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아래가 퀭한 성인 남성 하나가 힘없는 걸음걸이로 비틀대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의아한 눈빛과 동정심이 섞인 눈빛을 간혹 보내고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마 그 남자의 정체를 안다면 사람들은 그를 그저 스쳐지나가는 행인 중 하나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었다.

 

 

 

 

 

 

 

 

 

술루는 배고픔에 지친 채 길을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제대로 된 식사는 고사하고 뱃속에 뭘 집어넣지 않은지 오래였으니... 고작 공원의 식수대 따위에서 물로 배를 채우고 간단하게 세수 따위만 한 술루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마치 젖살마냥 통통하게 올라있던 뺨은 홀쭉해졌고, 눈은 생기를 잃고 침침해진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술루는 필사적으로 수인화를 하지 않도록 참느라 에너지소비를 배로 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체 수인화를 참기 어려워하는 술루였다. 아마 제 모습을 드러내놓아도 되었던 실내 생활을 오래한 탓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이때만큼은 갑작스런 수인화를 참고 또 참아야만 했다.., 술루는 맥코이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던 것뿐, 어디로 팔려가거나 수용소에 끌려가는 일은 끔찍이 싫었다.

 

 

 

 

 

 

 

술루는 그런 와중에도 맥코이를 생각했다. 맥코이는 저에게 항상 좋은 것만을 줬다. 맛있는 음식, 다정한 눈빛, 좋은 집, 향기로운 옷, 포근한 손길, 뜨거운 정염,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진 술루는 괜히 코를 훌쩍이며 나무의 그늘이 드리운 벤치에 앉았다. 이제 정말 아저씨를 볼 수 없는 걸까. 아니야, 술루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참아야해... 술루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기운다. 배고픈 와중에도 졸음이 몰려와 술루는 눈을 깜빡이며 저도 모르게 잠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 ..... .....저기.”

 

“.....?”

 

 

 

 

 

 

 

 

 

 

 

 

 

누군가가 술루의 어깨를 흔들었다. 술루는 살풋 들었던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고, 그런 술루가 마주친 것은 새파란 두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남자였다.

 

 

 

 

 

 

 

 

 

 

 

 

 

 

 

 

 

 

 

 

 

 

 

 

 

 

 

 

 

커크는 근무 도중 점심을 굶은 게 생각나 근처 핫도그 가판대에서 핫도그를 사먹는 중이었다. 가판대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고, 잘게 썬 양파와 머스타드가 듬뿍 올라간 핫도그를 한 입 먹으려는 순간 그는 먼 시야에서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다.

 

 

 

 

 

비척비척 걸어가 벤치에 앉은 남자는, 사실 밖에서 만나리라고 짐작도 못한 사람이었다. 수인인 게 분명한 그 사람, 아마 이름이- 술루라고 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으니까. 커크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손에 핫도그를 든 채 그에게 다가갔다. 그 수인에게 아는 체를 하는 게 옳을지 어떨지는, 솔직히 커크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커크는 그냥 눈을 돌리고 그 수인을 모른 체 하며 떠나갈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일이 잘못 되면 술루의 결말은 불보듯뻔하지 않은가! 커크는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걸 느끼며 술루에게 다가갔다.

 

 

 

 

 

 

 

 

 

꾀죄죄한 모양새, 어두워진 안색, 커크는 술루가 집을 나왔음을 짐작했다. 등 따시고 배부르게 보호받으며 살던 수인이 갑자기 밖을 배회할 이유는... 글쎄, 칼 녀석을 위해서 나온 걸까? 커크는 미뤄 짐작하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수인을 살짝 흔들었다. 천천히 눈을 뜬 술루는 커크를 보자마자 힉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고 커크는 해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올려 보이며 빠르게 말했다.

 

 

 

 

 

 

 

“저기, 걱정하지 마요. 당신이 걱정하는 일은 절대 안 할 테니까.”

 

“..................”

 

“이름이... 술루... 술루 맞죠? 괜찮아요?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요?”

 

 

 

 

 

 

 

커크는 목소리를 낮추고 술루의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술루의 검은 두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고 살짝 벌려진 튼 입술은 마른 숨소리로 색색였다. 그런 와중에, 커크는 술루의 시선이 제 손에 들린 핫도그에 못박힌 것을 보았다. 아, 하고 김빠지는 소리를 낸 커크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술루에게 핫도그를 내밀었다.

 

 

 

 

 

 

 

“.... 먹을래요? 방금 저 가판대에서 산 거예요.”

 

“......”

 

 

 

 

 

술루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커크는 이렇게 꾀죄죄한 모습이면 며칠을 굶어도 굶었을 것이라 짐작하며 좀 더 가까이 핫도그를 내밀었다. 술루는 핫도그와 커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결국 손을 뻗어 커크의 손에서 핫도그를 빼내갔다. 포장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싶더니, 술루는 단숨에 핫도그를 꾸역꾸역 밀어 넣어버렸다.

 

 

 

 

 

입가에 소스를 묻힌 채 간만에 들어온 음식에 끙 하고 앓는 술루를 보더니, 커크가 결국 웃음을 터뜨리며 술루에게 어디가지 말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일어나 가판대로 뛰어간다. 가판대로 향하는 와중에도 뒤를 연신 돌아보는 커크를 보면서, 술루는 꼬리가 팡 하고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술루도 제가 수인인 걸 본 게 바로 저 파란 눈의 남자고, 지금 자기가 여기서 한가하게 핫도그를 얻어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술루는 너무 배가 고팠고, 저 남자가 내민 핫도그는 (그 비싼 온갖 음식을 먹여줬던 맥코이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정말정말 맛있었다. 술루의 단순한 뇌는 그런데다 굶주림에 절여져 멍해지고야 말았다. 조금만 더 먹고 생각해보자. 술루는 양 손에 핫도그를 들고 온 남자를 반짝이는 눈으로 보며 생각했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하나는 칠리도 뿌렸는데, 매운 거 싫어해요?”

 

“.........”

 

 

 

 

 

술루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도리질쳤다. 커크는 씩 웃으며 칠리가 뿌려진 핫도그를 내밀었고 술루는 금세 새 핫도그를 게눈감추듯 먹어치웠다. 커크는 설마 했지만 제 몫으로 사온 핫도그도 술루에게 내밀었다. 이 배고픈 고양이는 체면은 저 멀리 갖다 놓고 왔는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커크의 핫도그도 받아들었다.

 

 

 

 

 

 

 

“배고팠나보다.”

 

“.................. ... 우웅.”

 

 

 

 

 

 

 

이렇게 잘 먹이고 술루를 갖다 팔려는 셈이면 어쩌지? 술루는 어느 정도 배가 차자 돌아온 이성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맛있는 걸 주는 사람은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었지만, 커크의 선한 두 눈을 본 술루는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몸을 슬슬 뒤로 물렸다. 그런 술루를, 커크가 저도 모르게 덥썩 잡아챈다.

 

 

 

 

 

 

 

“저기, 술, 술루?”

 

“히익...!”

 

“잠깐, 내 얘기 좀 들어-”

 

“싫어 술루는 안 갈 거야!!”

 

 

 

 

 

 

 

술루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꿈지럭대자, 근처를 한가롭게 거닐던 사람들이 술루와 커크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본다. 커크는 앓는 소리를 내며 술루를 진정시키기 위해 진땀을 뺐다.

 

 

 

 

 

“잠깐만요, 진짜 당신이 생각하는 짓은 안 할게요. 그러니까..... 당신을 어디에 신고하거나 팔아넘기거나 하는- 그런 거요! 진짜로!”

 

 

 

 

 

 

 

커크는 중간에 목소리를 낮춰 사람들이 들을 수 없도록 속삭였다. 술루가 잠시 버둥거렸지만, 커크의 진지한 눈빛에 곧 힘을 빼고는 한쪽 팔을 그에게 여전히 붙잡힌 채 걱정이 한가득 담긴 눈으로 커크를 바라봤다. 커크는 최대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생각해봐요 술루- 계속 밖에 있을 거예요?”

 

“....”

 

“지금처럼 곧 배가 고파질 거고, 갑자기 제어가 풀리거나 해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누구인지 안다면-”

 

“-안 돼, 싫어---”

 

“저기! 후.. 그러니까, 알면 안 되잖아요? 그쵸?”

 

“....”

 

“지금 술루는 카, 아니 레너드 녀석 집으로 갈 수는 없어요- 술루, 비밀 하나 알려줄까요?”

 

“...... 뭔데?”

 

 

 

 

 

커크가 진지한 눈빛으로 술루를 떠보자, 흥미가 생긴 술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커크는 짐짓 목소리를 더 깔고 심각한 눈빛으로 술루를 바라보았다.

 

 

 

 

 

“술루, 나는- FBI에요. 아 그게 뭐냐면, 경찰 같은 건데요. 지금 연방정부에서 불법으로 수인을 데리고 있는 것에 대한 처벌을 내리기 위해 수사를 하고 있어요. 술루가 지금 이 시점에 레너드의 집을 나온 건 정말 잘 한 거예요. 안 그러면 레너드가 꼼짝없이 감옥에라도 가게 되었을 테니-”

 

 

 

 

 

 

 

술루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커크는 얼른 지갑을 꺼내 제 신분증을 술루에게 보여주었다. 술루는 천천히 F, B, I 라는 글자를 읽었다. 커크는 제 설득이 먹혀 들어가나, 싶어서 좀 더 술루를 자극하기로 했다.

 

 

 

 

 

“술루, 술루 언제 집에서 나왔어요? 내 말은, 내가 술루를- 레너드 녀석 집에서 본 후에 얼마만에 나왔냐는 뜻이에요.”

 

“....... 몰라. 아마... 몇 시간 후에...”

 

“생각해봐요, 만약 내가 정말 ‘나쁜’ 짓을 하려고 했다면 나는 레너드 녀석의 집 앞에서 바로 술루를 데려가고 레너드를 체포했을 테고, 아니면 적어도 그게 몇 시간이나 걸리진 않았을 거예요. 날 믿어요, 술루. 난 레너드나 당신을 해칠 생각이 전혀 없어요.”

 

“....”

 

“레너드는, 술루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오래된 친구고 난 진심으로 레너드를 해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술루, 차라리 우리 집으로 와요. 적어도 나는 FBI의 의심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을 테고, 잘 숨어 있다가 나중에 상황이 괜찮아지면 돌아가요, 어때요?”

 

“.... 그럼... 그럼 아저씨는 무사한 거지? 술루, 아저씨가 너무 늦게 들어와서... 무서워서.. 아저씨가 술루 때문에 잘못될까봐 도망쳐 나온 거란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아마 보통의 성인 남성에게 했다면 의심 갈 만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 설득이었다.  그러나 술루는 조금 낮은 지능을 가진 수인이었고, 커크의 말도 듣다 보면 일면 납득될만한 부분이 있어 술루는 저도 모르게 눈앞의, 어떻게 보면 간절해 보이는 남자에게 조금 마음을 열고 말았다.. 커크의 입담이 곁들여져 커크가 설명한 현재의 상황-비록 거짓말이지만-을 제법 실감나게 들은 술루는 정말 맥코이가 괜찮은지 두 눈을 순수하게 반짝이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 완전 무사해요. 물론 술루를 무척 걱정하고 있어요. 레너드에겐 내가 상황이 조금 잠잠해지면 얘기할게요. 우선 들어가요, 술루.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을 해칠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게요. 가서 따뜻한 물로 목욕도 하고, 잠도 편히 자고 해요. 밖에 오래 있을수록 술루에게 위험한 건 말 안 해도 알겠죠?”

 

 

 

 

 

 

 

술루는 필사적으로 그 작은 머리통을 굴렸다. 정말 어쩌는 게 좋을지 술루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너무 힘들었던 데다 묘하게 납득이 되는 커크의 말들, 그리고 레너드가 저 때문에 위험해지면 안 된다는 술루의 강박적인 생각이 술루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반면에 커크는 제가 필사적으로 설득을 하는 와중에도,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나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졌다- 굳이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이런 귀찮아질만한 일쯤은 무시하는 게 맞았다. 특히 그는 정말 FBI의 신분이었다. 제가 수인을 데리고 있다는 게 알려졌을 때의 일은 정말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술루를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설득하는 이유는-

 

 

 

 

 

 

 

“그런데.... .... 왜... 술루를 도와주려고 해?”

 

 

 

 

 

술루의 질문에, 청산유수처럼 줄줄 입을 털어대던 커크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조용히 입을 다물고 술루를 바라본다. 술루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새카만 눈을 깜빡이며 커크를 바라보았다. 커크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떤 대답이 적절할지 고민하는 동안, 그러나 입이 먼저 열리고 말았다. 거의 조건반사적인 대답이었다.

 

 

 

 

 

 

 

“....... 내가 아는 사람을... 많이 닮아서요.”

 

 

 

 

 

 

 

 

 

 

 

 

 

술루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하려던 말을 하지 않고, 술루는 두 손을 만지작거렸다. 한참 후, 술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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