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기반 18엘 x 리바이




정말로 특별한 이유가 있어 내려간 건 아니었다. 단지 문득 달력을 보다가, 녀석이 뜸해진 지 근 한 달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야 가끔 엘런이 늦은 밤에 방문을 두드리는 일은 있었지만. 허나 무슨 까닭인지 매번 피곤한 낯빛이라, 내버려 두면 녀석은 몇 마디 지껄이다 으레 남의 침대에서 눈을 붙이곤 했다.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몇 가닥 쓸어 넘겨주다가, 어렴풋한 잠에 빠지면 금세 동틀 녘. 그렇게 몇 번 한 침대에서 밤을 보내기는 했으나.

그래도 이렇게까지 관계가 뜸해졌던 적은 드물었다.

제 동기 녀석들과 어울리는가 했는데, 미카사와 아르민의 말을 들어 보면 요즘 엘런은 혼자 어딘가로 사라지는 일이 잦다는 모양이었다. 녀석도 이제 열여덟, 혼자 있고 싶은 때가 잦아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다. 그럼에도 녀석의 수수께끼 같은 행보는 영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옅은데도 근래 들어 도무지 속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도 그렇고. 물론 알고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아주 단순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짚이는 곳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아니,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엘런의 방문 앞에 다다라 고개를 저으며, 리바이 아커만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점호도 끝나고 대부분의 병사가 잠든 지 오래된 시각이라 사방이 조용했다.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부러 계단 언저리에서 기다려 보았지만 인적은 없었다. 엘런의 방에도 물론, 드나드는 사람은 없다.

잠시 망설인 끝에,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방문 앞으로 다가가 두어 번 문을 두드렸다. 소리는 가능한 낮추어서.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몇 초 기다리다가, 문고리를 돌렸다. 잠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문고리는 의외로 매끄럽게 돌아갔다.

숨을 크게 들이켜고,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문을 두드렸을 때부터 아무 반응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러나 실제로 텅 빈 방을 목격하자 일순 허탈함이 몰려왔다. 리바이는 자기도 모르게 긴 한숨을 쉬었다.

천천히 문을 닫고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 방 안에선 익숙한 엘런의 체취가 풍겼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 책상 위에도 이렇다 할 생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먼지 없이 말끔한 책상 위를 공연히 손끝으로 훑어보다가, 그는 다시 한 번 방을 둘러보았다. 널브러진 옷 하나 없는 바닥. 벽에 단정하게 걸려 있는 단복. 엘런은 방을 정리한 뒤 꽤 오래 비운 것 같았다.

그는 이렇다 할 목적도 없이 방을 몇 걸음 거닐다가, 어느 순간 맥이 풀린 사람처럼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역시, 여자라도 생긴 건가…….

설마 했지만 이 시간까지 방에 없다니. 달리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솔직히 말해 그것밖에 짚이는 게 없었다. 인류의 희망이란 타이틀을 제하더라도 꽤나 눈에 띄는 얼굴. 나날이 늘어가는 병사들 중 좋다고 따라다니는 녀석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엘런은 딱히 여자를 싫어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녀석이 자신에게 그랬듯, 절절하게 다가오는 신병을 못 이겨 받아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

생각이 구체적인 상상으로 이르기 전, 리바이는 고개를 젓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이런 일은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깔끔해진다. 그는 사람이 머무른 티가 나지 않도록 이불을 가볍게 정리하고, 곧장 문가로 다가섰다.

하기는 처음부터 오래 이어질 것이라곤 기대도 안 했던 관계였다. 떠나보내는 것도 뭣도 아니다. 다만 녀석도 어른이 되어 갈 길을 가는 것뿐. 어색함은 잠깐이고 곧 아무렇지 않은 사이가 되겠지. 상사와 부하 치고는 꽤 허물없고, 뻔뻔한 농담을 주고받곤 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려던 순간.


문고리에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별안간 문이 벌컥 열렸다.

“……!”

이윽고 방으로 들어서던 엘런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세요? 이 시간에.”

당황한 낯빛도 잠시, 표정을 추스르며 엘런이 물었다. 그 말에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엘런이 등 뒤로 문을 닫았다. 그것을 보는데 ‘퇴로가 막혔다’는 생각이 떠오른 건 어째서일까. 목 위가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리바이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잠깐…… 방에서 없어진 게 있는데 혹시 네 방에 있나 해서.”

“그래요? 병장님이 마지막으로 제 방에 오신 지 한 달은 더 된 것 같은데.”

엘런의 말은 가벼웠지만 허를 찌르는 데가 있었다. 그럴 듯한 대꾸를 찾지 못한 사이 엘런은 그를 지나쳐 침대 위에 외투를 던져 놓았다. 그러다 일순 그의 시선을 의식한 듯, 얼른 외투를 들어 대충 먼지를 털고는 옷걸이에 도로 걸어 놓았다. 리바이는 그 일련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여기 오래 있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 서둘러 말을 이었다.

“네 허락도 없이 멋대로 들어와서 미안하다. 잠깐 물어 보려고 왔더니 문이 열려 있길래…….”

“괜찮아요. 문 잠그는 걸 깜빡했네요. 뭐, 누가 가져갈 것도 없는 방이니까 상관없지만.”

“뭐 하다 온 건진 모르겠지만 너무 늦은 시간까지 나돌아다니지 마라. 그럼…….”

리바이는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몸을 돌렸다. 어서 빨리 이 방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때 잠깐만요, 라며 엘런이 다급히 다가왔다. 그가 문고리를 붙잡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엘런이 그의 한쪽 팔을 가까스로 붙들었다.

“……이대로 가시게요?”

엘런의 옅디옅은 잿빛 눈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이유 모를 오싹함을 느끼며, 리바이는 천천히 대꾸했다.

“……그럼 가지 뭘 하냐?”

“아직 못 본 볼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엘런의 시선이 그의 코와 입을 지나쳐 미끄러지듯 목 아래로 내려갔다. 노골적인 눈길에 움찔한 순간, 엘런이 부드럽게 손을 뻗어 문고리에 걸쳐져 있던 그의 손을 앗아 왔다. 그와 동시에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발 늦었다고 생각하며, 그는 엘런의 입술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였다.


엘런은 꽤나 서둘렀다. 셔츠를 채 벗기도 전에 엘런의 손에 의해 바지와 속옷이 한꺼번에 내려갔다. 시간이 늦어서인 건지, 아니면 이 시간까지 나갔다 온 걸 들켜서 적당히 얼버무리려는 건지.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가 할 말은 없을 터였다.

혀를 섞고 가슴을 몇 번 어루만졌을 뿐인데, 리바이는 허벅지에 딱딱하게 선 엘런의 성기가 닿는 것을 느꼈다. 그가 저도 모르게 아래쪽으로 시선을 주자, 엘런이 약간 민망해진 듯 덧붙였다.

“아니, 요즘 통 못 했잖아요. 꽤 쌓여서…….”

잔뜩 성이 나 아랫배에 팽팽하게 올라붙어 있는 성기는 몇 번이나 보았음에도 아직껏 그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녀석이 그를 욕정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 젊다는 것을 감안해도 그 욕망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는 새삼 배 속 깊숙한 곳이 짜릿하게 당겨오곤 했다.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기분. 그래도 굳이 설명하자면, 하고많은 사람 중 녀석이 원하는 게 어째서 자신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고에 대한 꺼림칙함이 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괴롭기까지 한 쾌감에 대한 기대가 나머지 반.

왜 녀석은 나를 안고 싶어할까. 선명하고 날카로운 욕정이 그의 하반신을 저며 놓을 때마다 그는 영문을 알지도 못하면서 엘런의 품에 안겨 흔들렸다. 그러나 어쨌든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거짓이 아니란 걸 느꼈기 때문에 그 말은 더더욱 설게 다가오곤 했다.

잡념을 방해하듯, 엘런이 그의 사타구니 안쪽에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오늘은 로션을 써야 할 것 같아요, 라고 속삭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엘런은 곧 침대 옆 서랍에서 로션 통을 꺼냈다. 그는 엘런의 손이 유액으로 범벅이 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엘런의 손은 길고 마디가 굵어서, 가끔은 손가락 두세 개만으로도 버겁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자신의 내부를 사정없이 휘저어놓는 저 아랫도리에 달린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윽고 입체기동장치를 잡느라 굳은살 박힌 손가락이 고간을 비집고 들어와 점막 사이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억누른 신음을 흘리며, 리바이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본인 말대로 쌓였던 건지, 엘런은 삽입도 하기 전에 그의 허벅지에 문질러 한 번 빼고는 곧 회복해 그의 엉덩이 안에 제 성기를 밀어넣었다. 그로부터 두 번을 더 했지만 걸린 시간은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사정 직전 엘런이 몸을 빼내 그의 허벅지와 아랫배에 토정하는 것을 느끼면서 리바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근 한 달 만에 한 탓인지, 하는 내내 구멍이 엘런을 빠듯하게 조이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거기다 지금은 꽤 부은 것 같았다.

“십 분만…… 십 분만 쉬고 씻으러 갈게요.”

그렇게 말하며 사정을 마친 엘런이 리바이의 몸 위로 쓰러졌다. 십 분이 이십 분이 되고 삼십 분이 될 것 같았지만 리바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인도 적잖이 노곤했던 탓이다. 처음도 아니지만 한창 나이의 훈련된 병사를 상대하는 일은 매번 녹록지가 않았다.

오 분쯤 지나자, 꽤나 거칠었던 엘런의 숨이 상당히 가라앉았다. 자신의 호흡도 진정되기를 기다려, 그는 건듯 던지듯이 입을 열었다.

“……요즘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엘런은 대답 대신 감고 있던 눈만 떠 그를 바라보았다. 후유, 하고 한숨을 내쉬며 리바이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하도 안 보이길래 난 여자라도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쌓였다는 걸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러자 엘런이 픽 실소를 터뜨렸다.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 마른 웃음을 뱉고는, 그의 뺨을 돌려 제 쪽으로 고정시켰다.

“왜 갑자기 방에 와 있나 했는데, 설마 그런 걱정을 하셨을 줄은.”

“걱정이 아냐…… 추론이지.”

“신경 쓰이세요? 제가 다른 사람 만날까 봐.”

“그런 게 아니라니까. 네가 누굴 만나든 네 자유지…….”

그렇게 말하자, 왜인지 뺨을 붙잡고 있는 엘런의 손가락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엘런의 얼굴에 천천히 웃음기가 가셨고, 그는 램프의 불빛에 어렴풋이 금빛을 띠고 있는 엘런의 눈동자를 의아히 바라보았다.

“……예, 자유죠. 그래서 제가 병장님을 만나고 있는 거고.”

언제 웃었냐는 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

“…….”

“제가 다른 사람을 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분히 떠보는 어투인 걸 알면서도, 그는 모르는 척 대꾸했다.

“……기분에 따라선 그럴 수도 있잖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자기 마음에 솔직한 게 좋지.”

“지금의 전 솔직한 게 아니고요?”

엘런이 물었다. 그 눈이 사람을 꿰뚫어볼 듯하여, 리바이는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

엘런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이 한참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몇 번 입술을 달싹인 끝에, 엘런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그가 흘리던 것과도 닮은 긴 한숨이었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됐어요. 그걸로 충분해요.”

엘런은 고개를 돌려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정사의 여파로 잔뜩 흐트러진 뒤통수. 누가 봐도 그것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제스처였다. 그럼에도 그는, 불쑥 처음의 화제로 말꼬리를 돌렸다.

“……그래서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데?”

“지금은 말 못 해요.”

엘런은 간단하게 받아치고는 그만이었다. 아무래도 캐물어볼 필요가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적어도 지금 따지고 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을 그도 모르진 않았다.

한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엘런은 도통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리 사이도 찜찜하고, 하는 수 없이 그가 먼저 씻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킨 찰나였다.

불현듯, 엘런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전 병장님을 안을 때만큼은 진심이에요.”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들릴 듯한 낮은 소리로, 엘런이 중얼거렸다.

“다른 건 생각 안 해요. 다른 걸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당신이랑 단둘이 있을 때만 겨우 숨통이 트여요. 정말로 지금만이 제가 솔직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거, 알기는 해요?”


그가 좀처럼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는 동안, 엘런은 힘주어 잡은 손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깨닫게 되기까지, 꼬박 일 년의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을 아직 그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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