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형.. 미안해요.. 나때문에 미안해요..”
“...기자회견.. 만약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그만 둘게. 니엘군. 지훈이와 나야.. 이 일에 당사자들이지만...”
“형.. 나.. 나 버리지 마요.. 정말 미안한데.. 나.. 버리지 마요...”

정신이 반쯤 나간 듯 울며 자신에게 매달리는 지훈의 모습이 눈물에 가려 뿌옇게 흐려졌다.

◈◈◈

초등학교 저학년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의건, 과거의 다니엘은 일찍 철이 들었다. 천진난만한 면도 물론 있었지만, 또래보다 사려깊고 다정했다. 그래서 기껏 엄마의 속을 썩인 것이 학원을 빠지고 몰래 피씨방을 가는 것이 전부였던 아이였다. 공부도 꽤 잘하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무난했던 그 의건이가 고2가 되고부터 성적이 점점 떨어지더니, 기어코 담임의 학부모 호출이 발생했다. 

그 자리에서 의건의 어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입니꺼! 우리 아가 뭐라꼬요?”
“소문이.. 소문이 그렇게 나가지고..”

게이, 호모.. 자신의 인생과는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단어였다.

“아니.. 우리 아가.. 뭘, 뭘.. 어쨌다고...”
“그.. 같은 학년에 아 하나하고 그.. 음.. 스킨쉽을 하는걸 누가 봤답니다. 그리고 그거를 퍼뜨려가꼬..”
“네? 스킨쉽이요?”

의건의 모친은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내 아들이.. 우리 의건이가.. 그럴리 없으예, 쌤이 뭐 잘못알고 계신걸낍니더... 아이라예. 우리 아가 그럴리 없심더. 하.. 합성.... 뭐 그런거 겠지요. 요즘 그런 거는 조금만 컴퓨터 다루면 한다던데..

“아를 불러서 얘기했는데.. 아가 암말도 안합니다. 다른 아는 전학가버렸고. 그 소문때문에 아가 충격을 좀 많이 받은 거 같은데.. 어머니가 아좀 달래가면서 물어보이소. 의건이가 다시 맘잡으면 성적은...”

성적에 대해 얘기하는 담임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대충 상담이 마무리 된 후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터덜터덜 학교를 걸어나왔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미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털썩 주저 않은 어머니의 앞에 의건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엄마...”

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그 목소리 하나에 어머니는 화다닥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부엌 서랍을 뒤져 과도하나를 꺼내 아이의 앞에 두었다.

“니.. 엄마 죽는꼴 보고싶나.. 니.. 도대체.. 뭘 우예 하고 다니길래 그딴 소문이 나노? 아이라고 캐라. 그거 아이라고.”
“엄마... ”

아이는 주먹을 꽉 쥐고 고개도 들지 못하곤 눈물을 뚝뚝 흘리고만 있었다. 허... 진짠갑네.. 허...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가.. 내가.. 니를 우예 키웠는데.. 애비 없어서 아 저카고 다닌단 소리 안들을라고 내가.. 쎄빠지게 일하면서 니 학원보내고, 입히고, 먹이고.. 근데 니가 우예 내한테 이라노?”
“..엄마.. 내도.. 내도... 안그러고 싶다... 내도.. 다 안다..”
“근데? 아는 아가 그카나?”
“우짜노.. 가만 보면.. 가만 보며는... 심장이 터질거 같고.. 자꾸 만지고싶고... 내도.. 안하려고 했는데.. 저절로 움직이는 걸 우짜노.. 내도..”

아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사랑이다. 아이는 지금 그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투르지만, 어쩌면 서툴러서 더 숨기기 힘든 사랑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까지 어머니의 세상에서 그러한 사랑은 이성간에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가.. 가 이름이 뭐꼬?”
“왜? 왜? 엄마.. 가 찾아갈라고? 엄마.. 엄마.... 아이다.. 내가 다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가는 아무 잘못없다. 엄마.. 잘못했어요..”

고개도 들지 못하던 아이가 깜짝 놀라 자신을 쳐다본다. 끝까지 그 아이는 잘못이 없다며, 다 자기가 잘못했노라고... 손바닥을 싹싹 빌고있다. 지금까지 키우며 저렇게 손바닥을 빌며 용서를 구할만큼 잘못을 한 적이 없던 아이였는데... 지금 그 아이는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해서 저렇게 손바닥을 비비며 운다.

“건아, 유치원에서 누가 젤 이쁘노?”
“음.. 상윤이. 상윤이가 젤 이쁘다.”
“상윤이? 상윤이는 남자잖아. 여자 친구 중에서 말이다.”
“음.. 모르겠다...”

진짠데.. 여자애들 중에 누가 젤 예쁜지.. 내는 하나도 모르겠다. 내 눈에는 무조건 상윤이가 젤 이쁜데..
라고 말하던 그 7살 의건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왜 하필 그때 기억이 날까.. 어쩌면 그때부터 이 아이는 알고 있었던 걸까. 그게 본능이었을까..

“니가 말하던가, 아니면 선생님한테 묻던가..”
“엄마..”
“얼른 말해라..”
“신우요.. 김신우..”
“그집 부모도 아나?”
“가는.. 전학갔다....”
“그카믄..? 이제 안만나나?”
“.... 번호도 바뀌고... 전학하고 한번도 못봤어요..”

아이는 지금 자신이 당하는 일보다 그 아이를 보지 못하는 것이 더 힘들고 괴로운 모양이었다. 아이고.. 저도 모르게 낮은 한숨과 탄식이 나왔다.

“니가.. 아직은 어리고... 니가 남고라 그런 건갑다. 니도 전학가자.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랬으니까 니도 서울로 보내줄게. 거 가서 사람 마이 만나보면 니도 바뀔 수도 있을끼고..”

전학가라는 말에 아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원망이 섞인 것을 어머니라고 왜 모를까.. 그래도 일단은.. 일단은....

“엄마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의건은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신우와의 일들을 떠올렸다. 처음 단 둘이 영화를 보러가던 날 잡았던 손, 바람에 흔들리던 신우의 머리카락, 체육관 뒤에서 몰래 나눴던 입맞춤...
머릿속의 장르는 로맨스에서 점점 폭력물로 변해갔다. 신우와 나누던 키스 사진이 떠돌기 시작했다.

“우엑.. 강의건, 니 호모가?”
“더럽게시리.. 니 그럼 고추보고 서는거가?”

의건의 얼굴이 굳었다.

“야! 아이다. 그런거..”
“하긴, 니가 뭐가 아쉽다고 고추달린 놈이나 좋아하겠노? 이거 금마가 꼬리친거제? 사진 각도 보이까 가가 먼저 덤빈 거 같던데..”

의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타겟은 신우에게로 옮겨갔다. 우수한 성적과 그전부터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았던 건장한 체구의 의건보단, 조금더 약해보이는 쪽으로 그 화살이 옮겨가는 것은 당연했다. 학교는 정글이었으니까. 약육강식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그 어디보다 확연히 존재하는 곳이니까. 그런 신우를 의건은 모른척했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아무도 모르게 만나고 있었다. 만나면 의건은 미안함에 울기 바빴다. 그렇지만 신우는 그때마다 그런 의건을 어른처럼 달래주었다.

“니라도 괜찮으면 됐다...”
“신우야.. 미안하다... 내가.. 내가...”
“아이다. 그래도 참을 만 하다...”

그렇게 어른스럽게 자신을 달래주던 신우는 어느날 갑자기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입원을 하게 되었다. 점점 심해지던 괴롭힘이 결국 불러일으킨 사고였다. 하지만 학교측도 신우의 부모님도 쉬쉬했다. 


신우가 입원해 있는 동안 학교는 예전과 같아졌다. 의건은 여전히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고, 공부를 했다. 여전히.. 잘 지내는 줄 았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본 신우의 모습에 의건은 자신이 연기하고 있음을 알았다. 신우는 많이 마른 모습이었다.

“내 전학한다. 번호도 바꿀거고.. 이제 니 다시는 안본다.”
“왜? 바꾸는 번호는 알려도.. 내가 찾아갈게. 내가..”
“괜찮다고 해서 괜찮은게 아인데.. 니는 니만 생각하느라.. 내가 어떤지 모르는 거 같더라.  그냥.. 나도 지쳤다. 대책없이 울기만 하는 니 달래는 것도, 그런거 다 이해하는 척 하는 것도.. 나도 상처받는다.. 나도 힘들다.. 왜 모르는데 니는?”

울었다. 또 울었다. 의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 둘이 만날때 널 좀 볼 걸.. 괜찮다는 말 뒤에 숨은 뜻을 알아챌걸.. 그렇게 끊임없이 후회했다.

고2, 1학기가 끝나고 난 후, 의건은 서울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이름도 바꾸었다. 다니엘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지였다.

◈◈◈

자신에게 매달리는 지훈을 보며 그때 신우와 자기가 생각났다. 지훈에게 처음 관심을 가진 이유는 호기심이었을지 모르겠다. 고작 선글라스 뒤에 숨어서 괜찮은 척 하는 모습에 신우가 겹쳐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오롯이 지훈, 그 한명을 지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뒤에 있는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이 아이는 지키고 싶었다.

“... 기자회견.. 하세요.”
“형....”
“...괜찮습니다. 하세요.”
“자네 부모님들은...”
“어머니는 알고 계십니다. 아버님처럼 이해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알게 되신지는 꽤 오래 됐습니다.”

그날 저녁 다니엘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엄니..
-니 티비에 나온 후로 난리다. 아줌마들이 니 맞냐고, 그 이도준인가 누구 아들내미랑 같이 티비 나왔다고
-엄마..
-.....말하지 마라.. 그 말이면 하지 마라.
-이도준이 기자회견을 한답니다. 그때 가도 같이 나갈꺼고.. 그때.... 얘기 할겁니다. 우리 둘이 사귀고 있다고.. 협박.. 당했답니다. 그래가 밝히라고 했다. 내가...
-...허....
-알고 있었다아이가... 엄마는...
-...안되겠드나? 우예.. 안되겠드나..
-..예...
-..알았다..
-미안해요.. 엄마.. 진짜.. 미안해요.. 내가... 내가...
-아이다.. 밥 잘챙겨묵고. 나중에 통화하자.

미안해요..엄마.. 18살 그때처럼 다니엘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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