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시리즈입니다.

*시간 축 세 개가 꼬입니다.

*19세 백은영 x 18세 고해준


W의 경우


토마토 달걀 볶음밥이 사라졌다. 들고 있던 숟가락도, 낡은 식탁도,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백은영까지 모두 눈앞에서 증발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와 또 공부하는 그런 나날 중 하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식탁에 자리를 잡는 백은영의 맞은편이 휑뎅그렁한 게 오늘따라 유독 눈에 밟혔다는 것 정도였다. 주완이가 없으면 따로 먹는 것이 둘 사이 암묵적인 규칙이었고, 혼자 먹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변덕으로 몸을 돌려서 식탁에 앉았다.


웬일이냐? 건성으로 물으며 입 안 한가득 볶음밥을 밀어 넣는 놈에게도 딱히 엄청난 감흥이 엿보이지 않았다. 피차 반가운 일이었다. 나 역시 놈과의 겸상에 큰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막 한 숟갈을 뜬 참이었는데.


“여기가 2년 뒤 미래라고?”


흰 티에 까만 반 치마를 두른 백은영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보다 머리카락이 짧아졌지만, 그는 틀림없는 백은영이었다. 저렇게 생겨먹은 인간이 세상에 둘씩은 없을 테니까. 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도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에 나는 멍청하게 말했다.


”혹시 이거 꿈인가?”


그러자 백은영이 말없이 내 볼을 주욱 잡아당긴다. 예기치 못한 놈의 행동에 팔 위로 쭈뼛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아픈 것으로 보아하니 영락없는 현실이다.


“알았으니까 놔라.”

“일단 먹어. 저녁 먹는데 갑자기 그랬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게다가 왜 그렇게 침착해?”

“예전에도 비슷한 일 있었어.”

“…솔직하게 말해. 이거 진짜 몰래카메라 같은 거 아니야?”


그렇게 말했지만 말도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았다. 폐가라고 하기에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으니까. 통유리인 창밖 너머로는 석양이 깔린 바다가, 더 가까이에는 잘 꾸며진 초록빛 마당이 보였고 대리석 식탁 위에는 갖은 요리들로 가득했다.


“여긴 어디야?”

“펜션.”

“같이 놀러 왔어?”

“응.”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2년 후라면, 내가 한솔고를 졸업하고 난 뒤일 텐데 이렇게 따로 만나서 멀리 놀러 올 만큼 백은영과 친해지다니.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근데 다른 애들은 어디에 있어?”


그러자 백은영이 평소와 다름없는 투로 대답한다.


“없어.”

“없다니?”

“둘이서만 온 거야.”


예상조차 못 한 이야기에 미칠듯한 어색함이 급습하기 시작했다. 주완이도 아니고 백은영과 단둘이 여행을 왔다고? 설마 그사이에 주완이와 사이가 멀어지기라도 한 걸까. 게다가 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데 돈이 어디 있다고 둘이서 와?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와중에 착실하게 배가 고파왔다. 때마침 백은영이 내 앞으로 이것저것 요리를 덜어주더니 퍽 다정하게 말한다.


“식기 전에 우선 먹으면서 생각해.

“어? 어… 그래. 고맙다.”

“간은 괜찮아?”

“응.”

“다행이네.”

“…이거 설마 다 네가 만든 거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놈에, 나는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2년 사이에 요리사 자격증이라도 취득한 걸까? 당연히 어디에선가 포장해온 음식인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2년 뒤라 해도 이 자식은 아직 고3일 텐데 언제 이렇게 실력이 일취월장한 건지. 나도 모르게 한참을 말없이 식사에 열중하는데, 계속해서 날아드는 따가운 시선에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너 왜 맞은편이 아니라, 내 옆에 앉아 있냐?”


왜 그렇게 밥 먹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고? 차마 묻지 못한 질문은 속으로 삼키는데, 놈이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나야 모르지. 내가 먼저 앉고 난 다음, 네가 옆으로 온 거니까.”

“뭐? 야 거짓말 하지 마.”

“믿든 말든 진짜야.”


그렇게 답하며 놈이 물을 마시느라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나는 백은영의 속눈썹이 낙타처럼 길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잘만 하면 성냥개비도 몇 개 얹을 수 있지 않을까? 한 세 개까지는 너끈히 올라갈 것 같다. 그런 실없는 상상을 하는데 식탁 위 올려져 있던 백은영의 휴대전화 화면이 알림 문자와 함께 환하게 켜진다. 그러다 우연히 배경 화면을 보게 되어, 나는 그만 혀를 씹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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