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몰아치는 초겨울에 하네오카의 옥상에 올라가는 사람은 아마도 낭만주의자이거나 바보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그런 사람이 둘.


어느쪽이 낭만주의자이고 바보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녀들은 지금 매우 춥다는 것이다.




"저는 별로 춥지 않으니까요. 먼저 내려가세요."

"나도 딱히 춥지는 않아."




이야기는 십 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ㅡㅡㅡㅡㅡ


"어라, 미타케 씨. 오늘도 여기 있었구나"

"우..우왓! 스토커도 아니고 왜 자꾸 따라다니시는건데요?!"


화들짝 놀라서 되묻는 란에게 유키나는 대답 대신 미간을 찡그려 보이며 언짢음을 표현했다. 딱히 따라다니려 한 것은 아니지만 란을 보러 옥상에 찾아온 것은 맞았으니까 대꾸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


이제는 종종 같이 작사도 하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사이가 되기는 했지만 이처럼 민망한 상황이 닥치면 또다시 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게 마련이었다.


"그... 잠깐 왔어요. 작사가 잘 안돼서. 바람이라도 쐴 겸요"


먼저 정적을 깬 건 후배인 미타케 란. 같잖은 자존심 싸움만 하다가는 이 불편한 분위기가 끝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란은 사회성을 발휘해 한발 양보한 것이다. 절대로 선배의 오만한 시선에 압도됐다거나 한 게 아니다.


"나는...그냥 왔어."

"아. 그러시겠죠."


얼버무리는 유키나를 추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쓸데없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가는 또다시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란은 비꼬는 투로 적당히 툴툴거리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계속 여기 계시면 춥지 않겠어요?"

"아니, 딱히 춥지 않아"


유키나는 저도 모르게 거짓으로 허세를 부리고 말았다. 모든 일에 비교적 초연하고 솔직한 편인 그녀였지만, 후배의 저 건방진 태도에는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이미 내뱉은 말을 번복하는 건 자존심이 용납 못한다. 다행히도 두꺼운 목도리를 두르고 왔으니 아무리 추워도 목이 상하진 않을 터였다. 목만 괜찮다면, 팔다리가 시린것쯤이야 견딜 수 있었다.


"저도 딱히 춥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거짓말. 오랜 옥상 생활로 단련된 란에게도 오늘의 한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이렇게 추울 줄 알았다면 잠깐 바람을 쐬겠다는 무모한 생각은 하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옥상에 올라온 걸 유키나에게 들킨 이상 춥다고 바로 도망쳐버리는 것은 모양이 살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녀의 라이벌은 추워하는 기색도 없이 평소와 같은 (언짢은) 표정인데 옥상 생활 경력으로는 더 선배인 그녀가 먼저 도망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행히 20분 후면 점심시간이 끝나니까, 결착이 나지 않더라도 최소한 얼어 죽지는 않을 터였다.


잠깐만 고통을 참으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어쩌면 상대가 먼저 항복 선언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란은 마음속 깊이 결의를 다졌다.


시선이 찌릿 교차하고, 둘 중 하나가 패하거나 점심시간이 끝나야만 종료되는 승부가 시작됐다.



ㅡㅡㅡㅡㅡ


"떨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미타케 씨도 떠는...것 같은데?"

"저는 누구랑 달리 열이 많아서 끄떡없어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란은 재빨리 말을 끝맺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

"....."


다같이 온천에 놀러갔던 날 밤, 뜨거운 항아리탕에서 선배에게 아깝게 패배했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란은 이를 꽉 깨물었다. 작사하는 척을 하려고 노트를 하릴없이 넘기고 있자니 손이 너무 시려서 죽을 것 같았지만 미타케 란은 오기로, 독기로, 승부욕으로 아픔을 견뎌냈다.


'조금만... 조금만 있으면'






딩동댕동


수업 오 분 전 종이 울렸다. 마치 결혼식장에서 울리는 축복의 종소리처럼 너무나도 반가운 소리였다.


"슬슬 내려가야겠네"

"그렇네요"


이제 따뜻한 교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란의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다. 비록 둘 중 누구도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목도리까지 두른 주제에 오들오들 떨면서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 잔뜩 움츠려 있던 선배보다는, 이 추운 날씨에도 작사 노트를 뒤적거리며 여유를 만끽한 자신의 승리인 것이다. 승리감에 도취한 란은 


"저는 더 있어도 상관없지만, 미나토씨는 수업에 늦으면 유급할지도 모르니까요."


돌이킬 수 없는 도발을 던지고 말았다.


유키나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가 실제로 유급 걱정을 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둘째치더라도 그녀는 그 단어를 저 건방진 후배에게 듣고 싶지는 않았다.


"유급하지 않아. 그러니까 나 또한 여기 더 있어도 상관없어."

"그렇...습니까..."


승부욕에 불타는 선후배의 눈빛이 교차하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람이 쌩 하고 불어와 비장한 분위기를 더했다.


그렇게 또 다시 시작된 2차전은, 란의 비밀 문자를 받고 헐레벌떡 달려온 츠구미가 '억지로' 란을 끌고 내려가서 '어쩔 수 없이' 무승부로 끝나게 되었고, 치사하게 목도리로 무장하고 온 라이벌과 달리 맨 몸으로 추위를 견뎌낸 란이 감기에 걸려버린 것은 어쩌면 시시한 결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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