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대에 누워 서로 잘 자라는 인사로 시작한 통화가 자정을 넘기고도 계속되었다. 서희가 틀어놓은 음악은 휴대폰을 타고 진혁의 귀까지 들어갔다. 진혁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눈을 감았다. 가사는 알 수 없었지만 음은 제법 잘 들려왔다.


-지금 나오는 노래, 누구 노래야?

“가수 K요. 영화 ‘미랭시’ OST였어요.”

-나 그 영화 안... 이 아니라 못 봤는데. 하필 그때 군인이라.

“저런.”


서희는 자기 주변에 군인이 아닌데도 이 영활 못 본 사람이 있다면서 진혁을 위로했다.


“오빠, 우리 다음에 ‘미랭시’ 같이 봐요.”

-본 영화인데 또 봐도 괜찮겠어?

“제 친구랑 오빠랑 둘이 보라고 할 순 없잖아요.”


서희는 말끝에 헤헤-하고 익살스러운 웃음을 붙였다.


-혹시 그 친구가 ‘윤’이야?

“네.”


진혁은 수화기에 대고 ‘음’소리를 길게 냈다.


-그럼 넌 그 영화를 누구랑 본 거야.

“네?”

-윤은 이 영화를 안 봤다면서.

“네.”

-윤은 네 절친이고.

“그렇죠.”

-나는 네가 절친을 두고 누구랑 ‘미랭시’를 봤는지, 그게 갑자기 몹시 궁금해졌어.


취조 당하는 중인데도 서희의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서희는 두 입술 사이로 웃음 바람을 내뿜으며 대답했다.


“혼자 봤어요. 그것도 생일에.”

-왜?

“그날 윤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나는 날이어서 기다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혼자.”

-저런.

“그래도 좋았어요.”


서희는 기대 안 하고 본 영화였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음악이 너무 좋았다, 영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옆 사람 팝콘을 집어먹었다면서 재잘거렸다.


-서희야.

“네.”

-넌 생일이 언제야.

“10월 5일, 가을이요.”


진혁은 입으로 ‘일공공오’하고 되새겨 보더니, 쓱 몸을 일으키고 나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꿨다. 삑- 부스럭- 삑- 부스럭- 서희는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소란함에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진혁은 그냥 아냐, 아냐, 하면서 웃어넘겼다.


“오빠는요.”

-12월 21일, 한 겨울.


서희도 ‘일이이일’하고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문득 서로의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은 게 행운처럼 느껴졌다. 서희는 배시시 웃으며 스피커를 들어 휴대폰 가까이 댔다.


「 달이 뜨니 꽃이 핀다. 바람이 부니 네가 온다. 」


조금 전 진혁의 귀에 흐릿하게 맴돌던 노랫말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가수 K의 굵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노래 가사와 잘 어울렸다.


-이 곡 좋다.

"그렇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OST 중 유일하게 슬프지 않은 음악이기도 하고요.”

-제목이 뭐야.

“오빠가 맞춰 봐요.”


서희가 Replay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처음부터 다시 재생됐다. 진혁은 뜬금없이 시작된 듣기 평가에 온 집중력을 귀로 몰았다.


달이 뜨니 꽃이 핀다. 바람이 부니 네가 온다.

내 가슴에 네가 핀다. 이제야 내가 숨을 쉰다.

그러니 머물러라. 그렇게 머물러라.


음악이 끝났는데 진혁은 답하지 못했다. 가수 K의 목소리는 귀에 익숙했지만 노래는 생소했다. 그래도 잘 듣다 보면 가사 어딘가에 제목 할 만한 게 나오겠지 했는데, 애석하게도 힌트 될 만한 단어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도통 모르겠다고 이실직고했다. 그리곤 통화하다 말고 노래 제목 맞추는 이 상황이 재밌어서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웃어버렸다.


-그래서 이 곡 제목은 뭔데.

“청혼”


서희가 정답을 말해주자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서희는 동서남북으로 움직이고 있을 진혁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서희야, 창문 열어봐.

“네?”


서희는 설마 하며 창문을 열었다. 가로등 밑에 세워진 파란색 자동차와 손 흔드는 진혁이 보였다. 통화하는 동안 들렸던 사부작사부작 소리가 이쪽으로 오던 소리였나 보았다. 저 오빠 미쳤나 봐! 그러면서도 서희는 카디건부터 찾았다. 건넛방에서 주무시는 할머니 잠귀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발가락 끝에 바짝 힘을 주고, 현관문을 여닫는 두 손에는 더할 나위 없는 세심함을 더했다.


“김서희!”


서희는 뒤에서 들려오는 진혁의 목소리에 얼른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렸다. 자그만 앞마당에 어른 허리 높이로 만들어진, 앞으로 밀어도 뒤로 밀어도 열리는 원목 대문 앞에서 진혁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희는 마당에 일렬로 놓인 박석 위를 고라니처럼 폴짝폴짝 뛰어가 진혁에게 와락 안겼다. 서희는 내일 늦잠 자면 정말 큰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진혁의 품을 마구 파고들었다.


“김서희, 나랑 놀러 가자.”

“어디로요?”

“롯데월드”

“지금요? 새벽 1시에?”

“... 가 보이는 석촌 호수.”


서희는 얕은 숨을 내쉬며 엄지로 진혁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서희의 왼쪽 볼이 또다시 옴폭하게 파였다. 교수님과 면담했던 날 진혁의 눈에 성큼 들어왔던 그 보조개였다. 진혁은 자기 입술을 지그시 누른 서희의 엄지에 입을 맞췄다. 촉-


서희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미소 짓자, 진혁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모르는 척 능청을 떨었다. 서희는 대답 대신 진혁과 이어폰을 나눠꼈다. 달이 뜨니 꽃이 핀다. 바람이 부니 네가 온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K의 목소리가 두 사람을 에워쌌다. 서희는 진혁이 입은 후드집업 양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진혁은 키를 낮추고 서희와 눈을 마주했다. 어둠 속에서도 서로의 눈동자에 서로가 비쳤다. V사 Blue Moon 향이 가을바람을 타고 서희의 숨으로 들어갔다. 서희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진혁은 두 손으로 서희의 얼굴을 감쌌다. 그의 손이 닿은 곳보다 그의 입술이 닿은 곳이 더 뜨거웠다. 9월인데 봄이었다.






*


윤은 ‘금융공학론’ 교재 두 권을 들고 ‘200213489’라 적어진 사물함 앞에 섰다. 벌어진 틈마다 윤에게 구애를 펼치는 편지가 경쟁하듯 꽂혀 있었다. 윤은 낑 소리를 내며 두꺼운 전공 서적 두 권을 한 쪽 옆구리에 끼고 그것들을 뽑아냈다. 정말이지 처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편지 안의 내용은 쓴 사람이 모두 동일 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비슷했다. 언제 커피 한잔하자, 밥 한번 먹자, 그리고 본인 전화번호. 이런 구애가로는 절대 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걸 모르는 듯싶었다.


윤은 연애하느라 바쁜 서희 대신 챙겨온 전공 책과 편지들을 사물함에 넣고 문을 닫았다. 그때 윤 곁으로 한 사내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윤은 당황한 기색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끝낸 윤이 무심하게 몸 돌리고 가자, 사내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너 윤이지? 난......”

“김해록 선배님이시죠. 경제학과 아니고 호텔경영학과.”

“어? 날 어떻게 알지?”

“선배님 취미가 고백이란 것도 알아요.”


해록은 화들짝 놀라며 윤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가 그래? 승유? 이진혁? 아니면 임지훈 이놈의 자식이?”


윤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가 바로 했다.


“누가 전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하... 그러네!”


해록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바로 헤헤 웃었다. 지훈만큼 태세 전환이 빠른 사람이 여기 또 있었다.


“윤아, 지금 시간 되면 나랑 커피 마실래?”

“아니오.”

“왜?”

“바빠요.”

“그래? 그럼 이거 내 번호니까 다음에 너 시간 될 때 연락해. 그때 커피 마시자.”


해록이 연락처를 내밀자 윤은 석연치 않은 얼굴로 그를 빤히 보았다.


“왜? 커피 싫으면 밥 먹을래?”

“아니오.”

“밥 싫으면 술?”


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해록을 빤히 보았다.


“선배님, 혹시 지금 취미활동 중이신가요?”

“아니! 나 아직 고백 안 했는데.”


해록은 헤헤거리며 귀 뒤를 긁적였다. 눈빛이 해맑은 걸 보니 사태 파악을 전혀 못 하는 모양이었다. 윤은 어이없단 듯 코웃음 쳤다.


“윤아, 너 웃으니까 진짜 예쁘다.”


해록은 윤의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저 윤이 웃었다는 것에 안도했다.


“윤아, 너 진혁이랑 나랑 승유가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 거 알아?”

“아니오.”

“그래? 우리 셋이... 아아, 미대 다니는 규승까지 해서 넷.”


해록은 네 남자가 유치원 때부터 대학까지 함께 다닌 과정을 쭉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는 윤의 머리에서 여러 개의 물음표가 쏟아졌다.


“아니, 그 이야길 왜 지금 저한테 하시는 거예요?”

“아, 맞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은, 네 절친 서희랑 내 죽마고우 진혁이가... 응?”


해록은 두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더니 윙크를 했다.


“알지?”

“네, 그런데요?”

“그러니까 우리도 이참에 친해지자.”

“좀 연관성이 없는 거 같은데요.”

“아하... 그러네!”


해록은 다시 헤헤거리며 귀 뒤를 긁적였다.


“아무튼 오늘 통성명했으니까, 다음에 마주치면 우리 반갑게 인사하자. 알았지?”


해록은 호방하게 제 갈 길 가다가 휙 뒤돌더니 윤을 향해 양손을 흔들었다. 윤은 오늘에서야 지훈이 해준 말을 이해했다. 진혁 형은 얼음 왕자, 승유 형은 엘리트, 규승 형은 자유로운 영혼, 마지막으로 해록이 형은... 사람이 가벼워. 좋은 뜻으로.




윤은 동네 놀이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으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딱히 할 게 없어서 가만히 서 있다가 괜히 시소 한 쪽만 잡았다 놓았다. 끼익- 툭- 시소 지렛대에서 나는 쇠 닳는 소리에 이어 시소 좌석과 바닥에 심어진 충격 흡수용 타이어가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윤은 손을 털어 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건 혼자서는 절대 탈 수 없는 물건이군. 어디 외동 서러워 살겠나.”


윤은 그네 쪽으로 터덜터덜 발을 옮겼다. 그리곤 생각했다. 그네는 혼자도 탈 수 있으니 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꼭 마당에 그네를 놓아야겠다고. 윤은 그네에 앉아 천천히 발을 굴렀다. 그네가 일정한 속도로 시계추 운동을 했다. 전학 오던 날의 아홉 살 도영과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뛰어와 고백하던 열다섯 살의 도영과 기다려 달라던 스무 살의 도영이 번갈아 보였다. 가슴이 조여 왔다. 헤어진 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도영의 잔상은 밤마다 찾아와 체증을 남겼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둘이 공부하기 싫단 핑계로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던 날이었다. 함께 시소를 타던 도영이 무심하게 물었다. 우리 어른 돼서도 이렇게 놀 수 있을까. 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주먹 쥔 손을 허공에 한번 휘두르며 답했다. 당연하지. 지금처럼 같은 학교 다니고 같은 동네 살면 되지. 도영은 흐릿하게 웃으며 발을 굴렀다. 윤이 올라가면 도영이 내려오고 도영이 올라가면 윤이 내려왔다. 윤아, 이 시소처럼 말이야. 도영은 구르던 발을 멈추고 기쁜 건지 슬픈 건지 구분하기 힘든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계속 반대로 움직일 수 있어.


헤어진 연인에게 어떤 목적이 남아 떠올린 기억이 아니었다. 예전엔 무얼 놓쳤는지 몰랐는데 이젠 놓친 부분만 보였다. 도영에게 보냈던 마지막 이메일은 발송 후 며칠이 지나고 수신 확인란에 체크 표시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메일에 대한 답장이나 전화는 없었다. 어쩌면... 대답을 들었던 건지도 몰랐다. 윤은 움직이는 그네에 앉아 물끄러미 시소를 보았다.


「 우리가... 계속 반대로 움직일 수 있어. 」


누군가 그랬다. 이별에 적응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함께 한 기간의 반이라고. 그럼 우리는 언제를 시작으로 봐야 할까. 스무 살 아니면 열다섯 살 아니면 아홉 살.

일 년이 지났는데도 괜찮지 않은 걸 보면, 스무 살은 우리의 시작점이 아니다. 그럼 이년 반 되는 날에 다시 확인해야겠다. 그때도 아니면 오 년 반이 되는 날에 확인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의 시작점을 알게 되겠지. 우리의 끝점도 알게 되겠지.


최도영...

넌 날 만나면 어떤 얼굴을 할까.

난 널 만나면 어떤 말부터 할까.

우린 언제쯤 다시 만날까.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별일 없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별일 있길 바라기도 하였다.


윤은 수신자 부담으로 걸려 온 지금의 전화가 몹시 반가웠다. 언제나처럼 역시나 지훈이었다. 재작년 도영의 집에서 나와 혼자 육교를 걷던 그때도 지훈에게 전화가 왔었다. 무슨 일 있냐며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묻는 지훈에게 윤은 우느라 답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오늘은 그때처럼 소리 내 울지 않았다.


“오빠, 탈영해라.”

-그럴까.

“탈영하고 나 ‘미랭시’보여 줘. 그 영화 우리나라에서 나만 못 봤어.”

-좋아. 난 이미 봤지만, 널 위해 안 본 걸로 해 줄게.


윤은 푸우- 하고 웃은 뒤 지훈에게 언제 휴가 나오느냐 물었다.


-너 어디야.

“응? 나 놀이터.”

-거기서 뭐 해.

“그네 타.”

-누구랑.

“혼자.”


놀이터에 어떤 추억이 있어서가 아니라 잠깐 시간만 때우는 거라고, 윤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속일 사람을 속여라. 내가 너 몽고반점 있을 때부터 봤다.

“뭐래.”


윤이 마치 재미난 코미디 프로를 보듯 크고 긴 웃음소리를 내다가 입술을 부딪쳐 소릴 냈다.


“아니, 그냥... 중학교 때 오빠가 끊어 댄 벌점 카드 때문에 내가 수 백 번이나 화장실 청소했던 기억이 나서, 혼자 그네 타면서 화를 식히고 있었지.”


놓쳤던 퍼즐이 찾아질 때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다섯 번이야.


지훈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 뭐?”

-다섯 번이라고. 내가 벌점 카드 끊은 게.

“이상하다. 내 기억에는 꼭 수 백 번인데.”


지훈은 대답 대신 잔잔한 미소만 지었다. 이 상황에 농담으로 꺼낼 수 있는 옛 추억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윤아.

“응.”

-오빠 다음 주에 휴가 나가. 그때 ‘미랭시’ 보여줄게.”


그때까지 같이 못 있어 줘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전달됐다. 윤은 휴대폰을 잡은 채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난 것도 아닌데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애써 삭혀둔, 마지막이길 바라는 눈물이었다. 지훈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하나를 다 태울 동안 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재작년, 윤이 육교 위에서 주저앉아 울 때도 지훈은 휴대폰을 붙잡은 채 이렇게 기다렸다. 벌점 카드를 끊었던 횟수만큼은 기다리겠다고, 자신과 한 약속이었다.


영화 '미랭시'

영화 속 남자와 여자는 서로 같은 마음을 지녔는데도 계속 엇갈렸다. 어쩌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진심을 감췄고, 이후 의도치 않게 생기는 오해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엔 되돌리지 못하는 시간만 남고 말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지훈은 윤과 도영을 생각했다. 실수로 놓쳐버린 안타까운 인연이 아니라, 결국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야박한 인연이었다고.


윤은 애써 목소리를 다듬었다. 화제를 바꾸려고 애써 질문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윤이 물었다. 미랭시가... 무슨 뜻이냐고. 깊게 내 쉬는 숨소리에 이어 지훈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식지 않은 송장.”


끊어진 인연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모두 미랭시일지도 몰라. 기억을 지닌 채 시간을 버티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닐 테니까.


평범한 습작생. 더디고 어설픕니다. 빠른 전개를 원하는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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