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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촌뜨기 사냥터지기와 티타임을 하러 가는 길이라고? 왜?”

금요일 오후의 따사로운 호그와트 부지를 가로지르며, 금지된 숲으로 향하는 길에서 드레이코가 해리에게 따져 물었다. 


“그래, 드레이코. 그야 해그리드는 내 친구고 해그리드가 우릴 초대했으니까.”

해리는 약간 짜증난다는 듯이 낮아진 목소리로 옆을 흘겼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가장자리를 향하며 금발머리를 쏘아봤다.


“해그리드는 너를 초대한 거고, 포터. 나나 위즐리는 쪽지에서 언급한 적도 없는데 왜 우리까지 너한테 딸려가야 하는 건데!”


거의 본능에 새겨진 대로 드레이코는 약한 코웃음을 내뱉어버렸고, 돌연 발을 뚝 멈추고 이쪽으로 돌아 선 해리의 얼굴에 드레이코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약한 짜증이 아니라 완전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네가 그런 근본 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데려가려는 거야. 니 머릿속 해그리드가 어떻든 간에, 틀린 건 너야. 해그리드는 나를 마법 세계로 데려와준 사람이자 호그와트 준비물 사는 걸 도와준 분이지, 촌뜨기같은 게 아니야, 드레이코. 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떠벌렸는진 모르겠지만, 난 네가 그걸 깨달을 때까지 널 데려갈 거야.” 


어린 말포이는 독기 어린 소년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깜빡거리다, 눈과 눈썹이 한데 휘둥그레진 채로 두 손을 들어 “항복할게” 제스처를 해보였다.


 “멀린, 포터. 진정해. 알겠어, 네 말 대로 할게.” 


해리는 드레이코를 몇 초 더 노려보다 숨을 후 내뱉고는 몸을 돌려 갈길을 다시 재촉했다. 잠시 후 세 소년은 주위 지형지물에 비해 비교적 자그맣지만 멀리서도 보일 만큼의 오두막집을 볼 수 있었다. 금지된 숲의 흔한 나무와 덤불 사이에 우뚝 자리잡은 나무집이었다.

약간 주춤대던 드레이코의 눈이 론의 다소 건방진 표정이 이쪽을 향하는 걸 포착했으나, 앞에서 해리가 부르자 애써 무시하고 잠자코 앞만 보고 걸었다. 

“기다려, 포터!” 

한참 앞서나가는 해리를 따라잡기 위해 빠른걸음을 재촉하며 드레이코가 소리치자 해리가 속도를 약간 늦추긴 했으나, 그럼에도 드레이코와 론보다 2분은 먼저 오두막에 도달했다. 


“꼭 그렇게까지 뛰어야됐어, 해리?” 

론이 따졌다. 드레이코는 간만에 뛰느라 쑤시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처음으로 의견일치를 이룬 소년의 말에 속으로 끄덕였다.

해리는 말없이 가볍게 으쓱하고는 오두막에 노크했다. 나무문 양옆에 걸린 석궁과 고무신 한 쌍이 같이 쿵쿵 흔들렸다. 집앞에 석궁이 왜 있지? 여긴 학교고, 학교에는 어떤 위험한 것도 있어선 안 되는 거 아니었어? 으음, 물론 위험한 짐승이 득실대는 숲이 하나 있긴 하지만 이제껏 튀어나온 적은 없었잖아... 아마도? 


“금방 돌아올게, 팽― 앉아있어.” 

큰 개 짖는 소리와 코를 벅벅 긁는 듯한 소리가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곧이어 낮고 우릉대는 음성이 타이르듯 들리면서 끼익 열린 나무문 사이로 집주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털이 북슬북슬하고 지저분한 얼굴은 너무 거대한 나머지 그 머리털 틈새로 간신히 비져나오는 실내의 불빛이 갸냘퍼보일 지경이었다. 그 덩치는 드레이코보다 4배는 더 커 보였고, 문을 열어제끼다 말고 입구를 막아선 한 손만 해도 족히 쓰레기통 뚜껑 사이즈는 되는 것 같았다. 


“기다려, 앉아 팽!”

검은 대형견이 말을 듣지 않자 그는 세 그리핀도르 신입생들을 일단 안으로 들이고는 소년들에게 달려들려는 개의 목덜미를 잡아올려 제지했다. 오두막 내부는 별다른 구역 없이 하나로 된 큰 공간으로 되어 있었다. 천장에 걸린 줄에서 대롱거리는 고깃덩이와 가마솥 안에서 보글거리는 무언가, 일반인 평균치의 5배를 웃도는 크기의 요란하고 괴상한 퀼트커버로 둘러싸인 한구석의 침대가 순서대로 시야에 잡혔다.


드레이코는 주변을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언제나 헤어젤로 깔끔하게 넘기는 앞머리, 훌륭하게 재단된 맞춤 로브, 흠집 없이 매끄러운 구두를 둘러싼 소년은 온통 난잡하고 지저분해보이는 공간에 다소간의 찝찝함을 느꼈다. 살면서 이런 방에는 발을 들여본 적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새삼 부모님이 이름 높은 순혈가문의 저택 외에는 그를 데리고 어딜 방문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걸 깨달은 드레이코는 충격에 빠졌다. 

이 오두막이 지저분하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으나, 드레이코는 이곳이 이상하게도 편안하고 따뜻하다 느꼈다. 마치 완벽한 '집'을 위한 마법으로 생겨난 공간과도 같았다. 이런 감각은 어린 드레이코에게 너무나 낯설고 혼란스러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안심되었다. 드레이코가 지금껏 살아본 주거공간이란 하나같이 세 사람과 집요정들이 살기엔 지나치게 컸던 나머지 '집'이라 느끼기엔 너무 춥고 어두운 인상이 강했다. 그래선지 드레이코는 거실에서나 자기 방에서나 온전히 편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너희 집처럼 편하게 있으렴.” 


해그리드의 목소리에 드레이코는 상념에서 빠져나와 눈앞의 거대한 남자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그는 이제까지 뒤로 붙잡고 있던 큰 개를 막 놓아주려는 참이었다. 본능적으로 금발 소년은 뒷걸음질쳐 그 동물에게서 가능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저 커다란 개가 자신에게 뛰어올라 덮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드레이코의 생각이 먹힌 것인지, 혹은 저 개 딴에는 론이 훨씬 흥미로웠는진 몰라도 개는 론의 빨간머리를 향해 직통으로 뛰어올랐다. 바닥에 등이 넘어지는 우당탕 소리와 함께 귀를 핥아대는 축축하고 경쾌한 소리가 오두막에 울려퍼졌다.

 

 “야! 저리 가!” 

소리치면서도 론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는 뭔가 더 당하기 전에 개를 가슴팍에서 발치로 떼어놓았다.

 

“얘가 론이에요.” 

해리가 말하자 해그리드가 빨간머리 소년을 유심히 바라보며 여전히 불 위에 펄펄 끓는 가마솥을 기울여 끓는 물을 초록 찻잔에 부었다. 그리고는 바싹 타버린 게 분명한 비스킷을 접시에 담아 함께 들고 다가왔다. 해리가 다음으로 드레이코를 소개하려던 차, 해그리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새로운 위즐리로군, 그렇지? 내 인생의 절반은 느이 엉아들을 숲에서 내쫓는 데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그 때, 드레이코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억눌린 웃음소리가 실린 콧숨이 새어나와버렸다. 즉시 그를 돌아본 해그리드는 이제껏 얘가 있는지도 몰랐다는듯 당혹스런 표정을 띄며 말했다. 

“그러고, 넌 누구니?” 

사냥터지기의 물음과 동시에 드레이코의 웃음은 처음처럼 저절로 쏙 들어갔다. 

 

“전 드레이코고, 해리랑 론이랑 룸메이트예요.” 

긴장한 드레이코는 부러 성을 빼고 말했다. 저 남자가 제 가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 드레이코는, 자신을 스스로 말포이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잘 모르게 되었다. 

 

“용에서 따온 이름이구나, 그렇지 않니?” 

이렇게 호기심과 흥분한 눈빛만이 가득한 질문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드레이코는 남자의 어두운 눈동자에 대고 그저 눈꺼풀을 깜빡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맞아요. 어머니께서 이 이름을 고른 이유가 그걸 거예요. 어머니는 항상 그들이 매혹적인 생물이라 여기셨거든요.” 

드레이코가 주저하며 답했다. 바닥 밑으로 어떻게든 빨려들어가 영원히 숨고 싶은 기분으로 그는 해리 옆쪽의 의자에 내려앉아 몸을 파묻었다. 

 

“오, 느이 어머니께서 제대로 아시는 거 같구나. 용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흥미로운 생물이지. 한 번이라도 키워보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야.” 


그렇게 말하는 해그리드의 목소리는 드레이코가 약간 기겁할 정도로 진심으로 황홀하게 들렸다. 세상에서 누가 드래곤을 키우고 싶어한단 말인가? 흥미로울지 모른다는 건 인정하더라도, 멀린이시여, 아무도 그게 무지막지한 위험성을 감당할 만큼이라 하진 않을 거야! 속마음을 입밖으로 내는 대신 드레이코는 겉으로만 동의의 표시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 비스킷 하나를 쥐었다. 무례하게 구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구역질을 참으며 입안에 탄 것을 집어넣는 일 따위야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필 드레이코가 그 다과를 두 번째 베어물던 순간 호그와트의 사냥터지기가 소년들 바로 앞의 테이블에 걸터앉은 바람에 그 조각을 콱 씹어버렸고, 적어도 세 개 이상의 치아로부터 목구멍을 향해 산산이 흩뿌려진 탄 부스러기들로 인해 드레이코는 거의 질식할 뻔했다. 오, 멀린의 수염이시여... 금발 소년은 입안의 음식물을 내뱉어버리는 참사를 막으려고 최선을 다해 입술을 오므렸다. 

해그리드는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을 하고 드레이코를 계속 쳐다봤다. 용 얘기를 계속 하고 싶어서인지 비스킷의 맛에 대한 감상을 원해서인지 드레이코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의 눈빛을 거두게 할 방법이 없단 걸 깨달은 드레이코는 고통스레 혀 위의 비스킷을 꿀꺽 삼켰다. 시커먼 조각 뭉텅이가 식도를 긁으며 내려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기침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 덩어리는 기어코 다시 올라왔고, 결국 드레이코는 남은 비스킷 조각을 접시에 도로 내려놓았다. 접시까지 밀어내지 않은 건 정말 노력한 거였다. 해그리드가 미소지으며 해리에게로 시선을 옮긴 덕분에 드레이코는 목구멍의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해 제대로 힘껏 침을 삼킬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드레이코쪽에 대고 재밌다는 표정으로 은밀히 흘긋대는 론에게 드레이코도 노려보며 그대로 돌려줬으나, 그게 위즐리를 더 즐겁게 하는 역효과를 낳았는지 그는 이제 거의 입꼬리를 주체 못 하면서 이를 숨기기 위해 제 손의 비스킷을 갉아먹는 척하기 시작했다.

 

“자, 호그와트에서의 첫 일주일은 어땠니?” 

해그리드가 묻자 해리와 론이 기다렸다는듯 즉시 닷새 동안 일어난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잔뜩 떠들기 시작했다. 한편 조용히 낑겨 앉은 둘의 룸메이트는 5분 정도 간격으로 사소한 지적이나 맞장구를 더하기만 했다. 해리와 론은 사냥터지기에게 천문학 수업이 얼마나 피곤한지, 마법의 역사가 얼마나 지루한지, 해리가 마법약 시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에 대해 지치지도 않고 설명했다. 

 

“스네이프 교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려무나, 해리. 그는 슬리데린 소속이 아닌 모든 학생들에게 그런 식으로 대하거든.” 

드레이코의 대부가 ―셋 중 한 명은 아직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신한테 어떻게 구는지 하소연을 하는 해리에게, 해그리드가 격려하는 투로 말해주었다. 

 

“그치만 스네이프는 절 진심으로 싫어하는 것 같은걸요.” 


해리가 주장하는 동안 드레이코는 앞에 놓인 테이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손톱으로 의자 모서리의 나무를 긁고 있었다. 화가 나버리기 전에 다른 주제로 바뀌길 바라며 드레이코는 벌써 갈라지기 시작한 나뭇결 표면을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만큼은 드레이코조차 대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된 걸지도 모른다. 부모님께 제 기숙사 분류 소식을 전달한 유력한 인물도 그일 테고, 마법약 수업시간마다 아주 지독한 머저리처럼 구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드레이코는 여전히 마음 쓰이는 자신의 대부가 뒷담화에 오르내리는 상황을 정말이지 원치 않았다.

 

“말도 안 돼!” 


해그리드가 반박했지만, 그의 시선은 눈에 띄게 해리의 눈을 피한 채였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그가 말하는 어조는 역으로 마치 스네이프 교수가 정말 그런 류의 짓을 하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인상을 풍겼지만, 뭘 암시하는지는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찰리는 요즘 어떻게 지내니? 느이 형 말이다.” 


해그리드는 상당히 티 나게 화제를 바꿨다. 더 이상의 질문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기색에 해리도 약간 당황한 것 같았지만 내내 대부에 관한 대화가 끊기길 빌던 드레이코로서는 몸 안에 퍼지는 안도의 물결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주 신났던데요? 요즘 형은 동물과 뛰노는 법을 날 때부터 알고 태어난 인간 같아요.”

 

론은 해그리드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루마니아에서 용을 돌보는 일을 한다는 자기 큰 형의 직업에 대해 손짓발짓을 동원해 떠들기 시작했다. 스네이프 이야기에 퍽 흥미를 못 느끼고 있던 게 분명했다. 찰리의 두 눈썹이 새끼 용에게 통째로 뜯겨나갔다는 소식의 편지를 부엉이가 전해온 날의 대목에 이르자 사냥터지기 남자는 론의 이야기에 완전히 심취한 것 같았다. 어찌나 열렬한지 누군가 대문을 쿵 열어젖히고 자기 지팡이를 치켜든 무리가 척척 열맞춰 입장해도 모를 기세였다. 

 

드레이코와 마찬가지로 용이나 론의 형에 관해서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해리는 차라리 앞 테이블 표면을 쳐다보는 데에 집중했다. 갑자기 해리가 엉덩이를 앞으로 당겨 찻잔 밑에 깔린 종이를 팔랑거리며 꺼내들자 드레이코는 다시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그 종잇장―마치 신문에서 찢겨나온 조각 같다고 드레이코는 생각했다―을 해리가 신속히 훑는 사이 그의 새까만 눈썹이 점점 사이를 좁히며 찡그려지는 게 보였다. 


“해그리드!” 


난데없이 튀어나온 해리의 고성에 너무 놀란 남자는 꼬마 손님들 정면의 테이블에 앉은 채로 찻주전자를 넘어뜨릴 뻔했다. 


“그린고트 침입이요, 제 생일날에 일어난 거였대요! 그 때 우리가 거기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해그리드의 시선이 또다시 해리를 피했다. 켕기는 구석이라도 있나? 저 침입에 관해 알면 안 되는 것까지 알아버리기라도 한 건가? 이 사건은 아버지가 입학 전에 언급하는 걸 들은 바 있기에 드레이코는 둘이 말하는 게 뭔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해그리드는 해리에게 대답도 못 하고 크게 끄응 앓기만 하다 다른 비스킷을 쥐여줬지만 해리는 그 물질에 더 닿기만 해도 죽음에 이를 것처럼 손톱으로 집어들어 쳐다보기만 했고 그걸 본 드레이코는 속으로 깊이 공감했다. 사냥터지기의 수상한 말돌리기는 드레이코의 의구심만 키우고 있었다. 저 남자가 숨기는 게 뭘까?


  


호그와트 성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세 그리핀도르 소년은 함께 그리핀도르 탑을 올랐다. 과제 더미를 시작이라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지금까지 쌓인 과제에 필요한 책과 양피지만으로도 내 무덤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아.” 

이렇게 씩씩대면서도 론은 휴게실 왼쪽 한구석의 창가에 위치한 빈 테이블의 의자에 몸을 던짐으로써 악몽같은 현실을 착실히 부정했다. 

 

“그 정도는 아니야, 위즐리.” 

드레이코가 은색 눈동자를 굴리며 론의 맞은편에 앉았다. 둘 사이의, 휴게실 전반과 등질 수 있는 자리를 해리에게 양보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배우는 마법약에 대해 양피지 1피트를 통으로 채워야 하는 과제가 코앞에 닥쳤는데 그런 말이 나와! 이게 어떻게 안 많은 건데!” 

책가방에서 교과서를 전부 꺼내 책상 위에 마구잡이로 쌓으며 빨간머리가 쏘아붙였다. 

 

“1피트는 겨우 양피지 두루마리 하나 분량이야, 위즐리. 그렇게 많은 건 아니라고.” 

드레이코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리고 게다가, 네가 지금 해야 하는 거라곤 교과서에 다 적혀 있는 정보를 몇 단락으로 베껴 적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론은 눈가를 씰룩이며 금발머리를 노려보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양피지 조각과 깃펜, 잉크병을 꺼냈다. 

 

그리고 10초 내내 마법약 교과서의 펼쳐진 페이지를 응시하던 빨간머리가 다시 드레이코에게 고개를 들고는 말한 한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한 마디도 이해 못 하겠어.” 

해리는 옆에서 작게 콧방귀를 뀌었지만 대꾸해주진 않았다. 과제로 나온 분량의 매 문장을 그대로 휘갈기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해리도 자기가 뭘 적고 있는지 도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드레이코는 화와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빨간머리를 힘껏 째려봐주었다.

 

 “이런, 저엉말 안됐구나, 위즐리.” 


건성으로 대꾸한 뒤 여전히 자기를 이글이글 노려보는 론을 남겨두고는 다시 고개를 휙 내려 자기 에세이를 마저 작성하기 시작한 지 몇 분도 채 못 되어, 드레이코는 좌절감과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끄응 앓으며 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드레이코는 아까부터 자신을 따라붙은 집요한 시선을 흘기며 냉소와 함께 물었다. 


“대체 왜 그러는데?” 


따지는 말에 론이 입술에 굳게 힘주더니 거센 심호흡과 함께 눈앞의 말포이를 다시 노려보았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상대방한테 얼음파편을 쏠 기세의 파란 눈동자가 물었다. 

 

“나 도와주면 안 돼? 넌 마법약 시간에 꽤나 하는 거 같더라. 그 스네이프도 너한테만은 지적질 한 마디도 못 하잖아. 그 수업에서 살아남은 그리핀도르는 너밖에 없을걸.” 


드레이코는 잠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몇 초 후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좋아, 도와줄게. 그래도 내가 쓴 걸 그대로 베끼는 건 절대로 안 되고, 표현 하나하나 바꿔서 써. 내가 도와준 걸 교수님이 절대 알아채지 못하실 만큼. 원래라면 다 알아서 해야 하는 거니까.” 


드레이코는 어깨를 으쓱하고 론의 책더미를 밀어서 옆자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원래 자리인 창가자리가 아니라 휴게실 전체를 마주보는 방향의 비어있던 자리에 빨간머리가 옮겨 앉자 드레이코는 그의 양피지와 잉크, 필요한 책을 직접 가까이 끌어당겨 앞에 놓아주었다. 

 

론은 이미 얼추 완성되어 정갈하게 말라가고 있는 드레이코의 문단들을 보더니 다시금 지극히 혼란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전히 나한텐 빌어먹을 헛소리처럼 보여!” 


헛소리를 하는 옆자리 녀석에게 금발 소년은 짜증스레 골을 내며, 저번 수업시간에 만든 종기 치료약이 얼마나 간단한 마법약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특유의 느릿한 어조로 설명하다가도 종종 진한 금색으로 빛나는 한쪽 눈썹을 올린 채였는데, 마치 눈앞의 빨간머리가 자기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 체념하는 듯했다.

 

그동안 해리는 마법약 에세이를 빠르게 해치우고 그날 플리트윅 교수가 내준 기초마법 질답 과제에 돌입했다. 


“이제 이해 돼, 위즐리? 복잡할 거 없다니까. 넌 내가 말해준 걸 그대로 적기만 되고, 그럼 모든 게 그냥 다 괜찮을 거야.” 


드레이코는 그렇게 마무리하고 제 과제로 돌아갔다. 그가 에세이의 뒷부분을 마저 빠르게 작성하는 동안 론은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앉아 눈을 끔벅이다가 방금 얻은 정보를 죄다 까먹기 전에 필사적으로 들은 모든 걸 난잡한 손글씨로 휘갈겼다. 

 

“그러고보니까 다음 주가 퀴디치 트라이아웃*이래.” 


마법의 역사 교과서를 펼쳤던 론이 갑자기 책을 탁―그다지 정숙하지 못한 소음이었다― 덮더니 잠시라도 이 과목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도를 얼굴에 써붙이고 말했다. 살아있는 한―죽어서 유령이 되면 몰라도― 결코 인정치 못할 테지만 금발 소년은 또다시 어린 위즐리에게 동의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다. 

진지하게, 마법의 역사가 이렇게까지 지루할 수 있으리라고 그 누가 알았을까? 보통 '마법의 역사' 하면 어둠고 끔찍한, 마치 드레이코의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배갯머리에서 말해준 머글이 마법사들에게 한 짓과 같은 걸 떠올릴 테지만, 전혀 아니다. 이건 그저 마법 지팡이의 빌어먹을 발명과 부엉이 편지의 유래 따위를 파헤치는 과목이었다! 누가 그런 걸 궁금해 한다고? 마법의 역사 시간에 졸지 않는 학생은 없다는 거야말로 호그와트의 오랜 진리고 역사다. 한 마법사가 유니콘의 털에 감싸인 나무 막대기를 어쩌다 우연히 마주쳤는지, 그리고 그것을 만진 순간 근처의 나무가 어떻게 폭발했는지에 대한 빈스 교수의 일주일에 걸친 긴 강의 속에서 간신히 제정신을 유지한 유일한 찰나, 드레이코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었다. 우린 모두 재미라곤 하나도 없는 거만 골라서 배우고 있어!

 

“그래, 하지만 1학년은 참여도 못하는데 질투하기 말고 우리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드레이코는 불만스레 대꾸하느라 그만 책을 너무 세게 덮어버렸고, 그 탓에 밤늦게 소란을 피운 범인에게 한껏 눈알을 부라리는, 저쪽에서 책을 보던 부스스한 갈색 머리 동급생 여자애와 눈을 마주쳐야 했다. 

 

“그래도 구경할 순 있잖아. 프레드랑 조지가 맨날 그러는데 지원자들이 탈락하는 걸 보는 게 그렇게 재밌대. 빗자루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 때 놀라서 집중이 깨진 해리가 론을 쳐다보며 약간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좀 심술궂지 않아?” 


해리의 물음에 드레이코가 싱글거리며 불신에 찬 머리를 옆으로 털었다. 

 

“있잖아, 포터, 너도 보면 알 거야. 퀴디치나 간단한 비행 같은 거에 실패하는 사람을 구경하는 게 얼마나 웃긴데.” 


금발 소년의 말에 해리의 눈썹이 더욱 혼란으로 찌그러지며 입꼬리가 쑤욱 내려갔다. 

 

“나는... 너네한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해리가 중간에 머뭇대다 몹시 긴장했는지 빳빳한 손길로 안경을 콧대 위로 눌러 올리고는 안그래도 엉망인 머리카락 사이로 검은 가닥 몇을 산만하게 헝클이며 말을 이었다. 

“퀴디치가 정확히 뭐야? 다이애건 앨리에서 물어봤는데 해그리드도 제대로 설명해주진 않았거든.” 

눈앞의 두 친구에게 묻는 해리의 목소리는 약간 겁에 질려, 말을 끝마치자마자 책상 위로 눈을 깔고는 민망해 죽겠다고 쓰여 있는 홍조를 자그맣게 띄웠다. 

 

두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쌍으로 입을 떡 벌리고 15분이나 해리를 쳐다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속사포를 시작했다. 하지만 금발쪽의 목소리가 자기 목소리를 잡아먹고도 모자라 그리핀도르 탑을 흔들어 깨울 기세로 커지자 론은 빠르게 입을 다물고 드레이코를 지그시 노려봤다. 

“퀴디치는 현존하는 마법사 스포츠 중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게임이야! 한 팀당 일곱 명이 필요하고 구성은 이래: 수색꾼은 엄청나게 빠른 금색 공을 잡는 사람인데 그 작은 공 하나에 150점이나 돼서 한번 잡으면 게임 끝이야. 파수꾼은 팀의 골대를 지키고, 몰이꾼 둘은 블러저로부터 팀을 지키는 역할이야. 블러저는 경기장을 마구 휘저으면서 선수를 빗자루에서 떨어뜨리는 쇠공이야. 추격꾼은 셋인데 퀘이플이란 걸 잡고 골대까지 서로 패스해야 돼서 그래. 퀘이플이라는 10점짜리 가죽공이 골대에 들어가야 점수를 받거든. 호그와트의 기숙사마다 대표팀이 있어서 매년 퀴디치컵을 두고 경쟁해. 전교생이 경기를 보러 가려고 해서 경기가 길어질 때는 다음 수업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을 정도야. 호그와트 역사상 가장 오래 끈 시합은 일주일하고도 반이나 된대!” 

드레이코의 설명은 너무 몰아쳐서 장황하게 들렸지만, 해리는 그리 말하는 대신 조용히 끄덕거리며 쏟아지는 정보를 곱씹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슬픈 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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