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야, 내일 생일이지. 미리 축하해. 내가 보낸 생일 선물 택배로 잘 받았니?]

[네. 엄마. 잘 받았어요. 옷 예쁘던데요.]

[응. 별거 아니지만 네가 돈 안 낀다고 옷 잘 안 사 입어서 하나 샀어. 다솜이 바꿔줄게.]

[오빠, 네 선물 자 받았어?]

[어. 필통 고마워. 잘 쓸게.]

[전에 오빠 방학 때 집에 왔을 때 필통 보니깐 너무 너덜너덜하더라. 돈 아끼지 말고 살 건 사서 써.]

[응. 다솜아. 고마워. 잘 쓸게.]

유하는 어머니와 다솜이와의 통화를 끝내고 한숨을 쉬었다. 침대에 몸을 눕혔다. 생일이면 동훈이 늘 친한 동기와 친구들을 모아서 조촐하게 술자리를 만들어줬었다.

이번 생일은 휴일이 애매하게 걸려있어서 다들 해외로 간다 가족 여행을 간다 어쩐다 하면서 시간이 안 되는 눈치였다. 설상가상으로 동훈 역시 가족들과 여행을 가게 됐다고 했다.

“동훈이 늘 생일을 챙겨줘서 당연하게 생각했어. 올해는 이렇게 그냥 보내는구나. 왠지 외롭고 쓸쓸하네.”

유하는 괜히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한숨 지었다. 동훈은 뭔가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았는데 요즘 통 말을 안 했다. 유하는 섭섭했지만 말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결도 평소와 달리 유하가 뭘 하든지 신경도 안 쓰고 바빴다. 밤이고 낮이고 얼굴 보기 힘들었다. 뭘 하는지 몰라도 손목이 아픈지 볼 때마다 손목을 주물럭거렸다.

한결은 거실에 있다가 전화가 오면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가서 전화를 받았다. 애인 전화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경계하는 모습에 유하는 시무룩 해졌다. 한결이 애인이랑 무슨 달콤한 말을 속삭이기에 저럴까 싶었다. 좋을 때다 애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외롭다. 이럴 때 애인이라도 있으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겠지.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애인도 사치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빠듯한데…. 지금 한결이 신세 안 지면 길바닥에 나 앉아야 하잖아. 어휴.”

유하는 배개에 얼굴을 파묻고 잠을 청했다. 곧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

 

한결이 잠든 유하를 깨웠다. 창에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선배 일어나요. 눈 떠요. 우리 어디 갈 데가 있어요.”

유하는 눈을 뜨고 침을 닦았다.

“빨리 씻어요. 가야 해요. 지금. 오늘 중요한 날인데 왜 이렇게 늦잠을 자요. 평소라면 벌써 일어났을 사람이.”

한결이 유하의 등을 팍팍 때렸다.

“안 일어나면 알죠? 크큭.”

한결이 짓궂게 입술을 쭉 내밀며 ‘쪽’소리를 냈다. 유하는 그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벌떡 일어났다.

“간다고. 가. 근데 나 오늘 주말 알바 밖에 없는데 왜 서둘러야 하는데….”

유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결이 알 필요 없다는 듯 유하를 째려보았다. 어쩔 수 없이 유하는 한결의 재촉에 어떨결에 샤워를 했다. 대충 아침을 꾸역꾸역 억지로 먹었다.

“어디 가는데…. 나 목적지를 알아야 가지. 귀찮다. 안 갈래.”

유하는 한결에게 목적지도 모르고 나갈 수 없다고 안 간다고 버텼다. 한결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힘으로 유하의 손목을 질질 끌어당겼다. 힘으로는 유하는 한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결은 목적지를 안 가르쳐주고 무작정 유하를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갔다.

“뭔데…. 나 오후에 카페 알바 가야 하니깐 그때까지는 돌아와야 해. 귀찮다. 잔다.”

유하는 될 대로 되라지 싶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한결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유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유하가 눈을 떴을 때 어느 호숫가의 한적한 별장 앞이었다. 예쁘고 아담한 집이었다. 커다란 호수가 빛을 받아서 은빛으로 빛났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한 호수 표면에 거울처럼 하늘이 비춰서 환상적인 풍경을 이루었다. 마치 외국 휴양지 같았다.

“여기 어디야? 우리나라에 이런 데가 다 있어?”

유하가 어안이 벙벙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감탄했다. 한결은 유하가 좋아하자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저기 봐요.”

유하는 한결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별장 현관문 앞에 활짝 웃으며 동훈과 소현이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어, 동훈이는 가족 여행 간다고 바쁘다고 했는데….”

유하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한결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유하의 어깨를 밀었다.

“가 봐요. 뭐 재미있는 일 있는 거 같은데…크큭.”

“뭐…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유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터벅터벅 동훈과 소현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너… 가족 여행은?”

“글쎄….”

동훈이 장난스럽게 눈알을 또르륵 굴리며 허공을 응시하며 딴청을 피웠다.

별장으로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테이블 위에 과일로 예쁘게 장식된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가 눈에 먼저 띄었다. 평소에 유하랑 친한 동기 몇 명이 고깔모자를 쓰고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유하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떡볶이, 김밥…등등 먹음직스런 음식과 음료수가 잘 차려져 있었다. 거실에는 알록달록 풍선으로 귀엽게 장식이 되어있었고 한쪽 벽면에 ‘해피버스데이 유하’라고 글자가 붙어 있었다.

한결이 유하의 손목을 꽉 잡았다. 고개를 살짝 숙여서 유하의 귀에 대고 신나서 말했다.

“생일 축하해요. 저보다 조금 더 늙었네요. 아직 동안이라 봐줄 만은 해요. 크큭.”

유하는 한결의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뺨이 떨렸다.

소현이 환하게 웃으며 케이크 위의 초에 불을 붙였다.

“유하 선배. 생일 축하해요. 서프라이즈! 크큭.”

초에 노랗고 빨간 불꽃이 예쁘게 타올랐다. 다 함께 유하를 위해 생일 축하송을 불렀다.

소현이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유하에게 고깔모자를 씌워주었다. 한결이 유하의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바보처럼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소원 빌고 불 꺼요.”

“어.”

유하는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노래가 끝나자 유하가 입으로 불어서 촛불을 껐다.

“팡!”

동훈과 소현이 폭죽을 터트렸다. 다들 유하의 생일을 축하하며 박수를 쳤다.

한결은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가 성공해서 기분이 들뜨고 신났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샴페인을 터트렸다. 하얀 거품이 공중에 흩날렸다. 남은 샴페인을 다 같이 나누어 마셨다.

유하는 달콤한 샴페인을 마시고 감동해서 눈시울이 또 붉어졌다.

“선배, 감동했어요. 사나이 울어요? 크큭.”

유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시치미를 뚝 뗐다. 그동안 다들 왕따시키는 거라고 여기며 속상했다. 유하는 한결, 동훈, 소현 세 사람이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유하를 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동은 감동인데….

그동안 마음 고생한 걸 생각하면 갑자기 울컥해서 한결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동훈은 절대 이런 이벤트를 기획할 사람이 아니었다. 독한 한결이라면…. 가능했다. 한집에 살아도 악랄하게도 절대 단서 하나 안 남긴 철두철미한 놈이었다. 무슨 007 암살 작전도 아니고.

그런데…. 강한결이 싫지 않았다. 병 주고 약 주고. 얄밉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한 대 때려 주고 싶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기도 했다.

하, 나 결정 장애 인가? 자아가 마구 분열되고 있어. 어휴.

유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울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빡주었다. 흰자에 핏발이 섰다.

“아니. 안 울어.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 같아.”

동훈이 그런 유하가 귀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유하가 눈치가 없어 잘 속아서 너무 재미있었어. 크큭. 한편으로 나 찾아서 대학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했지만…. 크큭.”

동훈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케이크의 크림을 손으로 살짝 떠서 맛을 보았다.

“우와. 이거 완전 고급 케익이네. 진짜 맛있다. 한결아, 너 진짜 돈 좀 썼구나.”

“헤헤…. 뭐 이 정도는 기본이죠.”

한결이 유하의 손목을 꽉 잡으며 윙크했다.

“유하 선배는 눈치는 없는데 어쩜 그렇게 촉이 좋아요? 동훈 선배랑 몰래 만나서 생일 파티 준비할 때마다 일부러 유하 선배가 평소에 잘 안 다니는 곳만 골라서 만났는데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놀랐어요. 그때마다 눈치 챌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요. 그래도 이렇게 성공해서 다행이에요. 크큭.”

동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결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박수를 치며 웃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동훈이 먼저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유하가 평소에 갖고 싶어하던 피규어였다. 소현의 선물은 고급 향수였다. 그 외에 양말, 화장품, 핸드폰 케이스 등 다양한 선물이 있었다.

한결은 쑥쓰러워하며 유하 앞에 작은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뭐야? 한결이 선물이라면 명품 아니야?”

유하가 한껏 들뜬 표정으로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포장을 보았다. 한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일단 뜯어 봐요.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유하가 선물 포장을 풀어 보니 평범해 보이는 전자시계가 나왔다.

“어. 시계 멋지네. 고마워. 잘 쓸게.”

유하는 기대했던 명품이 아니라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한결은 유하의 반응이 별로인 것 같아 내심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이 시계 명품도 아니고 비싼 건 아니지만 늘 차고 있어 줘요. 제 마음이에요.”

“어? 그…그러지 뭐.”

유하는 한결의 선물에 조금 실망했다. 평소 몸에 뭘 걸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악세사리를 잘 안 했다. 시계는 핸드폰으로 대신했었다. 눈을 씻고 봐도 절대로 명품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전자시계였다. 유하는 내심 명품 지갑이나 옷을 기대했다.

어휴, 내 주제에 뭘 바라고 지랄이야. 미쳤나 봐.

혹시나 싶어서 유하는 눈에 불을 키고 전자시계를 이리저리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어딘가 롤렉스라고 쓰여 있을지도 몰랐다. 메이커명도 알 수 없었고 원산지도 없었다. 설마 중국산 짜가인 건가…. 유하는 한결을 한번 쏘아 보았다. 저는 저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명품으로 휘감고 있으면서. 유하는 자신의 속물 같은 면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선배, 어째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네요.”

한결이 유하에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아니. 내가 무슨 그런 걸 따질 처지가 되냐? 마…마음에 들 것 같아. 좋아질 것 같아. 언젠가는…. 근데 만든 나라가 없어. 상표도 없고.”

“네?”

유하의 질문에 한결이 당황하며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동공이 덜덜 떨렸다.

“유하야 너답지 않게 뭘 그렇게 따져? 한결이가 준 시계 멋지기만 한데 뭘. 게다가 오늘 이 별장 한결이네 소유고 음식이며 장식 모두 한결이가 비용을 다 됐어. 우리는 장식하고 차리기만 했어.”

동훈이 유하에게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결은 동훈의 말에 동의하며 의기양양하게 허리를 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는 얼굴이 빨개져서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그…그랬어? 한결아, 고…고맙다.”

“네.”

한결은 유하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 어색해서 시선을 피했다. 목이 타서 음료수를 한 잔 마셨다. 유하는 한결이 자신을 위해서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같이 산다는 이유로 이렇게 생일에 신경써줘서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유하는 한결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는데 과하게 받기만 해서 늘 미안했다.

유하는 한결과 나란히 앉아서 케이크를 먹었다. 한결이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유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갑자기 손을 뻗었다.

“뭐? 왜?”

“입술에 크림 묻었어요.”

한결이 유하의 입술에 묻은 크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그윽하게 유하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자신의 입에 넣고 ‘쪽’ 빨았다.

“어? 뭐 하는 거야. 이상해….”

벼…변태 같아. 으윽.

“아까워서요. 이 케이크가 얼마나 비싼 건데…. 크큭.”

유하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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