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아요’

 

해변가의 가장 해가 느리게 져가는 곳에서, 부두변, 해군 주변의 마을, 집집마다, 전등이 켜지고, 저녁 짓는 내가 하늘 높이 모락 솟아오르는 곳을 지나, 어부들이 배의 끈을 매어놓는 부둣가, 그곳에 해변 가 중에서도 백모래 가득한 곳, 해군지부가 위치한 곳에서 가장 명소인 곳에서 바닷 냄새와 검푸르게 밀려들어 오는 바닷물, 이리저리 쓸려왔다가, 부딪혀 쓸려간다. 낮달이었던 달은 높이 뜨고, 하늘은 명화다, 말 그대로 예술가가 집착하던 유화의 색깔, 불에 타는 듯도 하다, 사랑하는 이의 심장의 색깔을 영혼을 갈라 뒤집어보면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

 

불타는 핑크꽃빛 색, 순도 높은 황금, 동쪽은 어둠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이렇게 세계의 시간이 바뀌는 순간 속에서, 용광로 같은 태양이 지는 석양 속으로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의 뒷모습은, 젊음으로 다져진 것 같았으나, 어깨는 현실의 그 어둑하고 습기 어린 내에 젖어 비 젖은 새처럼 시들어가고 있었다. 헤르메포는 한참을 감상에 젖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가가 어깨를 짚었다.

 

“코비.”

 

뒤를 돌아보는 청년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의 무게와 가면처럼 덧씌워진 밝음을 모를 리 없는 헤르메포다.

 

둘은 부둣가에서 방파제 위에 위험하게도 올라가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웃 해군 병사네 막내딸이 태어난 이야기, 새로 열은 음식점의 맛이 폭탄이라는 이야기, 사실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고 있다는 이야기, 코비는 네, 그렇군요. 네, 인자하다시피 한 그의 평소 성품대로 헤르메포의 말을 받아준다. 끝끝내 표정에 실금하나 가지 않는 모습에 헤르메포는 절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꺼내보고야 말았다.

 

“안 가 봐도 되냐.”

“.......”

 

사랑스러운 참새 같은 사람, 코비의 뇌리를 어느 봄날의 벚꽃 밑에서 꺄르륵히 웃던 사랑스러운 여자의 얼굴이 지나가고, 코비는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헤르메포는 품속에서 위스키 한 병을 꺼내들더니, 제가 먼저 몇 모금을 마시고 코비에게 내밀었다. 아니 이 사람이, 방파제에 올라가는 것도 위험한데 술까지 마신다니 가프가 알면 그 단단한 주먹으로 혹 하나씩 달고 다시 훈련을 시작하겠다는 엄포를 놓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날이 날인지라, 코비는 풀린 모습으로 그 병을 받아들여 헤르메포보다도 더하게 벌컥벌컥 들이켰다. 위스키의 도수 높은 알코올이 식도를 적셨다.

 

왜 코비는 이렇게 해군으로서는 안 될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일은 대략 일주일 전으로 돌아간다. 해군 내에 가장 파다하게 퍼진 소문이 하나 있었다. 미캉이 왕가 가문에게서 중매가 들어왔다는 소문이었다.

 

코비와 미캉에게는 넘으면 안 될 선이 있었다. 청춘남녀라면 넘어서면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차라리 남남이 될 게 나을 선, 그것을 말하자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연정 정도가 될까, 소문을 듣고, 코비는 그저 납득했다. 그녀는 사랑스러우니까, 새로 태어난 봄날의 이슬보다도 더 청량하고 봄처럼 아름다운 여인이니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 뒤에 미캉이 뒤돌아보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 버린 뒤에 화장실에서 격통 어린 심장을 움켜쥐어야만 했다.

 

말해요. 말해요. 주변 이들이 걱정 속에 건넨 말이었다. 과연 그래도 될까, 얘기가 제멋대로 권력을 이용해서 선 자리까지 섭외한 뒤에야 코비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그녀가 멋대로 거부할 만큼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게 오늘이었다. 선 자리가, 그녀가 자신을 잡고 말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그 끝에 서서, 내게 말한 것은,

 

‘사랑한다고 말해.’

 

과연 결단 있고 용기 있는 나의 미캉, 코비는 어찌했는가? 두려움과 나머지 일은 어찌 되든 좋다는 듯이 구는 그녀에게 싸늘하게도 다정하게 웃으며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울어버리는 미캉이 이대로 가도 좋냐는 말에 걸음 한번 멈춘 게 다다, 내가 가도 좋아? 떠나가도 좋냐고. 사랑해, 널 사랑하고 있어. 여자의 용기에 비겁한 일이라는 것을 암에도, 남자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사랑했지요. 그러니까 이러고 있는 거랍니다. 헤르메포가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이내 술을 더 마셨다.

 

그때 코비의 말이 들려왔다.

 

“여기에 거짓말쟁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저를 제외하고는.”

 

코비는 자신의 마음을 무던하게 가면 속에 솜씨 좋게 숨겨버리고선 헤르메포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 속에 어떤 아픔이 있는지는 그의 깊게 잠겨버린 심연의 눈동자 속에 슬픔이 출렁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 전하지 못한 아픔은 그런 것이다. 더욱더 그녀의 미래를 위해 떠나보내야 함은 그렇지 않을까, 가슴이 미어짐에도 코비는 웃고 있었다. 그를 아는 자라면 어느 이는 둘 사이가 여간 수상쩍지 않은데 별것 아니라며 넘기는 이도 있고 헤르메포처럼 남자의 감정을 알고 등을 쳐주는 이도 있다.

 

“미캉을 사랑하지?”

“.......”

 

헤프메포의 물음에 코비가 그의 얼굴을 보다가 이내 미어지는 마음을 토하기라도 하는 듯 크고 깊게 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술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는 것에 헤르메포가 그 병을 뺏들었다.

 

“술 취해서 바다에 빠져 죽을 일 있냐?”

 

아니, 댁이 권했잖아?! 그런 얼굴로 보는 코비에게 헤르메포가 술병을 들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나는 고백하는 여자만큼 용기도 없는 놈을 친구삼지 않았어.”

 

헤르메포가 그러고 일어섰다. 그는 따끔하게 충고했다.

 

“과거의 사실들은 어떨 때는 한심하고 멍청하기도 해. 그걸 바로 잡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지금의 너는 멍청하기 그지없어. 남자라면 울 줄도 알아야지, 사랑 때문에 눈물조차 울줄 모르는게 남자냐, 따라가서 거대한 벽과 마주치면 그것을 깨부수든지 넘어서든지 하는게 남자지. 헤르메포는 그 옛날과는 다르게, 듬직한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다.

 

“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 온 거니까.”

 

그 말에 코비의 마음이 꿰뚫렸다.

 

그는 일어섰다. 방파제에서 뛰어 내려온 코비가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래야지 친구, 그런 멋진 여자를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고, 헤르메포가 씩 웃더니 부둣가 주변에서 남은 술을 아무렇게 바닷속으로 붓더니, 술병을 집어 던졌다. 한순간에 밤바다가 그 술병을 잡아먹었다.

 

 

 

 

 

 

코비가 정신없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본부의 응접실로 그 행렬이 향하는 것을 보고 바닷가로 나온 것이었다. 절대적으로 보내줘야 행복할 여자를 결국은 놓칠 수가 없는 게 이 시절의 마음이었다고 코비는 훗날에 생각했다.

 

미캉, 미캉, 미캉, 달려가던 그가, 해병들이 코비가 대답조차 않고 전속력으로 맹렬하게 어디로 뛰어감을 알고 그 뒷모습에 대고 외쳤다.

 

“멋지다!! 파이팅!!”

“빨리 가요!”

 

이층, 삼층, 사층, 복도를 달려간다, 뛰면 안 된다는 소리조차 미안하다는 말을 외치고 달렸다.

 

그리고 벌컥, 기름칠 잘된 경첩이 비명을 지를 만큼 격하게 열고서 그는 안에 위치한 침울한 모습의 미캉에게 외쳤다.

 

“미캉 씨!”

 

흠칫,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미캉에게, 코비는 전하고 싶었던 한마디를 전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자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법이에요. 미캉 씨.”

 

잠깐, 엄청난 속도로 뛰어온 코비가 숨까지 차서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것에 괴로워하는 것에 미캉이 일어나서, 다가오면서 그를 일으키면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랑해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진실을 똑바로 전했다. 코비는 미캉이 다른 이와 함께 웃고 있는 미래 따윈 그려보는 것조차 끔찍했다. 사랑해요. 거친 숨소리 섞인 사랑 고백과 동시에 뒤편에 있던 그 왕족 가문의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데 미캉이 눈물을 떨구었다. 그것은 코비도 마찬가지였다. 맞아요 헤르메포, 나는 울었어야 했어요. 진심전력으로 그녀에게 부딪혀볼 요량 없이 그녀의 진심을 외면하고 도망친거예요.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함께 울고, 함께 부수겠어요.“

 

그가 그녀를 끌어안자, 미캉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날, 사랑하니?

 

”네.“

 

그러면 가지 말라고 해! 미캉이 짤막하고도 날카롭게 소리 지른다. 그 말에 코비가 당당하게 눈물 콧물투성이인 얼굴로 소리 질렀다.

 

”사랑합니다!! 가지 마십시오!“

”나도 사랑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연인은 눈물 콧물을 함께 쏟아내면서 그 자리서 껴안고 펑펑 울었다. 뒤에서 조연처럼 배경이 되어버린 머나먼 왕국의 어떤 왕자라는 인간은 툴툴거리면서 손가락질하지만은 아랑곳하지 않은 미캉은 말했다.

 

”떠나지 않을게.“

”절대 그렇게 되게 놔주지 않을 겁니다.“

 

친구의 일갈에 겨우 제대로 전해야 할 말을 했고, 인생에 있어서 절대 후회할 일을 막았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가장 아프고 가장 위한 말이었고 절대적으로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앞이 어찌 되든 간에 무지렁이의 밑바닥이라도 함께 갈 것이다. 절대가 아님에도 어리석게 눈이 먼 것이라 해도 다 좋을 사랑, 그렇게 코비가 그녀의 가냘픈 어깨에 기대고 펑펑 울면서 말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미캉은 그저 코비의 품속에서 웃었다. 그래 이래야 했다. 그녀는 햇살처럼 웃는 게 가장 아름답기 때문에, 그녀는 새장 속의 새가 아니라,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종달새와 같이 자유롭고 아름다운 게 바로 미캉이니까.

 

원피스의 코비연인드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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