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죠 5부 엔딩 후의 설정입니다.

죠죠 5부 본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스타. 저 사실 당신을 좋아하고 있어요.”

쾌청한 날씨. 분위기 좋은 음식점. 미스타가 평소에 좋아하던 가수의 잔잔한 러브 송.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 말과는 조금 다른 말이 나왔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다. 크게 떨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너무 무심하지도 않았지. 오래 준비했다.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예상했던 대로다.

죠르노는 자신의 고백에 만족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미스타의 얼굴은 어떠려나. 당황했을까. 아니면 부끄러워할까.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사이는 아니야. 적어도 미스타 역시 나에게 마음이 있다. 우리 둘은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니까. 죠르노가 자신에 차서 고개를 들었을 때. 거기 있던 미스타의 표정은…….

“…미스타. 왜 그런 표정이에요?”

상당히 심드렁하다. 무표정하게 다리를 꼬고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내 말을 듣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응? 아니. 그야….”

미스타가 꼰 다리를 풀고 앉는다. 테이블에 팔을 올리더니 거기에 고개를 비스듬하게 얹는다.

“이유가 없잖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몇 번 쓸더니 손가락 앞에 있는 포크를 작게 친다.

“정말이에요. 거짓말이나 농담은 아닙니다.”

“알아. 믿어. 그런 뜻은 아냐.”

미스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화가 났나? 아니면 불쾌했을까. 초조한 마음에 죠르노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면 오히려 미스타는 어금니가 보일 정도로 씩웃는다.

“날 왜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까만 두 눈이 죠르노를 보고 있다. 오늘은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농담도. 장난도 아니라는 듯이.

“이유라면…….”

죠르노는 생각했다. 무슨 답을 해야 미스타가 마음에 들어할까.

거절도 아니고. 승낙도 아니고. 미스타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타의 속마음을 모르겠다. 싫었으면 거절을 할 성격이지 이렇게 빙빙 꼬아서 사양하진 않는다.

미스타는 애초에 좋고 싫고를 숨기지 않는다. 엥? 나 너랑 사귀는건 좀 별로야. 같은 말을 했으면 오히려 죠르노도 납득했을거다. 아니면 쉽게 오 그래? 그럼 내일부터 사귈까? 하는게 미스타 답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이상한 수수께끼를 낸다는 제3의 선택지. 죠르노의 가정에 없었다.

“미스타는 좀 더 단순한 사람인줄 알았는데요.”

조금 화가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달이 난다. 이 사람이 나를 놀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죠르노의 그런 생각이 얼굴에 비추어졌는지 미스타가 조금 웃는다.

“응. 단순한 사람이야. 나도 다른 사람에게라면 묻지 않아. 너니까 묻는거야.”

혹시. 나와 놀고 싶었나? 평소에도 장난을 종종 치는 사이긴 했는데. 내가 요새 바빠보이니 재미삼아 놀려봤다든지.

죠르노는 조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상대방이 저라서 신중해지셨나요?”

미스타가 천천히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다른 사람에겐 그러지 않고 나에게만 그렇다면. 또 묘하게 납득이 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헤어졌을 때 바로 뒤를 돌아 두 번다시 보지 않을 사이가 못된다. 동료이자 부하이자. 여러 복잡한 관계로 얽혀져 있다. 그런 부분이 문제였을까.

죠르노는 흐음, 하며 조금 깊은 신음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그런 문제라면….”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친하고. 서로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 굳이 관계를 바꾸고 싶다면 어찌되었건 이 관문을 넘어야 한다.

“……….”

“오래걸려?”

“잠시만요. 저도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갑자기 말하라고 다그쳐봐도 그럴싸한 대답이 나올 리가 없다. 죠르노가 생각하는 동안 미스타는 메뉴판을 펼쳤다. 시간 걸리면 나 메뉴 좀 고를테니까. 미스타가 메뉴판을 보면서 말한다.

“어차피 매일 시켜먹는 메뉴는 정해져있잖아요.”

“섬세함이 부족하네. 지금은 곁들여 먹을 와인을 고르고 있는 중이거든?”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다. 이 상황에서도 메뉴판을 읽을 정신이 있다니. 죠르노는 솔직히 감탄했다. 아. 그래. 이런면일지도.

“미스타의 성격이 좋아요.”

숙제를 발표하는 학생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미스타가 메뉴판을 소리가 나게 닫는다.

“성격? 내 성격이 어떤데.”

“진취적이고. 용기 있고. 미래로 가는 각오가 되어있죠.”

“그랬나?”

무슨 잡지 뒤에 있는 별자리 심리 테스트 같은 말이네. 들으면 나 같기도 한데. 굳이 나뿐만이 그런가? 싶기도 하고. 반대의 결과여도 그 역시 나같을 것 같고. 애초에 지금 설명은 네 성격에 가까운 말 아냐?

미스타가 중얼거리다 팔을 엉거주춤하게 올린다. 웨이터가 테이블 옆으로 다가온다. 미스타가 주문을 끝내자 웨이터가 사라진다.

“제가 보기에 미스타는 그런 성격이에요.”

“글쎄다. 나는 납득이 안가는데. 그리고 그건 애인이 아니라 부하로 좋은 성격이고. 그런 성격인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좋아하게 되었어?”

말꼬리를 잡는건가? 죠르노는 미스타가 뭔가 꼬투리를 잡아서 고백을 거절하려는 심산인가 해서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미스타는 가끔 이상한 일에 집착하듯 질문을 할때가 있다. 그런 그의 성격을 알기에 죠르노는 정말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라 판단했다.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 중에서 미스타가 가장 내 옆에 오래. 그리고 끝까지. 유일하게 남아있어줬으니까요.”

어때. 이건 꽤 좋은 답이겠지. 죠르노는 겉으론 냉정했지만 속으론 웃었다.

그 날의 여정은 굳이 죠르노가 입밖에 꺼내지 않아도 미스타가 알아차릴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으려 발버둥친 흔적들. 어찌보면 마음에 상흔으로 남았을지언정 절대로 잊지 않을 나날이다.

“그 날의 모든 순간이. 미스타를 사랑하라고 했어요.”

로맨틱한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꽤 좋아할지도. 이건 명대사급 아닌가? 죠르노는 자신의 답변에 쾌재를 불렀다. 속으로 자화자찬을 하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생각을 참았다. 겉으로는 언제나처럼 냉철한. 그리고 명석한 죠르노 죠바나의 얼굴로….

“에엥? 그러면. 그떄 살아남은게 내가 아니라 부챠라티 팀의 다른 누군가였다면. 너는 그 사람에게 고백했겠네?”

미스타는 입을 쩍 벌리고 말한다.

“만약 얼음을 쓰는 암살자와의 싸움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넌 그래도 그 사람에게 고백을 했을지도….”

“아니. 아닌데요.”

죠르노가 미스타의 말 허리를 딱 자른다. 아니. 거기까지 말하는건 좀 선 넘지 않아요? 죠르노가 인상을 구길때쯤 때마침 음식이 왔다.

“우선 먹고 말하자.”

이 메뉴, 새로 나온거래. 이런건 또 먹어봐야지. 미스타는 크게 음식을 집어 한입 베어물었다. 우물우물 씹더니 와인을 반모금 마시고 말한다. 괜찮네. 너도 먹어봐. 그 모든 대화에 다른 숨겨진 의미는 없다. 죠르노는 한숨을 쉰다. 심란한 마음과 달리 혀는 평소와 같다.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다.

 

 

죠르노는 그 뒤로 퀴즈 프로의 참가자처럼 계속 도전했다.

미스타의 외모가 취향이에요.

그러면 나랑 닮은 사람은 다 좋아한다는 뜻이야?

미스타의 말투가 좋아요.

내 언변이 좀 좋기야 하지. 그러면 내가 말수가 적어지면 싫어지겠네.

자신감이 있는 성격이 좋아요.

목소리가 정말 좋아요.

몸매와 옷 스타일이 멋져서 좋아요.

그 뒤로 죠르노는 몇 번이나 대답을 들고 갔다.

그리고 몇 번이나 미스타는 반박했다.

그 논리는 허무맹랑 할지언정 아주 무리는 아녔다.

차라리 미스타가 죠르노를 정말로 싫어해서 되도 않는 억지로 죠르노의 고백을 거절하고 있다면. 죠르노는 오히려 마음 편히 포기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스타의 태도는 거절하는 의도는 아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지치거나 화가 나지 않는게 문제다. 이쯤되면 오기도 생기고. 약간의 승부욕도 생긴다. 놀고 싶을 뿐이라면 그렇게 해주고 싶다. 다만 이기는건 죠르노 자신이다. 죠르노는 자신했다.

 

 

 

 

 

 

 

오래간만에 함께 영화를 봤다. 최근 며칠간 조직을 고생시킨 복잡한 일이 끝났다. 자축하는 의미에서 미스타의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남는 시간이었다. 영화도. 저녁 요리도. 전부 미스타가 정했다.

팝콘이라도 좀 먹을래? 미스타의 말에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이미 팝콘을 가져왔고 죠르노도 자연스럽게 한두입 먹었다.

굳이 해답을 찾아야할까? 죠르노는 생각했다. 미스타는 죠르노의 고백을 거절하지 않았다. 승낙하지도 않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따지면 수락에 가까운 상황이다. 여기서 죠르노가 미스타의 팔을 끌어당겨도 미스타는 싫어하지 않는다. 미스타의 허리에 손을 올리면 미스타도 기다렸다는 듯이 죠르노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리고는 말한다. 아, 방금 저 장면. 이 감독이 자주 쓰는 구도야. 죠르노에게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얘기다.

어찌되었건 보스인 죠르노가 상사인데. 단둘이 있을때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느슨해지는 두 사람이다. 이런 거리감이 동료라기엔 가깝고. 친구라기엔 기묘하고. 그래서 연인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스타.”

“와~ 저 장면 봐. 방금전 그 대사가…. 어? 왜?”

죠르노가 미스타 쪽으로 바싹 붙어 앉는다. 둘 사이의 거리는 이제 거의 없다. 지금 이 거리라면 미스타의 속눈썹의 길이도 잴 수 있을 것이다.

“미스타의 영화를 좋아하는 면이 좋아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그렇지만 엄청 많은데….”

그런말을 할 줄 알았죠. 죠르노는 이제 여유있게 답한다.

“그렇지만 영화보다도 영화같은 삶을 살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겠죠.”

그런가? 그럼요. 죠르노의 답에 미스타는 조금 무언가 생각한다.

“음~ 확실히 액션영화는 별로 재미가 없어. 보다보면 어설프단 생각도 들고. 지루하기도 해. 그래서 나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걸지도.”

하긴.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는 전부 로맨스 영화였죠. 죠르노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지루한걸로 따지면 로맨스도 마찬가지다. 어찌되었건 포스터에 가장 크게 얼굴이 박힌 남녀 두명은 사랑에 빠진다. 새로운 남자가 등장하면 여자 주인공쪽을 흠모하고 남자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다. 그래도 결론은 꼭 석양에서 하는 키스신이라든지. 죠르노에게는 무엇이 재미있을지 모를 영화다. 그렇지만 언제나 미스타는 엄청나게 집중해서 본다. 그런 미스타를 보면 재밌으니까. 더 말하지 않는다.

“역시 이 감독 영화는 재미있어. 신작이라길래 기대했는데.”

영화는 끝났다. 결국 이번에도 미스타의 답은 듣질 못했다. 오늘도 잘 안되었다.

“넌 어땠어? 재밌었어?”

“네. 저도 재밌게 봤어요. 좋은 영화네요.”

죠르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미스타가 죠르노의 팔을 잡아 당겼다. 죠르노는 일어나던 힘 그대로 쇼파에 다시 풀썩 앉았다.

“이 영화를. 왜. 어째서 좋아해?”

미스타가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한다. 이유가 있어? 까만 눈동자가. 이미 까맣게 변한 브라운관 같이 보인다. 매번 하던 질문과 비슷하다. 미스타는 답을 기다리고 있다. 저는. 죠르노는 매번 하듯이 답을 했다.

이 영화에 알기 쉬운 스토리가 좋아요. 그러면서 지루하지 않게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하는 개그 요소가 있고. 클라이막스 신은 감동적이고요. 음악과의 매치도 좋았습니다. 참,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어요. 시대 고증도 잘 되어서 몰입감이 있네요.

죠르노는 쉬지도 않고 길게 말했다. 미스타는 그 답을 들으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어때요. 제 답은?”

“매번 하는 네 말과 닮았어.”

이번에는 미스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죠르노는 그를 붙잡진 않았다. 미스타는 문을 열면서 말했다.

“힌트였는데.”

그는 다리를 문 밖으로 한발 내딛으면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죠르노는 그가 문 밖으로 나서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 공간에서 빠져나간다면. 다시 여기까지 와야한다. 그런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죠르노는 미스타를 따라 일어섰다. 성급하게 일어나서 무릎에 테이블이 부딪치면서 와르르 과자며 음료수병이 쏟아졌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미스타의 팔을 온힘을 다 해 붙잡아 당긴다. 죠르노보다 체격이 좋은 미스타는 휘청거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죠르노쪽으로 몸을 돌려줬다.

그를 붙잡을 답을 해야하는데. 정답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죠르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죠르노는 언제나 미래를 생각한다. 언젠가 갱이 될것이라는 꿈을 누군가가 들었다면 막연하기만 한 헛소리라 생각했지만 죠르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거머쥘 수 있는 준비는 그때부터 착실하게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기묘한 사건들 사이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음을 믿고 행동해왔다. 그런 선택의 사이에서. 그래도 몇 번쯤은 흔들린적도 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서 다시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제 미래에 다른 사람을 그려넣었어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 순간 죠르노는 자신의 미래가 아닌 우리의. 미스타가 함께한 두 사람의 미래를 생각했다. 스스로도 왜인지 이유를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 앞날에. 당신이 있었으면 했어.”

죠르노의 말을 듣고 미스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표정의 변화도 없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죠르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 까만 눈동자가 무언으로 말한다. 더 말해봐. 더. 자신의 질문에 답해보라고 추긍하듯이 바라본다. 죠르노는 자기 자신도 스스로 설득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타인을 설득할 수 있을까.

“미안해요. 이유는 없어요.”

결국 이 감정의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대답하질 못하겠어요. 솔직히 답한다. 그 해답의 공란에 여백이 아닌 대답이 돌아온다. 푸하하. 미스타가 짧게. 그렇지만 크게 웃었다.

“당연하지. 사랑에 이유가 있을리 없잖아.”

미스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죠르노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미스타가 열었던 문이 다시 닫힌다. 죠르노는 그 소리에 맞춰 눈을 한번 깜빡였다.

잠시만. 미스타가 지금 뭐라고 한거지.

“네?”

“그러니까. 네가 찾을 수 있을리도 없지.”

네? 하고 한번 더 물을뻔했다. 죠르노는 자신이 같은 말을 두 번하게 하는일은 무척 싫어하는데도 너무도 기가 막혀서 얼빠진 반응을 했다.

그 말은. 죠르노는 머릿속에서 최대한 빨리 말을 정리했다.

“즉, 미스타는 답이 없는 질문을 저에게 내렸단 뜻인가요.”

예전에 전래 동화에 그런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구혼자를 내치기 위해 억지로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낸 일화를. 미스타도 정답이 없는 질문을 죠르노에게 던졌다는 것은….

“제가 싫었나요. 미스타?”

“왜 여기서 흐름이 그렇게 돼?”

미스타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니. 당연히 그런 뜻 아녔어요? 불가능한걸 시키는건 예로부터 거절이잖아요.”

“그게 뭔데. 아. 돈 적게 주면서 이 궁전을 채우라고 시키는 그런거?”

대충 싸구려 양초 사와서 그 불빛으로 궁전을 채웠습니다 하는거 아냐? 미스타는 그 얘기를 왜 지금 하냐는 눈치다. 제가 생각한건 제비가 쥔 조개인데. 아니. 죠르노는 이마를 짚고 벽에 기댔다. 미스타가 죠르노가 기댄 방향을 따라 같이 비스듬하게 선다.

“보통 답이 없는 질문을 하는건 거절의 뜻이잖아요.”

“그런 늬앙스가 있나? 몰랐네. 일본은 그래? 동양인은 복잡하다니까.”

“그건 비단 아시아나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안되겠네요. 이러면 했던 말을 계속 하게 되니까요. 우리 다른 얘기를 하죠.”

그래. 여기서 미스타와 계속 말하면 대화가 끝나지 않는다. 그는 집중력이 산만한건 아닌데 대화를 할 때 자꾸 다른 주제로 가지치기 하듯이 말을 끌고 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수다스러움도 쾌활해서 좋아하는 부분이지만. ……그만. 그만생각하자.

“미스타는 절 어떻게 생각해요?”

“좋아해.”

“……….”

아. 여기서 그런 대답이라니. 진짜 모를 사람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기분이다. 죠르노는 아까부터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을 아래로 움직여 얼굴을 가렸다.

그러면 그냥. 더 쉽게 답해줄 수 있지 않나요. 평소에는 단순한걸 좋아하는 사람이. 억울한 마음에 울컥해진다. 죠르노의 심정과는 정반대로 미스타는 낄낄 거리며 웃더니 죠르노의 이마를 꾹 눌렀다.

“너도 알지만. 나 귀찮은거 싫어하는 성격이야. 괜히 빙빙 돌아가기도 싫고. 그렇지만 너한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저한테요?”

죠르노는 이마를 문질렀다. 아프진 않다. 그보다 억울하고 궁금한 마음이 더 크다.

“그래. 너 예전에 분명히 이렇게 말했잖아.”

미스타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죠르노를 스쳐 지나간다. 그는 쇼파에 앉더니 쇼파에 몸 전체를 푹 기댔다. 쇼파 등받이에 뒷목을 올린채 죠르노를 올려다본다. 눈이 마주칠 때 미스타는 입을 열었다.

“이유없는 감정은 믿지 않는다며.”

죠르노는 그 말에 자신이 그랬냐며 되묻지 않았다. 오히려 아, 하고 작게 탄식을 뱉었다. 스스로도 잊고 있던 말이다. 그런게 있었지 하고 지금에서야 떠오르는 기억이다.

 

 

 

 

정신 없이 추격자를 피해 도망치듯 탑승한 기차안. 부챠라티 팀은 열차 객석이 아니라 거북이의 안에 존재하는 공간에 있다.

다들 수고 많았다. 여기라면 잠시 쉬어도 되겠지. 부챠라티도 아바키오 근처 쇼파에 앉으며 말했다.

다들 지쳤다. 지금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느라 바빴다. 쉴새없이 오는 추격자에 계속 긴장한채 몸과 마음이 소모되었다. 쉬라고 해도 긴장감에 쉽게 눈을 붙일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시답잖은 잡담이 긴장된 공기를 채워간다.

“난 나중에 돈 벌면 이런곳에서 살고 싶어.”

나란차가 책장에 있던 잡지를 넘기며 말한다. 어디어디. 미스타가 나란차 쪽으로 몸을 기울다가 엥하는 소리를 낸다.

“뭘 모르네. 전원 주택이 훨씬 좋지. 뭐하러 그런 매연 많을 곳에서 사냐?”

나란차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시골은 그렇지만 재미없잖아. 그 말에 미스타는 혀를 찬다.

“그런 한적한 곳에서 이쁘고 사랑스러운 아내랑 꽁냥대는게 인생 행복인데…. 하긴. 너같은 애가 뭘 알겠냐. 사랑을 알겠냐 연애를 알겠냐.”

“애 취급 하지 마.”

나랑 나이차이도 한 살밖에 안나면서. 나란차가 성이 났는지 미스타의 볼을 잡아 당겼다. 야야 아파아파. 푸고~ 좀 말려줘~ 미스타가 팔을 허우적 거리는 동안 푸고는 고개만 흔들뿐 가만히 있었다.

“뭐 미스타는 나이에 비해 좀 늙은이 같으니까요.”

“인생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줄래?”

“연애 경험이겠죠.”

푸고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테이블에 놓인 과일을 하나 집어물었다. 먹을 것도 준비되어있고 괜찮네요. 부챠라티에게도 과일을 하나 전해준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이상하다니까. 이탈리아 남자라면 당연히 아름다운 시뇨리나를 좋아해야지. 안그래 아바키오?”

시끄러. 나를 왜 끼는거야. 아바키오가 천장을 보며 으르렁 거리듯이 말한다.

“아니. 그러면 내가 이 꼬맹이들과 말을 해야겠어?”

미스타는 나란차에게 잡힌 볼이 아픈지 볼을 연신 문지르고 있다.

“하하. 하긴. 아바키오도 인기가 상당히 많으니까. 왜 전에도 아바키오 따라온 근처 레스토란테 점원 아가씨가….”“부챠라티. 너까지 헛소리에 가담하기냐.”

“재밌잖아. 이런 얘기는. 긴장도 풀 수 있고.”

부챠라티가 입꼬리를 올리며 빙긋 웃는다. 너무 경직되어있는것도 좋지 않잖아. 트리쉬도 갑작스레 이런 일에 휘말린거고. 조금은 이런 얘기도 괜찮지. 부챠라티가 음료수를 컵에 따르며 말한다. 냉장고 밖에 있어서인지 좀 미지근한 음료수이다.

“그러고보니 죠르노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어디서 왔어?”

나란차가 죠르노 쪽으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묻는다.

“원래 네아폴리스에서 살았어? 나보다 어리다면서. 분명 엄청 좋은 학교에 다니겠지?”

죠르노는 머리가 좋으니까. 푸고처럼 이미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지도 몰라. 나란차의 질문에 죠르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공부를 잘하진 않아요. 적당하겐 하지만.”

“왜? 넌 나랑 달리 머리 좋잖아. 그러면 공부 잘해야지.”

나란차도 머리는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죠르노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학교를 잘 안다녔거든요. 돈 벌이를 좀 하느라.”

그렇다고 아예 학교를 안다니는 것도 아니고. 대충 마음에 내킬 때 적당히. 짤리지만 않을 정도로 가고 있으니 성적이 아주 좋을 리가 없다.

“신기하네~ 너 되게 귀공자처럼 생겼는데. 하기사, 갱을 하고 있으니 상관없나.”

미스타가 비스듬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한다.

그래도 학교 생활 재미있겠다. 나란차가 턱을 괴고 잡지를 팔랑팔랑 넘긴다.

“별로 재미없어요. 그치? 죠르노.”

“그렇죠. 그다지 즐거울 일도 없고.”

푸고의 말에 죠르노가 가볍게 동의한다. 나란차는 그래도 부러운지 뭐라 더 중얼거렸지만 이어지는 미스타의 말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왜. 예쁜 여자애라든지. 없어?”

“관심이 없어서요.”

“엥? 진짜? 한창 관심 있을 나이잖아.”

관심이라. 글쎄요. 죠르노는 잠시 생각했다.

죠르노는 매번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 여러 갈래로 제법 구체적이게 설계를 짜아올리기도 한다. 그 생각에서조차. 한번도 망상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죠르노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그 일 만큼은 가정일지라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애초에 죠르노에게 사랑이란 단어는 사전속에 등재된 단어로만 존재했다. 자신이 실제로 입에 담을 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전 이유 없는 행동이 싫어요.”

죠르노가 아주 감정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어느 정도의 인정(人情) 이야 있다. 측은지심이나 연민이라든지. 그렇지만 연정에 대해서는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 없는 감정도 그렇구요.”

죠르노는 중얼거리듯이 답하고 헛기침을 한번 했다. 어디까지 제 지론이 그렇다구요. 급하게 덧붙인 문장에 나란차는 별 신경쓰지 않고 어깨동무를 했다. 그보다 이 집 봐봐. 역시 호수가 있는 집이 멋지지? 나란차가 가까이에서 말한다.

그때 미스타의 표정이 어떠했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그런 대화를 하긴 했죠.”

그런데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줄은 몰랐네요. 죠르노의 말에 미스타는 쇼파에 기댄채 답했다.

“그때. 사실 괘씸하다 생각했거든. ‘뭐 이런놈이 다 있어?’ 같은 생각.”

정말요? 응 정말로. 미스타는 잠시 예전을 생각하는지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단순한 의견차이라면 나도 별 신경은 쓰지 않는데. 미스타가 입을 연다.

“뭐랄까. ‘그럴지도 몰라요~’ 이런게 아니라, ‘그럴 일은 없다.’ 라는 확신이 있었어. 너.”

미스타는 이성보다 감성이 더 빠른 사람이다. 논리보다 직감에 따라 상황을 판단한다. 그 본능에 가까운 분석은 오히려 길게 생각할때보다 정답에 가깝다.

“만약 네 말투가 말이야. 아직 저는 연애를 해보지 않아서요. 사랑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어요~ 같은 느낌이었으면 나도 그냥 넘어갔을거야.”

응응. 그럴수도 있지. 너 나이 어리고. 아, 물론 사랑에 나이는 중요치 않지만. 10살도 할 수 있는게 사랑이고 반대로 70살이 되어도 모르는게 사랑이기도 하니까. 그런 개개인의 인생관을 말하는게 아니야.

“그렇지만 너는 자기 자신이 사랑을 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어. 그런 감정이야 말로 번거롭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처럼.”

미스타는 짧은 대화에서 죠르노의 핵심을 보았다.

이 소년은. 사람의 애정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을 불신하는 것 까진 아니다. 죠르노는 사람의 용기와. 긍지와. 신념은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연심에 대해서만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물론 깊은 마음을 분석할 수는 없다.

미스타는 죠르노의 옆에서 궁금증을 품었다. 언젠가 이 의문이 해소되는 날이 올까. 불확실한 가정을 삼키고 나아가던 길에. 의외의 결과가 왔다.

“해보고 싶었어. 너에게.”

떠오르던 태양이 죠르노의 눈 앞에 있던날. 미스타는 죠르노의 표정에서 새로운 감정이 싹텄다.

“사랑이 뭔지 알려주고 싶었어.”

그 감정은 뭐였을까. 반발감? 궁금증? 호기심? 미스타는 자신의 감정이 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대로 넘어간다면 억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죠르노는 미스타의 답을 듣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듯이 말을 꺼냈다.

“그러면. 미스타는 나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알려주고 싶다…. 일부러 그런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건가요?”

말이 좀 이상한데. 미스타는 중얼거렸다.

“미인계를 쓰는 스파이 같은 표현이네…. 내가 그렇게 번거로운 짓을 할 사람으로 보여?”

“그런 사람은 아니죠.”

“미인계에 당한건 맞고?”

“전혀 아니라곤 말 못하겠네요.”

하하. 너, 그렇게 내 농담 다 맞춰주면 안될텐데. 버릇 될지도 몰라.미스타가 웃었다. 죠르노. 너한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어.

“사랑이란 감정은 이유가 없어.”

물론. 변명 정도야 가능하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핑계를 붙이면 너무 없어보이잖아. 미스타는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예뻐서 좋고. 이 사람은 똑똑해서 좋고. 이 사람은 다정해서 좋고. 그런 이유는 어디까지나 명분일 뿐이야. 같은 조건에 있다고 무조건 사랑에 빠지는것도 아니고. 그 조건보다 더 좋은 사람이 나온다고 사랑이 변하지 않지.”

“미스타. 당신은 가끔 이상형에 대해 말하곤 했잖아요.”

죠르노가 물었다. 그가 유명한 영화 배우를 예시로 들며 자신의 취향을 알린적이 있다. 그야 그렇지. 미스타는 쉽게 수긍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조건에서 점점 달라지는 날이 오거든.”

멋지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고. 제멋대로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곤해. 그땐 무슨 구실을 삼을 수 있겠어. 미스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흠. 그러면 말이 이상해지는걸요.”

죠르노가 헛기침을 한번 했다. 당신은 저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당신의 이상적 기준에서 저는 미치지 못했음에도 좋아졌다는 말씀이에요?

“아니. 그건 아닌데. 너 충분히 이쁘고 똑똑하고 으음…. 위에 말한건 말이지 어디까지나 예시야.”

“경험이 아니라?”

“묘하게 집요하네 너.”

죠르노가 미스타의 옆에 털썩 앉았다. 일부러 몸에 힘을 주어서 앉았기에 쇼파에 먼지가 날렸다.

“나를 집요하게 만든건 미스타잖아요.”

“그랬어?”

“계속 내 말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으면서.”

죠르노가 툴툴 거리며 말했다. 화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심통이 난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뭔가 말로 길게 설명해봤자 잘 와닿지 않잖아. 설득될리도 없고.”

내가 말해봤자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보냈겠지. 네네. 그런 일도 있군요. 이런 느낌으로.

“그래서 직접 체험해보라는 의도였나요.”

“그렇게 말하면 또 그렇게 되네.”

미스타의 지론은 그랬다. 사랑에 만약 이유가 있다면 그건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동자가. 이미 사랑이 담겨 있기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이든 사랑하고 만다.

이 간단한 사랑의 공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나빴네.”

잘 설명하지를 못해서. 전달력이 부족했어. 미스타가 중얼거렸다.

“아니. 괜찮아요. 그런점까지….”

“좋아하고 있다고?”“본인입으로 말하기예요?”

정말. 가끔 진짜로 얄밉다. 계속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하게 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지고만 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언제까지 이 작은 다툼을 이어가고 싶다. 정말로 이상한,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감정이다. 이 귀찮고, 성가시고, 번거로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 그렇구나. 이 이성적으로 분석되지도 않고. 근거없이 흔들리는 감정이 바로,

“나.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나봐.”

사람을 사랑한다는 감정이겠지요.

 

 

 

 

 

 

 

그러면 사람이 사랑하는 감정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 반대로 싫어지는 감정도 설명이 되지 않아야 맞는게 아닐까요.

그건 우리사이에 몰라도 되는거 아닐까? 벌써부터 생각하자니…. 무드 좋았는데….

 

 

 

 

 

 

 

 

프리랜서 소설가 / 현생사느라 바쁠땐 2차 글 못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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