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제임스가 많이 다치기도 했고 애초에 체력적으로 보통의 마법사와 늑대인간이 비교가 될 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숲을 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늑대인간을 유인하기로 했다. 숲에 늑대인간이 몇이나 더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제임스와 해리는 그들을 모두 잡을 생각은 당연히 아니었다. 다만 혹시라도 친구들이 있는 동굴 쪽으로 늑대인간들이 주의를 기울이거나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굴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이목을 돌릴 생각이었다.

  만월 아래의 늑대인간은 그 어떤 생물보다도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었고 제임스가 잔뜩 피를 흘리고 있는 이상 그들의 추적을 피하기보다는 그들을 유인하는 쪽이 한결 유리하기도 했다. 언제 기습을 받을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해리는 계속해서 탐지마법을 펼쳤다. 제임스는 조심스럽게 동굴 쪽을 등지고 서서 해리가 그 쪽으로는 탐지마법을 걸지 않도록 막았고, 해리 역시 모르는 척 그 쪽으로는 돌아서지 않았다.

  해리의 뒷모습을 보며 제임스는 해리가 수업 중 늑대인간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것을 새삼 떠올렸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그것은 해리 자체에 대한 생각으로 번졌다. 해리 에반스,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에게 유난히 신경을 쓰는 호그와트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제임스가 해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그 정도였다. 아니, 생각보다 괜찮은 비행술을 가지고 있으며, 상상했던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제임스는 해리를 흘끔 보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과 대단히 닮았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집중해서 마법을 쓰는 옆모습에 아까 늑대인간을 상대하던 모습이 겹쳐졌다. 그 모습은, 어쩌면 조금은, 아니 사실은 상당히 멋있었다. 해리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감탄할 정도였으니 그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반스 주제에.’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제임스는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었다. 그 에반스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누구였더라? 제임스는 한숨처럼 더운 숨을 내뱉었다. 온몸으로 열이 퍼지는지 머리도 뜨겁고 눈이 뻑뻑했다. 크게 숨을 내쉬어 열기를 뱉고 애써 호흡을 고르며 제임스는 해리를 다시 흘끔 쳐다보았다. 문득 해리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된 것을 따라가 보니 해리는 높은 나무 끝 너머 마을 방향을 보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는 붉은 빛이 연속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사실 엘더베리 밸리같이 작은 마을이 여태 버티고 있는 것은 리무스의 울음 때문에 자극받은 늑대인간들이 습격 전에 앞다투어 울음소리를 내어 그들의 존재를 드러낸 덕분이었다. 게다가 숲에서 뜻밖에 제임스와 해리를 만나고 공격받은 탓에 주의가 분산되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었다. 덕분에 마을은 불시의 기습을 받지 않았고 또한 처음부터 총공세를 받지 않았으며, 덕분에 마법부에 도움을 청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물론 마법부에서 오러들이 파견되더라도 그들이 마을이 아닌 숲 안쪽까지 주의를 기울여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으므로 방심할 수는 없었다. 해리는 다시 탐지마법을 펼쳤다. 이미 몇 번째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마을에 총력을 기울이느라 숲 안으로 더 이상 늑대인간이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었지만, 불안을 완전히 떨치기에는 아직 일렀기에 해리는 좀처럼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탐지마법이 사그라지기 직전 해리는 그 끝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순식간에 범위를 벗어나 확실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경계를 하기에는 충분했다. 한결 조심스럽게 탐지마법을 펼치며 해리는 제임스 쪽을 힐끔 보았다. 제임스도 분위기가 바뀐 것을 알아채고 지팡이를 고쳐 쥐고 숲 안쪽을 경계했다. 진득한 살기가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잡아챌 것 같았다. 해리가 나직하게 말했다.

  “언제 덮칠지 모르니 첫 공격은 피하거나 막을 수밖에 없어. 덤벼들면, 왔다. 프로테고!”
  “―프로테고!”

  반사적으로 주문을 외우고 나서야 제임스는 해리가 같은 주문을 썼음을 인식했다. 자신의 반응이 평소보다 약간 늦었던 탓이었다. 두 개의 프로테고가 부딪쳤을 때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아 튕겨나가던 장면을 떠올리고 제임스는 서둘러 지팡이를 거두어들이며 주문을 해제하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프로테고는 별 위화감도 없이 겹쳐져 단단하게 주위를 둘러쌌다.

  오히려 쇄도하던 늑대인간들이 한층 견고해진 방어벽에 부딪쳐 나가떨어지고 있었으며, 짓눌리는 것도 아까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 타이밍도 맞추지 못했는데 프로테고가 자연스럽게 융합해 버린 것에 제임스는 조금 당황했으나, 해리는 엷게 웃고는 빠르게 지시했다.

  “하나 둘 셋, 저쪽은 세 명이야. 앞으로 두 번 더 부딪친 다음에, 하나, 프로테고를 해제할거야. 왼쪽부터 공격할게, 둘, 푼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반구형의 보호막이 사라졌다. 몸으로 부딪치려던 늑대인간이 관성을 못 이기고 삐끗했다. 그 틈에 해리가 공격하자 늑대인간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해리가 자신을 보호하듯 앞쪽에 서있는 것을 알고 제임스는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자신의 공격마법으로는 늑대인간에게 별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제임스는 순순히 보조에 치중했다.

  제임스는 늑대인간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늑대인간이 해리를 노리고 도약하기 직전의 타이밍을 맞춰 순간적으로 미끄러지게 하거나, 후방에서 시간차로 덤벼드는 다른 늑대인간의 발을 잡아끌어 해리가 한꺼번에 공격을 받는 것을 저지했다.

  해리는 제임스의 대처에 내심 감탄했다. 제임스가 상황에 따라 마법을 응용하는 센스는 이미 본 바 있었지만, 화려한 공격마법 위주로 익히고 있을 줄 알았던 제임스는 의외로 기본기가 탄탄했고 무엇보다도 해리와 손발이 잘 맞았다. 제임스가 선전해준 덕분에 해리는 동시에 세 마리 모두에게 공격을 받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리 혼자서 세 마리를 동시에 공격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한 마리에게 결정타를 가하려 하면 다른 늑대인간이 방해했다.



  길어진 싸움은 체력을 급속도로 소모시켰다. 거의 코앞까지 주둥이를 들이민 늑대인간을 어렵사리 쓰러뜨리고 해리가 리덕토 주문을 사용했다. 뒤로 뛰어 주문에 직접 맞는 것을 피한 늑대인간의 발밑에서 흙이 팍 튀어 올랐다.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져 해리가 일단 프로테고를 썼을 때, 늑대인간들이 갑자기 숲 그림자 사이로 모습을 숨겼다. 마치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해리는 그들이 근처에서 틈을 노리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늑대인간들은 매서운 발톱과 이빨만큼이나 집요했다.

  달이 서쪽으로 기울어진지 꽤 되었으나 완전히 질 때까지 그들은 결코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서는 더 이상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해리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프로테고를 해제하고 해리는 다시 신중하게 탐지 마법을 펼쳤다. 그 때 제임스가 휘청 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극도의 긴장과 피로 때문에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체력적으로는 이쪽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에 늑대인간들이 물러서지 않고 계속 공격했더라면 적어도 제임스는 먼저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해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제임스 쪽을 힐끔 보았다.

  “제임스, 정신 차려.”

  제임스는 대답 없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사실은 대답할 기운도 없다는 것이 맞았다. 해리 쪽을 신경 쓰면서 제임스는 조심조심 손으로 옆구리를 짚어보았다. 기껏 약으로 지혈해놓은 상처가 다시 터졌었는지 임시로 감아놓은 천은 이미 축축해져 있었다. 출혈량이 상당한지 자꾸 어지러웠다. 티를 안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몸이 흔들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임스는 숨을 몰아쉬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비죽 웃음이 나왔다. 비록 헐떡이는 숨에 섞여 웃음 같지도 않은 웃음이었지만, 솔직히 해리가 와주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늑대인간들이 다시 올 거야. 긴장 풀지 마.”
  “시끄러, 나도 알아.”

  퉁명스럽게 대꾸하면서도 제임스는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해리는 계속해서 진지하게 말했다.

  “날이 샐 때까지만 버티면 돼. 기운 내.”
  “날이 새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어?”
  “늑대인간 변신이 풀리지.”
  “마법을, 쓸 거 아냐.”
  “늑대인간 대 마법사보다는 마법사 대 마법사의 싸움이 더 할 만해.”

  제임스는 밭은 숨을 내뱉으며 새삼스럽게 해리 쪽을 보았다. 해리는 그다지 호전적인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저렇게 말하는 것일 터였다. 하긴 좀 전까지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못 믿을 바도 아니었다. 제임스는 픽 웃었다.

  “배짱 좋네.”
  “그럼. 난 볼드모트와도 싸워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좀 웃겼다. 제임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자 해리도 제임스를 힐끔 돌아보더니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이야. 17살 때랑, 그 전에도.”
  “어디 더, 더 말해봐.”

  제임스의 말에 웃음기가 잔뜩 섞여있는 걸로 봐서는 그다지 자신의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임스에게서 예전과 같은 적대감을 느낄 수 없었기에, 해리는 짐짓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과장된 투로 자신이 겪은 일을 말했다. 제임스에게 말을 시켜서 정신을 다잡게 할 수 있다면 약간의 비웃음 정도는 감수할 만 했다. 아니 사실은 해리 본인이 제임스에게 말하고 싶었다는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좋아. 난 1학년 때 트롤과 싸웠고, 2학년 때는 바실리스크를 해치웠고, 3학년 때는 디멘터에 쫓겼어. 4학년 때는 학교 대표로 용의 알을 빼앗고, 호수의 인어에게 잡혀간 소중한 사람을 구해냈지. 또 7학년 때는 그린고트에 잠입해서 죽음을 먹는 자의 금고에서 중요한 것을 빼내려다가 고블린에게 들켜서 용을 타고 날아서 탈출했어. 그리고―”
  “너 진짜, 대단하다.”

  제임스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었다. 너무 웃은 나머지 중심을 잃고 휘청하기까지 했다. 해리도 말하면서 피식거리고 웃었다. 이렇게 요약해서 늘어놓으니 자기가 말하면서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내친김에 해리는 저 중에서 몇 가지 제임스가 쉽게 믿지 않을 일들을 더 이야기해주었다.

  머리가 세 개 달린 개가 지키는 문 아래로 친구들과 함께 내려가, 악마의 덫을 빠져나와 거대한 마법사 체스에서 체크메이트를 하고 통과한 것, 날아다니는 가짜 열쇠들 사이에서 빗자루를 타고 단 하나 있는 진짜 열쇠를 잡았던 것을 들으며 제임스는 대단히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그렇게 함정을 지나 도착한 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해리는 잠깐 생각한 끝에 다른 것은 다 생략하고 소망의 거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사실 내가 소망의 거울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어. 처음 그걸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안에서,”

  해리는 갑자기 목이 메는 듯한 기분이 들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해리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자 제임스가 의아해하며 해리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몇 번 숨을 고르고 제임스를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부모님을 보았어. 부모님과 내가 행복하게 같이 있는 모습.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어.”

  제임스는 해리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움을 담은 애틋한 목소리에 자기까지 가슴이 찡한 기분이 들어, 제임스는 어색하게 떠오르는 대로 질문을 던졌다.

  “소망의 거울은, 자기 가족을, 보여주는 거야?”
  “아니, 자기가 가장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지. 내 친구는 퀴디치 주장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어. 그렇지만 나는 그냥, 어머니 아버지와, 조심!”

  그 때 해리가 제임스를 가로막으며 숲 안쪽으로 주문을 쏘았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던 사이에 늑대인간들이 다시 쇄도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정신을 다잡고 다시 전투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자꾸만 눈앞이 울렁거리면서 해리의 모습이 눈에 맺혔다. 거짓말을 잘할 것 같은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리무스의 말이 왜 이때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치면 아까의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말이다. 제임스는 자신을 응시하던 초록색 눈을 떠올렸다.

  ‘나의 부모님을 보았어.’

  그렇게 말할 때의 해리는 지금 늑대인간과 맞서 싸우는 사람과 동일인 같지 않을 정도로 어리고 작아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싸우는 중에!’

  제임스는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덕분에 어지럼증이 한층 심해졌지만 더 이상 덤처럼 붙어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제임스는 이를 악물고 싸움에만 집중했다. 아까처럼 제임스의 보조가 가세하자 해리는 한결 여유를 되찾고 늑대인간을 몰아붙였다.



  시간이 흘러 달이 지고 있었다. 그것은 해리나 제임스보다 늑대인간들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갑자기 괴로운 듯 몸을 웅크리고 목을 울리는 그들의 반응에 해리는 흘끔 하늘을 보았다. 하늘 끝에 달이 걸리고 반대편 하늘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간밤의 피로가 급하게 몰려오는 기분에 제임스는 저도 모르게 열오른 숨을 내쉬며 지팡이 끝을 조금 늘어뜨렸다. 늑대인간들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바닥을 구르거나 험악하게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리무스의 경우와 달리 그들은 노련했고 이미 몇 번이나 인간을 습격했던 전적이 있었다. 제임스가 조금 긴장을 늦춘 것을 귀신같이 알아챈 늑대인간이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인간과 늑대가 뒤섞인 기괴한 모습으로 덤벼드는 앞에서 제임스는 반사적으로 공격주문을 외쳤다.

  “리덕토!”
  “스투페파이!”

  동시에 두 개의 주문을 맞은 늑대인간은 괴성을 남기고 쓰러졌다. 제임스가 숨을 몰아쉬며 해리를 보았다. 해리가 ‘잘했어, 제임스!’ 하고 외치는 뒤로 바닥에서 구르면서도 지팡이를 꼬나 쥐고 있던 또 다른 늑대인간이 해리에게 살인저주를 날렸다.

  “아바다 케다―!”
  “익스펠리아르무스!”
  “―익스펠리아르무스!”

  그러나 해리의 주문이 더 빨랐고, 늑대인간은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제임스 역시 해리를 따라 무장해제 마법으로 이제 완전히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다른 늑대인간을 무력화시켰다. 제임스의 마법에 맞고 지팡이를 놓친 어둠의 마법사를 해리가 연달아 기절시키고 밧줄을 소환해 그들을 꽁꽁 묶었다. 완전히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을 확인하고 해리는 하늘을 향해 마법신호를 쏘아 올렸다. 제압 완료를 알리는 오러의 표식이 하늘에 떠올랐다. 마을에 와있을 오러들이 그 표식을 발견하고 늑대인간들을 데려갈 것이다.

  해리가 마무리를 하는 것을 지켜보다 눈앞이 핑 돌아 제임스는 휘청 하고 발을 헛디뎠다. 더 이상은 어지러워서 서있기가 힘들었다. 이윽고 마무리까지 마친 해리가 제임스 쪽으로 돌아섰다. 해리도 지쳤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제임스는 물끄러미 해리를 응시했다. 제임스와 눈이 마주치자 해리가 빙긋 웃으며 제임스 쪽으로 걸어왔다. 불현듯 지금이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비틀거리자 해리의 눈에 대번에 걱정이 어리는 것이 보여, 제임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무시하며 똑바로 섰다. 자신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는 진지한 초록색 눈을 응시하며 제임스는 저도 모르게 마른 입술을 축였다.

  “너는.”
  “응?”
  “너는 누구야?”

  해리 역시 직감적으로 지금이 중요한 순간임을 느꼈다. 짧은 순간 해리는 무수히 갈등했다. 말해도 될까, 말하면 안 될까. 어쩐지 지금이라면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가 누구인지만 말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늑대인간과 싸울 때보다도 더 긴장해서 해리는 제임스를 마주보았다. 제임스가 참을성 있게 자기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충혈된 고동색 눈이 자신을 비추고 있는 것을 보며 마른침을 삼킨 해리는 천천히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했다.

  “해리 제임스 포터.”





PieS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