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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의 샘플은 폭력, 강간 등의 묘사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Kill Your Darlings


최근, 뒷세계에서 신종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흔히 모든 마약이 강력한 중독성을 띄는 게 특징이라지만, 이번에 유통되는 신종 마약은 한번이라도 먹는다면 극도의 쾌락과 공격성을 안겨주면서 거의 일상생활은 할 수 없게 만들 정도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약을 유통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조직의 이름은 바로, 귀홍랑.

자칫 이름만 듣는다면 홍콩의 삼류 조직같이 들릴지라도, 꽤 오래전부터 이쪽 세계에선 큰 위력을 떨치고 있는 조직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법에 위반되지 않는 물건을 유통하면서 점차 아시아부터 유럽 쪽까지 거래를 넓히면서, 각국의 유명인사들 인맥까지 얻게되자 공권력조차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규모로 커져나갔다. 하지만 뒤로는 이런 마약을 유통하고 있다니, 불경하기 짝이 없군. 귀홍랑에 대한 모든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는 서류를 훑어보던 하스미 케이토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봤자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와 운이 좋게 권력을 잡은 쓰레기 집단일 뿐이다. 분명, 조직을 지배하는 자의 목을 친다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겠지. 그러기 위해선 귀홍랑의 1인자, 키류 쿠로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했다.


“…그것보다 귀홍랑이 키류 쿠로의 한자 이름이라고?”


마지막 문단에 덧붙인 말이 어이가 없어, 하스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찌 제 이름을 걸고 저리 뻔뻔한 짓을 하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서류 옆에 놓인 사진을 집어든 하스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베이지색 버버리 자켓에 상징이랍시고 집어넣었는지, 모든 사진 속의 키류 쿠로는 붉은색의 헹커치프를 하고 있었다. 거기다 귀에는 여러 개의 피어싱까지? 이거야 원, 조직의 보스가 아니라 순전히 양아치로군. 거기다 사진에서도 확연하게 보이는 헹커치프보다 더 새빨갛게 타오르는 머리 또한 꽤나 인상 깊었다. 하스미가 몸을 담고 있는 유메노사키의 정보력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실제 키류 쿠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선 역시 위장 잠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임무는 당연하게도 수석 정예 요원인 하스미 케이토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유메노사키 에이전트, 경찰의 공권력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대상들을 주로 임무 타겟으로 맡는 비공식 기관. 또한 대기업 쪽뿐만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큰 입지를 가지고 있는 텐쇼인 가문의 자제, 텐쇼인 에이치가 세운 에이전트 기관이기도 했다. 이 기관이 어떤 이유로 설립이 되었고, 여기에 소속된 요원들이 정확히 어떤 훈련을 받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만큼 바깥으로 정보가 조금이라도 새어나오지 않게 철저했으며, 의뢰비만 확실하게 준다면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받은 의뢰를 실패한 적이 없는 곳. 유메노사키에 귀홍랑이 신종 마약을 유통하는 증거를 잡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는 건 당연했다.


“케이토, 정말 혼자 가도 괜찮겠어?”


불현 듯 들려온 유메노사키의 수장이자, 제 소꿉친구인 텐쇼인의 목소리에 하스미는 눈을 감았다 뜨곤 그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서류에 집중하는 사이 그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평소처럼 여유로운 얼굴로 직접 프랑스에서 가서까지 공수해온 차를 마시는 모습이, 별로 혼자 적진으로 들어가야 할 소꿉친구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잠입 임무는 되도록이면 혼자 가는 게 좋아. 무엇보다 정보를 알아오는 게 최우선이니, 쓸데없는 희생을 늘릴 필요는 없지.”

“그 말은 꼭, 죽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로 들리는 걸.”

“키류 쿠로는, 유메노사키의 정보력으로도 다 알아내지 못한 인물이야. 그가 있는 조직으로 혼자 잠입을 한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임무라는 얘기다.”

“그래도 죽지 않을 거잖아?”

“네가 날 죽지 않게끔 만들겠지.”

“잘 알고 있어서 어쩐지 재미없네, 케이토.”


그러니 어떤 모멸과 수치라도 끝까지 다 견뎌서 목숨만은 지켜내, 케이토. 네가 숨이 붙어있는 한, 난 너를 구할 수 있으니까. 언제나 그래왔듯이, 라는 말을 집어 삼킨 텐쇼인의 시선이 책상에 흐트러진 사진 속 인물로 꽂혔다. 텐쇼인은 키류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가문에서 직접 연 사교 파티에서, 본인이 대단한 무언가라도 되는 양 기세등등한 얼굴로 들어오는 게 퍽이나 어이없었지. 그래, 그 날은 새로 맞춘 것 같은 때 하나 타지 않은 새하얀 정장을 입고 왔었다. 역시나 붉은 헹커치프를 오른쪽 가슴에 달고.


‘요즘 사업은 잘 되고 계시나요, 키류 군?’

‘높으신 분께서 걱정해주실 정도로 위태롭진 않죠.’

‘아, 제가 잘못 물어봤네요. 눈에 보이는 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업을 얘기한 거였는데.’

‘뭐, 어느 쪽이 되든 제 대답은 똑같습니다.’


제 사업은 무너질 일이 절대 없습니다, 텐쇼인 회장님. 라고 건방지게 말하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잘도 피해 다니는 귀홍랑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 하나만 잡을 수 있다면, 그를 무너뜨리는 건 순식간이다. 다만, 그 증거 하나를 잡기 위해 여태껏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케이토, 너라면 내 기대를 저버릴 일은 하지 않을 거야.


*


귀홍랑의 키류 쿠로는 지금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정으로 나온 명품 시가를 뻑뻑 피워도 보고, 백화점에 미리 예약까지 해두고 기다린 값비싼 코트까지 제 부하가 가져와서 보여줬지만 한번 찡그린 미간은 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 쥐새끼 한 마리가 들어와서 제멋대로 설치고 다니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그게 내가 아끼는 놈이었을지는 몰랐지. 가늘게 뜬 눈으로 자신의 앞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기둥에 묶여 꼼짝도 못하고 있는 쥐새끼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본다. 언제나 단정하게 오대오로 정돈 되어있는 초록색 머리카락-특히나 키류는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제 눈동자 색이랑 닮았다면서 머릿결을 만지는 것도 좋아했다-, 끝부분이 각이 진 하얀색의 안경, 머리카락보다 연한 빛의 눈동자. 조직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영 미심쩍긴 했다만, 일을 시키면 똑바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대답도 잘하는 주제에 능력은 남들보다 배로 뛰어나서 계속 옆에 놔뒀었다.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하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하지 말라면서 손을 탁 치는 모습도 굉장히 건방졌고 말이야. 그 때마다 노려보는 눈은 채도가 옅어서 꼭 연두색의 속까지 다 보이는 투명한 유리구슬 같았다. 저걸 뽑아서 장식품처럼 방에 놔둘까, 싶다가도 저를 보면 또르륵 움직이는 게 예뻐서 놔뒀더니 진작 뽑아버릴 걸 그랬네, 이런 허튼 짓 하지 못하도록. 키류가 피고 있는 시가를 와작, 소리가 날 정도로 씹어버리자 그의 충실한 오른팔인 나구모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보고 드립니다. 이름, 하스미 케이토. 나이, 25살. 키, 178cm. 몸무게 60kg…….”

“고작 그거 밖에 안 나가?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만지면 부러질 것처럼 생겼다 했더니. 그리고?”

“가족 관계로는 양친과 형이 한 명 있습니다. 유메노사키에는 15살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역시 조기 교육만큼 좋은 건 없지. 어린 아이들은 한번 가르쳐주면 스펀지마냥 금방 자기 것으로 만들거든. 그게 설령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라고 할지라도.”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보스. 언제나 저를 일찍 거둬주신 거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네가 내 눈에 띄워준 덕분이지, 테츠.”


나구모가 조사한 내용을 듣고 있던 키류가 천천히 묶여있는 남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새까만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그의 턱을 우악스럽게 쥐자, 입가에서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앞에서 본다면 섬뜩하리만큼 무감각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키류의 손이 올라갔다. 짝!! 방 안에 크게 울려 퍼지는 마찰음에 지켜보고 있는 나구모 또한 잠시 움찔거렸다. 자신의 보스인 키류는 웬만해선 직접 손을 쓰지 않는다. 손으로 누군가를 때리는 감촉을 불결하다는 식으로 입버릇처럼 말하며, 항상 도구로 깔끔하게 상대의 목숨을 끊어내는 사람이었다. 뺨을 내리친 탓에 저 멀리까지 날아간 남자의 안경을, 키류가 집어 들어 퍽 다정한 손길로 남자에게 씌워주었다.

하스미 케이토. 얼마 전까지 귀홍랑의 정보원이었으나 바로 오늘, 귀홍랑과 대항하는 유메노사키의 간부급 에이전트 요원으로 밝혀진 남자. 제 아무리 뛰어난 요원이라고 해도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야금야금, 이쪽의 정보를 넘기고 있는데 어찌 꼬리가 안 밟힐 수가. 그래도 이런 쥐새끼 한 마리를 거의 반년이 다되도록 눈치 채지 못한 건 귀홍랑의 큰 수치였다. 더군다나 자신이 그를 아꼈던 만큼 더 괘씸하게 느껴지는 배신감에, 키류의 손이 다시금 같은 뺨을 내리쳤다. 악력으로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그가 잔뜩 힘을 실어 때렸으니, 분명 단 두 번의 손찌검으로도 하스미의 입안이 너덜너덜해졌을 거다. 버티지 못하고 떨어진 안경에는 벌써 금이 나 갈라져버렸다. 이렇게 금방 망가져버리면 안되지. 안경을 쓴 이의 얼굴을 때리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니까. 퉁퉁 부은 볼 뿐만 아니라 금이 간 안경에 긁혔는지, 생채기가 난 곳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자 몸을 흠칫 떠는 하스미의 모습이 봐줄만 했다.


“그래서… 유메노사키 수장이랑은 무슨 관계지?”

“텐쇼인 에이치와는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라고 합니다. 또한 유메노사키를 이끄는데 하스미 케이토가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그에게서 충분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녀석의 충실한 개겠지.”


상처를 매만지는 손가락이 입술 쪽으로 내려왔다. 벌리라는 듯 엄지로 아랫입술을 톡톡 건드리자, 하스미의 눈빛이 좀 더 매서워졌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싹싹 빌며 제 목숨을 구걸해야 할 상황이었다. 분명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보고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에이치는 바로 눈치를 채고 하스미를 구하러 올 거다. 그 때까지만 버텨서 그에게 꼭 알려줘야 할 귀홍랑의 큰 정보를 건네줄 수만 있다면, 제 목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처음부터 유메노사키에 바치기로 맹세한 몸. 어떤 치욕이든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

하스미가 살짝 입을 벌리자, 장갑을 낀 손가락이 재빠르게 입 안을 파고들었다. 방금 핀 시가와 가죽 냄새가 뒤섞이면서 코끝으로 훅 들어오자, 속이 울렁거렸으나 그럴수록 하스미는 눈에 더 힘을 주고 키류를 노려봤다. 마음 같아선 장갑을 벗고 말캉한 혀라든지, 질척한 입안 감촉을 느껴보고 싶은데 저 눈빛을 보아하니 그랬다간 당장이라도 물려버리겠지. 원래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를 길들이려면, 길고 긴 인내심이 필수한 법이다. 어느새 안쪽으로 밀어 넣은 검지와 중지로 혀를 가운데에 끼고 뭉근하게 비비적거리자, 금방 삼키지 못한 침이 흘러내렸다. 가만히 있지 말고, 옳지. 혀를 쓰면서 핥도록 해. 값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가죽 장갑이 타액에 젖어 질척하게 되어버려도, 천하의 키류 쿠로가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츄웁, 춥. 손가락을 빠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릴수록 점점 고조되는 흥분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처음 하스미의 얼굴을 봤을 때부터 사내 녀석이 단정하고 곱게 생겨가지곤,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모습이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은 들게 했어도……. 막상 그 얼굴로 이렇게 붙잡힌 상태로 서류 대신 겨우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니 이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내 부하인줄 알았건만, 앙큼하게 나를 잡아먹을 속셈을 하고 있는 도둑고양이라니. 맞은 지 얼마 안돼서 퉁퉁 부어오른 볼을 키류의 다른 손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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