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 사람이 강한 분야는 영역이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튿날 아침이 하얗게 밝아서야 융롱은 림에게 물었다. 영녕은 어느새 옷을 예법대로 갖춰입고 다탁에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화약을 밀매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았지. 시간이 없었다."


그 어제의 소란이 마치 없었던 일인마냥 영녕의 태도는 침착했다. 영녕이 지붕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줄을 타고 불타는 건물에 올랐다는 융롱도 융롱이지만 이쪽도 어지간히 강심장이었다. 


"잡으신 것이 있습니까?" 무사함은 이미 어젯밤 확인했으니 나오는 대답이었다. 영녕은 갈무리해 두었던 증거품들을 꺼내 융롱에게 그들이 나눈 이야기와 물건에 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이것은 큰일이군요. 아무래도 오늘 관아로 들러 제보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의문점이 또 있는데, 융롱, 다관에서 불이 난 것은 어쩐 일인지 들은 것이 있니?"


융롱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저 불이 난 이후에 전해들어서……."


"알았다. 하면 속히 외출을 해야겠어. 어제 관병들도 다관 근처로 왔으니 필시 무언가 조사한 것이 있을 것이다."


영녕은 융롱을 동행하여 거리로 나섰다. 대장군저에서 그들이 순금사(巡禁司)*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두 식경이 걸리지 않았다. 


융롱이 앞으로 나서 계하왕부의 영녕군주께서 순금사에 고할 것이 있으니 당직에게 안내하시라 말했다. 이윽고 순금사의 지사(知事)가 그들을 맞아들였다.


"왕부의 군주께서 이러한 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화약을 밀거래하고 있는 일당들의 소식을 잡았네. 얼마 후 강남으로 배를 보내고, 천랑국(泉浪國)으로 빼돌린다는 모양이야. 야시장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우연히 전해듣고, 그들에게 접근해서 증거를 찾았네. 어제 물건을 확인하고 곧 화물을 선적한다는 듯한데, 순금사에서는 이와 관련해 아는 것이 있는가."


지사 신언해(申彦楷)는 영녕이 내민 화약 봉투와 요석을 들여다보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참으로… 위험한 일을 하여 귀중한 증거를 찾아 주셨습니다. 군주. 암시장에서도 이런 품목을 거래하는 이들은 흔치 않지요. 품목이 품목이다 보니, 중간책들은 별 것 아닌 이들이 끼어든다 해도 그 끝에는 반드시 커다란 세력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잠시만 이와 관련한 사건이 있는지를 알아볼테니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어젯밤 있었던 소란이 무산하게 오늘은 날씨가 맑았다. 하얗게 볕이 내리쬐는 순금사의 빈 뜰을 보면서 영녕은 다른 서리가 가져온 차를 마셨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 신언해가 돌아와서 영녕에게 말했다.


"화약의 암거래는 이전부터 호부와 형부와 공조하여 추적하고 있던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군주. 혹시 그들의 말씨는 어느 지방 풍이었고 인상착의는 어떠했습니까?"

"말씨는 황도의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듯하나 생김새가 조금 달랐네. 이목구비가 크고 눈썹뼈가 튀어나온 남자들이 있었고…… 이름을 아는 이는 매정이라는 기생이 하나, 그리고 홍려당이라는 조직이나 무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는 아는 바가 있는가. 연락책인 척 말을 걸었더니 내가 그 소속인지 묻더군."


신언해는 영녕군주의 말을 주의깊게 듣더니, 홍려라면 일패 기생들을 일컫는 다른 말이 아닙니까, 하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군주. 아무래도 이것은 제가 각 부에 보고를 올려야 하겠습니다. 질의하실 것이 더 있으시다면 미시(未時)즈음에 도로 뵙는 것은 어떠할지요. 각 부에 급전을 보내어 연락토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그러면 나는 주위를 좀 둘러보고 오지."


하고 영녕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참, 어젯밤 다관에서 있었던 화재 말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혹시 아는가?"

"증언하는 이들의 말로는 부엌이 있는 1층에서 먼저 불이 올랐다고 하는데 확실치가 않습니다. 목격자들 중에서는 1층이 결코 아니라 하는 이들도 있고, 불이 꺼진 모습을 보면 화로나 화덕에서 옮겨붙은 불은 아닌 것 같아……."

"방화의 가능성이 있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데 군주께서는 어찌 그리 물으십니까?"

"암거래를 하는 이들이 접선 장소로 삼은 곳에서 소란이 일고, 그 소란에 뒤이어 건물에 불이 났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지. 방화 사건으로 조사하고 있다면 이 또한 의혹이 있다 써 올려 주시게."

"말씀 받들겠습니다."


수고가 많겠다고 인사까지 하고 영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시까지는 두어 시진 정도 시간이 남아, 융롱은 그들이 종종 놀러 가곤 했던 대장군영에 들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고보니 어제 불을 끄기 위해 동원된 인력 가운데 병사들도 있었지? 그들을 만나면 좋을 텐데." "군주." "왜?"


영녕이 융롱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융롱은 그저 웃고 말았다.


"언니께서는 곧장 한 지방을 맡아 다스리셔도 되겠어요."


부드러운 웃음이 깃든 표정에 영녕은 아 하고 잠깐 입을 벌린다. 산에서 내려온 어린 군주가 관여하고 다니는 일이 벌써부터 화약 암거래와 화재 사건이라니, 주목을 받을 것이 뻔했다. 저자에서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라 황궁의 사람들과 관리들에게. 하지만…….


"나라의 큰일이다. 내가 그들과 대화를 나눈 당사자인데 어찌 관여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또 그 표정이었다. 이해한다는 표정, 그런데 그런 자신을 염려하는 표정. 영녕은 어쩔 수 없이 융롱의 손을 잡았다. 


"알겠어. 미시에 다시 순금사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병영에 들렀다 오자꾸나. 참, 그런데 융롱."

"네, 언니?"

"네 친구인 선 말이다. 오늘도 혹시 병영에 있을까."

"글쎄, 가 봐야 알겠지만 황도에 있을 때에는 자주 나와 있는 편이지요. 대장군영이 아니면 용호군이 속한 병영 쪽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은 예전부터 입대하고 싶어했거든요. 이모님처럼 장군이 되겠다고 말입니다."

"어디 보자, 단유원(斷悠源) 장군을 말하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도 꽤 귀여워해 주셨죠."


단유원은 지금 제국의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용호군을 이끌며, 제국의 변방에서 치러야 하는 작은 전쟁부터 대장군과 함께 펼치는 대규모 작전까지 열 두 주를 종횡무진 누비며 활약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서 가와 단 가 사이 친분 또한 돈독해지고 자연히 가문 간 교류가 있게 된 것이었다.


"융롱. 다름이 아니라 내가 어젯밤에 차관의 지붕에서, 불이 나기 얼마 전에 거리로 달려나가는 붉은 머리의 사람을 보았다."

"…선과 닮았다는 것입니까?"

"아무래도 그래. 최소한 본인인지 아닌지, 사건의 목격자인지 어떤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은데 그리할 수 있을까."


영녕은 다소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융롱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그러면 미시가 되기 전까지는 선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그 말에는 말을 꺼낸 영녕이 무색할 정도로 친구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영녕은 표정을 조금 풀고 말했다. 


"선과는 어떻게 친해지게 된 것이니?"

"아시다시피 어릴 적에 화남에서 만났지요. 같은 무가의 사람이라 어울려 놀며 대련을 하기도 하고 말을 타기도 했는데, 어느날 선이 자신은 장차 이 나라의 장군이 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아마 저도 그럴 것 같다고 했더니 그 순간 엄숙하게 표정을 하면서 삶의 공통 목표를 가지는 친구끼리 잘 해보자고 했습니다. 술이라도 나누어 마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가 그랬더니 강물을 뜨자고 하더군요. 이미 집에서 멀리 나온 상황이라 뭘 가지러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가 몇 살이었는데?"

"여덞 살?"


영녕은 웃음을 참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수, 술을." 


"우스우세요, 언니." 

"흐흡." 

"웃으시니 좋습니다. 어제부터 줄곧 표정이 굳어 계셨거든요." 

"아룡……."


융롱의 어깨를 짚고 흐느끼다가 속을 차린 영녕이 나 참, 하 참 하면서 도로 일어서서 걸었다. "그래, 훨씬 낫구나." "생각도 추리도 대사(大事)도 좋지만 마음이 얼어 있으면 중요할 때 힘을 못 쓴다고 합니다."


볕이 내리쬐며 겨울 땅을 힘내어 덥히고 있었다. 대장군영에서부터 말을 빌려다 용호군의 장군영으로 향한 두 사람은 과연 그 곳에서 단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선, 너 어쩐 일로……."

"대련이나 단련을 하지 않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냐?"


선은 융롱이 또 소선이라 불렀다는 것도 잊을 만큼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주저앉아 가만히 있는 모양에 올려 묶은 붉은 머리는 물처럼 등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젯밤에 말이다, 각다관에서 불이 난 것을 너도 알지?"


영녕은 그대로 귀를 기울였다. 단선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의외였다.


"그래, 그렇잖아도 군주께서 그 일에 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고 하신다."

"군주께서 말입니까?"

"선, 그대가 혹시 어제 다관에서 불이 날 때 그 자리에 있었나?"


영녕은 자리를 옮기는 것도 잊고 선의 앞에 마주앉아서 물었다. 


"아니오, 불이 날 때는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그 이전이었지요."

"어제 내가 다관 지붕 위에 있었던 것을 아는가?"

"군주께서요?"


선은 끔뻑이는 큰 눈을 이 쪽으로 하고 되물었다. 뒷일을 모른다면 참으로 그때 거리를 달려나간 이가 맞는 것인가. 영녕은 선에게 어젯밤 자신에게 있었던 일의 큰 줄기와, 융롱이 가까스로 자신을 구해낸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다관에 불이 오르기 얼마 전에, 내가 거리를 내려다보다 그대와 닮은 사람을 발견한 것이네. 혹시 다관에 난 불이 방화라면 그대가 단서를 알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그것이라면 참으로 옳게 찾아오셨습니다, 군주! 저는 이 일을 어디 어떻게 고해야 하나 도무지 알 길이 없어 이렇게 혼자 끙끙대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단선은 영녕의 말에 반색을 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말씀이시지요. 시장 근처를 걷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보이길래 근처로 가 보니, 길모퉁이에 있는 그 다관 건물을 무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고 그 사이를 기웃거리려는데 거동이 수상한 자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때 묘한 냄새가 났어요. 다관 옆 방향에서 몰래 빠져나오길래 빠른걸음으로 뒤를 쫓았는데, 제가 따라붙은 것을 알자마자 달리기 시작해 줄행랑을 놓지 뭡니까. 저도 모르게 덩달아 같이 따라잡았는데, 붙잡고 보니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더군요. 도리어 엄한 사람을 쫓는 이유가 뭐냐고 역정을 내길래 말싸움을 벌이다가…… 졌습니다."


영녕은 선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다가 마지막 대목에 가서 헛기침을 했다. "뭐라고?"


"그… 증거도 없고 정황도 제가 추측한 것일 뿐인데다 불은 그 자리를 떠난 후에 났기에……. 제가 뭐라고 응수할 말이 없어서 그만…… 집에 가라고 놓아주었지요."


영녕은 아연한 얼굴로 단선을 바라보았다. 아니다. 아예 단서가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래, 직접 말을 길게 나누어 보았다니 다행이군. 그 사람의 인상착의나 나잇대, 성별, 목소리 같은 것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도망쳤고 마지막에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알려주게."


차라리 순금사로 선을 대동하여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묻다가 영녕은 떠올렸다.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다고 영녕이 털어놓으면, 단선은 자신도 이 때문에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며, 흔쾌히 조사에 합류하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영녕군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 천방지축 무사들을 곁에 두고 직접 움직이리라고 다짐했다.



순금사 : 황도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의 수사 기관

지사 : 순금사의 정4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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