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도 작성. 


이 매뉴얼은 왕따 본인을 위한 매뉴얼입니다. 왕따당하는 사람의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는 영양가 있는 조언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낮으며 오히려 이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세상엔 이러저러한 조언이 많지만 이 조언이 당신을 찾아갔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겠지요. 이 글이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외톨이였던 사람이었으며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사람이고,  당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수렁에 빠진 것 같을 거에요.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병 걸린 것처럼 쳐다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말을 건 사람들은 오염된다고 하면서 당신과 말 한 사람들까지도 왕따가 될 수도 있고요. 선생님께 말하면 고자질쟁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괴롭힘이 악화될 수도 있죠. 


괴롭힘은 흐르는 물입니다. 한 쪽을 막으면 다른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요. 더욱 최악인 건 그걸 감내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는 사실이죠.


만일 당신이 부모님에게 말 못 한다면 이런 상황이겠죠... 부모님이 힘이 없다고 생각되거나, 또 괴롭힘을 더욱 악화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말이에요. 이해해요. 부모님은 가끔씩 감정적이 되죠. 우리 아이가 괴롭힘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면서 일을 더 키우실 수도 있어요. 


괴롭힘은 사회적 알력다툼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봐서 귀여울 뿐, 실제로는 권력다툼을 하는 어른이나 다름없어요. 이미 여론이 무엇인지 알죠. 


괴롭힘을 당할 때 대처하는 방식은 무를 수 없는 바둑을 두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발 한 수 한 수 조심히 두세요. 당신의 안위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매뉴얼은 '케바케' 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당신의 선생님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아니면 학교 종례 후에 '괴롭힌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운운 하면서 이야기를 크게 만드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률적으로 어떻게 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어떤 이에게 답인 것이 다른 이에겐 오답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해요. 언젠가는 끝나는 게임이라고.  당신만이 당신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플레이어고, 누구보다도 삶을 재미있게 살 거고 이 판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건 변치 않을 거라고. 와닿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요. 학교생활엔 끝이 있고, 그게 진실이니까요. 


하지만 그 고된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실질적이고 모순적인 요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상황에 맞게 채택하세요. 항목 1보다 항목 2가 더 효과가 좋으나 그만큼 더 힘든 일입니다. 


1. 기록  

 1.1 일기 쓰지 말기. 자신이 얼마나 맞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하지 마세요. 그것들은 빠르게 잊혀질수록 좋습니다.  내가 맞았을 때, 괴롭힘 당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 기록하지 마세요. 저주나 욕도 하지 마세요. 당신은 매일 숨쉬기도 벅찰 테니까요. 


1.2 일기 반드시 쓰기. 당신이 당하는 폭력이 사법체계가 처벌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 - 멍이 남거나 목졸린 흔적이 남거나 성추행 성폭력이라면 자신이 당한 일들과 느낀 점들을 기록하세요. 사진은 백업해 놓고, 녹음기를 동원하고(들키지 마세요) 증거품목을 모으세요.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괜찮지만, 가능하면 신상이 밝혀진 계정에서 쓰지 마세요. 괴롭힘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록하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나중에 증거품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기장을 쓰시되 학교에 들고가지는 마세요. 학폭위 말고도 고소/ 고발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세요. 


2.폭력

2.1 폭력 쓰지 말기 

이후 학폭위가 열릴 때도 서로가 서로를 때렸다는 것이 밝혀졌을 시 곤란해집니다. 물론 한 명만 계속 맞다가 딱 한 번 때렸어도 운이 좋지 않으면 '사이좋게' 징계 받으면서 무마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는 보수적인 단체고, 사고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의 선에서 사건을 끝내는 것을 선호합니다. 오래도록 당한 괴롭힘이 잠깐의 투닥거림으로 비춰지게 하지 마세요. 이왕 당할 거면 일방적으로 당했음을 말하시고, 힘들겠지만 증인을 만드세요. 


2.2 약간의 폭력 쓰기. 

당하기만 하면 물 줄 모르는 줄 압니다. 괴롭힘의 초반이라서 판도가 형성되는 추세라면 약간의 폭력을 써 보세요. 하지만 학교에서 처벌당하지 않는 선에서 수위를 맞추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직접적으로 때리지 않으면서 위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의자나 책상을 던지거나 무너뜨리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상한 놈으로는 비춰질 수도 있지만 괴롭힘은 안 당할 겁니다. 


3. 도피

3.1 문화 콘텐츠로 도피하기

책, 영화, 드라마, 등으로 도피하세요. 살아가는 희망을 주는 세상, 나를 겁박하지 않을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계속 알려 줍니다. 내가 일부일 수 있는 세상을 찾을 수 있어요. 또 언어 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3.2 현실을 직시하기

절대 도피하지 마시고 현실을 직시하세요. 어떻게 하면 내가 당하는 괴롭힘을 최소화할 수 있을 지 연구하고, 스스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어떻게 대처할지 전략을 짜세요. 나대는 것과 찌질한 것 사이의 균형을 찾고, 나를 받아 줄 친구 무리를 물색하면서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도록 노력하세요.


4. 미래

4.1 꿈에 대해서 쓰기 

학교 졸업 이후에 나를 살아가게 할 원동력에 대해서 쓰세요. 대학도 좋고, 연애도 좋고, 큰 포부도 좋습니다. 당신은 지금 자살하지 않는다면 높은 확률로 60세 이상까지 살 겁니다. 그 시기는 지금처럼 속박되어 있지 않고 당신이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절대로 할 수 없지만 그때는 할 수 있는 것들의 리스트를 쓰세요. 


4.2 죽음에 대해서 쓰기

한 편으로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서 쓰는 것도 상당히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혹은 죽음 이후에 나는 얼만큼 편하고 자유로워질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세요. 자살을 추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왕따 같이 심리적으로 매우 코너에 몰린 사람들에게 죽음은 하나의 결승선처럼 비춰지기도 하고, 이는 약간의 해방감을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죽음 이후에 나를 괴롭힌 이들은 어떤 처우를 받게  될 것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반응을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세요. 전자에 대해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그들은 잘 살 것입니다. 


4.3 자퇴에 대해서 생각하기

죽음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제 3의 선택지, 자퇴가 있습니다. 학교 밖에도 삶은 있고 보란 듯이 더욱 성공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강한 의지만 있다면 판에 박힌 교육으로 머리가 굳은 사람들보다 더욱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나가기 너무 억울하잖아요? 잘못은 쟤네가 했는데. 


학교는 참 힘들고 효율 안 나는 공간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도서관이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면 그런 생각들을 직접 실천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실망시키기 싫어하는 착한 아이라면 더욱더요. 그러나 그런 것들은 괴로우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난 당신이 살아 있길 원합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데이터를 모으면서 끝없이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라고 곱씹으세요. 불필요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더욱 나오지 않도록, 자신만의 해결방법을 찾으세요. 최대한 사세요. 사는 거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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