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아름다움을 알았다.




미미











개 이름도 그렇게 안 짓는다. 미미. 어감이 단순하고 발음이 쉬었다. 무게감이 좀 떨어져 신뢰감을 쌓기 어려웠다. 미미 (금융) 캐피탈. 돈놀이하는 곳이니 신뢰가 생명이었다. 대신에 쉬운 접근성을 내세운다. 부담감이 없잖아. 가볍잖아. 한 번 들어가 볼까 싶잖아. 


미미 캐피탈 이재현 사장은 이름 대신 미미라 불렸다. 중앙동 시장 바닥 절반 이상이 미미에게 돈을 빌렸다. 그들은 출처 모를 돈으로 생사를 굴렸다. 주상 과일 가게 배 사장은 미미 캐피탈에서 빌려온 돈에선 쇠 냄새가 난다는 소릴 했다. 사람 죽여 번 돈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곳은 고집스럽게 현금만을 취급했다. 다발 개수가 몇 개든 검정 봉지에 그것들을 넣어 거래했다. 사과 박스도 아니고. 블랙 케리어도 아니고. 웬 검은 봉지인가 싶은데. 그래야 돈 냄새가 잘 난다고 했다. 미미의 장사 철학 같은 거였다.


캐피탈을 나가는 사람 손엔 묵직한 검은 봉다리가 있다. 높으신 분들도 예외 없다. 그래서 사무실엔 검정 봉다리가 크기별로 매달려 있었다. 시장 상인들이 많이 쓰는 그 봉다리와 흡사했다.


빌려준 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려 받는다. 미미는 결코 실패 않는다. 거닐고 있는 아랫 직원들 역시나. 











미미 (금융) 캐피탈











미미의 명패가 청결하다. 매일 아침 그의 직원들이 닦아 놓으니까. 사장이라는 글씨가 번뜩인다. 미미는 얼마 전 수감 날짜를 받았다. 죽는 날을 받아놓고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원래 꼬리가 길면 밟히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 전래동화에 으레 나오듯. 그러나 미미는 수감되지 않는다. 수감되는 이는.


“사장님 애기 데려왔습니다.”


수감되는 이는 캐피탈의 가장 말단 직원이다. 들어온 지 한 달 됐다고 했다. 고졸에 고아. 사촌 친척도 당연히 없음. 미미는 이력서를 한참 들여다본다. 나이는 스물둘. 스물둘이나 먹었는데 애기는 무슨. 이력서를 내린다.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애 하나가 저를 빤히 쳐다본다. 얼굴이 하도 작아 걔가 걸친 뿔테안경이 버거워 보였다.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는 기세를 본다. 


애기 맞네. 미미는 그 어린 낯을 한참 본다. 캐피탈에서 덩치가 가장 큰 중완이 옆에 있으니 더 앳돼 보였다. 


“애기야 먹고 싶은 거 있니?”


그는 천박한 업종과는 다르게 고운 어휘력을 가졌다. 그건 정말로 사장이라는 직급에 걸맞은 태도였다.


“칠리 새우요.”


미미는 웃는다. 중완아. 하고 부른다. 미성의 음색. 애기. 눈앞의 그 애에게 딱 어울리는 호칭. 고작 한 살 많으면서 하는 건방진 생각. 중국집에 전화 좀 해봐. 배달 어플도 안 굴러가는 시장 바닥. 그리고 이 모든 것.










가장 더럽게 일하는 곳에서 수감되는 날 정도를 미리 아는 건 일도 아니었다. 특히 캐피탈처럼 불법적인 일을 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최근에 한 거래가 꼬리를 잡혔고 조만간 경찰조사가 시작될 것이다. 미미는 계획을 세운다. 밑바닥에서 일하면서 비상하게 사고하는 건 그의 재능 중 하나였다.


애기는 나무젓가락에 짜장면을 돌돌 만다. 죄다 흘러 주르륵 떨어진다. 미미는 짬뽕 국물을 후루룩 마신다. 칠리 새우 하나를 집어 걔의 짜장면 위에 올려준다. 애기는 그걸 집어 입에 넣는다. 입이 작아 한 입에 넣지도 못했다. 미미는 칠리 새우 하나를 더 집어다가 놔준다. 


중완이가 왜 애기라고 불렀는지 알겠네. 미미는 중얼댄다. 애기는 입안 가득 찬 음식물을 씹으며 중얼대는 소릴 귀담아듣는다. 다시 한번 짜장면 면발을 감아올린다. 정확히 한 달 뒤 저는 수감될 것이다. 여기 있는 이 사장 대신. 미미라는 이름을 대신 업고. 죄목은 사기. 불법. 폭력. 공갈. 협박. 불법적으로 돈 굴리는 업소 우두머리이니 붙이면 모든 죄가 된다. 그러나 본래 우두머리는 그리 쉽게 잡혀 들어가지 않는다. 가장 약한 자가 그 자리를 대신할 뿐. 그게 약육강식의 세계 아니겠는가.






지창민은 한 달 전 미미 캐피탈에 입사했다. 하는 일은 돈 달라고 깽판 치기. 가진 거 쥐뿔 없는 지창민은 가장 넘기 쉬운 문턱을 밟고 가장 인간 답지 못한 일을 한다. 월급은 혼자 먹고 살 정도. 아직 한 번밖에 안 받아 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뒤집고 엎는 일이 적성 아닌 건 알겠더라. 빌린 돈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판 뒤에 서서 뒤집어진 물건들 주워 원상복구 시켜놨다. 그걸 들킨 날엔 맞았고 기분이 뭐 같아서… 시키는 거 다 했다. 발로 차라면 발로 찼고. 엎으라면 엎었고. 소리 지르는 건 발성조차 안돼서 걍 적당히 겁주는 걸로 타협 봤다. 원래 먹고 사는 일이 적성에 맞기엔 쉽지 않지 않은가.


그 짓이 적당히 몸에 익을 즈음 지창민은 검은 봉다리를 받았다. 백 실장은 그걸 내밀며 사장 대신에 빵에 갔다 오라고 했다. 지창민은 의아했다. 제가 왜요? 물었고. 니가 제일 가진 게 없잖니. 답을 들었고. 빵에 갈지 안 갈지 어떻게 아나요? 물었고. 지난번 거래한 정치판에 문제가 생겼다. 답했다. 자세히 알 거 없다는 말은 덤. 딱 이 년 만 갔다 와. 돌아오면 더 챙겨 줄게. 달마다 월급도 들어갈 거다. 


그러니까 제가 왜요?


지창민이 사는 지하방엔 바퀴벌레가 나온다. 온수는 끊긴지 오래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다. 그러니까 내가 왜.











애기











미미는 지창민에게 잘 해준다. 저 대신 깜빵 갈 애니까. 얼마나 고마울까. 그는 매일 좋은 점심을 사줬다. 늘 먹고 싶은 걸 물었다. 굳이 굳이 사장방을 나와 직원들 쓰는 사무실에서. 담배 냄새 잔뜩 밴 소파와 재떨이만 무수히 많은 곳에 자리를 잡고 서. 미미는 적당히 쓸어넘긴 머리와 회색 정장 차림으로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난잡한 플라워 패턴과 호피 무늬 셔츠를 입은 직원들은 허리를 숙여 우렁차게 인사한다. 어어 앉어 걍. 미미의 지시를 받고 나서야 소파에 엉덩이를 붙인다. 지창민은 평범하게 그지없는 체크 셔츠 차림으로 엉거주춤 앉는다. 왜냐하면 미미가 가뜩이나 좁은 제 옆자리에 엉덩일 붙였기 때문.


“애기 뭐 먹고 싶냐.”


토 쏠리는 호칭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창민에게만. 캐피탈 사람들을 죄다 저를 애기라고 불렀다. 이유는 애기라서. 그들 중 가장 어려 보였고. 실제로도 어렸고. 사장도 저만큼 어렸으나 그 부분은 당연히 쉬쉬했고. 그래서 지창민은 캐피탈 안에선 이름 석 자를 잃고 애기라 불렸다. 미미가 미미라고 불리듯. 직원들 역시도. 앞에선 꼬박이 사장님이라고 불렀지만 그가 없는 자리에선 쉽게 미미라는 호칭을 뱉었다. 우스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배 안 고파요.”


그러니까 지창민은 면역이 없다. 친절한 관심에. 걔가 쌓은 내공은 불행뿐이니까. 깜빵 대신 가라는 말에 제가 왜요. 반항 아닌 순전한 궁금함만을 담은 물음이나 뱉을 만큼. 다가올 불행에. 겁이 없고. 불행이. 당연하고. 얄팍한 마음이 전부인 친절인 걸 알면서도. 


“그래도 밥을 잘 먹어야지.”


내가 당신 대신 하지도 않은 죄목을 업고 빵에 가야 하니까? 


“소고기 사줄까?”


친절함에 면역이 없는 이가 할 수 있는 반항은. 부당한 불행을 떠안은 이가 할 수 있는 발악은.


“네.”


무엇이 있을까.











시장 안 큰 골목에 있는 대공 한우집 사장은 미미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미미 간만이네. 미미는 눈을 접고 웃는다. 아마 미미의 고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빚이 아직도 남아있다. 사장은 가장 큰 테이블을 안내하고 질 좋은 고기를 내놓는다. 미미는 자켓을 벗고 셔츠 소매를 걷었다. 지창민은 그저 달아오르는 불판과 눈싸움을 할 뿐이었다.


“나 대신 빵도 가주는데.”


불판 위에 선홍빛 고기가 올라간다. 치익 소리와 함께 고기는 움찔거리며 수축한다. 지창민은 문득 역겹다는 생각을 한다.


“맛있게 구워줘야지.”


미미의 음성엔 선함이 없다. 지창민은 그제야 고개를 올려 그를 쳐다본다. 반쯤 드러난 이마와 말도 안 되게 에쁜 눈을 본다. 미미. 그 같잖고 우스운 예쁜 이름이 지나치게 잘 어울리는.


역시나 쉽게 굴고 싶지 않아지는.






지창민은 미미가 따라주는 맥주를 받는다. 지금은 오후 한 시였다. 앞접시에 쌓인 고기는 다 먹지도 못했다. 술을 먹은 미미는 약간 벌게진 얼굴로 불 온도를 내린다. 백 실장이 얼마 줬어? 웃는 낯으로 묻는다. 지창민은 그날 집에 가서 검은 봉다리 안에 든 돈다발을 하나씩 세어봤다. 그 자리에서 얼마냐고 물으면 될걸. 사백팔십까지 세다가 말았다. 셌던걸 도로 봉지에 넣어놓고 냉장고에 처박아 놨다.


“몰라요.”


“왜 몰라. 돈 안 받았어?”


“받았어요.”


미미는 미간을 찌푸린다. 맥주잔을 입에 댄다. 몇 모금 마시고 내려놓는다.


“근데 왜 몰라.”


“아마 오백 좀 넘는 거 같아요.”


“세봤어?”


“네.”


미미는 큰소리로 웃는다. 그게 다래? 갖다 오면 또 주신대요. 월급도 따로 챙겨주고? 네. 얼마 더 준대? 모르죠. 


“얼마를 더 줄까?”


웃음기가 든 목소리가 퍽 재수 없게 들린다. 


“말해봐. 얼마를 더 주고 뭘 더 해줄까?”


“얼마를 주든 그건 사장님이 알아서 하시고.”


친절함에 면역이 없는 이가 할 수 있는 반항은. 부당한 불행을 떠안은 이가 할 수 있는 발악은,


“저랑 자주세요. 깜빵 가기 전까지.”


쉽게 굴지 않는 거다. 뭐가 됐든.


미미는 웃던 얼굴을 굳힌다. 











미미











미미의 명패는 여전히 반짝인다. 이재현 사장. 다섯 글자는 음각으로 새겨져있다. 시장 바닥에서 장사하던 거 잘 되자 판을 넓혔다. 최근엔 정치판까지. 그러나 큰 바닥에서 놀 깜냥이 안되는 건지 금방 꼬리가 밟혔다. 미미 캐피탈과 돈거래를 한 정치가는 조만간 오물을 뒤집어쓰고 몰락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도 함께 털리겠지. 원래 더러운 놀이를 하다보면 위기를 얻는 법이다.


지창민은 시한부 선고받듯 빵에 갈 날짜를 받는다. 미미 대신에. 빵에서 돌아왔을 때 돈을 더 챙겨준다 건 명백한 구라고. 그냥 순진한 어린애 몇백 주고 팔아넘기는게 맞다. 미미는 이런 일이 익숙했다. 그런 것만 학습했으니까.


걔의 얼굴과 이름을 안 건 고작 일주일 됐고. 삼 주 뒤면 그 애에게 미미란 이름주고 저는 방콕이나 가겠지. 거기에 좀 짱박혀 있다 잠잠해지면 다시 한국으로 와 가장 음습한 곳에 사무실을 차리겠지. 또 돈놀이를 하겠지.  예정된 일들은 사람을 늘 무감하게 만든다.











미미는 수거해온 돈을 검수한다. 장부를 채운다. 다들 수고했다는 말을 끝내고 지창민을 부른다. 애기야 와봐. 깔별로 사두고 돌려입나 생각이 드는 체크 셔츠. 역시나 그걸 입고 제 앞에 선다. 미미는 소파에서 일어난다. 한 손에 장부를 챙긴다. 미미 캐피탈은 오직 현금 거래만 하니 다들 일사불란하게 돈 정리를 하느냐 정신없다. 


모두가 나간 사무실에 둘만 남는다. 미미는 가장 가운데에 있는 소파에 앉아있고 지창민은 바로 그 앞에 서 있다. 오금에 테이블이 닿는다. 미미는 자켓을 벗어 안주머니를 뒤적인다.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인다. 몸을 기울여 담뱃갑을 테이블로 던진다. 재떨이를 가까이 당겨온다. 미미의 머리칼이 지창민의 허벅지 옆을 간지럽혔다.


“오늘 잘까?”


꽤나 놀리는 것처럼 물었다. 지창민은 고개를 끄덕인다. 미미는 어이없단 듯이 웃었다. 원래 게이야? 담배를  빠는 볼이 홀쭉해진다. 아니요. 지창민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미미는 고개를 끄덕인다. 


“뭐 요구사항은 없고?”


미미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그가 입은 베스트가 벌어진다. 셔츠 윗단까지 채워진 단추에 정갈한 넥타이. 정장 바지 위로는 허벅지 근육 굴곡이 보였다. 그걸 넋놓고 보자니 가느다란 손가락에 걸린 담뱃불이 빠르게 타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지창민은 머리를 굴린다. 작은 대가리를 쉴 새 없이. 유일하게 어렵게 굴고 싶은 이 사람 앞에서. 


“음담패설 해주세요.”


어쩌면 나는 불행에도 면역이 없는 지도 모른다. 깜빵 가는 게 진짜 싫었을 지도 모르고.


미미는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뜬다. 그리곤 웃어버린다. 호탕한 웃음이 빈 사무실을 메운다. 웃으면서 숙여진 상체 그대로 팔을 뻗어 재떨이에 담배를 비빈다. 미미의 얼굴과 지창민의 허벅지가 가까워진다. 그는 반절 피운 담배를 완전히 꺼버리고 일어난다. 마른 몸에 비해 덩치가 컸다. 앉아있던 터라 셔츠와 베스트가 구겨져 올라갔다. 미미는 성의 없는 손길로 넥타이를 푼다. 내려다보는 눈이 깔보듯 재수 없다. 


“바지 벗고 엎드려.”


얄팍한 친절은 쉽게 거두어진다. 미미가 응시한 지창민의 눈 안엔 어지러움이 있다. 애새끼가 펼치는 개수작인 건 이미 안다. 알면서도 넘어가 준다. 생판 모르는 남 겁주고 협박하는 게 직업인데. 넌 모르겠지만 난 이거 꽤 적성이라. 주춤하는 걔의 오금에 테이블이 걸린다. 지창민의 몸이 테이블 위로 미끄러지면서 그 위에 있던 재떨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다. 귀가 아픈 소음이었다. 미미는 인상을 쓰며 벨트를 푼다. 


“너 진짜 겁대가리가 없구나.”


면역성이 옅은 까만 눈알을 보며.






지창민은 소파 위로 엉금엉금 올라간다. 엎드린 걔 위를 올라타며 귓가에 입술을 댄다. 더러운 말들이 쏟아진다. 실시간을 빨개지는 귀 끝을 관람했다. 옷 위로 험핑을 하다 걔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촌스러운 체크 셔츠를 말아 올리고 마른 등에 키스했다. 끝까지 신음 참는 꼬라지에. 꼴렸다.


딱 봐도 처음인 애. 콘돔을 두 개나 버려야 했고. 악을 쓰고 온몸에 힘주는 바람에 힘 좀 빼라. 짜증 섞인 말투 기어코 나오게 했고. 와중에 얼굴을 가죽 소파 위로 처박는 바람에 뿔테안경이 걔 콧대 짓누르고 있었고 그래서 조만한 얼굴 더듬어 벗겨줘야 했고. 간신히 끝낸 정사에 잔뜩 늘어진 애 들쳐 업고 퇴근해야 했다. 눈 하나 맞추지 않고 끝낸 정사에. 더러운 말들에 정말 흥분은 했나 의구심이 들어서. 집까지 태워준다는 거 버스 타고 간다고 지랄해대서 결국엔 헛웃음 나왔다. 섹스한 거 티 내? 그러고 걸어간다고? 절뚝이는 꼬라지 보다 못해 필터 없이 뱉으니 그제서야 개눈깔 하고 쳐다보길래 조수석 문을 열었다.


새 거 같은  검은 세단이 좁고 구불한 시장 골목을 달린다. 지창민은 뒤가 얼얼하다. 귀에는 끈적하고 더러운 말들이 고여 흐른다. 더러운 새끼. 이로 손가락을 씹으며 속으론 욕을 짓씹었다.


차는 달동네 앞에 멈춘다.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지창민은 안녕히 가시란 말도 없이 차에서 내린다. 미미는 한참을 올라가는 걔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이런 걸 아주 잘 알았다.


그러니까 궁핍함을 잘 알았다. 미미 또한 이런 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나쁘게 돈을 벌수록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그건 궁핍과 가난이 가르친 첫 번째 사상이었다. 지창민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고 나서야 기어에 손을 올린다. 그러니까 삼 주. 딱 삼 주. 그애와 정 붙이지 않아야 하는 시간을.











미미도 우리 사정 잘 알잖아, 글쎄 딱 한 번만…


미미의 곧고 긴 다리가 쌓여있는 바구니를 찬다. 어지러운 소리와 함께 해산물들이 바닥으로 쏟아진다. 아이고 미미, 이 사장,… 노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미미의 구둣발을 잡는다. 중완이 노인의 팔을 결박해 제지한다. 지창민은 멀찍이 서서 바닥에 꿈틀거리는 오징어를 쳐다본다. 질긴 생명력에 대해 생각 중이었다.


“그럼 놀음을 끊으셨어야지.”


미미는 무릎을 굽힌다. 그의 정장 바지는 우둘한 시장 바닥에 의해 더럽혀진다. 나는 하루 이십사 시간이 아까워. 미미는 미성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가 웃을 때마다 눈 아래에 칼집 같은 보조개가 패였다. 제법 애교스럽게. 웃는 낯으로 꺼낸 건 신체 포기각서. 지창민은 엎어진 바구니를 몰래 정리했다.


“내가 시간이 많이 없어서요. 싸인 말고 지장으로 갑시다. 그게 제일 빠르니까.”


중완은 과도 정도 크기의 칼을 꺼냈다.






미미 캐피탈은 요즘 제일 바쁘다. 그야 캐피탈 사장인 미미의 수감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전에 받을 돈 싹 쓸어 모아야했다. 미미는 그걸 들고 출국한다. 방콕으로. 도주라는 표현이 적합했다. 지창민은 미미라는 이름 뒤집어쓰고 빵에 들어간다. 돈 챙겨준다는 건 당연히 구라고 그 자리에서 손절 당할 거다. 미미가 사장 직급 단 후엔 제 발로 현장 나가는 일이 없었지만, 요즘 사정이 그렇다 보니.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지창민은 자주 캐피탈 사무실에 남았다. 돈 냄새와 담배 냄새가 잔뜩 밴 그곳에. 그 사무실 소파 위에. 미미랑 자기로 했으니까. 그건 일종의 약속이자 계약이다. 순전히 미미를 엿 먹이게 할. 그러나 미미는 이 상황을 제법 즐긴다. 엿 먹는 건 지창민 몫이 됐다. 미미는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대며 소파 위에 누운 지창민 몸에 올라탄다. 오래된 가죽 소파는 움직일 때마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오늘은 요구사항 없어?”


일수 깡패 주제에 매번 챙겨 입는 쓰리피스 정장. 자켓부터 풀어 벗어던진다. 소매를 걷는 손가락을 가만히 쳐다봤다. 지창민은 뿔테안경을 올리고 눈을 비볐다. 미미는 거추장스럽다는듯 안경을 벗긴다. 테이블 위엔 미미의 정장 자켓과 지창민의 안경 그리고 재떨이 세 개. 그리고 제 볼을 콱 쥐는 손. 담배 냄새 존나 나. 이건 걔의 감상.


애기야 빨리 말해. 알다시피 요즘 미미는 바쁘다. 그는 이십사 시간이 모자라다. 선량한 어린애 깜빵에 처박고 빤스런 하셔야 하는데 어련하시겠어. 


“사랑한다고 해주세요.”


“뭐?”


“사랑한다고 해달라고요.”


미미가 엿이나 먹었으면 좋겠다. 좆같은 감정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고 싶다. 그러니 이건 역시 지창민의 발악.


바지 버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미미는 웃지 않는다. 늘상 호탕하게 웃더니. 오늘도 역시나 입은 체크 셔츠 단추가 풀린다. 미미의 손에 의해. 바지 주머니 뒤적여 콘돔 몇 개를 꺼낸다. 뒤돌아. 명령 같은 말에 순진히 응한다. 대충 내린 바지를 잡아끌고 손가락 처넣는다. 어떠한 전희도 없는 섹스에 흥분한다. 기이한 일이다. 미미의 신음이 귀 언저리를 떠돈다. 지창민은 무릎에 힘을 줘 세우는 것조차 어려워 자세가 무너진다. 숨이 모자라 얼굴에 빨갛게 열이 올랐다. 세 번째 콘돔을 썼을 때 미미는 말했다. 사랑해. 라고.











미미 (금융) 캐피탈











미미 캐피탈은 중앙동 시장 바닥에 위치해 있다. 늘어진 상가 중 하나. 그중 엘리베이터 없는 사 층짜리 건물. 거기서 젤 꼭대기. 철문엔 빨간색 바탕에 허연 글씨로 미미 (금융) 캐피탈 쓰여있고. 문 열면 바로 사무실이 보인다. 갈색 가죽 소파가 마주 보며 놓여있고 가운데는 상석. 그니까 일인용 소파, 사장님 자리가 있고. 중간엔 유리 테이블. 재떨이 세 개. 원래 네 갠데 지난 번 지창민이 하나 깨 먹었고. 창문은 크게 두 개 있고 그 앞엔 산세베리아 화분. 담배 냄새 먹고 안 뒤진 게 용할 뿐이고. 방 하나 있는데 거긴 사장방이라 불렸고 벽면엔 금고가 가득했다. 오직 미미만 쓰는 널따란 책상과 의자. 그리고 명패. 좁은 사무실은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거짓으로 사랑을 고하는 일이 너무 쉬워 우습다. 사랑 없는 섹스는 더 쉽고. 쉽게 저지른 일들이 많아 머리가 아프다. 미미는 자주 지창민을 떠올린다. 손에서는 지폐 냄새가 났다. 아주 고약했다. 방금까지 현금 정리를 했으니 어쩔 수 없지. 사무실 티비는 언제 샀는지도 가늠이 안 될 만큼 낡았다. 거기에선 검은 돈, 사채, 횡령, 정치가들의 얘기를 나열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미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티비를 응시한다. 지창민 또한. 직원들은 담배를 하나씩 꼬나물고 욕지거릴 뱉는다. 곧 옮겨질 사무실 위치에 대해 떠든다. 아직 돈을 갚지 않은 이들의 이름을 줄줄이 나열한다. 매캐한 담배 연기는 열어둔 창문 밖으로 흩어졌다. 미미는 티비를 응시하던 시선을 거둔다. 오늘은 웬일인지 안경을 쓰지 않은 지창민을 본다. 애기야 밥 골라라. 지창민은 대답과 시선 않고 어려운 단어들로 떠들어대는 뉴스의 얘기에 집중한다.


미미는 소파 뒤로 다가가 지창민의 턱을 감싼다. 그대로 젖혀버린다. 젖혀진 고개 위로 보이는 건 미미의 웃는 얼굴. 


“밥 고르라니까.”


남은 시간 이십 일.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미미. 그리고 여전하게. 깜빵 가기 싫은 지창민.











미미와 지창민은 시장 중간에 있는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었다. 분식집 이모는 벌벌 떠는 손으로 떡볶이와 튀김을 담았다. 미미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애써 부리는 넉살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미미. 잘 웃는 미미. 근데 돈 갚으라고 할 땐 다 때려 부수는 미미. 지창민은 빨간 떡볶이를 포크로 푹 찍는다. 포장마차 분식집이니 당연 의자나 테이블은 없다. 미미는 쓰리피스 정장 입고 어묵 국물 퍼마신다.


“일은 적성에 맞아?”


쓸데없는 다정은 성정인가 연기인가 궁금증이 생긴다.


“안 맞아요.”


미미는 웃는다. 호탕하고 교양 없게. 


어젯밤엔 받은 돈을 다 셌다. 오백육십만 원이었다. 그걸 들고 튈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딱히 갈 곳이 없다. 가뜩이나 시궁창인 인생 빨간 줄까지 생기면 진짜 뭐 먹고 사나 싶다. 일이 터지면 사무실을 옮긴다고 했다. 빵에서 최소 이 년, 썩고 나면 돈을 더 챙겨준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지창민은 생각보다 순진하지 않다. 그들이 부르는 애기야. 같잖은 호칭. 스물이 넘었는데 웬 애기 타령. 미미만큼이나 우스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는 사장님 안 믿어요.”


다음 섹스에선 어떤 걸 요구해 볼까. 어떻게 하면 미미를 더 우습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보이는 게 다인데.”


미미는 어깨를 으쓱인다. 


“물론 백 실장이 한 말을 다 뻥이고. 돈 더 준다는 거 구라거든.”


지창민의 뒷덜미에 미미의 손이 올라온다. 고개를 낮춘 미미는 걔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너는 듣는 것에 능한 거 같으니 잘 듣고 암기해 봐. 말을 하는 미미에게선 부정한 냄새가 났다.


애기야. 내 말 잘 들어. 난 니가 마음에 들거든. 나 대신 깜빵 보내기 아까울 만큼. 일 년이든 이 년이든 최선을 다해서 버티고 와. 그때 다시 만나면 내가 너 끝까지 책임질게. 난 거짓말 안 해. 


그래도 못 믿어요. 지창민 역시도 속삭인다. 미미는 고개를 더 낮춘다. 그의 코끝이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믿어. 데리러 갈게.”


그 어떠한 기록도 없는 구두 약속을. 


지창민은.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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