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모든 이슈들은 레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시면 메일로도 가요!


(e)digtor’s note

남의 이름이 들어간 노래를 좋아합니다. 마저리조안나를 소개합니다. 그냥 오늘 같은 날 같이 듣고 싶어서요.

[주간탐구](5) 키가 작은 화분들 이야기

저는 식물을 키우는데요, 굳이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동물 키우기의 대체도 아닙니다. 그냥 풀을 키우는 것이지요. 큰 화분은 별로 없고, 다육이도 없어요. 보통은 식목일에 하나씩, 길 가다가 좀 귀여워 보이면 한 개씩 모종 화분을 집어와요. 꽃이 지면 끝이라고 했던 2000원짜리 화분은 만5년째 꽃을 피웠다 졌다 하며 우리 집에서 살고 있어요. 그냥 그런 친구들이 많습니다.

가장 큰 화분은, 몇 년 전 식목일에 장바닥 어드메에서 사 왔던 몬스테라예요. 걔는 처음에 사올 때 손바닥 보다 작은 잎이 두 장 있는, 모종화분에 담겨 있는 아주 작은 친구였죠. 남들은 몬스테라를 키우니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자라던데, 우리 집이 추운지 화분이 너무 작은 건지 (아마 의심하는 부분 전부 다 일겁니다.) 너무 작았던 몬스테라는 정~말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의 잎들은 다 지고 지금은 또 새로운 잎이 올라오는 중이긴 하지만요. 어쨌든 그렇게 작은 친구가 조금씩 몇 년을 자라 가장 큰 화분이 되었어요.

식물을 그냥 키우려고 키웠던 것은 아니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마주쳤던 친구들이 그냥 집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쟤네들이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보내준 식물들도 물론 있지요. 가령, 저는 한때 바질을 키웠었는데, 식용이었던지라(…) 너무 뜯어먹어서 죽고 말았어요. 어떤 분은 그걸 보고 ‘호상'이라고 했지만요. 어쨌든 식물이고 동물이고 사람이고 간에 만나고 헤어지는 건 참 우연이라, 그렇게 무슨 일이 있을 때 만났던 친구들이 한둘씩 늘어 베란다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동물을 키우는 것보다는 느슨한 관리지만 신경에서 놓는 것도 불가능해요. 걔네도 살아있는걸요. 물을 '적당히’ 주어야 하고, 벌레랑도 싸워야 하고, 어쩌다 한 번씩 식물이 죽으면 엄청나게 슬퍼하기도 해요. 아주 느슨한 ‘성심성의'를 지키고 있습니다.

식물을 여러 해 키우면서 깨달은 것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물을 안 주는 것보다 물을 너무 주는 게 살리기 어렵다는 것이고요, 나머지는 냉해로 입은 데미지는 회복이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거 두 개만 지켜도 그렇게 어렵지가 않아요.

꺾꽂이를 시도할 때가 가장 불안하고 기대됩니다. 얘는 살아남을까, 아니면 죽어버릴까. 저번에 제라늄을 너무 바투 잘라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10일쯤 견디고 나니 뿌리를 내리더라고요. 그럴 때의 쾌감이랄까요? 사실 안도감에 더 가깝겠지요. 암튼 그럴 때의 안도감은 차마 말로 이루 하지 못할 정도예요.

지난해에는 친구가 주운 동백 씨앗을 받았습니다. 찾아보니 동백은 싹을 틔우기가 너어무 어렵고, 틔워서 키운다고 해도 꽃을 보기까지 3년이 걸린대요. 작년 시월에 심었고, 보통 오뉴월에 싹을 틔운다고 해서 기다렸지만, 가을이 된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지요. 그 화분은 그대로 다른 식물을 심어버렸어요.

식물을 키우면서 느슨한 거리감에 대해 배웁니다.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여전히 지키기 힘든 것들이에요. 이런 걸 사람에 대입하라는 그런 '교훈’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요, 사람을 대하기는 무슨 식물 키우는 것도 힘들어요. 그냥 식물을 키우면서, 삽 들고 땀 흘리며 화분갈이하는 노동을 즐기는 것, 꽃이 피고 새잎이 나고 걔네들이 저물고 하는 시간의 흐름을 구경하는 게 전부입니다.

주변에서 받은 씨앗이 있어요. 씨앗이 희망의 메타포인 것은, 아마 정말로 식물을 키우는데 ‘희망'이라고 부를 정도의 기대감을 불러오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이런 것이 전부일 거라는 생각을 해요. 매년 겨울이 다가오고, 냉해를 방지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화분을 옮길 때 즈음 새로운 기대를 합니다… 내년 식목일에는 무슨 화분이 새로 생길까!

@dugonism

DG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