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인정 기사 언제 내줄 거야?”


“자기야. 촬영장 언제 갈 거야?”


“자기야. 지민이형이 우리 둘이 라디오 같이 나와주래. 언제가 좋을까?”











자기야.자기야.자기야.


원래부터 써왔던 말인 마냥 자연스럽게 뱉는 호칭에 월은 고개를 절레절레저었다. 그때마다 당황스러워 하는 제 표정을 놀리고 싶어하는 듯한 기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말이다. 제발 남들 앞에선 그렇게 부르지 마라고 불호령을 내렸을까. 입술을 쭈욱 내밀며 알겠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둘 사이에 대한 인정기사를 자신이 내지 않자 정국의 불만은 더더욱 폭발했다. 아니 왜 안내? 나랑 그렇고 저렇고한 건 다 했으면서?!










맨정신으로 서로 마주한 그날 아침. 식탁을 가운데 두고 취조를 하듯 월은 정국을 향해 물었겠지. 혹시 네가 뭘 했는지 알고 있냐고. 자기처럼 기억이 안 날수도 있는 거니까… 물론 아침 정황이 서로 발뺌하기엔 너무 맨몸으로 딱 붙어서 자고 있기는 했는데. 그래도 혹시 알아? 술 기운에 기억이 안 날지?


그리고 제 질문을 들은 정국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을 흘겨보며 대답했을 듯. 









“왜. 내가 너처럼 기억 못 할까봐?”


“어..?어..”


“난 다 기억해. 우리 처음 잔 그날 밤도. 그리고 어제 밤도. 내가 라디오에서 공개 고백했던데? 완전 우리 사이 빼박이야.”


“…어 라디오도 기억하네?”


“그래서. 대답은? 자기야. 나 사랑해?”


“…”


“난 사랑해”











사귈래도 아니고 사랑해라니..


노빠꾸로 묻는 정국의 질문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왜 나를 속였냐고 물어볼 수 있기는 커녕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달라는 듯 계속 사랑한다 말하니 이거 참… 심지어 얼굴 공격은 반칙 아닌가. 턱으로 꽃받침을 해가며 사랑한다고 씨익 웃으며 말하는데 순간 너무 귀여워 보여서 웃음이 새어져 나올 뻔 했다. 물론 꾹 참았지만…







아.. 이대로 무너지면 안되는데… 난 최고의 배우다, 지금 무척 화가났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가며 표정을 다시 한 번 굳히고 정국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자신을 좋아했는지에 대해. 이미 온 몸을 다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확인했지만, 그래도 그 입으로 정확한 말을 듣고 싶어서. 왜 늘 사람은 사랑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앞서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제겐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제 질문을 들은 정국은 팔짱을 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언제부터라… 솔직히 언제부터라고 명확하게 답을 내리긴 어려웠던 것 같아서. 


물론 처음 선날부터 널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거 같아라고 대답하면 쉽기야 하겠지. 그런데 제 몸 반응도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 생겼으니 반응을 했을 거고. 그럼 그 전부터 일 건데… 솔직히 말해 정확한 계기를 말하기는 어려울 거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잘 모르겠다면서 어영부영 넘기는 그런 가벼운 놈으로 보이긴 싫었다. 이렇게 될바에 차라리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 놓는게 제 성격에 맞기도 했고.











“영화 촬영씬 중에서 소파에 있다가 원테이크로 갈 때 처음으로 아래가 섰어.”


“..어? 초반 살짝 넘어서 그씬 말하는 거야?”


“응. 나도 처음으로 반응한 거라 너무 당황스러워서 화장실로 급하게 달려갔는데… 진짜더라고. 그땐 나도 혼란스러웠어. 모든게 처음있는 일이기도 하고. 내 몸에 나도 헷갈렸거든. 이게 현장의 분위기 때문인지. 정말 내가 너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


“근데 집에가서 생각해보니 알겠더라. 진작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


“내가 너에게 보여줬던 모든 호의.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었나봐.”


“…”


“하긴 자기한테 안 반하면 나 진짜 남자도 아니긴 해. 그치?”








대본을 연습할 때 흘러내리는 옆 머리카락도. 맛있는 걸 먹으러 갈 때 뜨거운 걸 잘 못 먹어서 모든지 호호 불어먹는 네 귀여운 습관도. 배부른 느낌을 별로 안 좋아해서 늘 먹고 동네를 한 바퀴 걷는 네 모습도 전부. 하나하나 함께 하면서 그 모든 모습들이 내게 호감으로 다가왔나봐.





모든 감정들, 모든 단어들, 모든 나의 행동들이 다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멈출 수가 있겠어. 








“그니까 너무 미워하지마. 내가 거짓말 했다고 해서…”


“…”


“나 정말 속이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


“진짜 네가 너무 소중해서… 내게는 처음으로 생긴 소중한 사람이라… 모든 걸 내려놔서라도 지키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그니까 나 너무 미워하지말아주라 자기야..응?”


“..”


“사랑해”











어느새 제 앞으로 다가와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해보이는 정국. 그래. 그가 말하는대로 그가 보여주는 모든 감정, 그가 뱉는 모든 단어, 자신을 대하는 모든 행동들이 다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대신 답해주고 있었는데. 게이라고 거짓말을 한 거로 더 이상 무슨 화를 낼 수가 있겠어. 알겠다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무사히 잘 넘어간 이 상황에 정국은 기쁘다는 듯 월의 이마, 두 눈, 볼, 입술에 쪽쪽 제 도장을 찍었을 거고.





그 후로도 수도 없이 틈만 생기면 달라드는 뽀뽀 귀신의 행동에 월은 두손 두발을 다 들 지경. 제발. 곧 촬영장 도착하니까 제발 스탑..!










정국과 자신이 벌린 일로 가장 바빠진 건 윤기였다. 월의 사건을 처리해준 것부터 해서 두 사람의 사이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고 집요하게 기자들이 윤기를 파고 들었기 때문. 


석진은 이번 일에 대해 정국이가 정말 진심으로 월이를 좋아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자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입장발표를 한 반면, 남준 같은 경우는 월이 부탁한대로 묵묵부답을 유지하고 있으니. 다른 두 소속사의 입장에 가운데에 낀 건 윤기였다.














“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묻는 질문들이 많은데. 모든 건 영화를 보면 다 답이 나옵니다. 특히 메이킹 필름에 제가 그동안 찍은 것들도 풀 예정인데 그거 보면 아무도 반박 못 해요”





야무지게 질문에 대한 확답보단 영화에 대한 홍보를 톡톡히 해주고 있으니. 윤기도 제 편이 아닌 것만 같은 마음에 심통이 제대로 난 정국. 



처음으로 생긴 제 연인에 대한 집착은 생각보다 심했다. 아니 어쩌면 개봉할 남자주인공의 성격이 정국과 빼다 박았다고 표현하는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장이라도 만천하에 월을 자기 것이라고 발표하고 싶은데 (정국의 불만을 듣는 태형과 지민은 그정도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은) 월이도 그렇고 구일즈 식구들도 그렇고 심지어 제 편이라 생각한 윤기까지 꼭 두 사람의 관계가 진심이 아닌 영화 홍보용으로만 여겨지는 것 같아 심술이 잔뜩 났겠지.










사실 그렇다라고 월이 쪽에서 기사만 안 낸거 뿐이지. 영화 마지막 촬영 때만 해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스태프들은 두 사람의 사이가 연인 사이라는 거 쯤은 지나가던 개도 알 수가 있었다. 월의 독백씬이 있는 촬영 현장에서 제 카메라 (그것도 전문장비)를 들이밀며 월을 담고 있는 전정국의 표정을 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아…우리 자기 너무 예뻐. 미쳤나봐.”


“컷. 누구야 소리낸 사람”


“아 감독님 죄송해요. 속마음이 새어져 나와버렸네. 다시 또 찍어요 우리. 또 담을 수 있겠다.”


“…미친놈…”











어떻게 몰라…


자기가 굳이 인정 기사를 내지 않아도 저렇게 다 티나게 행동을 하고 있는데 굳이 낼 필요가 있나 싶어 월이도 그렇고 그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던 호석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정국이 저렇게 티내는 걸 보아하니 기사를 내지 않아도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저 두 사람 연애하는 모습 봤다고 목격담으로 다 알아서 도배가 될 듯 했으니까. 정국의 첫 연애는 생각보다 요란한 편이였다.











그리고 호석의 생각은 마치 예언이라도 되듯. 정국과 월을 목격했다라는 이야기는 sns에서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을 듯.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난 후 월은 작품을 바로 들어가기 보단 시나리오를 고르는 쪽을 선택했고, 정국은 예능과 광고가 잡혀 있기는 했는데 바로 작품을 들어가는 건 아닌지라 시간적 여유가 두 사람 모두 맞았고. 그 여유를 즐기고자 자주 만나 데이트를 즐겼지.







솔직히 그 전에도 같이 다녔던게 데이트나 다름 없는 일상들이었고.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코스들은 아니었다. 동네 산책. 맛집 탐방. 심야 영화는 그 전에도 같이 즐겼으니까. 다만 한 가지 달라진 걸 찾아보라면.












“손.”


“밖이야…”


“어차피 모자 써서 몰라. 아아아아 손. 손 안 잡아주면 안 움직일 거야”








두 손을 꼭 잡고 돌아다니는 모습이랄까. 모자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들 그들의 연예인 포스를 쉽게 지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두 손 꼭 잡고 야무지게 데이트를 하고 다녔더래지. 심야 식당에 가서 반주를 즐긴다던지, 체력을 길러야 한다면서 공원에 있는 철봉에서 둘이 오래 매달리기 시합을 한다던지. 동대문에 가 서로의 옷을 골라주며 쇼핑을 하는 등등. 









정국에게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그리고 월은 일반인과의 연애를 했던 이유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 했던 일상적인 행복까지 모든 걸 충족하며 그렇게 평범한 하루 속에 서로의 추억을 새겨져 나갔다. 


대중들 역시 이때까지 게이인 줄 알았던 정국이 처음으로 보인 반응의 여자라는 걸 다 아는지라, 두 사람이 나타났을 땐 적극적으로 모른 척해주며 데이트를 할 수 있게 온 마음 다해 도와주곤 했지.











하지만 두 사람을 마냥 예쁜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긴 했다. 영화 홍보를 위해 두 사람이 연극을 하는 거라며 추측성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꼭 하나쯤은 있으니까. 그 글을 정국과 월 역시 모르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정국이 게이가 아니라는 걸 자기도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믿게 됐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충분히 생각을 하고 있어서. 


믿기 위해 정국의 것을 직접 보여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이 점은 그냥 무시하고 넘기자 하고 신경을 쓰지 않고 있을 때였다. 어느날 그 악플 기사들이 쏙 하고 내려갈 만한 사건이 생겼지.









[미친. 얘들아 나만 본 거 아니지]


[나도 봄. 에피에 흐릿하게 찍힌 건데도 와…]


[…월이 언니 행복하겠네.]


[월아. 언니는 유부녀인데 정국이랑 꼭 결혼해라. 큰 기쁨이야 그거.]


[와. 나는 썸남 포춘 쿠키 실패했는데. 저건 대왕 포춘쿠키 아니야…?]









메이킹 필름을 보면 모든 의심이 풀릴 거라는 윤기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일명 포춘 쿠키. 바지를 벗겨보지 않고서는 그 크기를 알 수 없다고는 하나. 정국의 것은 흐릿한 초점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선명하게 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영상을 확인한 월 역시 정국이 예전에 설명한대로 진작부터 제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는 걸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 순간. 






그나저나. 이렇게 모든 사람들한테 제 것을 들켜도 괜찮은 건가? 아무래도 민감한 부위였기에 정국의 입장에서 기분이 나빠 윤기와 싸우면 어쩌나 싶어 제 옆에 있는 정국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하지만 월의 걱정과는 다르게 제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 정국의 모습에 의아해지기 시작한다. 








“괜찮아?”


“뭐가?”


“사람들이… 다 알잖아. 그래도 네 민감한 부위인데…”


“아 ㅋㅋㅋ 윤기 형이 진작 물어봤어. 내가 허락한 거야.”










메이킹 필름을 편집할 당시 윤기한테 연락이 미리 왔었다. 그것도 짜증과 욕이 한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이다.





“야이씨. 너는 편집을 하려고 해도 매 씬마다 다 서면 어쩌라고 미친놈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짜르자니 메이킹 필름 한 시간 반짜리가 10분으로 줄어. 미친 놈아 아래 조절 안하냐?”


“그냥 내보내. 그리고 지금 내가 조절되게 생겼어?”


“…미친놈… 진짜 미친놈…”











월과 같은 마음으로 제 동생을 지켜주고자 최대한 편집을 해보려고 하는데 애초에 수위가 있는 영화다보니 촬영장 분위기에 정국의 것이 늘 반응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게 늘 정국이 숨겨 화장실로 나갔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두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찍는 앵글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은 반토막. 아니 반에 반토막도 안 남은 메이킹 필름양을 보며 짜증이 난 윤기가 정국에게 전화해 뭐라했지만, 그 전화에 그냥 내보내라는 답을 받다니. 진짜 쟤 미친 건가 싶은 거지.




그리고 정국이 허락했으니 그걸 그대로 내보낸 윤기였을 거고. (나름 그래도 양심상 초첨 흐린 거 위주로 작업)








결국 그 영상으로 모든 사람들은 인정했다. 영화 홍보를 위해 두 사람이 연극을 하는게 아닌. 정말 정국이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온 몸 다해 월을 사랑하고 있다고. 훗날 머지 않아 들려오는 두 사람의 약혼 소식에 정국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아 그니까. 저 게이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나 진짜 게이 아니라고.


이제 믿어?










나 게이 아니라고가 드디어 완결이 났습니다.

사실 에피 2개로 찾아오려고 했는데

요 며칠사이 정말 많은 고민에 빠졌어요.


원래 시나리오라면 

우리 정구기… 울고…

월이 짜증내고…

지지고 볶아야하는 에피인데…


갑자기 쓰다가 퍼뜩 든 생각.

정국이 성격이라면…

오히려 라디오에서 공개고백하고 좋아할 놈 아닌가…

ㅋㅋㅋㅋㅋ


그러다보니 급 바뀌게 된 결말입니다.

마지막 대사를 위해 지은 제목인데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어 다행이에요.


사실 지민이처럼 태형이도 출연시키고 싶었는데

태형이 관련 울 귀염둥이들 이야기는

외전으로 풀 수 있을 듯 해요.

집착 꾹이 모먼트… 포기 못해.


이때까지 나 게이라고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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