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를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심히 즐겁지 않았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데, 삶에 눈에 띄는 이득을 주지는 못하는 이 행위를 벌써 10년이나 했다는 게 다소 한심하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고,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내가 남긴 거라곤 별 의미도 없는 혼잣말뿐인가 싶기도 했다. 아마 트위터 하는 사람 중에서 내가 벌써 이 멋진 서비스를 10년이나 이용해 왔구나! 하고 뿌듯해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럼에도 그래, 결심했어! 하고 떠나버릴 수도 없는 것이, 10년 전에는 ‘요즘 이런 게 유행이라는 것 같으니까 계정을 만들어두는 것도 괜찮겠지?’ 하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트위터가, 차츰 지인 소식 확인용 상시 연락망 비슷한 것으로 작동하기 시작해 버린 탓이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행위로서의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은둔형 프리랜서인 나는 인맥이라고 해봤자 딱 한 줌밖에 되지 않는 터라, 트위터에 상주하는 지인들만이라도 어떻게 사는지 자주 봐야 불안감과 고독감이 덜하니 도통 끊을 수가 없다.


게다가 흥미로운 소식이 들리면 너도나도 일단 리트윗으로 신속하게 확산시키는 특성 때문에 뉴스나 신작, 신간 발매 정보 따위의 수집도 트위터에 위탁해버렸으니, 다른 SNS나 시스템으로 이만한 망을 구축하지 않는한 트위터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이래저래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여러모로 삶이 빡빡해지면서 이 짓도 작작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으니, 그 첫 번째 이유는 일단 시간이다. 트위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요즘은 어느 스마트폰 운영 체제든 디지털 기기를 좀 덜 써보자는 운동의 일환으로 기기에서 뭘 하고 시간을 얼마나 썼는지 추적할 수 있는데, 이것을 활용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나 보면 트위터에 대체로 하루 1시간 가량을 쓴 것으로 나온다. 항상 책 읽을 시간이 모자란다는 둥, 운동 시간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둥 징징거리면서도, 대부분 큰 의미 없는 단문의 가랑비를 맞느라 옷 젖는줄 몰랐던 것이다.


트위터를 좀 줄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피로감이다. 사회의 각종 문제가 대두되면서 트위터의 모든 이들이 여차하면 촌철살인의 논평(혹은 욕설)을 내뱉고 이것을 또 재생산하길 되풀이하는데, 처음에는 ‘음, 그래. 참으로 맞는 말이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다가도, 비슷한 얘기를 보고 또 보면 슬슬 넌더리가 나기 시작한다. 사회 현상을 빠르게 따라잡고 그에 대한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는 무척 좋은 일이고, 창작자로서든 현대인으로서든 가질 만한 덕목이다. 그러나 만사에 지쳐빠진 마당에 절절한 부조리 규탄을 내 의지와 무관하게 보자면 아무래도 심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다. 잡담이나 하고 쉬려고 동아리방에 들어갔는데 너도나도 약자의 권리를 부르짖고 있으면 아무리 그게 훌륭한 말이고 자신을 위해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더라도 떠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실 한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나오는 트위터의 빼어난 논평들도 주의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 가져오는 정보란 대체로 관점도 나와 비슷하기에 정보가 심하게 편향성을 띠게 된다. 게다가 충분한 설명이 동반되어야 하는 얘기도 딱 두어 줄로 줄이고 익살스럽게 과장해서 갖고 놀기에, 이를 지속적으로 보면 생각의 호흡이 짧아지기 쉽다. 게다가 생산적인 의견이 오고가는 모습은 드물고 각자가 서로의 트윗을 잘라다 전시하고 재미나게 욕을 하는 것이 워낙 보편적이라, 트위터를 통해 깊은 사유를 얻으려거든 일찌감치 포기하고 신문 헤드라인 훑어보는 정도로만 취급하는 것이 합당한 듯하다.


('우리 모두의 생각을 공유하면 멋질거야!' 는 무슨, 필터링되지 않은 감정의 홍수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최근에 대뜸 트위터를 쉬었다. 일주일 동안 아예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보고 내가 알게 된 것은, 사람이 꼭 타인과 사회와 ‘항상' 연결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이소에서 기막힌 신제품을 발견했다고 꼭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되고, 요즘 못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지 않는다고, 사회가 코로나로 어떤 꼬락서니가 되어가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진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들도 내 삶이나 생각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진 않고, 한동안 소식을 접하지 못한다고 해서 대수로운 일로 여기지도 않는다. 요컨대 트위터 좀 안 한다고 문명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디지털 무인도 생활을 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평소에 트위터를 보던 시간이 텅 비었다고 사람이 무료해지지도 않았다. 예전부터 쓰던 RSS며, 온갖 커뮤니티, 당근마켓 따위가 그 시간을 채워서 대단한 티가 나진 않았다.


다만 삶이 좀 조용해진 기분은 들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곳을 혼자 여행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사람이 혼자 외국에 나가 여행해보면 느끼는 것이, 참 조용하다. 타국의 말은 와닿지 않고 나조차 말하지 않는 탓이다. 트위터를 안 하는 기간에도 그런 느낌이었다. 안 보는 책들을 처분했더니 개운하다는 말도, 넷플릭스에서 무슨 영화를 봤는데 너무 형편없었다는 말도 할 곳이 없어 그냥 차 타고 지나치는 풍경 보듯이 지나쳤다. 묘하게 심심하긴 했지만, 순간순간 느낀 부정적인 감정도 굳이 쏟아내면서 되짚어볼 필요가 없었으니 이건 장점도 단점도 되는 듯했다.


외로움은 긍정적인 감정일까, 부정적인 감정일까? 그런 생각도 좀 했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사무치게 고통스러운 감정도, 찬미해야 할 진리도 아니고 그저 그냥 거기 있는 감정이었다. 서랍속에 처박아놓은 만년필처럼 오랜만에 발견한 게 좀 재미있었을 뿐 괴롭다고 느끼진 않았다.


그리하여 꽤 오랫동안 이렇게 옛날 사람처럼 살아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는데, 지인들이 어찌 지내는지가 궁금해서 결국은 일주일 만에 트위터 생활로 돌아왔다. 그러나 무한정 타임라인을 뒤지는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좀 문제가 있으니 시간 제한을 걸어두기로 했고, 더 많은 단어와 계정을 뮤트 기능으로 걸러내기로 했다. 모든 지인의 모든 소식을 접하지 않는다고 큰일나지 않는다는 걸 체감한 덕분이다. 내가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남이 했다고 그 트윗을 리트윗해서 책임도 피하고 자신의 사유도 포기하는 것도 줄이기로 했고, 만사를 논평하거나 불평이 떠오를 때마다 주절거리는 것도 적당히 하기로 했다. 단문보다는 기사나 뉴스레터, 블로그를 더 많이 보기로 했다. 비유하자면 패스트푸드를 줄이고 슬로푸드를 더 먹기로 한 셈이다. 슬로푸드가 무조건 낫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고, 나 자신이 맵고 짠 맛에 찌들지도 질리지도 않게 식단을 조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잠깐의 틈도 없이 항상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은 분명 아름답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선사해 준다. 쓴 것, 단 것,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온갖 정보를 계속해서 접하자면 끊임없이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24시간 붙어있는 게 좋지만은 않은 것처럼, 타인의 속마음을 모조리 듣고 사는 게 행복할 수 없는 것처럼, SNS라는 연결에서 멀어지기도 하는 게 나라는 개인으로서의 생활을 더 단단히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이번 휴가로 깨달았다.



*추신

지금은 다시 트위터를 끊어서 필요한 연락은 메신저로 하고 있다. 고적하기도 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카카오 페이지)을 썼습니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두서없는 잡상들을 올립니다. 간혹 게임이나 영화 얘기도 합니다. 트위터 @memocap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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