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올렸다가 지운 조각글입니다.



"거의 대부분 짝이 인간으로 변했던 날이나 처음 잠자리를 가진 날을 꼽으시더라고요. 좀 신기했어요."


습식 사료 캔이 든 상자가 꽤 무거울 텐데도 희건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상사가 반가운 듯했다. 희건이 건네는 상자를 받아 차곡차곡 쌓으면서 D는 물었다.


"이희건 씨는 어떤데요?"

"네?"

"미시 씨와의 추억 중 가장 소중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래요?"


생각에 잠겼던 희건이 곧 씩 웃었다.


"저도 그렇네요. 미시가 인간으로 변했던 날이 제일 소중해요."

"다른 분들도 비슷할 겁니다. 오랜 세월 기다리던 짝을 만난 날이니까요. 앞으로는 평범한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기념일이기도 할 테고."

"어, 아니에요."


태연히 원론적인 말을 늘어놓다가 D는 입을 다물었다. 상자를 든 채로 희건이 그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래서 소중한 게 아닌데요."


D는 천천히 허리를 펴서 희건과 눈을 맞추었다. 눈치를 보며 망설이던 희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해도 되나요?"


그런 식의 배려가 더 아프다는 걸 안다면 애초에 저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으리라. D는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표정이 풀어진 희건이 그에게로 걸어왔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미시가 인간으로 변한 순간 깨달았거든요. 아, 나도 혼자가 아니었구나. 그동안 미시가 나를 지켜봐주고 있었구나. 외로웠던 긴 시간 동안 사실은 외롭지 않았구나."


D가 쌓아놓은 상자의 산 위에 마지막 상자를 올려놓곤, 희건이 씩 웃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짝이, 언제나 옆에 계속 있어 줬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서. 그래서 그날이 제일 소중해요."

"그렇군요."


기계적으로 답변하며 D는 몸을 돌렸다. 희건의 답변은 그가 영원히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아무리 많은 이들과 만나고 긴 시간 상담을 진행한다 한들, 나는 누구의 사연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겠지. 책으로 접한 원론적인 정보만을 읊겠지.


그래서 사람들도 내가 아닌 이희건 씨의 서툰 상담에 더 의지하는 것인가.


씁쓸한 결론을 삼키고 D는 창고를 빠져나갔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완결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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