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이 조용하다. 이치마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늘 장난치는 오소마츠도, 그것에 반항하는 쵸로마츠도, 우렁차게 기합을 지르는 쥬시마츠도, 그것을 좋다고 웃으며 보는 토도마츠도 모두 조용히 누워있는 사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워있던 사람이 움찔거리더니 눈을 슬며시 뜨자, 모두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터트린다. 오늘도, 카라마츠가 무사히 일어났다.




곧, 몸을 일으킨 부스스한 머리의 험악한 인상의 카라마츠는 그런 모두를 보고 인상을 풀고 웃었다. 부드럽게 눈웃음을 그리며 선명한 입꼬리를 올린 그에게선 어떤 소리도 없었다. 그게 얼마나 불쌍해 보이는지 알고는 있어? 망할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조용히 팔을 들어 올려 이불 머리맡의 수첩을 든다. 페이지가 살랑살랑 넘어가는 소리가 나더니 나타나는 페이지를 조용히 들어올린다. 흰 종이는 자주 만진 듯 조금 낡은 색으로 변해있었다.




[좋은 아침]



단어가 적힌 종이를 모두에게 한번씩 보이고는 카라마츠는 이내 하품을 하며 일어난다. 형제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데도 카라마츠는 태연하게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오소마츠는 한숨을 쉬고는 꺼질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방안의 적막이 드디어 깨졌다.




"오늘로 며칠..?"


"30일째야."


"하아... 언제까지 이럴 셈이야. 저 녀석은..."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와 똑같이 한숨을 쉬고는 머리를 부여잡는다. 막내 토도마츠는 눈물을 터트릴 기세로 눈망울이 촉촉해져서 울먹이고 있었다. 그런 토도마츠를 쥬시마츠는 기운이 빠진 손으로 도닥여준다. 나는 그저 웅크려서 두 무릎을 껴안고 주먹을 꾸욱하고 쥐었다.




그렇다. 오늘로 30일째,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단순히 말을 안하는 것이라면 우리들도 신경쓰지는 않았었겠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제는 모두 눈치챌 정도로 카라마츠의 소리가 하나, 둘씩 소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엔 목소리, 그 다음엔 발소리, 그리고 숨소리... 움직이는 소리마저 정적과 같을 정도로 희미해지고 거의 들리지 않게 될 무렵 그에게서 들리는 소리는.




-심장박동소리.




2.


정신이 들고보면 자신은 상처투성이였다. 오른쪽 눈을 가린 붕대, 머리의 상처,부러진팔과 다리. 그나마 자랑하는 건강했던 몸도 모두 너덜너덜.


아,


기억나버렸다. 왜 이렇게 됐는지.


납치를 당하고 구함을 기다리다 잠을 방해받은 분노한 형제들에게 상처를 입고 버려졌다. 몸을 먹어가던 깊은 바다도 자신의 주위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도 모두 무서웠지만 가장 무서웠던건 형제들의 분노가 넘실거렸던 그 얼굴. 자신을 두고 노을로 함께 걸어가던 그 모습. 어쩐지 분명 아름답고 행복한 광경인데 마음 한 구석이 파랗게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몸이 어쩐지 힘들어져서 공원 벤치에 앉아 정적과 고독을 즐긴다... 고 생각했지만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한밤 중이 되어 카라마츠는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상처를 보고 당황하는 얼굴들이, [엄살이 너무 심한거 아니냐. 과대포장됐다. 어디서 다친거야? 어디갔다왔냐.]며 말을 걸어오자, 떠듬떠듬 대답하다가,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 다시 뛰쳐나와버렸다. 그리고 블랙아웃.



잊혀져버렸다.


그 사실을 떠올리고 나니 약한 눈에선 물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눈을 가린 붕대가 축축히 젖어들어간다.


자신은 너무 나약하다.


깊은 물속이 무서워졌다. 불꽃이 무서워졌다. 그러나 제일 무서웠던 것은 소중한 형제들에게 잊혀졌다는 것. 지금까지 훌륭한 형을 위해 노력해왔고 아무리 그들이 무시하더라도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에, 그것이 [나]라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나는, 모두에게서 기억되지 않는 존재다. 상처입혀져도, 무시당해져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욱씬거리는 가슴이, 토할 것처럼 날카롭게 조이며 쑤셨다.


치비타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인정 받을만한 호인인 그에게는 외상값으로 자신을 고문해도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심지어 새우잡이 배에 팔려서 일하고 올 생각도 하고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위로하고 연기까지 해주었다.


그게 잘못이다.


좋은 사람인 그를 이용해서 형제들에게 구함받고싶다는 무른 생각을 했던것이.


"깨어났다스?"

"....아, 아아.... 데카판박사님. 치료해준건가? 정말 폐를...."

"아니다스. 너는 지금 중환자실에 입원해도 가능할 상태였다스. 회복력이 빨라서 다행이다스."

"아아, 정말..."


치료해 준 박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볼에서 흐르는 눈물을 벅벅 지워낸다. 거칠게 문지른 눈은 눈물이 멈추지않아 주위의 피부를 따갑게 쓰라리게했다. 자신은 너무 나약하다. 남자에게 눈물은 필요없는것인데.


"왜 그렇게 우는거다스?"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호에호에"


데카판박사는 특유의 추임새로 긍정을 표하고 경청하는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 카라마츠는 조용히 지금까지의 상황과 나약한 자신이 너무 괴로운 속내를 털어놨다. 데카판박사는 전부 듣고는 조용히 그를 보며 말한다.


"그게 진짜 감정이다스?"

"그렇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스.."

"그럴리가, 위로라면 감사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약합니다. 툭하면 울고, 오늘도 고작 그런 일로 뛰쳐나와버리고.."


박사는 뭐라고 말을 더 꺼내려다가 한숨을 쉬며 그만두고는 말을 꺼낸다.


"호에에..그럼 과거로 돌아가면 뭔가 바뀔 것 같단 말이다스?"

"....그렇습니다. 만약 그 상황의 자신을 다시 반복한다면 그렇게 나약하게 굴지 않겠지요."


데카판 박사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니 다시 말했다.


"전에 내가 실험하던 기계가 있다스. 평행원동시공명발전장치라는거다스."

"평행원, 어...?"

"평행원동시공명발전장치. 이것은 평행차원의 자신의 상황을 진행할 수 있게 하는거다스."

"그렇다는 것은..?"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그 일을 반복할수 있는거다스. 물론 그건 정신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이 세계의 우리에겐 아무런 효과도 적용되지 않는거다스. 이건 핵실험이나 역사적 인물의 죽음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 건가에 대해 실험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아무래도 정신이라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묻어뒀던 장치다스."

"내게 그 장치를 빌려주세요!"


상황을 반복하다니. 카라마츠는 즉답했다. 처음에 나무판도 못 부수는 주먹은 단련할수록 훈장을 쌓아 나중에는 벽돌도 부술 수 있게되기 마련이다. 그 고통스럽고 인생 최대 위기의 상황을 반복하게 된다면 형제들에게 잊혀지는 것도, 울음이 툭하면 터지는 자신의 나약한 마음도 단단하게 단련되어 익숙해지고 강해질 수 있을것이다. 그래야만 형제들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마음이 넓고 훌륭한 남자가 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머리가 조금 부족한 자신에게 여러가지로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상황을 겪어보고 그것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당황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비록 상처투성이가 된다해도 그건 언젠가 아물기 마련이다. 언젠가 반드시.


잠시 고민하던 데카판박사는 다시 말을 꺼낸다.


"하지만 너가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다시 상처입기만을 반복할 뿐이다스. 그래도 좋단 말이다스?"

"내게 남은 건 그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한가지와 같은 희망일 뿐이다."

"호에에..."


데카판 박사는 다시 한 번 억지로 상처입을 필요는 없다며 설득했지만 이상한데서 너무 상냥하고 어리숙한 이 청년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않았다. 결국 데카판박사는 그저 거대한 팬티같은 천 속에서 무언가 한참 뒤적이다가 그 속에서 물건을 하나 꺼내든다. 팬티가 어떤 구조인지는 범인(凡人)이 이해할 수 없는 원리임으로 패스하도록 한다. 꺼내든 물건은 천원샵에서 흔하게 살수있는 얇은 팔찌처럼생겼다. 디자인은 까마귀가 좋아할 것 같이 투명한 큐빅이 자잘하게 붙어있는 촌스러운 모양이었다. 팔찌는 희미하게 은빛을 띄고 있었다.


"이것이 그 장치다스."

"오오..! 나에게 주세요!"

"잠깐, 설명은 듣고 가라다스."


카라마츠가 경청의 자세를 취하자 박사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설명했다. 정신세계만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이 세계에 없는 동안 그의 몸의 시간은 정지되어있는것. 현실과 다르게, 시간대가 흘러갈 것이며, 그것의 축은 자신도 모른다는 것. 본인이 강하게 돌아오고 싶다고 빌 때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체험을 끝낼 때마다 팔찌의 큐빅의 빛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 그쪽에서 물리적 상처입은 것이 이쪽의 자신에게 피해는 없지만 정신적 휴유증은 있을 것. 큐빅을 다쓰기 전까지 이것은 언제든지 정지할 수 있다는 것. 만약 큐빅을 다 쓰고나면 반드시 자신에게 말할 것.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절반도 못했지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것과 그날로 돌아간다는 것만을 되새겼다. 계속, 반복해서, 익숙해지면 되는 일이다. 마음의 훈련. 좋은 울림이다. 카라마츠는 감동으로 손을 떨면서 오른손으로 팔찌를 받아들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카라마츠는 조용히 한쪽 구석에 있는 간의 침대에 누워 데카판 박사에게 인사했다. 붕대투성이의 한쪽 팔에 요란한 큐빅을 붙인 팔찌를 한 남자는 곧, 깊은 잠에 빠진 것마냥 얕은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박사는 이왕, 발명품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결과를 기록하려고 카라마츠의 머리에 여러 버튼을 붙인다. 뇌파가 곧 기계판에 읽혀지기 시작하며 요란한 그래프를 만들어냈다. 


팔찌의 빛이 하나 사라지자 기계판의 수면 그래프가 깨어났다가 잠이 드는 모양을 만들어냈다. 다른 기계판에서는 그의 감정 그래프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높을수록 흥분, 슬픔, 혼돈, 분노등의 마이너스 감정을, 낮은 수치일수록 기쁨, 행복, 안정 등의 플러스 적인 감정을 기록한다. 푸른색의 마이너스 기록과 붉은색의 플러스 기록은 서로를 왔다갔다하며 요란한 기복을 나타낸다. 박사는 기록되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른 실험을 하러 연구실로 돌아갔다. 군이 원하는 대로 잘되었으면 좋겠다스..


박사가 사라지고 홀로 남겨진 카라마츠는 눈을 굳게 감고있다. 간혹 움찔거리며 몸이 떨고 눈물이 흐르는 등의 반응을 보였지만, 카라마츠는 깨지 않았다.  그가 끼고 있던 그 팔찌의 빛이 차곡 차곡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에 맞춰 카라마츠의 수면 그래프와 감정 그래프가 요란하게 움직였다. 박사가 봤더라면 억지로 그를 깨웠을 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이라면 미쳐버렸을 지도 모를 굉장히 불안정하고 어지러운 기록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좀 더 시간이 흐르고 큐빅의 빛이 거의 다사라져 한두개정도 남았을까. 요란하던 그래프가 진정되었다. 잔잔히 흐르는 수면그래프는 안정적으로 수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감정그래프는 플러스 상태의 극점을 찍고 그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다. 흡사 망가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치는 한 눈금도 내려가지 않았다. 그 상태로 카라마츠는 눈을 뜬다. 팔찌는 한개의 빛을 남기지 않았다.









-


뒤를 어떻게 이어야할지 상상만 수두룩해서 내버려둔 글들... 

초기에 생각한거라 이음이 매끄럽지 않다.


솔직히 맨 처음 연성한 글은 치비미를 주인공으로 했었다.

소녀가장치비미... 아, 물론 치비타와는 다른 존재.



졸리면 왜 더 글쓰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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