덱스가 불을 피우고, 구포는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을 뾰족하게 깎아서는 따온 버섯을 꿰어 모닥불에 굽는다. 버섯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꽤나 익었을 무렵 소래는 짐에서 소금통을 꺼내 넓다란 나뭇잎 위에 덜어놓는다. 버섯 구이를 소금에 찍어 먹다보니 어느덧 해가 진다. 

[우리 쫓아오는 그 자식 말이야.]

덱스가 입을 열자 구포와 소래가 바라본다.

[아무래도 하누 때문이겠지?]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겠소?]

[하누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어쩌면 우릴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건 아닐런지?]

[이렇게 뻔히 보이는 함정을 파겠어? 하누가 아니라, 저 자식이 말이야.]

[대장의 동생에게선 수상한 낌새를 채지 못했소. 어쩌면 그 친구도 이용당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뭣때문에?]

덱스는 눈쌀을 찌푸리고 입을 비죽 내민 채 잠시 생각에 잠긴다.

[하누에게 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하누가 열쇠인 건 맞아.]

[대장과 똑같이 생긴 그 녀석도 하누를 보고는 동요했지.]

[그거, 정말 대장이었을까?]

[진짜 대장이라면 친동생을 잊었을리가? 혹시 기억을 잃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랬을 수도 있지. 어딘가 이상하긴 했잖아. 몸놀림도 전혀 대장답지 않게 굼떴고.]

[대장이 죽지 않고 살아서 기억을 잃은 채 이 땅을 떠돌며 주민들의 식량을 털어간다는 건가. 한숨이 나오는 노릇이군.]

[그런 상황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는 거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잖아.]

[하지만 어디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겠는가? 대장을 사로잡아서 심문이라도 할텐가?]

[그게 제일 확실하지 않겠어?]

[순순히 잡혀준다면 말이오.]

덱스는 끙 하며 팔짱을 낀다.

[아... 술이 땡기네.]

구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지를 턴다.

[오늘밤은 내가 망을 보겠네.]

그러자 소래와 덱스는 각자 누울 자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밤이 얼마나 깊었을까. 상념에 잠겨있던 구포의 귀에 사람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다. 곧 시야 한켠에 작은 불빛들이 나타난다. 마을이 있던 방향이다. 구포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덱스와 소래는 이미 일어나서 구포의 옆에 와 있다.

[무슨 일이지?]

[마을 사람이 습격당했나 보군.]

[수인이 공격한 건가?]

[확실히 보지는 못했네. 횃불을 든 인간들이 달려가고 있으니 곧 확인할 수 있겠지.]

세 사람은 잠시 말없이 멀리서 상황을 지켜본다. 주민들이 부상자를 마을로 데려간 후 다시 횃불과 무기를 든 사람들이 쏟아져나온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달려나와서는 방어진을 형성한다. 그 곁에 아는 사람이 보인다.

[하누잖아. 저 녀석 뭐하는 거야?!]

곧 곰 수인이 덮쳐온다. 전사들은 동요하지 않고 단련된 움직임으로 곰 수인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덱스는 나름대로 감탄하지만 이어지는 그들의 선택에 당황한다. 전사들이 곰 수인을 쫓아 숲으로 행군하는 것이다. 게다가 하누도 그들을 따라간다. 덱스는 즉시 뛰쳐나간다.

[내가 하누 찾을테니까 수인 쪽은 너희가 어떻게 해봐!]

소래와 구포는 딱히 대답을 하지는 않지만 지체 없이 몸을 움직인다. 그들이 숲으로 달려가는 중 멀찌감치서 단말마의 비명이 연이어 들려온다. 곰 수인을 상대로 숲에서 맞서기로 한 어리석은 선택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구포와 소래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고는 싸울 태세를 갖춘다. 떠도는 냄새에는 다른 익숙한 악취도 섞여 있다.

[이건... 시체 마법인가?]

[맞소. 시체병까지 상대해야 할 터.]

[아니, 좀 이상하네. 시체병에게서 나는 썩은내와는 좀 다르군. 정체를 모르니 신중하게 가지.]

소래와 구포는 무기를 꺼내들고 무엇이든 나타나면 반으로 쪼개버릴 태세를 갖추고 숲 속을 탐색한다. 수인은 인간보다 밤눈이 밝은 데다, 빛이 없어도 소음과 냄새를 따라가니 곰 수인을 금방 찾는다. 놈은 누군가의 오른팔을 입에 물고 있다. 소래와 구포를 발견한 곰 수인은 오른팔을 뱉어버리고는 포효한다. 주변의 가지와 잎이 진동할 정도의 굉음이다. 

[힘깨나 쓰게 생겼구만.]

곰 수인은 입에서 검은 침을 줄줄 흘리며 낫 같은 발톱을 휘둘러온다. 소래는 도끼창의 자루로 발톱 공격을 받아낸다. 곰 수인은 양팔로 도끼창을 밀어내려 하지만 소래도 힘으로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 도리어 끙 하며 기합을 지르니 곰 수인이 밀려나고, 그대로 팔을 뻗어 창자루의 중간 부분으로 안면을 강타한다. 뒤로 나동그라진 곰 수인은 잠시 움직임이 없다. 하지만 소래와 구포가 다가가려 하니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그 눈에 조금은 빛이 돌아온 듯 보인다. 놈은 두 사람을 노려보다가 입을 연다.

[너희, 날 죽일 수 있나?]

[당신, 설마...]

[맞아. 더러운 저주에 걸렸다. 날 죽여 줘.]

소래와 구포는 시선을 교환하고는, 서로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 이름은?]

[하스타.]

[기다리는 사람이 있나?]

[없다. 모두 죽었다.]

[그들의 곁으로 보내주겠네.]

[부탁하지.]

구포는 하스타의 앞에 서서는 양손으로 검을 휘두른다. 그러나 하스타의 발톱에 가로막힌다. 그의 눈은 다시 혼탁하게 물들었고, 다시금 굉음을 내지른다. 충격파 수준의 포효에 구포의 몸이 뒤로 튕겨날 정도다. 소래는 지체없이 도끼창을 찔러넣지만 하스타는 이미 그 자리에 없다.

머리 위에서 덮쳐오는 하스타. 두 사람은 공격을 피하지만 곰 수인이 발을 내려찍자 땅이 흔들린다. 체격 차이 떄문에 구포는 곰 수인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지 못하고 칼을 휘둘러 발톱을 흘려내는 것이 고작이다. 소래가 도끼창을 휘두르며 곰 수인의 맹공을 저지하려 하지만 하스타는 집요하게 구포를 노린다.

하스타가 팔을 옆에서 휘둘러 치고, 발톱 사이에 구포의 검이 낀다. 하스타는 팔을 틀어 구포의 검을 빼앗으려 하지만 구포는 검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광포한 곰 수인의 완력에 구포는 휘청이고, 자세를 잃은 그를 하스타가 짓밟으려 한다.

그 때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무언가가 하스타의 안면에 직격한다. 폭발탄의 충격으로 하스타가 주춤한 틈에 소래는 도끼창을 두 번 휘둘러 양팔을 베어버린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는 하스타의 다리를 하나씩 베어내는 구포. 곰 수인은 사지를 잃은 채 바닥에 나자빠진다. 소래는 망설이지 않고 도끼창을 내려쳐서 하스타의 목을 자른다.

[다들 괜찮아?]

덱스와 하누가 누군가를 부축한 채 수풀 속에서 걸어나오는 중이다. 잘 보니 낮에 그들을 상대했던 마을의 촌장이다. 헌데 오른팔이 없고, 피를 많이 흘렸는지 낯빛이 창백하다. 잘려나간 오른팔에는 임시로 옷을 찢어낸 조각을 허리띠로 동여매 놓았다.

[덕분에 살았군. 감사하네.]

[에이 뭘, 벌써 백 번도 넘었을텐데.]

[그 사람은?]

[촌장이야. 한팔을 잃고 쓰러져 있는걸 찾았지.]

촌장은 대화를 듣더니 힘겹게 고개를 든다.

[그놈은... 죽은 겁니까?]

[그렇소.]

촌장은 씨익 웃는다.

[잘됐군요! 정말 잘하셨습니다! 곰 사냥은 옛 세계에서도 위대한...]

[야, 입닥쳐.]

촌장의 말을 끊은 덱스는 차갑게 그를 노려보고 있다. 촌장은 잠시 멍한 얼굴을 하더니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미안... 미안합니다. 헛말을 했습니다.]

[크흠.]

구포와 소래는 못 들은 척 헛기침을 한다. 이내 구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한번 쉬고는 입을 연다.

[이 자의 이름은 하스타였네.]

[대화를... 나눈 겁니까?]

[그래. 잠깐 정신이 돌아왔을 때. 시체 마법에 몸과 마음이 침식당하는 중이었지.]

하누가 끼어들어 묻는다.

[정말 시체 마법이 맞나요? 수인이 시체 마법에 걸린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요.]

[불가능하지는 않지. 하지만 일단 속히 처리할 일이 있네.]

구포와 소래는 하스타의 조각난 시신을 한데 모으고는 불을 붙인다. 그의 몸을 잠식한 검은 피는 별다른 장작 없이도 불을 만나자 즉시 타오른다. 구포가 머리를 숙이고 예를 갖추는 사이 하누는 촌장의 상처를 살핀다.

[피를 더 흘리기 전에 돌아가서 처치받아야 해요.]

[지혈하는 데엔 불을 써야지.]

덱스는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화장 불에 달군 후 촌장의 상처를 지진다. 촌장은 눈을 질끈 감고 신음한다. 

[시체 마법에 대해 말해주세요.]

하누의 부탁에 구포가 대답한다.

[그래, 알아둬야겠지. 하누, 검은 체액을 봤지? 시체병에게서, 하스타에게서.]

[네. 그래서 의아했어요. 수인에게서 시체병과 같은 피가 흐르다니.]

[그 검은 피가 바로 시체 마법의 정체라네.]

[어떻게 작용하는 거죠?]

[우선, 살아있는 인간의 몸에서 검은 피는 거의 힘을 못 쓰네. 수인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숨이 붙어있는 상태에선 검은 피가 몸에 들어오더라도 곧 배출해낼 수 있지. 하지만 이미 시체가 된 육신에 검은 피가 침투하거나, 아니면 검은 피를 체내에 지닌 상태에서 죽게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지네,]

[침식당하는 건가요.]

구포는 고개를 끄덕인다.

[시체병과 싸울수록 시체병이 늘어난 까닭이 바로 그거라네. 시체병에게 당한 인간이 모두 시체병이 됐으니까.]

[그럼... 최초의 검은 피는 어디서 나온 거죠?]

[그게 마녀의 소행이라네.]

촌장이 몸부림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며 끼어든다.

[시체병은 전쟁으로 불타버린 북쪽 땅끝에서 나타났다고 전해집니다... 아마 그곳에서 마녀가 자신의 군대를 일으킨 거겠죠.]

하스타의 시신을 태우는 불꽃이 사그라들기 시작하자 구포 일행도 떠날 채비를 한다. 촌장이 묻는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그건 왜 묻나?]

[마을로 와서 하루라도 묵고 가십시오. 별로 내세울 건 없지만 침상 정도는 내어드리겠습니다.]

[아니, 됐네.]

구포와 소래는 내키지 않는 듯하지만 덱스는 의견이 다르다.

[그러지 말고, 하룻밤 푹 쉬었다 가자. 하누도 눈 좀 붙여야지.]

촌장도 거든다.

[부탁드립니다. 사례하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마을에 가까워지자 망을 보던 주민들이 달려나온다. 그들은 촌장의 상태를 보고 소스라쳐서 하누와 덱스에게서 촌장을 떼어내듯 부축해간다. 촌장이 손을 들어서 그들을 잠시 멈춰세우더니 말한다.

[이분들이 나와 이 마을을 구해주셨다. 최대한 공손히 모시게들.]

그리고 촌장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주민들은 당황해서 촌장을 들어올려 마을 안으로 달려가고, 남아있는 몇몇이 하누 일행을 안내한다.

[우선 여기서 묵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민 중 적당히 나이가 든 남자가 하누 일행을 커다란 너와집으로 안내한다. 안에는 말린 풀을 쌓아서 마련한 침상이 딱 네 개 있다. 중앙의 화덕에 놓인 냄비에선 이미 물이 끓고 있다. 

[시장하실 테니 드실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다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싱싱한 건 없고, 말린 생선과 말린 과일 정도인데, 그걸로도 괜찮으실까요..?]

덱스가 대표로 말한다.

[요기만 된다면 뭐든 괜찮아요. 대신 빨리요. 배가 고프다기보단 피곤하거든요.]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떠나려는 일행을 누군가 불러세운다. 얼굴이 반쪽이 된 촌장과 그를 부축하는 주민이다.

[벌써 가시는 겁니까?]

[여기 오래 있을 이유는 없죠.]

이에 하누가 끼어든다.

[촌장님, 저희가 당신네를 도우면 마사리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했죠.]

[맞아, 그랬지. 내가 아는 걸 말해주겠네.]

마사리라는 이름에 삼인방도 바로 주의를 기울인다.

[마사리 대장이 마녀 전쟁의 마지막 날 전사했다는 건 나도 압니다. 다만, 그 최후에 대해서는 의문도 많았죠.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마사리 대장의 목격 보고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네. 우리도 봤거든.]

구포가 답하자 촌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여긴 망령의 땅인가 봅니다. 시체병에 이어 이제는 전사의 메아리라니.]

[감상은 집어치우고, 정보를 말하게.]

[좋아요. 마사리 대장을 닮은 자가 식량 수레를 끌고 어디로 가는지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멀리 북쪽으로 가야 합니다만, 어쨌든 그의 말로는 쌍둥이 소나무 두 그루가 입구를 지키는 동굴이라고 합니다. 마사리 대장은 거기로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확실한 건가?]

[믿을만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정보입니다.]

하누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당신 목숨 값으로 받은 정보라면 한번 믿어 보죠.]

[그게 전부가 아니라 따로 드릴 게 있습니다.]

[따로?]

촌장이 손짓하자 마을 주민이 큼지막한 자루 하나를 지고 나온다.

[말린 생선과 과일 꾸러미입니다. 지금 저희가 가진 걸 모두 털었습니다. 제 실수에 대한 사죄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구포가 껄껄 웃는다.

[그럼 사양 않겠네. 이건 오히려 우리가 고마워해야 하겠군. 아, 떠나기 전에.]

구포가 운을 떼자 다들 그를 바라본다.

[혹시 검 한자루 받아볼 수 있을까? 여기 하누가 쓸만한 걸로 말일세.]

촌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저희 마을엔 전투용 검 같은 건 없습니다. 대신 여기서 개울을 거슬러 올라 정북쪽으로 가면 훨씬 큰 정착지가 나옵니다. 거긴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니 아마 대장장이나 검을 파는 사람 정도는 있을 겁니다.]

구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일행은 작별을 고하고는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들의 뒤로 촌장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전사들의 시신을 수습해야 하니 손이 남는 사람은 거들도록! 정오 전에 출발한다!]

그렇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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