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를 거치지 않아 오타와 비문이 다소 존재할 수 있습니다.

※ 대략 3권 챕터 4~5 사이의 상황으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달달.ver]

도련님과 잡놈

(와두대 챌린지)

 



 

 

“어디 보자…….”

 

은오는 새하얀 화지를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곁에 쪼그리고 앉은 여울도 은오를 따라 진지한 눈으로 화지를 들여다본다.

일단 오른손에 쥔 붓을 벼루에 푹푹 찍어 검은 물을 먹인 뒤, 은오는 인상을 찌푸리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뭐라고 쓴댔더라?”

 

바로 어제 낮에 들은 이야기인데, 막상 필요할 때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은오는 눈알을 굴리며 머릿속을 헤집어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쁜 머리는 아닌지라, 다행히 곧 생각이 났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네 말은 투기하라고 부러 수작질을 부린다는 거지?’

 

요즘 저잣거리에 요상한 유행이 돈다는 것이다. 주로 여인들 사이에 도는 유행이라는데 무엇인가 했더니, 내용이 참으로 희한했다. 부러 다른 사람을 만나는 척하여 정인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라나.

 

‘그럼 서방 놔두고 외간 놈이랑 간음질한다는 거야?’

 

서화는 뭐 그런 지저분한 유행이 다 있느냐며 혐오스러워하는 반응을 내보였다. 이에 이야기를 들려준 일벗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얘는! 설마 그럴라고. 그게 아니라, 외간 놈한테 보내는 척 거짓으로 서신을 쓰는 거지.’

‘어떻게?’

‘대충 서방님 나가셨으니 얼른 오셔요, 라고 써놓고 숨겨놓은 척 은근히 보이는 데다 두는 거야.’

‘난 또 뭐라고. 차암 할 짓도 없다!’

 

누구는 서방은커녕 먹고 사느라 사내 만날 틈도 없는데, 있는 것들이란! 으이구!

서화는 방망이로 세답물을 후드려 패며 있는 힘껏 빈정거렸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은오의 반응도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은오로써는 사실 도대체 왜 부러 좋아하는 사람을 열받게 만든다는 건지 그 심리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애? 재밌지 않아? 난 만나는 놈만 있으면 한번 해보고 싶은데. 궁금하잖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주 그냥,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고 생각해 봐. 으흥~ 너무 귀엽겠다.’

‘너도 참 순진하다. 손버릇 더러운 작자면 어쩌려고? 어딜 감히 상간질을 하느냐면서 때리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그야 뭐어..... 그런 놈이면 본색 봤구나 하고 당장 헤어지면 되는 거 아냐.’

‘으이구, 기집애! 겁도 없다.’

‘서화 너도 만나는 놈 있음 해보고 싶을 걸? 그치, 은오야.’

 

은오는 난데없이 날아든 화살에 눈을 끔뻑거리며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며 ‘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여종이 고개를 끄덕하며 미끼를 던지는 게 아닌가.

 

‘그래. 도련님 말이야.’

 

도련님.

은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이만큼 좋은 미끼는 없을 것이다.

뭘 하다가도 도련님 소리만 들리면 귀가 두 배로 커지는 기분을 느끼는 은오였다.

 

‘도련님이 뭐가요?’

 

은오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본 여종이 짓궂은 미소를 피워 올리며 말했다.

 

‘너 도련님 투기하는 거 본 적 있어?’

 

투기. 다른 말로 하자면 시기.

도련님이 화내는 건 많이 봤지만, 투기하는 건 당연히 본 적이 없었던 은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여종이 옳다구나! 하며 대놓고 옆구리를 찔러대기 시작했다.

 

‘궁금하지 않니? 너 다른 사내나 계집 좋아한다 하면 도련님이 어떤 반응 보이실지 말이야.’

‘어…….’

 

은오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대며 머릿속에 투기하는 도련님을 떠올려 보았다.

어떻게 다른 놈을 만나느냐며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도련님……은 말도 안 된다. 천지가 개벽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 도련님의 모습을 보면 도리어 제가 충격받아 정신이 혼미해질지도 몰랐다.

어쨌든, 짐작이 되질 않았다. 투기하는 도련님이라니……. 사실 투기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인가. 은오는 정말로 궁금해졌다.

만약 저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면, 만난다 하면, 도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여종의 말에 깜빡 넘어간 사람은 은오만이 아니었다.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서화 마저 ‘호오. 그건 좀 궁금해지는 걸?’ 하며 흥미로워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곧 서화는 몸서리를 치며 손을 휘적거렸다.

 

‘얘! 관둬, 관둬! 도련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서 그래? 어찌하실지 꼭 봐야 아냐고. 우리 도련님은 어? 사람을 찢어. 찢는다니까?’

‘찢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찢니. 은오야, 너 한번 해 봐. 너도 궁금하잖아. 너 글자 좀 안다며.’

‘야, 이 기집애야! 넌 이 맹추한테 그런 걸 시키고 싶니? 은오 얘, 겁 많아가지고 절대 못 해.’

 

기실, 여종이 하라는 짓은 일종의 거짓말이었다. 기만과 거짓을 싫어하는 도련님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한다? 저 죽이시오, 하고 목 내놓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서화는 겁 많은 은오가 감히 그런 짓을 하지 못하리라 단정했다.

하지만.

 

“서방님, 나가셨어요. 와도 돼요……. 맞나?”

 

서화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으니.

지금, 호기심에 홀랑 넘어가다 못해 투기하는 도련님의 모습이 궁금해 잠도 못 이룬 은오는 결국 도련님이 연무장에 간 틈을 타 일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가까스로 거짓 서신에 쓸 내용을 떠올린 은오는 심호흡을 한 뒤 마음을 잡고 화지 위에 붓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점 하나를 찍은 붓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어? 어떻게 쓰는 거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헷갈려서.

글자를 읽어 보기만 했지, 써 본 적은 별로 없었던 탓이다. 읽는 건 그럭저럭 하는데 막상 쓰려니 첫 글자부터 막힌다.

은오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쥐어 짜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붓은 움직였다. 먹물을 한껏 머금은 붓모는 두껍고 지저분한 선을 그려내며 요상한 글자를 만들어내었다.

 

“서…방……. 아니, 잠깐.”

 

서방님이 아니잖아?

서방님이라 하면 혼인을 한 상대를 이르는 말인데, 저는 도련님과 혼인한 바가 없으니 서방님이라는 호칭은 맞지 않다.

은오는 고민하다가 어렵게 쓴 글자 위에 줄을 쫙 긋고 그 밑에 다시 글자 비슷한 걸 쓰기 시작했다. 버리고 새로운 화지에 쓰자니 좀 아까워서다. 종잇값이 얼마인데.

 

“도련님. 도오…. 도…련니임……. 나가셨…. ……와도 돼? ……돼요?”

 

그런데 높임말을 써야 되는 거야, 뭐야.

따지자면 도련님 보라고 쓰는 거니까 높임말을 쓰는 게 맞는 건가?

보낼 상대 없는 거짓 서신은 생각보다도 만드는 게 어려웠다.

무려 반 시진이나 걸려서야 서신을 완성한 은오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긴 숨을 내뱉었다.

 

“됐다.”

 

글자 모양이 좀…… 못 생겼긴 했지만, 제 보기에는 이만하면 알아는 볼 정도였다.

은오는 먹물이 잘 마르도록 손부채질을 한 뒤 여울을 돌아보며 뿌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잘 쓴 것 같지?”

 

짐승이 글자를 어떻게 알겠냐마는, 여울은 그런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끄덕해주었다. 기실 여울의 눈에는 저 검은 덩어리가 대체 무언고 싶었지만. 

은오가 글자를 쓰는 게 재밌어 보였던가. 여울이 갑자기 벼루에 발을 푹 담그더니 서신의 하단에 발자국을 찍었다. 선명하게 찍힌 제 발자국을 확인한 여울이 만족스럽다는 듯 눈을 반달 모양으로 휘며 켕켕 웃었다. 은오도 ‘이야! 완전 잘 찍혔는데?’ 하며 여울과 함께 히히 웃었다.

얼마 지나 먹물이 다 마른 것을 확인한 은오가 서신을 고이 접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련님이 발견할 수 있는 곳에다 두어야 하는데……. 서안 위에 올려놓자니 너무 직접적인 듯하고…….

서책 사이에 끼워 넣었다가, 장식장에 넣어두었다가, 궤안에 넣았다가. 마땅한 곳을 찾아 헤매는데 얼마 후 발소리가 들렸다. 느릿한 듯 존재감이 묵직한 발소리는 분명 도련님의 것이다.

뜨끔한 은오는 저도 모르게 급히 보료 밑에 서신을 쑤셔 넣었다.

곧, 안방 문이 열리더니 채윤사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보료 근처에 엉거주춤 서 있는 은오를 발견하곤 한쪽 눈썹을 끌어 올렸다.

 

“뭐야.”

 

표정이며 자세며 암만 봐도 뭐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놈 같았다. 하여 묻는 거였다. 은오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듯 눈을 부릅뜨고는 고개를 저어댔다.

 

“…….”

“……왜, 왜 그렇게 보세요?”

“수상해서.”

“제가요?”

“그래, 네 놈이.”

“그럴 리가요. 전혀 수상한 거 없어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 말은 채윤사에게 아무 짓을 했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는 뒤늦게 서안 근처에 어질러져 있는 문방구를 확인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의 물음을 읽어낸 은오가 당황스레 변명했다.

 

“아, 아! 이거는요. 다름이 아니라 그……! 나, 난을 쳐보려고요!”

“난?”

“예에. 난……. 도련님 하시는 거 보니까 저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어떤…. 그…, 조금의…, 아주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에는 통 재주가 없는 종놈인지라.

그러나 채윤사는 추궁하지 않았다. 어차피 놈이 뭘 했든 얼마 못 가 밝혀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주제에 같잖은 거짓말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한지라 그는 이리 명령했다.

 

“해 봐.”

“예?”

“해보라고.”

“……예에.”

“내 맘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야.”

 

그리하여 은오는, 이날 밤이 늦도록 도련님 앞에서 줄기차게 난을 쳐야 했다.

아니, 난이라고 하기에는 뭣하다. 그냥 굵직한 선이라 함이 옳았다. 하여 결국 도련님 마음에 드는 난은 나오지 못했고, 괜히 종이만 심하게 낭비한다는 죄목으로 새벽에는 엉엉 울다 앙앙 거리며 벌을 받아야 했다.

 

*** 


다음 날, 채윤사의 예상대로 은오의 수작질은 금세 들통이 나고야 말았다.

먼저 일어난 은오가 세숫물을 챙기러 정주에 간 사이, 뒤이어 일어난 채윤사가 보료 밑으로 빠져나온 서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서신을 펼쳐 안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

 

글자를 훑어보는 그의 눈이 빠르게 짙어진다.

누가 썼고, 여기에 숨겼는지는 자명했다.

그는 잠기운이 싹 가신 명징한 시선으로 뚫어져라 글자를 보고 또 보았다.

잠시 뒤.

 

“도련님. 들어갈게요.”

 

세숫물을 챙겨 온 은오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들어서자마자 채윤사의 손에 들린 것을 알아본 은오가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봤다….

도련님이 보셨다……!

봐버리셨다……!

 

긴장한 은오는 문가에 서서 더 다가가지 못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도련님은 저 서신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투기해주실까? 설마 진짜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건……! 아니, 갑자기 칼을 빼드시는 건……!

걱정과 기대로 가득찬 시선은 곧 채윤사와 부딪혔다.

채윤사가 눈동자를 들추어 은오를 바라본 것이다.

그는 은오를 향해 손으로 까딱거렸다. 가까이 오라며. 은오는 그새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축인 뒤 조심스레 그 앞으로 다가갔다.

채윤사가 서신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뭐지?”

“그, 그거요? 그거는…, 서신인데…….”

“서신?”

“예에…….”

 

채윤사는 다시 글자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렇군.”


내용을 확인했음에도 반응이 어째 미적지근하다.

은오는 차분하기 짝이 없는 도련님의 반응에 어쩐지 민망해지고 말아 머리를 긁적였다.

투기 같은 거 안 해주시는구나…….

울며불며 난리 치는 건 기대도 안 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으실 줄이야. 민망함 뒤에는 실망감이 따라왔다. 은오는 이내 눈썹을 늘어뜨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채윤사가 눈매를 가늘게 접으며 말했다.

 

“그래서. 뭘 원하고 이런 걸 쓴 건지 말해 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뭘 감추랴. 어차피 망했는데. 

은오는 소심한 목소리로 이실직고했다.

 

“그냥 도련님이 그거 보고 투기를 좀 해주시지 않을까 해가지고요.”

“투기?”

“예.”

“이걸 보고?”

“예에…….”

“…….”

 

채윤사는 다시 한번 서신을 훑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서신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서빙니

도린님 나가시다요

와루 리요」


“…….”

 

솔직히 글자라고 봐도 되는 수준인가 싶지만, 좋게 해석을 해봐도 이 정도로 밖에는 읽히지 않는 글자였다.

투기하라고 이런 걸 썼다?

암만 눈치가 비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채윤사는 결국 은오에게 서신의 내용을 물었다.

 

“뭐라고 쓴 건지 읽어 봐.”

 

은오는 왜 모르냐는 듯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예? 보시는 대로…….”

“봐도 모르겠으니 묻는 거야. 앞으로 할 말이 있으면 쓰지도 못하는 글자가 아니라 네 놈 입으로 말해.”

“어? 잘못 썼나?”

 

은오는 고개를 기울여 뒷면에 비치는 글자를 훑어보며 말했다.

글자가 다소 못 생기긴 했지만, 제 눈에는 어떻게 보아도 ‘도련님 나가셨어요. 와도 돼요.’ 로 읽혔다.

 

“도련님 나가셨어요. 와도 돼요 라고 썼습니다.”

“…….”

 

듣고 보니 엇비슷은 하다.

채윤사는 잠시 방황했다.

이 혼잡하고 지저분한 덩어리가 그런 뜻이었다는 것에 황당해해야 하는지, 저 종놈이 그딴 말을 썼다는 것에 어이없어해야 하는지, 도대체 왜 이런 걸 썼는지에 대해 궁금해 해야 하는지.

일단은.


“……이걸 어떻게 봐야 그렇게 읽히지?”

“얼추 비슷하지 않나요?”


뻔뻔하리만치 당당한 대답이었지만, 은오의 말대로 얼추 비슷하기는 한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뭐라 타박을 하기는 좀 어려웠던 채윤사는 은오 때문에 가끔 겪는 두통을 느끼며 눈을 감고 미간을 문질렀다.

 

“…….”

“…….”

“……도련님, 혹시 화나셨어요?”

 

복잡한 채윤사의 표정을 해석하지 못한 은오가 조심스레 물었다.

채윤사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가 투기를 해주길 바라고 이걸 썼다?”

“예, 맞아요.”

“그럼 이제 내가 누굴 상대로 투기를 해야 하는지 밝힐 차례군.”

“예?”

“이 서신을 받는 놈이 누구냐는 말이다.”

“아, 받는 사람이요.”

 

받는 사람.

받는 사람은 없다. 거짓 서신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받는 사람은…….

 

“도련님인데요.”

 

그랬다.

도련님, 채윤사였다.

도련님 보라고 쓴 거니까.

 

“…….”

“…….”

 

다시금 그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투기는 무슨. 그저 한심해하는 듯한 도련님의 반응에 은오가 기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 아무래도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도련님…….”

 

목적이야 어쨌든 거짓말로 상전을 시험하려 하였다. 혼이 나야 마땅하며, 혼이 날 차례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은오는 웅얼거리며 사죄를 올렸다. 호기심을 누르지 못해 기어이 헛짓거리를 저지른 것에 깊이 반성하며. 

하나 은오의 예상과는 달리 채윤사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외려 한숨 같은 웃음을 흘릴 따름이다. 짧은 바람 소리에 은오는 더욱 쪼그라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도련님이 웃고 있다는 걸 모르고.

곧 채윤사가 은오의 앞으로 다가가 잡배처럼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러고는 불쑥 손을 뻗어 은오의 뒤통수를 움켜쥐었다.

 

“좋아. 투기해주지.”

 

언뜻 듣기에는 매서운 말이었으나 목소리는 제법 다정하다. 하여 은오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도련님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없는 동안 다른 놈을 끌어들인다는 발상 자체가 어쨌든 마음에 안 들어.”

“……그, 그러세요?”

 

다른 놈이랑 어쩌고 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단다.

투기를 해주신단다.

은오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나 눈동자는 불안으로 달달 떨리고 있었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였기 때문이다.

은오의 눈동자에 서린 공포감을 알아 챈 채윤사가 퍽 냉랭한 미소를 흘렸다.

 

“다른 놈이 있었다면 본보기로 네 앞에서 찢어 발겨놨을 거야. 다신 그런 잡생각 따윈 못하게.”

 

아이고, 어머니.

은오는 도련님의 잔혹한 언사에 도리 없이 겁먹고 말았다.

 

“하지만, 저 서신을 받는 잡놈이 나라고 하니 그건 안 되겠고.”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도련님한테 보내는 게 아니라, 도련님 보라고 일부러 쓴 거라서 좀 다른…….”

“어쨌든, 서신을 받았으니 잡놈 노릇부터 해줘야지.”

 

채윤사가 한 쪽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은오의 저고리 매듭을 잡아 풀었다.

은오는 당황한 나머지 허억하며 그의 손을 꽉 붙들었다.

 

“도련님? 잠시만……!”

“왜. 이 잡놈이 도련님 대신 놀아나드리겠다는데, 무슨 문제 있나?”

“자, 잡놈 아니시잖아요. 도련님은 도련님이시잖아요.”

“지금부터 한동안은 임자 있는 놈이랑 방자하게 놀아나는 잡놈이야. 이 잡놈을 꾀어냈으니 책임을 져야지. 얌전히 벌려주시지요, 종놈 나리.”

 

채윤사는 찢듯이 은오의 저고리를 벌려 놓고 목덜미를 깨물었다.

 

“흐윽!”

 

은오가 신음하며 몸을 떨었다.

채윤사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이 잡놈과 놀아난 다음에는 도련님 투기를 받아줘야 할 거야.”

“그냥 모, 못본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애석하게도 못 본 척 하는 재주가 없어 안 되겠군.”

“도련니임…….”

 

은오는 울상을 지었다.

투기하는 도련님이 보고 싶긴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제 무덤 제가 판 격이었다.

 

그리하여 이후로 밤이 깊을 때까지, 은오는 쉴 틈 없이 다리를 벌리고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반나절은 잡놈이 된 채윤사와 함께 간음질을 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도련님인 채윤사에게 벌을 받으며.

 


제법 어마무시하며 상당히 음외한 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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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 요청이 여러 번 들어와서 후루룩 써 본 챌린지 썰입니다.

실제로는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핳!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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