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이른 저녁. zee와 누뉴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파닛가였다. 누뉴는 차에 달려있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고 얼굴을 살피고 윗옷의 상태도 살폈다. 


"으아.. 떨리네요"

"떨려?"


그야 당연하다. 그의 부모님이기에 잘 보이고 싶기도 하고 또 파닛가의 일원으로 받아주신만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처음 뵙는 것이 아닌가. 처음 교제허락 받으러 갈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떨렸다. 그 동안 아예 왕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 세번 정도 zee와 같이 찾아뵙고 같이 식사도 하고 그랬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하신 것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낀다. 방문할 때마다 환영해 주시고 따뜻하게 대해 주시기 때문이다. zee가 가끔 말해주곤 한 것이 있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아무래도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면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말하는 지 이해는 갔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다정하고 따뜻한 분들이라 감사하고 좋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다.


"괜찮아 부모님도 결혼한다고 하니 좋아하시는 눈치셨어"

"정말요?"

"그럼"


애인이 있더라도 데려온 적이 없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근황을 물으면 헤어졌다고 하던 zee였다. 쥐도 새도 모르게 헤어진 상태가 되어 있는 그의 연애. zee가 나이듦에 따라 부모님은 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지만 그뿐 거의 내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대뜸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고 그 연인을 보호한답시고 먼저 와서 빼도 박도 못하게 허락을 받고는 결국 나중에는 데려와 받아들이게 했다. 물론 누뉴의 공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볼 땐 zee의 눈빛도 사랑이 가득했고, 누뉴 또한 그렇다.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부모님도 잘 아셨고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될 것도 잘 알고 계신 눈치였다. 누구보다도 아들의 결혼과 안정되고 행복한 가정을 기다리셨을 분들이니까.


"기다리고 계셨을거야"


그러니 그렇게 긴장 안해도 된다며 누뉴의 손을 잡고 말해주는 zee였다. 그의 잔잔한 미소, 따뜻한 목소리와 손은 누뉴를 안정시키기 충분했고 어느덧 누뉴도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zee의 본가에 도착하니 zee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누뉴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남자이고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하지만 누가 뭐래도 zee의 옆은 누뉴라고 그날 이후로 생각했던 두 분이었다. 부모님께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그의 누나들도 함께였고 오늘은 매형도 있었다. 아무래도 상견례에 함께 참석도 해야하고 zee의 생일이니 참석한 것 같다. 잠깐 봤던 조카들도 보였다. 아직 어린 막내조카와 조금은 큰 첫째조카.

큰 조카가 도도도 달려와서 '삼촌!'하고 폭 안긴다. zee는 조카를 안아들고 잘 지냈냐고 물어보며 웃어 보인다. 그 모습이 굉장히 다정다감해 보여 누뉴도 저절로 웃게 된다. 안겨 있던 조카는 옆에 서 있는 누뉴를 바라 보았다.


"지난 번에 잠깐 봤었지?"

"안녕?"


누뉴를 눈을 맞추며 인사하자 조카는 예의바르게 손을 모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다고 누뉴가 이야기하자 아이도 화사하게 웃는다. 그런 셋을 가족들은 흐뭇하게 바라 보았고 누뉴는 어색함 없이 파닛가에 녹아들고 있었다.

자리를 거실로 옮겼고 아직 식사 준비 중이라고 하는 아버님의 말씀에 누뉴가 벌떡 일어나 돕겠다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막고는 손님은 주방에 들어오는게 아니라고 하신다. 그래도 어른들이 계신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안절부절해 하는 누뉴에게 네 일, 내 일 없는 건 맞지만 결혼도 안했고 시집살이 시킬 생각도 없다고 하시며 그럼 첫째대신 아이들 좀 돌봐 달라고 하셨고 결국 누뉴는 그렇게 하겠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번 안아볼래요?"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 부인을 대신해 아직 어린 아들을 안고 있는 zee의 매형이 말했다. zee는 큰 조카랑 놀아주고 있었고 누뉴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작은 조카를 보게 되었다. 아주 작은 아기. 품에서 꼼지락 거리는 손과 발이 작다. 건네 받은 아이를 조심히 안아본다. 혹시나 잘못될까 최대한 부드럽게 안고 아이를 바라보니 아기가 불편하진 않는지 방긋방긋 잘도 웃는다. 이런 세상 순수한 아기를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파파 누"

"p'zee..!"

"싫으면 마마 누 할래?"


조카랑 놀고 있던 zee가 어느새 누뉴의 뒤에 와서는 누뉴보고 파파란다. 놀란 누뉴가 아기가 놀랄까 작은 목소리로 zee를 불렀더니 그러면 엄마하라고 하지 않는가. 누뉴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어쩔 줄 몰라 하자 zee가 쿡쿡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꼬마 아이가 좋아하는 여학생 놀리는 것과 같은 느낌. 어째 제 딸보다 어리게 느껴지는 매형이었다. 저런 모습은 보기 힘들었는데 저게 다 저 사람을 만나서 그런 거겠지. zee는 누뉴를 놀리면서도 자신의 막내 조카에게 다정하게 눈길을 준다. 그런 그를 보고는 누뉴도 표정이 풀리더니 이내 웃으며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바라보는 것이 정말 영락없는 부모와 아이 같다.


"처남 혹시 우리 막내 데려다 키울 생각 없어?"

"예?"

"아니 너무 자연스러워 여기서 보면"

"그래 좀 키워서 데려와 줄래?"


기왕이면 첫째딸도 데려갔으면 좋겠다며 첫째 누나가 나와서 이야기한다. 제발 데려가라고 하는 둘에 당황한 누뉴는 zee를 바라보았고, zee는 당연히 거절했다. 누구 좋으라고 데려가서 키워. 데려간다고 한들 분명 길어야 하루 지나서 찾으러 올 것이다. 지난번에도 순간순간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하는 누나를 봐서는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그 하루도 안될 일이다. 아직 결혼도 안했고, 신혼도 즐겨야하는데. 잠깐 이렇게 보는 거야 괜찮지만 아이를 하루종일 보는 것은 보통 각오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누나네 부부를 존경하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삼촌은 가끔 놀아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고 그렇게 단칼에 거절할 건 또 뭐냐고 하는 그녀에게 '응. 거절할거야'라고 그녀를 보고 단호하게 말하고 나서는 아직 누뉴에게 안겨 있는 막내에게는 사랑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눈을 맞춰온다. 그녀는 그 모습에 기가 찬듯 웃었다. 농담에 가까운 말이었고 그의 말이 고깝게 들리진 않았다. 다만 웃길 뿐이었다. 조카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주 꿀이 떨어지는게 둘이 남자라 아이가 생길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나중에 혹시라도 입양을 한다거나 해서 아이가 생긴다고 한다면 정말 난리도 아니겠다 싶다. 애지중지 어화둥둥할 것이 뻔할 뻔자였다. 


"식사 준비 다 됐으니 와라"


어머니의 목소리에 다들 말하던 것을 멈추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


삥 둘러 앉은 식구들은 아버지가 첫 술을 뜨고 나서 식사를 시작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주로 zee와 누뉴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곧 둘의 결혼이기도 했고, zee의 생일 때문에 모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둘의 집에 대한 이야기와 어떻게 둘이서 살고 있는 지 등에 대해서 물었고, 생각보다 일찍 동거를 시작한 것에 놀란 부모님이었지만 잠깐 놀라고 마셨다. zee네 잠시 머물렀던 첫째 누나가 말을 덧붙였다. 쟤네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벌써 가사분담도 하고 있다며. 그녀의 말에 그렇냐며 잘하고 있다는 어머님의 말에 누뉴는 괜시리 뿌듯해졌다. 가사분담을 하자고 제안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힘들면 zee에게 많이 시키고 도와달라고 하시는 아버님의 말 또한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미 p'zee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어머.. 우리 작가님은 참 말도 예쁘게 해"


또 주책 맞게 사랑에 빠진 것 마냥 턱을 괴고 말하는 딸의 옆구리를 팔꿈치를 이용해 사정없이 찌른다. 작가님이 뭐야 작가님이 이제 곧 결혼하는데 호칭 바꾸라며 눈을 부릅 뜬 어머니였다. 


"아니 하지만 뭐라고 해야해.. 올케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한다. 그럴만도 했다. 보통은 남녀가 결혼할 때의 부르는 호칭이 있는데 동성이 결혼할 때는 호칭이 따로 없으니 말이다. 그럴 듯한 의견에 다들 고민에 빠진 듯 조용해졌다. 자신의 호칭에 관련된 것이니 뭐라도 말해야하나. 근데 어떻게 불러달라고 해야 하나 입이 바짝 말라 물이라도 마시고 싶은데 지금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시선이 자신에게 올 것만 같아 아무 행동도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그냥 뉴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어?"


정적을 깨고 나온 zee의 말에 다들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자신한테도 zee라고 하니까 그냥 누뉴도 뉴라고 부르면 해결될 일이라고 한다. 그러자 가족들은 그게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호칭 문제는 이렇게 일단락 되었다. 근데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고? 둘째 누나가 그럼. 자신도 그렇게 뉴라고 불러도 되냐고, 작가님한테 너무 반말 같고 좀 그렇다고 그러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긍정의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누뉴는 당연히 괜찮다며 편하게 말 놓아도 된다고 얘기했다. 그럼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도 뭔가 아직은 어색해서 잘 안된다고 하는 그녀에게 그녀의 언니는 '뉴!' 그냥 이렇게 부르면 되지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냐고 그러니 그녀가 어떻게 작가님한테 한 번에 그러냐면서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가족이 되었지만 엄연히 손님 앞인데 체면 따위 신경 안쓰는 둘째 딸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던 아버지는 그래도 익숙해져야 하니 의식하고 계속 쓰라고 하셨고, 머리에 가 있던 그녀의 손은 뭉크의 절규와 같은 표정으로 두 뺨에 손을 붙이고는 알겠다며 끄덕였다. 


"그나저나 왜 10월 첫째 주로 잡은거야? 뉴네도 괜찮다고는 했고?"

"아 네! 저희 부모님과 형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랬냐며 자신들도 다 시간을 내어 가기로 했다고 식이 치앙라이니 당연히 방콕으로 직접 찾아뵙는 것이라며 잘 했다고 누뉴를 바라보며 칭찬을 하셨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zee의 아이디어였다. 누뉴는 이 의견은 zee의 의견이라고 말씀드렸고, 그 말에 두 분은 누뉴에게서 zee로 시선을 옮겨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자신이 아니라 zee가 칭찬을 받는 데 어째 누뉴가 더 뿌듯해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칭찬받고 인정받고 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10월 첫째주에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고, 그 때 zee와 누뉴가 방콕에 볼 일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 누뉴는 그렇다 치더라도 zee까지 볼 일이 있다니 무슨 일인가 궁금해 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zee는 누뉴보고 이야기하라고 토스했고, 그러자 모든 시선이 누뉴에게 향했다. 누뉴는 목을 가다듬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작게 이야기 했다. 


"저.. 팬 사인회가 있어요"


그 말에 다들 '뜨억'하고 입이 벌어졌다. 사인회를 할 정도라니. 작가라는 것은 듣긴 했지만 작가야 많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웹작가. 이것은 아무래도 나이가 많으신 zee의 부모님에겐 낯선 것이었기에 누뉴가 얼마나 유명한지 알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고, 맏이야 둘째에게 하도 들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은 못했다. 사인회를 할 정도면 엄청 유명하다는 것 아닌가. 이거 자신들이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왜 둘째가 자꾸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렇게 입을 벌린 채 아무도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 둘째만이 식탁을 탁 치며 일어나며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작가님!!! 정말이에요? 정말? 팬사인회? 언제요? 어디서 해요? 네? 네?!"


상견례 전날에 하고 방콕에 대형 서점에서 한다고 zee가 답변했고, 또 다다다 질문이 들어온다. 지난번 완결작 팬 사인회인지, 몇시에 하는지, 혹시 책은 언제쯤 나오는지, 다른 책들 있는데 그것도 사인 받을 수 있는지 등 여러 질문이 한꺼번에 들어와 정신 없는 누뉴 대신 답한 것은 역시나 이번에도 zee였다. 자꾸 zee가 답변하자 그녀가 네가 작가님 대변인이냐고 이야기 했고, zee는 맞다면서 곧 부부니까 대변인도 자신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살살 좀 말하라고 누뉴 놀란 것 안 보이냐고 그녀에게 말했다. zee의 말을 듣고 누뉴를 보니 진짜 좀 놀란 것 같이 보여 미안해진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고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자신도 팬 사인회를 가도 괜찮냐고. 


"네, 당연하죠"

"야 넌 사서 나중에 받으면 되잖아"

"언니. 진정한 팬이라면 팬사인회에서 받아야 하는 거라고"


가족들은 그녀의 논리가 어이가 없고 이해가 가진 않지만 굳이 그래야 한다니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zee의 부모님은 솔직하게 이렇게 인기가 많은 작가인지 잘 몰랐다고 둘째가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워낙 독서광이다 보니 그러려니하고 넘겼는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반응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전혀 미안해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번에 책이 나온다고 하니 사서 읽어보겠다고 하셨고, 차마 보지 말라고 말씀드릴 수 없어 감사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가족들의 반응이 일관성 없이 누구는 너무 흥분해서 들떠있고, 누구는 사과하고 있고, 누구는 당장에라도 읽어봐야겠다며 팬싸인회 가보자고 아내에게 하고 있고 난리도 아니도 아닌 통에 누뉴의 고개는 이러저리 움직이고 있고 눈은 정처 없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근데 오늘 모인 것 내 생일이어서 아니야?"


그런 정신 없는 분위기를 갈무리하고 zee의 생일을 맞이하여 가족모임 중이라는 것을 다시금 인지시켰다. 그러고 아까의 반응들을 지우며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족들이 누뉴에 대해서 알아가고 누뉴가 더 가족으로 스며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천천히 해도 될 일이었다. 늘 누뉴가 곤란해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 선에서.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zee는 자연스럽게 주제가 전환된 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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