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억을 되찾을 때 어떤 감정이 나를 감싸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기억을 마지막으로 나는 성유계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현세에 부활할 날이 밝았다. 아이자크는 나와 함께 부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로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지시자가 성유계를 떠날 준비를 끝냈다고 알렸고 나는 지시자를 따라 현세로 이어지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 문을 열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시자는 내게 말했다.


  “제가 눈을 뜨고 나서 오랜 시간 기다린 첫 번째 전사여, 이제 당신이 현세에서 죽을 때 남긴 미련을 풀 시기입니다. 이 성유계에 와서 당신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적용하세요. 그럼 무운을 빕니다.”


 지시자의 말이 끝나자 문을 열었고 따스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그리고 성유계의 풍경이 점점 흐려져 갔다.

 

*

 

 성유계에서 다시 현세로 올 때의 꿈을 꿨다. 그 곳에서의 기억은 꿈같았지만 생생했다. 현세에 부활한 이후로 그룬왈드와 아벨도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구 그란데니아 제국에서의 그들의 이야기는 들려왔다. 아벨은 동료를 모으고 있었고 그룬왈드는 론즈브라우의 왕이 되어서 론즈브라우를 통치하고 있었다. 군인이 되어서 권력을 잡기 위해서 충성을 바쳤던 그란데니아 제국은 멸망한 지 오래였다. 그란데니아 제국이 있던 곳에서 국가를 세우고 스스로를 총사령관이라고 명했다. 그곳에 있던 구 제국민은 처음에는 나를 반신반의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나를 신뢰했고 제국 내의 문제에 대해서 나에 대해 의지하는 정도가 점점 높아졌다. 부활하고 국가의 기초를 세우는 동안 아이자크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아벨로부터 들었다. 아벨은 나에게 자신의 동료가 되라고 제의를 해왔지만 구 그란데니아 제국의 틀을 세우고 있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벨의 동료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을 때 그는 아이자크가 부활해서 용병단의 리더가 되어있다고 전해주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떠났다. 그 이후로 아이자크가 세운 용병단에 대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용병단의 목표는 현세에 있는 국가를 국민들이 뽑는 통치자가 다스리는 국가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듣자 아이자크가 나를 향해서 총칼을 겨누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웃음이 나왔다. 아이자크는 그럴 수 없는 인물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이자크는 언제까지라도 나를 향해서 몸을 바칠 그런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아이자크가 어두운 밤에 내 방에 들어와서 찾아왔을 때 놀라지 않았다. 현세에서 다시 만난 아이자크의 모습은 오른쪽 눈에 한 안대, 위에 걸친 코트, 안에 입은 그란데니아의 군복, 왼쪽 팔에 달고 있던 빨간 완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성유계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오른쪽 눈에 한 안대에는 해골 모양의 그림이 있었지만 현세에는 없었다. 또한 왼쪽 팔에 있던 붉은 완장도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는 달랐다. 아이자크는 밤에 몰래 들어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게 나에게 물었다.


 “에바, 놀라지 않는 모양이네?”


그의 물음을 듣고 나는 그가 무슨 반응을 내게 원했는지 의문이 들어서 그에게 말했다.


 “대체 무슨 반응을 원한 거지? 오히려 예상보다 늦게 찾아와서 실망이야.”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는 현세에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총사령관인 에바리스트 발렌슈타인이 지내는 곳치고는 작은 편 아닌가? 이 방외에는 다른 곳은 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집은 아이자크, 네가 머물기 위해서 있는 집이야.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 총사령관이 된 것도 부활하기 전에 권력이라는 가장 강력한 힘을 얻어서 너라는 존재와 함께 포레스트 힐에 살던 그 시절처럼 살고 싶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용병단을 이끄는 것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돌아와.”


그는 내 말을 듣고 내 눈을 잠시 마주치며 말했다.


  “에바, 성유계에 같이 있던 헤럴드들이 어떠한 말을 해도 나는 네 편이야. 그리고 아직까지 네 곁에 돌아가기엔 일러.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난 뒤에 네 곁에 돌아간다고 약속할게. 그러니 이 만남 이후로 나를 만날 때는 타인처럼 대해줘.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의심을 하지 않아. 네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니까 믿어주지 않을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불안해 보였다. 그랬기에 그의 뒤에 서서 그를 안아 주며 대답했다.


 “알았어. 언제라도 기다릴게. 그러니까 내게 돌아와 줘.”


 그런 내 말에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후 창문으로 나갔다. 아이자크가 나가고 난 뒤에 경비원들이 내 방에 들어와서 수상한 자가 오지 않았는지 물었지만 수상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대답하고 그에게 나가라고 말한 후 아이자크가 나간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이자크가 어떤 이유로 용병단의 리더를 하고 있는지 몰랐고 아이자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부활하고 나서 내 옆에 있지 않은 것인지 그것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자크를 현세에 부활하고 처음으로 만나고 한 생각은 아이자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현세에 부활한 이유가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있었지만 스스로 아이자크를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다. 출세에 눈이 멀어서 아이자크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못하고 아이자크를 죽음에 이끌게 했다. 마지막 기억을 되찾은 아이자크가 내게 처음으로 한 말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정말 사과해야할 사람은 나 자신이었는데 그가 사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를 껴안고 싶었지만 아이자크의 등은 그날따라 커보였다. 아이자크를 만나고 일에 집중할 수 없음을 깨닫고 불을 껐다.

 

*

 

 현세에 부활하고 나서 아이자크와 만나고 몇 달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아이자크를 만날 수 없었다. 현재 아이자크와 내가 있는 자리를 보았을 때 그 것은 당연한 것 일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자크는 이끌고 있던 용병단의 리더를 관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 소식이 들려오고 며칠 후 아이자크는 내 곁으로 돌아왔다. 아이자크와 같이 있게 된 첫날에 아이자크에게 늦었다고 말하며 주인을 기다리게 한 벌을 주었다. 그가 다음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격렬한 밤을 보냈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아이자크를 안으며 말했다.


 “내 곁에 돌아와 줘서 고마워.”


 아이자크는 지쳤는지 대답이 없었다. 흐릿한 빛 사이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있었다. 그의 얼굴에 맺혀있는 땀을 닦으며 그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연성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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