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이 앞당겨진 대신 일박이 줄었다. 공지를 듣자마자 김여주는 바로 전화해 소식을 알렸다. 

하루라도 빨리 오는 게 어디야. 삼박사일에서 이박삼일이 됐을 때 이동혁은 대단한 걸 얻은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성찬이가 하겠다는 일을 도맡아 솔선수범하며 사장다운 면모를 보인 몇 없는 장면도 연출됐다. 성찬은 기가 막혀 퇴근까지 썩은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열한 시 출발로 정해져 이동혁과 함께 카페로 출근을 한 김여주는 뻔히 그려지는 장면에 웃음 지었다. 대량으로 사둔 청심액을 카운터 밑에 정리해놓고 초코라떼를 만드느라 바쁜 이동혁을 가벼운 곁눈질로 바라본다.


"누나. 출장 가는 건 처음이시죠?"


정성찬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하게 일러바쳤다. 카페 처음 열고 지금까지 중에 제일 열심히 일한 날이에요. 그전엔 이런 적 없었어요. 오후 출발로 정해진 김여주가 사장님과 함께 입장했을 때부터 정성찬은 신이 났다. 난 이럴 때 일하는 보람을 느껴. 며칠 전 하루 줄었다고 기뻐한 건 어디 갔는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던 이동혁이 정성찬의 누나 소리에 입안을 깨물며 눈썹에 힘을 줬다. 우리 사장님 왜 나한테만 빡빡하신지 모르겠네. 


"형님. 출장 가는 건 처음이시죠?"

"어. 가기 싫다. 퇴근이 없는 느낌일 것 같아."


그래봤자 정성찬도 김여주도 그러든가 말든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정성찬은 사장을 무슨 조카 보듯이 보며 알았어요 호칭 바꿔줄게요 라는 눈빛으로 대응하며 형님이 된 김여주와 대화를 나누었다. 


"형님보다 우리 사장님이 더 싫어하는 출장일 걸요."


눈은 슬프고 입은 삐죽 나온 이동혁이 열심히 초코 파우더를 녹여 얼음을 넣고 우유를 붓는다. 하루 줄어서 기쁘다 할 땐 언제고 막상 당일이 되니까 뒤숭숭한가보다. 열한 시까지 나랑 둘이 있다가 가면 안 되겠냔 땡땡이 정당화 주장을 단호하게 먹금하고 동반 출근했더니 좀 삐진 모양이다. 김여주가 대놓고 쳐다보며 웃지 않으려 입술에 입을 준다.


이동혁을 보면서 대답하는 김여주를 보니 정성찬은 참 사장님은 복도 많단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저 표정을 보고 웃어준다고? 진짜?


"형님도 만만치 않게 우리 사장님 좋아하시네요."



졸지에 형님 호칭 획득한 김여주는 황당해하지도 않고 상황을 스무드하게 받아들이는 정성찬이 신기하다. 돌아가는 모든 상황이 새롭다는 듯 똘망똘망 저와 이동혁을 흥미롭게 쳐다보던 처음과 달리 심드렁해진 태도가 색다르다. 다른 애들이었으면 툭 쏘아보는 눈빛 보고 이거다 싶어 누나 호칭으로 메들리라도 했을 텐데.

정성찬의 빠른 대응 뒤로 휘핑을 마저 올린 이동혁이 초코 드리즐 아트에 집중했다. 한 잔에는 무난한 지그재그, 한 잔에는 열심히 그린 하트가 담긴 컵이 카운터 테이블에 놓인다.


"좋아하니까 결혼해줬지. 당연한 말 그만하고 손님 을 때까지 푹 쉬어."


이러고 구석 자리 가서 다른 사람처럼 말투가 바뀔 사장님이라 정성찬은 그러려니 하며 받은 초코라떼를 홀짝였다. 퉁명스러운 기본 성격이 무색하게 김여주랑 붙으면 곧잘 애교 섞인 말끝으로 돌변하는 것에 적응하느라 처음 몇 개월 동안 진짜 어색했었다. 첫인상이 그닥이었던 사장님의 진가를 깨우치게 해주는 건 언제나 누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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