고 여주는 그런 거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펭귄 탈을 벗어던지고 뛰어가기 시작한다.



"아악! 펭귄 발 왜 이렇게 커요!"



뛰어가면서도 제 달리기를 느리게 만드는 펭귄 발바닥을 벗어던지기 위해 뒤뚱거리는 여주. 저 펭귄 왜 저래? 영문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펭귄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펭귄 발바닥을 벗어던지면서도 범인을 눈으로 좇은 여주가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야, 저 펭귄…. 누님 아니야?"



핸드폰으로 길을 찾고 있던 윤기가 석진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제 앞을 쌩하니 지나가는 웬 수상한 남자와, 펭귄 옷을 입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사람은 여주가 맞았다.




"어, 맞아. 지금 잠복 중이라고 했거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펭귄을 보고서도 이제는 꽤 담담한 윤기다.








학교 교문에는 졸업 축하를 알리는 거대한 플랜카드가 붙어있었다. 학교 운동장은 주차장과 다름없을 정도로 학부모들의 차로 꽉 차 있었고, 체육관은 졸업식이 진행되는 대강당으로 탈바꿈했다. 꽃다발을 든 학부모와 떠들어대는 학생들로 가득 찬 대강당 중간 즈음에는 3학년 9반 자리가 있다.



"얘들아, 졸업 축하해~!"



9반 아이들은 눈 마주치는 친구들마다 서로 졸업을 축하하기 바빴다. 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반장조차 흥분해서 친구들 등짝을 때리고 다녔다. 아직 어머니가 도착하시지 않아서, 그저 자리에 앉아 핸드폰 게임만 하던 정국 옆에 아미가 앉는다.



"막상 졸업식 되니까 되게 싱숭생숭하다, 그치?"



아미가 말을 걸면, 하던 게임을 끄는 정국. 아미의 부모님은 벌써 오셨는지 품에는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어제 술 마셨냐?"

"힉. 어떻게 알았어?"

"얼굴이 부어서."



우이씨. 아미가 꽃다발을 들지 않은 손으로 제 볼을 잡는다. 바로 어제 사범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은 아미가 중학교 단짝 친구들과 함께 술을 퍼마셨다. 정국에게 대학 합격 소식을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희가 졸업을 하긴 하는구나. 시간이 충격적일 정도로 빨라서 아직도 안 믿긴다."



체육관에서 공식 행사를 마치고 9반 교실로 올라온 아이들은, 막 앞문으로 들어오는 윤기를 보며 각자 떠드는 것을 멈춘다. 잠시만 밖에서 대기해 주시겠어요, 윤기가 정중히 학부모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앞문을 닫고 교탁 앞에 선다. 3학년 9반의 마지막 종례였다.



"특히 우리 반에 사건 사고가 많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다들 흔들리지 않고 수능도 무사히 치고 다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것 같아 기분이 좋네. 아, 어제 우리 반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던 미 합격자 아미도 사범대 합격했다. 다들 박수."



아미를 마지막으로 9반 학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대학에 합격했다. 수능 전날 너네 싹 다 재수 없을 거라고 했던 윤기의 말이 진짜였는지. 숙취에 고생하는 아미는 제게 쏟아지는 박수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너네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잔소리다. 앞으로 뭐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행동하도록. 알겠냐?"



졸업 축하한다, 윤기의 말을 끝으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실 안으로 하나둘 들어오는 학부모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윤기. 다들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윤기와도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다.

워낙 민쌤의 인기가 좋았으니까 그 복작거림은 더했다. 아이들에게 민쌤의 이야기를 전달 들은 학부모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윤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바빴고, 그중에서도 윤기가 가장 반갑게 맞이한 사람은,



"오랜만에 뵙네요, 정국이 어머니. 잘 지내셨죠?"



정국의 모친. 4개월 전 백현의 위협으로 잠시나마 한집에 살았던 덕분에 윤기와 오랜만에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전회장이 결국 감옥에 들어가고 전보다 더욱 정국을 살뜰히 살폈던 윤기. 다행히 정국이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수능을 잘 쳤고, 지금 보니 정국 모친의 얼굴도 매우 밝다.



"선생님 덕분이죠. 그리고 그, 형사님도,"



정국이가 마음을 바로잡은 데에는 여주의 역할이 크다는 어머니의 말에 정국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 옆에서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아미가 전화를 받는다. 안 그래도 밝았던 표정이 전화를 받고서 더 밝아졌고, 언니! 하는 목소리에 윤기와 정국이 고개를 돌린다.





"내가 넘 늦었지~! 얘들아, 잘 있었냐~!"



헐! 김여주다! 9반 아이들이 각자 할 일을 하다가도 다들 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며 여주의 이름을 불러댄다. 그날 이후로 딱 4개월 만에 여주를 마주하는 것이니 반가울 만도 했다. 학교에 잠복하던 당시 모습처럼 엄청난 발랄함을 장착하고 교실로 들어서는 모습에 윤기는 웃음이 터졌다. 이제는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깨발랄한 모습이 그때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던 고딩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 일부러 주목받으려고 이제 온 거지?"

"야, 무슨 소리야? 나 반차 쓰고 온 거거든? 방금도 한 명 깜빵에 넣고 왔어~!"



미쳐, 진짜. 여주와 정국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윤기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정국 모친과 아미까지 다 같이 사진까지 찍고 나면, 9반의 다른 학생들이 여주와도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다. 반가운 마음에 열심히 여주도 사진을 찍어준다.



"졸업 축, 미친, 여주 누나!!!!"



그래도 나름 정국과 친해졌다고, 졸업을 축하해 주기 위해 9반으로 왔던 지민은 여주를 보고 놀라 넘어질 뻔했다. 정국이 절대 번호를 알려주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여주를 그리워만 했던 지민이였기에 지금 만남은 운명과도 다를 것이 없었다. 지민의 등장에 정국이 키득거렸고, 늘 지민을 귀찮아했지만 이제는 그냥 귀여운 동생 같은 느낌에 여주도 지민의 인사를 받아준다.



"누나, 저 누나 따라서 경찰 되면, 그때 저랑 사귀어주실 거예요?"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몇인 줄 알아?"

"알죠! 정국이형이 누나 스물여덟 이랬는데? 아, 이제 스물아홉! 아, 저랑 열 살밖에 차이 안 나네요, 뭐~!"



열살밖에 차이가 안 난다니? 여주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너 초딩일 때 난 이미 대학교에서 술 퍼먹고 다녔어. 열살밖에가 아니라, '열 살이나'라고!"

"아, 그거나 그거나요~! 전 누나가 저보다 서른 살이 많아도 좋아요!"



말이 안 통하네. 여주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지민을 쳐다본다.



"거절하는 이유가 나이뿐만이 아닐 텐데."

"에?"



여주만 쳐다보던 지민은 옆에서 들려오는 윤기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쌤이랑 사귀거든. 난 제자랑 피 터지는 사랑싸움 그런 거 싫다, 지민아."



윤기가 여주의 손을 잡아 제 쪽으로 당겨 안으며 말한다. 뭐라고요? 지민의 턱은 빠질 듯 벌어졌다. 교실은 놀라버린 9반 학생들의 꺅꺅거리는 비명으로 가득 찬다. 정국과 아미는 이제야 밝혀진 윤기와 여주의 연애에 그저 키득거리며 즐거워하기만 했다.








"와. 여기 얼마 만이야."



여주가 정문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린다. 딱 9년 전 이맘때쯤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이고 너무 좋아서 방방 뛰었었는데.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경찰대학교에 입학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올려다본 여주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



그리고 경찰대학교 수석 입학으로 단상 위에 올라선 정국의 모습에,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주였다.



"네가 여주 선배님이 그렇게 아끼는 전정국이구나?"



졸업생 대표로 입학식에 참석한 태형. 그래도 나름 선배라고,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정국이다. 근데 너 전교 1등이었다며? 왜 서울대 안 갔어? 태형이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김여주도 전교 1등이었는데 서울대 안 가고 경찰대 갔잖아요."



전교 1등을 놓친 적은 없지만 꿈은 없었던 정국은 여주를 따라 경찰대학교에 입학했다. 진심으로 여주 같은 경찰이 되고 싶었다. 낯간지러워서 직접적으로 여주에게 말을 꺼낸 적은 없지만.



"근데, 너 왜 여주선배님 이름을 막 부르냐?"



태형이 여주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꼴랑(?) 몇 기수 선배인 태형에게도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데 대선배 여주에게, 그것도 골드문 완벽 소탕의 공로를 인정받아 특진을 해서 경감이 된 여주에게 말이다.



"괜찮아, 태형아. 정국이 내 동생이야."

"선배님 동생이 있으셨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얘가 선배님 동생이라고요? 성이 다른데요?"



근데 잠복한 학교에서 만난 동생이라고? 태형이 잔뜩 혼란스러운 얼굴로 정국과 여주를 번갈아본다.



"친구 먹기로 했습니다."



정국이 웃으며 말했다. 여주가 따라 환하게 웃음 지었다.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가득 찼다. 떠드는 소리는 아니고 자세히 들어보면 싸우는 소리다. 성과 다툼에 민감한 형사과 전체 회의였다.



"저희 마약반이 뭐 그렇게 늘 한가한 사람들도 아니고 협조 요청 오면 예예, 하면서 가야 합니까?"

"아니, 누가 당신들 한가하다고 했어요? 이 새끼들 뽕쟁이라니까?"

"뽕쟁인지 아닌지는 마약반에서 판단합니다, 예? 강력반이 아니고요."



마약 1팀 반장은 강력 1팀 반장에게, 강력 1팀 반장은 강력 2팀 반장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성질을 내는 형사과 전체 회의. 이 회의는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된다. 여주가 이마를 짚었다.



"오늘 반장님들끼리 저렇게 싸우시는데 우리가 삼겹살을 먹으러 가면, 희대의 배신자들이라고 매장당하지 않을까요?"



칼만 안 들었지 그냥 뭐 조폭 싸움이나 다름없는데요. 호석이 덧붙인다.



"에이, 우리 셋이 친한 거 아는데 설마 그러실까요?"



남준의 말이 끝나게 마약 1팀 반장이 잔뜩 열받은 목소리로 소리친다. 정호석 너, 강력 1팀 놈들이랑 놀러 다니면 죽을 줄 알아! 네, 넵! 호석이 바짝 긴장해 대답한다.



"어쩌냐, 우리 오늘 삼겹살 못 먹겠는데?"

"어쩔 수 없죠, 뭐."



회의실을 빠져나오며 남준이 말했다. 여주는 영혼 없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답하며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노란 화면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걸 보니, 지금 카톡 하는 모양인데.




오늘 삼겹살 쫑났다

난 윤기 보러 갈랭

오디양???





사실 삼겹살보다 윤기 보는 게 더 급했던 여주는 완전 노상관. 삼겹살이 먹고 싶었던 남준과 괜히 마약 1팀 반장님에게 까인 호석만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영원한 민쌤♥

김석진이랑 같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

둘이 사귀지?


>♥영원한 민쌤♥

아 뭔소리예요ㅠ

끔찍해


가끔 보면

나보다 걔랑 더 자주 만나...


>♥영원한 민쌤♥

그럴 리가 있나

지금 집으로 갈까요?




미친. 여주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으응, 뭐라고? 남준이 물었지만 여주는 답을 하지 않았다.



"집에 일 있다고 겨우 빠져나왔네요, 전 삼겹살 가능."



전 불가능입니다악! 여주는 남준과 호석이 더 붙잡기 전에 도망쳤다.



"민윤기랑 저랑 선약이었다고요, 누님~ 그런 눈으로 쳐다보시면 저 진짜 서운하죠. 누님이랑 저랑 학교에서 쌓은 우정이 얼만데요!"



그렇지만 윤기는 잔뜩 술에 취한 석진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찌나 집요한지, 윤기가 억지로 택시를 태워 보냈는데 그걸 다시 돌려서 윤기가 있는 곳으로 왔단다. 결국 집으로 향하던 택시를 돌려 윤기가 있는 곳으로 향한 여주. 여주의 등장에 윤기가 미안함에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여주는 윤기에게 화가 1도 나지 않았다.




"술버릇이 연어가 된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 방향이 우리 윤기인지는 몰랐네?"



연어처럼 집으로 귀소본능이 있다고 들었는데 감히 집으로 안 가고 다시 돌아와? 감히 우리 민쌤과의 데이트를 방해해?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진짜 횟감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석진이 딸꾹질을 했다.



"갑자기 집에 가고 싶네."



여주가 오고 나니 그제야 석진의 제대로 된 연어 본능이 발현된다.








여주를 만나게 될지 몰랐던 탓에 술을 조금 마셨던 윤기는 결국 대리를 불러서 여주의 집까지 왔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여주의 집. 어느덧 여주의 화장실에는 칫솔이 두 개가 걸려있었고, 여주의 옷장에는 사이즈가 큰 반팔 티도 여러 장 걸려있게 되었다.



"먼저 씻을래?"

"누나 먼저 씻어요."

"같이 씻을까~?"

"..."



여주의 장난스러운 말에 윤기는 말문이 막힌다. 아직도 저렇게 훅 치고 들어오는 장난에 당황하는 건 나아지질 않았다. 여주도 윤기의 그런 반응이 귀여워서 계속해서 장난을 치는 거고, 진심은 아니었음.



"안 들어가요?"

"..."



그런데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렸다. 욕실 앞에서 버티고 서있는 윤기 때문에 여주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같이 씻자면서."



야, 미안해. 여주가 윤기를 피해 잽싸게 욕실로 도망쳤다. 걸어 잠근 문밖에서 윤기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본 여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젠 장난도 못 쳐, 쟤 왜 저렇게 능글맞아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어쩌지 못했다.



"같이 씻자면서. 거짓말이 많이 늘었네."

"너는 많이 능글맞아졌네."

"김여주랑 사귀면 이렇게 되더라고요."



내가 졌다. 여주의 항복 선언에 윤기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럼 나 씻고 올게요, 윤기가 욕실에 들어가면 여주는 화장기가 지워진 얼굴을 확인했다. 어차피 화장기 없는 얼굴은 자주 보였었고, 늙어 보이지만 않게 있어야지. (그래봤자 한 살 차이)



"오늘 왜 갑자기 삼겹살 취소된 거예요?"

"아, 반장님들끼리 싸워서."

"또요?"



응, 맨날 싸우셔. 여주가 대답했다. 얼마나 자주 싸우면 여주에게 이야기만 전해 듣는 윤기까지 또요? 라고 할 정도다.



"어쨌든 회의 그렇게 끝나서, 당분간 정형사님이랑 붙어먹었다간 뼈도 못 추릴 판이야."

"잘됐네."

"엥, 뭐가."

"굳이 그렇게 셋이서 삼겹살을 먹으러 갈 필요는 없잖아요."



윤기 질투해애~? 여주가 또 그새를 못 참고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아까 전처럼 당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무표정인 윤기의 얼굴에 금방 장난기를 지워버렸지만.



"그럼 나도 문학 선생님이랑 같이 밥,"





"어디 한번 먹어봐."

"먹었다가 수갑 찰 것 같은데 어떻게 먹어요."



아냐, 난 윤기한테 수갑 안 채워. 그 여자한테 채우면 모를까. 여주의 뾰로통한 말에 윤기가 웃음이 터졌다. 누가 형사 아니랄까 봐 방 한쪽에 놓인 진짜 수갑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뭘 웃어?!"

"그냥. 우리 반에 또 누나 같은 사람 있으면 재밌겠다 싶어서."



곧 개학을 앞둔 윤기에게는 어떤 학생들이 또 배정될지 몰랐다. 윤기의 말에 호오, 하며 흥미를 갖던 여주의 얼굴이 금방 팍식한다.





"너 나한테 반했잖아. 나 같은 애 있으면 걔한테 반하면 어떡해."



그럴 리가 있나. 윤기가 헛웃음을 친다.



"아, 왜애. 너도 내가 형사인지도 모를 때부터 좋아했다며. 너 그거 진짜 철컹철,"



여주의 말은 윤기의 입술에 의해 금방 먹혀들어 갔다. 장난이었든 진심이었든, 여주가 귀여운 질투로 이렇게 저를 사람을 웃음 짓게 하는데 가만 놔둘 수가 없었다.



"어떻게 김여주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러면 진짜 난리 나지."



머야, 좋은 뜻이야, 나쁜 뜻이야. 윤기에게 입술이 먹힌 채로 웅얼대는 여주.



"당연히 좋은 뜻이죠."

"..."

"김여주만큼 감당 안 될 정도로 장난기 많은 사람도 없을 거고, 있다 해도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사람 헷갈리고 설레게 할 사람은 없어요."

"..."




"다시 학교에 들어와서 나 흔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다는 거지."



또 새롭게 사람 설레게 할 거면, 그런 잠복은 환영이고요.





그동안

민선생과 별사탕을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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