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앗...



레오는 루카스의 티셔츠 아래로 손을 넣어 옆구리와 납작한 배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들어온 손의 느낌에 놀랐는지 루카스의 배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천천히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며 레오는 루카스의 입술을 부드럽게 핥았다. 말랑한 입술은 당장이라도 녹아버릴 것처럼 부드러워서 레오는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는것 처럼 턱 아래에서 입술까지 여러번 혀를 내어 핥아올렸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말랑한 감촉의 피부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어느새 긴장이 풀린 듯한 루카스는 간지러운 듯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를 살짝 비틀었다. 거칠게 루카스의 입안을 파고들었다가 부드럽게 변한 키스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키스에 열중하고 있는 루카스의 얼굴은 너무나 예뻐서 레오는 키스를 하면서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키스를 어떻게 했더라.. 확실하게 다른 하나는, 한 순간도 눈을 떼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은 처음이라는 사실이었다. 



굳게 닫힌 눈꺼풀 아래에 있을 루카스의 투명한 갈색 눈동자를 생각했다. 입술을 떼어 발그레한 볼을 핥아올리자 여전히 눈을 감은채 고개를 내밀어 키스를 조르는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조금 과하게 물고 빨아당긴 입술은 평소보다 더 붉게 부풀어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조금 촉촉해진 긴 속눈썹 위를 입술로 살짝 누르자 눈가가 살짝 찡그려졌다. 접히는 눈꼬리가 귀여워서 다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 얼굴에서 닿지 않는 부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마에서 턱끝까지 보이지 않는 표식을 남기듯 키스를 이어갔다. 나란히 누워있다가 어느새 루카스의 위로 올라가 있는 레오의 등을 끌어안은 루카스는 레오의 키스에 기분이 좋은지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동그란 턱끝을 살짝 깨물었다가 길고 곧게 뻗은 목선을 따라 키스를 이어갔다. 달빛 아래 보이는 창백한 살결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쉬자 부드러움 속에 달콤한 향기가 났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일광욕을 하고 있는 고양이의 냄새와 비슷한 냄새일까. 조금 더 길게 숨을 들이쉬고 냄새를 맡자 루카스의 손이 레오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 레오.

- 좋은 냄새가 나서.

= 너도 그래. 늘 좋은 냄새가 나.

  땀냄새인 것 같은데 엄청 기분 좋아.



다시 고개를 들어 루카스의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키스했다. 갑작스러웠는지 루카스는 짧은 호흡소리와 함께 레오의 목을 두팔로 끌어안았다.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몸짓에 레오는 거침없이 혀를 넣어 루카스의 입 안쪽으로 움직였다. 얽혀든 혀끝을 빨아당기면 레오가 원하는 만큼 루카스가 끌려왔다가 또 그만큼 레오를 원하는 몸짓으로 움직였다. 레오는 그 언젠가 새벽의 기억을 떠올렸다. 닿을 수 있는 가장 안쪽까지 닿고 싶었던 그 새벽의 빛나던 루카스를 떠올리면 가슴 한쪽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심장에 좋지 않아...




= 레오...

- 응?

= Happy new year. 인사를 안한 것 같아서.

- Happy new year. 



새해 인사를 했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따뜻한 숨결이 오고 가고, 미약한 공기의 떨림이 얇은 입술 틈새로 느껴졌다. 레오가 루카스의 이마에, 눈가에, 뺨에 천천히 입술을 대었다 떼는 사이 루카스의 갈색 눈동자가 천천히 눈꺼풀 아래로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루카스의 위에서 몸을 감싸고 있던 레오가 옆으로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닿아있던 온기가 떨어지자 어느새 싸늘해진 밤공기가 둘 사이로 파고들었다. 팔을 뻗어 루카스와 손을 잡고 고개를 돌리자 루카스도 고개를 돌려 레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 왕아.

= 응?

- 해도 돼?

= ....뭘?



아까와는 다르게 삭제된 목적어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은 루카스의 눈동자가 레오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움직였다. 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는 눈동자를 덮고 있는 길다란 속눈썹이 예뻤다. 루카스를 향한 시선을 그대로 둔채 레오가 조금 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 



= 여기서는..좀...

- 응? 

= ...바깥이잖아.

- 여기서 하자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지금 하자는 얘기도 아니었고.

= 그만 좀 놀려. 진짜..




붉게 물든 얼굴을 하고 루카스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냥 좀 놀려보려는 것 뿐이었는데, 긴장해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루카스가 귀여워서 레오는 루카스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웃음이 나왔다. 내 가슴에 닿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열기만큼 나를 원하는 것 같은 루카스의 마음이 좋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 어..?

= 왜?

- 비온다..



맨다리에 닿는 차가운 물방울이 착각이 아니었다. 조금씩 그 간격을 좁혀가며 작은 물방울들이 다리 위로 하나둘 자국을 남기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킨 레오를 따라 루카스가 일어서자 바닥에 펼쳐둔 담요를 들어 흙을 털어냈다. 그대로 루카스의 어깨를 담요로 감싸고 머리까지 덮어주자 루카스의 얼굴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 이게 뭐야.

- 감기 걸리면 안돼.

= 레오.

- 응? 

= 비도 오니까..손 잡고 가자. 아무도 없을거잖아.

- 업고 가고 싶은데. 업어도 돼?



레오는 루카스의 앞에 몸을 숙여 등을 내주었다. 가까이 한걸음 다가온 루카스가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빗방울이 등 위로 차갑게 하나, 둘, 하나 둘, 이제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티셔츠가 완전히 젖기 전에 루카스가 업히면 좋겠는데- 생각하는 사이 등 뒤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묵직한 무게감도 느껴졌다. 루카스는 레오의 등에 업히고 팔을 벌려 레오의 목을 끌어안았다. 레오가 꼼꼼히 둘러준 담요가 두 사람을 함께 둘러싸고 있었다.



= 무겁지 않아?

- 어? 업힌거야? 몰랐네, 너무 가벼워서.



등 뒤에서 울리는 기분 좋은 웃음이 듣기 좋았다. 빗방울이 점점 더 빠르게, 점점 더 세게 내리고 있었지만 레오는 그와 반비례하듯 더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면 목욕을 해야겠다. 루카스의 발을 씻어주고, 따뜻한 물에 목욕도 하고 나면 이번에는 진짜로 하자고 해야지. 루카스의 뺨이 레오의 목 언저리에 살짝살짝 닿고, 내쉬는 숨결이 턱 아래를 간지럽히며 지나갔다. 고개를 숙여 루카스의 다리가 천천히 흔들리는 걸 보고 업고 있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 힘들어? 이제 내가 업어줄까?

- 내가 업히면 벌칙 받는 기분일걸? 너 힘들어서 안돼.

= 나도 업을 수 있는데.

- 음..그럼, 열발자국만 업어줘. 숙소 앞에서.

= 좋아. 내 힘에 깜짝 놀라게 될거야.



투둑. 툭. 빗줄기가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풀벌레들의 노래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어두운 밤의 고요함 속에 레오의 발소리와 기분좋은 빗소리와 루카스의 숨소리와 두 사람의 심장이 크게 뛰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대로 멈추지 않고 걸어서 아프리카를 떠나 두 사람의 미래로 가고 싶었다. 헤어져야 하는 시간을 뛰어넘어 함께하는 시간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레오와 루카스는 조금씩, 잠시 이별해야 하는 시간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




여행에서 돌아온 뒤 루카스의 기분은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레오는 본격적으로 시작한 Healthy Home 프로젝트 때문에 귀가 시간이 계속해서 늦어졌다. 평소보다도 더 열심히 자전거를 달려 집에 도착하면 루카스는 늘 유치원 건물앞에 앉아 석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 때까지 멍하니 석양을 바라보던 루카스가 뒤늦게 레오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집안으로 들어가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기도 전에 루카스가 레오를 끌어안고 침대에 누웠다. 옷이라도 갈아입고 안아준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한참을 껴안고 있는 루카스의 등을 달래듯 쓰다듬어주면 레오의 젖은 티셔츠에 또다른 자국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모르는 척, 루카스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 점심은 뭐 먹었어?

= 옥수수. 맛있었어. 너는?

- 나는 빵 먹었어. 



하루 일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레오는 루카스가 하루 일과 중 꽤 많은 부분을 의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어째서일까... 안겨있는 루카스의 얼굴을 내려다보다 볼을 꼬집었다. 바로 찡그려지는 눈가에 입술을 가져다대자 입술을 내미는 표정이 귀여웠다. 볼록해진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이어가다 입술을 파고드는 루카스를 놀리듯 일부러 입을 꾹 닫았다. 으으응... 투정을 부리는 듯한 루카스의 목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다시 가벼운 키스, 그리고 어느 샌가 혀가 얽히고 질척한 소리가 오고가는 깊은 키스로 이어졌다. 



- 제니 왔다 갔어?

= ....응.

- 앞으로 더 자주 오겠네?

= 다음주 부터는 매일매일 온대. 너는...더 늦게 와. 빨리 오지 마.



루카스의 후임으로 오게 된 제니는 작은 체구에 짧은 머리에, 밝은 미소가 예쁜 여자아이였다. 대학교 갭이어를 이용해서 봉사활동에 지원하게 되었다는 제니는 지금은 시내에 있는 숙소에 머무르다가 루카스가 떠나면 이쪽으로 이사올 예정이었다.



- 왕아...

= 응.

- 왕아-

= 왜..



이름을 부르자 대답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레오가 루카스를 안은 몸을 돌려눕자 엉겁결에 레오의 위에 엎드린 자세가 된 루카스가 몸을 일으켰다. 아래에서 올려다보게 된 레오가 팔을 뻗어 루카스의 뺨을 어루만지다 젖은 속눈썹에 손을 대자 루카스가 눈을 감았다. 나른한 고양이같은 표정에 레오는 루카스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 너 가면, 그냥 라이언 숙소에서 신세 질까? 거기 방도 많은데.

= 그건 안돼!

- 왜?

= 라이언...은 안돼. 너한테 귀엽다고 하고, 

  또 너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대답도 안해주고. 

  만나면 너랑 뭐했는지만 물어보고.



볼록해진 볼에 잔뜩 불만을 담은 채로 루카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조금 더 빨라졌다. 잔뜩 털을 세운 고양이 같은 반응에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아서 레오는 잡고 있던 루카스의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래서, 앞으로 라이언은 만나면 안돼?  웃음과 섞인 레오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듯 루카스가 몸을 숙여 레오의 위로 엎드려 누웠다. 



= 안돼. 라이언은...



레오는 루카스가 라이언에 대해서는 오해하고 있도록 놔둘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라이언이 귀엽다고 한 건, 루카스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었지만, 루카스가 오해하고 있는 편이 나았다. 레오를 좋아하냐고 한 질문에도 대답 대신 웃어버렸다는 라이언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어처구니가 없어서...도대체 어떤 의식의 흐름이야.  레오의 이야기가 아니면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루카스니까 라이언은 당연히 레오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을텐데. 



- 왕아..

= 응.

- 마크랑 마크 여자친구는 사귄지 꽤 오래됐대. 고등학교 때부터라던데.

= 나도 들었어. 

- 마크는 아직도 매일매일 여자친구한테 편지를 써.

  일주일에 한번씩 우체국에 가서 보내고. 

= 알아. 정말 대단해.



가슴 위에 얼굴을 대고 고개를 끄덕이는 루카스의 동그란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땀냄새 나지 않아? 신경이 쓰인 레오가 물어봐도 여전히 맞닿아 있는 몸을 떼고 싶지 않은 루카스는 조금 더 힘을 주고 레오를 껴안았다. 



- 한없이 가벼워 보이다가도, 또 한없이 무거운 것 같아.

= 응.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아.

- 마크가 딱 하나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했어.

= 뭘?

- 너에게 믿음을 주는 것. 너를 믿는 것. 

= ....

- 그래도, 왕아..나는 매일 너가 만나게 될 사람을 질투하게 될거야.

  내가 없는 시간 속의 너를 알게 되는 사람들을 모두 질투할 거야.

= ....나도 그럴 것 같아.



루카스를 완전히 감싸고 끌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자 루카스가 레오의 가슴께를 살짝 깨물었다. 갑갑해- 아프다고- 하지만 절대로 놓아주고 싶지 않은 마음은 둘 다 마찬가지여서 루카스는 조금씩 레오의 팔을 밀어내듯 몸을 움직였다. 



-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금방 갈게.

= ...응. 

- 너 가려면 아직 1달도 넘게 남았는데, 자꾸 이런 얘기만 하네. 미안해.

= 계속 약속해 주면 좋겠어, 레오. 그럼 나도, 같이 약속할께.

- 그럼, 하루에 하나씩 약속할까? 

= 그렇게나 많이 할게 있어?

- 응. 그렇게나 많이 있어. 오늘의 약속은, 저녁은 꼭 먹기. 

  배고프다, 우리 밥 먹으러 가자. 



시간도 정확하게 아까부터 배고프다고 소리를 내고 있는 배를 원망하며 몸을 일으키자 루카스의 웃는 얼굴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코끝이 닿고 기분좋은 웃음이 따듯한 숨결을 타고 얼굴에 닿았다. 고개를 틀어 레오의 입술에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입술을 맞물린 루카스가 조금씩 입술 안으로 파고들었다. 천천히 입술 안쪽을 간질이듯 스치고 지나갔다가 조심스럽게 입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혀는 곧 레오와 만나 더 깊이 끌어당겨졌다. 레오의 팔이 루카스의 허리를 감싸안고, 루카스가 레오의 목을 감아 끌어당겼다. 따뜻하고도 달콤한 키스가 이어지고, 이제는 배고픔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레오의 배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소리에 루카스가 그만 웃음을 터트리며 레오에게서 입술을 떼어냈다. 



= 약속할게. 



레오는 열기에 들뜬 루카스의 눈가에, 조금 전까지 닿아있던 붉은 입술 위에, 가쁘게 숨을 내쉬는 코끝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아쉬움이 남는 키스가 되지 않게, 언제나 이 웃음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루카스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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