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야 알리체는 다시 카일에 대해 생각했다. '군인....소환수에다가 군인...'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알리체는 곰곰히 생각했다. 어지간한 규모의 무장 조직만큼 위험한 게 적대적인 소환수다. 거기다가 군인까지 있으면 더 위험하다. 어딘가에서 군대를 상단으로 위장시켜 소환수까지 딸려 보내면 샬루스 역시 꽤 위험할 것이다. 그렇다면 물총새 상단은 군대일까? 그녀는 오늘 스쳐지나가면서 봤던 선원들을 생각했다. 그을린 피부와 건

"어디 거야?" 알리체가 시가 상자를 살피며 물었다. "이번에 물총새 상단에서 들여온거야. 뭐라고 설명을 길게 해주던데 잘 기억이 안 나네. 이게 한 개비에 금화 반개라구." "요즘 어디든 그 얘기네. 나도 구경하러 가볼까." "아침에 그 서펜트가 항구에 나타났다던데. 난 못 봤어 아쉬워." 화제가 껄끄러운 주제에서 벗어나자 다들 열성적으로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엄청 멋지다던데. 은이랑 아쿠아마린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

밤새 상대방의 카드가 어떤 것일지 고민하면서 보낼 때는 영원히 패를 돌릴 수 있을것 같았지만. 그건 몸의 착각이다. 정오가 지나면 슬슬 몸이 잠을 자라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햇빛은 눈을 찌르고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릿 속에는 아무 생각도 남지 않는다. 모자를 눌러 쓰고 비틀거리며 들어오자 집사가 말을 걸었다. "돌아오셨군요 아가씨. 아침에도 안 들어와서 걱정했습니다." "아. 아는 사람을 만나서 차 얻어마시고 왔지."

응접실에 앉아 있으니 카일이 손수 차를 끓여 내왔다. "직접 하나?" "돌아다니다 보면 하인을 못 쓸 때도 많습니다. 하인이 갑자기 병에 걸리거나 할 때도 있고. 작은 배를 타야 해서 못 데려가거나 하기도 하구요." "선원을 시켜도 될 텐데?" "혼자 마시면 그러기도 하지만 손님한테 대접하기는....제가 탄 게 나을 겁니다." 카일이 차를 내오며 말했다. "알칸 지방에서 재배하는 찻잎의 새순만 따서 말린 겁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카일은 제안했다. "이렇게 만났으니 제 배라도 구경하시겠습니까?" "좋지. 자네 배가 또 유명하더군." "내부는 외부만큼 볼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구경할 거리가 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차림으로 괜찮으시겠어요? 몰래 나오신 것 같던데." 알리체는 모자를 다시 쓰며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고모부님은 다 알걸." "어. 선장님." 그들이 배에 가까워지자 배에 오르던 청년이 아는 척을 해왔다. 푸른 두건을 쓰고 회색 셔츠

<때 아닌 폭설로 120구역에서 발생한 추돌사고가.....> 싸구려 가구들로 채워진 투룸 아파트는 러닝머신이 돌아가는 소리와 tv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머리를 올려 묶고 편한 운동복 차림을 한 제이가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뛰면서 내는 소리였다. 슬슬 그만할까 생각하던 중 초인종 소리가 쨍하니 울렸다. 그녀의 황량한 거주지에는 방문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제이는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러닝머신과 tv를 껐다. 폰으로 인터폰 화면을 열자

수리공 가브리엘은 이틀 전 수리했던 고저택에 와 있었다. 공구 가방을 통째로 두고 오는 바보짓만 안했어도 다시 올 일은 없었겠지만... 두고 왔으니 어쩔 수 없다. 예스러운 양식으로 지어진 고저택은 요즘 건축하는 콘크리트와 금속. 유리로 만들오진 상자 같은 집들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대리석과 회반죽 그리고 나무를 엮어 만든 예술품 같은 3층 저택은 건축물 대신 골동품 취급을 당하는 건물들이 보통 그렇듯이 제대로 돌아가는 시설이 하나도 없었

샬루스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미학적으로 쌓아올린 건물들이 시계탑을 둘러싸고 있고. 색색으로 칠해진 범선들이 느긋하게 닻을 내린 사이로 조그만 고기잡이 배들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잘 닦인 길거리에는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과 소매를 걷어붙인 노동자들과 어부들이 활기차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 거리도 순찰하는 경관들과 이제야 깨어난 술주정뱅이들. 고단한 새벽 노동자들 외에는 거의 비어있었고. 배들도 조용히 정박해 있었다. 해가 곧 떠오를

텅 빈 방을 나가자 널찍한 정원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평화로운 풍경에 카이는 잠시 멈춰섰다. 길 옆으로 여름 꽃들이 피어 있고. 길은 잘 닦인 돌길이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하늘은 파랗고 주변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새소리도.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원의 여기저기 이름이 적힌 문들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카이가 나온 문에도 회색으로 카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천천히 길을 따라가다 가장 가까운 문 앞에 섰다. 자주색으로 '디아나'라

그래서 토요일 동아리 모임은 정기적으로 이뤄졌다. 사실 수현은 가은이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주 가은은 버스로 20분이 걸리는 이 작은 지하 연습실에 텀블러와 악력기가 든 크로스백을 메고 나타났다. 멤버들은 있는 날도. 없는 날도 있었지만 만날 때마다 조금씩 가은과 안면을 익혀 갔다. 가은의 재활 훈련도 어느 정도 끝나 이젠 키보드 앞에 앉아 이것저것 연주해 보기도 했다. 드물게 둘만 연습실에 있는 날이었다. 연주하는 음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