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안에 수해가 새근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조금 일찍 깬 정운이 몸을 일으켜 시계를 확인했다. 지난 밤이 고단했는지, 채 아무것도 입지 못하고 그대로 잠든 수해의 상반신이 훤히 드러났다. 수해의 목과 쇄골, 가슴 쪽은 온통 정운이 남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정운은 자신이 남긴 자국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저 자국을 남길 때 수해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 자국이 없어지면 아쉬울 것 같아, 또 남겨야지. 수해가 좋아하는 표정을 다시 보고 싶었다.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아직 자국이 없는 어깨 쪽에 입을 대고 자근자근 깨물었다. 곧 수해가 눈을 찡그리며 깨어났다. 잠에서 깨자마자 정운을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정운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졸음기를 가시기 어려운지, 금방 움직임이 줄어들며 다시 잠이 들려는 눈치다.

   수해의 숨소리와 체온은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안정감을 준다. 모든 것이 안전할 거라는 생각. 꼭 붙은 둘 사이를 아무도 해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정운은 수해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어제의 일을 생각했다. 수해는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예상외로 폭행이나 감금의 흔적은 없었고, 건넛방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문에 특별한 잠금장치가 되어있지 않은데도, 수해는 그 곳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그 곳에 있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수해를 데리고 나오는 길에, 정운은 수해가 자기 일을 방해한 것에 대해 언짢아 할 것이라고 생각해 굳었다. 하지만 빗속에서 수해는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렇게 절박한 표정으로 애원하면, 세상 그 누구도 그를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해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감히 부탁하지 못했기에, 수해는 미움을 받으며 사람들을 떠나왔을 것이다. 

   자꾸만 애틋해지는 마음에 수해의 머리를 끌어안고 가만히 입 맞추고 있는데 수해가 다시 눈을 떴다. 겨우 뜬 눈이 마주치자 수해가 푸스스 웃었다.

   "잘 잤어요?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잔뜩 쉰 목소리로 수해가 대답하고는 도리어 놀란다. 어제 무리를 하긴 한 모양이다. 정운이 몸을 일으키며 수해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었다.

   "먹을 것 좀 사 올 테니까 쉬고 있어요."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먹을 만한 것들을 사 왔다. 도시락, 컵라면, 작은 빵과 음료수들이 수해 앞에 놓였다. 둘은 나란히 앉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수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음식을 조금씩 먹으며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에 정운도 덩달아 말이 없었다.

   "나, 감금된 거. 이번이 처음 아니에요."

   불쑥 쏟아지는 수해의 말에, 정운이 수해를 보았다. 수해는 아무렇지 않은 기색으로 계속 젓가락질을 하며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어제는, 감금된 게 아니라 협상 중이었고. 뭐, 잘 안되어가는 중이었지만"

   편의점 도시락에 들은 비엔나 소세지 하나를 쏙 집어먹고는 오물거리며 씹는다. 정운은 수해가 던진 말의 의미를 파악하느라 잠시 움직임이 멎었다. 담담히 뱉은 감금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말은 수해의 뜻과는 다르게 묵직했다. 이런 일이 몇 번이고 있어왔던 걸까. 할 말을 고르다, 정운은 어렵게 되물었다.

   "그럼... 이런 일이 있을 땐, 어떻게 해왔어요?"

   "기지를 발휘해서 탈출 하거나. 하늘이 돕거나."

   수해는 마지막 말을 하며, 정운을 보고 씩 웃었다. 다시 먹는 것에 집중하는 수해를 보며 정운은 복잡한 생각에 빠졌다. 감금이 아니라 협상이라면, 왜 그렇게 무리할 정도로 몰아붙여서 하고 있던 거지. 개인적인 연락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연락을 기다릴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가. 마지막 의문은 미처 휘발되지 못하고 정운의 머릿속에 남았다. 수해의 부재 동안 정운은 괴로울 정도로 수해의 연락을 기다렸다. 불안을 견디다 못해 그의 사무실에 연락하기까지 했다. 이 모든 괴로움을 당신은 내가 견뎌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내가 와주기를 기다리고 바랐던 것이 정말 아니었을까.

   정운은 새삼, 수해가 정말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자신이 수해의 삶에 들어오기 전, 자신이 수해에게 기댈 수 있게 해주기 전의 시기. 수해는 혼자 버텨냈고, 어제도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 그것에 균열을 만든 것이 자신일 지도 모른다. 수해를 울먹이게 만들고, 애원하게 만든 건 자신일 지도 모른다. 정운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였다.

   식사를 마친 수해가 슬며시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진짜 나를 찾는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정운은 그제야 깜빡 잊은 것이 생각나 화들짝 놀랐다.

   "아, 사실은..."

   수해가 슬며시 웃으며 먹은 것을 정리했다.

   “… 앱 깔은 줄은 진작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화가 안 나더라고요. 오히려 귀엽게 느껴져서. 탐정은 난데, 정운. 씨가 탐정처럼 남의 핸드폰에 위치추적 앱을 깔고 들여다보고 있을 걸 생각하니까.”

   정운이 뜨끔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깔아놓고… 자주 확인하진 않았습니다. 별로 신빙성이 없겠지만요.”

   민망함에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정운을 보고, 수해는 자꾸 놀리고 싶은지 덧붙인다.

   "그래도 잠입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나 군인이었다니까요..."

   정운은 괜히 뒷머리만 슥슥 쓸었다. 먹은 것을 정리해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 수해가 초코우유 팩을 들고 정운의 곁에 털썩 주저앉는다. 여전히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굳어있는 정운의 어깨에 수해가 숨을 내쉬며 기댔다. 수해의 눈치를 살피던 정운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쪽 일은… 더 신경 안 써도 돼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죠. 나한테 그렇게 무례를 범한 놈들을 어떻게든 족쳐야지.”

   초코우유를 쪽 빨아마시는 수해의 말투가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그런데 정운 씨 그때 사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일이 더 잘 풀린 게 아니라 사실 개같이 꼬인 거에 가깝거든요. 난 근데… 그 건물에서 당신 얼굴 보자마자, 아, 이거 이제 잘 되겠구나 하는 감이 왔단 말이죠…”

   일이 꼬였는데 어떻게 잘 될거라는 확신이 들 수 있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잘 될 것 같다니까.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보고, 추리하고 가능한 해법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딱 들어맞도록 실행한다.

   “사람 물 먹이는 플랜은 이 바닥에서 내가 전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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