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4 꿈)


 네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술렁이는 인파에 휩쓸려 헤어지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이, 우리를 끊고 밀어보내는 사람들과 함께 흩어진다. 낡고 해진 시간은 저 멀리 떠나가는데 왜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질 못하는지. 아직도 내 가슴 저 깊숙한 곳의 날카로운 바람이 아물지 못한 상처로 달려드는 탓에 흉한 살갖은 나을 기미조차 없다.


 '그 사건'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하나로 모여 큰 마을을 만들었다. 마을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지만 서로 도우며 계속 살아가고자 했다. 온 세상을 덮은 기이한 고요에 적응하지 못하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도 마을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혼자 있기 무서워서 그랬던 건 아니고, 네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을은 듣던 대로 소리가 넘쳤으나 아쉽게도 네 소리는 없었다. 너무 멀리 있어서 아직 도착하지 못 한 걸지도 모르지. 나는 그곳에서 널 기다렸다. 많은 시간을 널 기다리는 데 사용했다.

 그렇지만 끝내 오지 않길래, 내가 직접 너를 찾아가기로 했다.


 지금 나는 끔찍할 만큼 고요한 도시의 한 가운데에 서있다. 우리가 자주 드라이브하러 오던 그곳 말이다.

 이 큰 도시에 남아있는 소리라고는 고작 나와 조그만한 아이 둘 뿐이다. 전에 왔을 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차 안에서 대기하며 부른 곡만 열 곡이 넘었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며 작게 흥얼거리자 뒤따라 오던 아이가 노래에 대해 묻는다. 어차피 말해줘도 모를텐데. 아이는 겨우 열댓 살이고 이 노래는 이십 년 전에 나온 곡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마을에서 만난 나의 여행 메이트다. 우리 둘은 각자 소중한 사람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있다. 사실 처음엔 혼자 나오려고 했었다. 그러나 내가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가 같이 나가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함께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나는 아이가 염려되었지만 밖으로 나가겠다는 아이의 주장은 아무도 꺾지 못 했다. 아이를 따돌리고 혼자 나서는 방법도 생각했으나, 내가 자신 몰래 나가면 혼자서라도 뛰쳐나갈 거라고 엄숙히 선언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나오게 됐다. 혼자 나가게 둘 순 없지 않는가.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이가 나보다 더 생존 기술이 뛰어났다. 마을에 오기 전까지 만났던 어른들이 많은 걸 알려줬다며 역으로 나에게 이것 저것 가르쳐 주는데, 그 모습이 퍽 즐거워보였다. 마을에 있을 때보다 더 생기있어 보였다. 아이는 서로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며 씩씩하게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우리는 몇 달이 지나도록 사람의 형상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아이는 걷다가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고 나는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면 아이가 어떤 꿈을 꾸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아이는 종종 언니를 부르며 흐느꼈다. 우는 아이를 다독이는 밤은 시리고 무서웠다. 부서진 빌딩 사이로 부는 싸늘한 바람과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건축물들. 사람의 부재로 기묘한 고요함을 자아내는 넓은 도로까지. 어떤 밤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부숴버릴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중 제일 무서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두운 밤을 밝히는 환한 달과 별이었다. 언제나 요란하게 번쩍이며 자리를 지킬 것 같던 도시의 조명은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땅에 빛이 한 점도 남아있지 않은 탓에 달과 별은 전보다 더 선명하게 빛났다. 

 그런데 바라보고 있다보면, 그것들이 나를 향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건 매우 환상적인 경험일 테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들에게 압도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것들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면 나는 아무 것도 못 하고 끝을 맞이하겠지. 너를 찾지도 못하고, 내 품에 있는 이 아이 하나도 지키지 못 하겠지.

 밤만 되면 찾아오는 두려움과 무력감에 나는 더 이상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게 되었다. 새벽이 되고 해가 뜰 쯤엔, 그땐 조금 괜찮아진다. 해가 모든 걸 가려주기 때문이다. 단지 밤에 느꼈던 두려움의 의미가 사라지며 내겐 자괴감만 남을 뿐이었다.


 우린 오랜 시간을 들여 거대한 도시 전부를 뒤졌지만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 대신 새 한 마리를 찾긴 했다. 새장에 갇혀 오물을 잔뜩 뒤집어 쓴 새였는데, 아무래도 며칠은 굶은 것 같아 보였다. 아이가 새를 좋아하는지 이것 저것 가져와서 새를 씻기고 먹이를 먹였다. 꽤나 즐거워보였다.

 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아이에게 구급 상자를 맡기고 새를 발견했던 곳을 살폈다. 은빛의 다란 새장이 구석에 엉망진창으로 쌓여있었다. 안은 다 비어있었는데, 새가 있던 곳에만 무언가 가득 흩뿌려 있었다. 진열장이 쏟아지며 포대자루가 찢어진 모양이었다. 다른 빈 새장에는 닿지 않은 거리였기에 다른 새들은. 더 생각하지 않고 아이에게 돌아갔다. 물로 씻은 건지 수건으로 닦은 건지 새는 깨끗해져 있었다. 화려한 색의 앵무새였는데 막 정신을 차려서 그런지 움직임이 별로 없었다.

 아이는 분홍색 천으로 덮힌 새장에 새를 눕히고는 출발하자고 했다.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아이의 기분이 좋지 않아보였다.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꿈 세계 대충 정리 (내가 아는 것 한해서)

- 어느 날부턴가 전 세계의 생명체가 증발한 듯 사라졌다. 전염병인지 이상 현상인지 밝혀지기도 전에 모두 사라졌다.

- 몇 사람들은 급하게 우주로 떠나갔다. 우주는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우주 비행사들이 갑자기 사라지며 우주선이 추락했고,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 사고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평범한 생명체 뿐 아니라 죽은 생명체(시체)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본문엔 못 적었으나 본문 시작 전에 TV로 알게 된 소식) 

- 폐허를 거닐다가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고, 아이와 마을 밖을 돌아다니다가 깨어났다.

- 사람 몇 명이랑 새 한 마리, 그리고 시야를 가득 채운 식물들 빼고 살아있는 생명체는 본 적이 없었다.


♢ 의문

- 사실 나는 내가 애써 찾고 있는 그가 죽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 멸망하기 전에 이미 죽었었고, 나는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갔을 때 그 사실이 떠올랐으나 꿈 속의 나는 모른체 했었다.)

- 아이의 언니는 죽었을까? 찾기 전에 잠에서 깨버렸다. 찾았으면 좋겠다.     (아마 죽었을 것이다.)

- 내가 없어도 아이는 앵무새와 잘 지낼 것 같다. 아니 사실 다른 멋지고좋은어른 만나서 같이 다녔으면 좋겠다. 내 눈엔 아이가 너무 작았다.


말이 너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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