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유배세(유진배세) / 교환학생 차유진 X 연영과 배세진

* 글을 쓴 본인은 교환학생과 버디 시스템을 체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관련하여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설적 허용이라고 생각하시고 가볍게 읽어 주세요.

* 마감을 치면...아이소에 나옵니다...나오게 해주세요......교수님 제발요.........저 마감쳐야 해요.....

* 들으면서 읽어주세요.



Q. 대학 생활의 꽃은 무엇인가?

A. ……예?


다짜고짜 질문이라니 이 무슨 예의는 물에 말아 먹은 짓거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닐 테니 잠깐이라도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대학 생활의 꽃이라니 그걸 몰라서 묻냐며 당연히 축제라고 답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한 마리의 부나방처럼 달려들어 산화하는─이 말을 하면서 그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살며시 무시하도록 하자─연애라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대학은 모름지기 학문의 전당이니 학문의 최정점을 찍은─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강의력이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이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꽃이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은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구의 몇 십배 이상은 될 것이므로 그 중 어느 것이 맞았다, 틀렸다, 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으니 대체 어떤 것이 대학 생활의 꽃인가, 에 대한 답은 유보하도록 하자. 그럼 대체 이걸 왜 물어본 거냐고? 왜, 모든 스피치에는 '인─트로덕─션'─인트로덕션을 읽을 때면 꼭 양손 검지와 중지를 펴서 두 쌍의 토끼 귀를 만들고 까닥까닥 해주기 바란다─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거대한─사실 거대하다지는 않지만 수식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지 않은가─글의 시작에 와 있는 것이다.

여기, 티원 대학교 연극영화과의 별이자 교수님들의─본인은 그 호칭을 극렬하게 거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귀염둥이이자 저 사람의 피가 붉은 색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붉은 피를 가진 이는 없을 것이라는 별칭─치고는 꽤나 길기에 그는 일명 연영과 마르크스 혹은 연영과 레닌으로 불리곤 했다─을 가진 이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 보면 물어보는 족족 이야, 저 얼굴 연예인을 해야 하는 상이네, 하는 소리를 듣고 출연했던 영화 제목을 대면 아니, 그 쪼그맣던 애기가 벌써 저렇게 컸어? 라는 소리를 듣곤 하는 남자.


소개합니다. 

이름, 배세진. 나이, 25세. 티원 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 

어릴 적 유명한 호러 영화에 아기 무당으로 출연하여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음. 


세진은 생각했다. 대학 생활의 꽃은 역시 장학금이리라! 부디 연극영화과라는 낭만적인─실상은 낭만은 고기 쌈 싸먹은지 오래지만─학과에서 심지어 교수님들의 귀염둥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너무 황금만능주의적인 발언을 하는 게 아니냐고 뭐라 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라 불릴 자격도 없는, 그저 46개의 유전자쌍중 23개를 물려주는 것으로 모든 역할을 다한 남자와 소속사라고 쓰고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22조? 그게 뭐죠? 하며─물론 세진이 아역배우로 일을 할 때에는 해당 조항이 신설되기 이전이기는 했지만 미성년자노동보호법은 정부 수립 이전에도 만들어진 중요한 법이었다─자동차 앞에서 흔들거리는 흔들인형 마냥 아방거리는 치들에게 유년 시절의 수면과 맞바꾼─맞바꾼 것에는 수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돈을 뜯기며 살아온 세진은 축제도, 연애도, 뭐도, 그 무엇도 장학금이라는 이름의 꽃을 이길 수 없다 생각했다. 축제? 좋지. 하지만 어차피 하루가 지나고 나면 모두가 공평하게 술의 앞에 무릎꿇지 않겠는가? 연애? 좋지. 하지만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한다면 훨씬 생산성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연애가 대학의 꽃이라고 말한 이조차 그 발언에 서글픈 눈물을 흘렸고. 교수님들의 강의? 세상에서 첫 번째로 좋은 교수는 P/NP 강의만 여는 교수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은 교수는 모든 학점에 +를 붙여주는 교수다. 학문도 일단 사람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피같고 살같은 장학금을 만나기 위해서는 시험이라는 이름의 창을 손에 쥐고 과제라는 이름의 갑옷을 온 몸에 두른 채 학생들을 기다리는 교수를 뛰어 넘어 학점이라는 성배를 손에 넣어야 했다. 그 험난한 여정에서 어떤 이들은 교수를 넘기 위한 혁명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인간으로의 진화를 꿈꾸는 플랑크톤이 되기도 하였으나, 세진이 왜 교수님들의 귀염둥이라고 불리겠는가? 그는 21학점을 꽉꽉 채운 시간표를 가지고도 4.0을 쟁취해 내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배세진이라는 이름의 국어사전에 재수강이라는 단어는 있을 수 없었고, 그의 성적표에서 세 번째 알파벳─C라던가 D라던가 F라던가─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연극영화과라면 그 만큼 실력이 출중하니까 다른 걸 하지 않아도 학점이 잘 나올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일단 연극영화과에서 실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짚고 가도록 하자. 아무리 천만 영화의 주연이라지만 세진은 학생이고 학점이라는 성배를 쥔 것은 교수다. 

게다가 세진은 연기 실력만 출중한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연예계에 발을 묻고 살아 온 세진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도, 아무리 유명한 작품의 주연을 했다 하더라도,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러므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배우를 그만 두게 되어야 할 때, 잡을 수 있는 길 하나 정도는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그래서 세진은 잡을 수 있는 길로 심리학을 선택했다. ……취업을 생각하면 심리학보다 훨씬 도움이 될 법한 과가 사회과학대학 옆 상경대학에 있지 않냐고? 물론 심리학이 미래에 유망한 학문이라고는 하나─비록 10년째 유망'만' 하다고 해도─취업을 생각하는 문과라면 모름지기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하는 것이 스테레오하지 않겠냐고 조언한 이들도 없지는 않았으나, 배세진의 별명─연영과 마르크스─을 생각해 보면 그가 경영학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사회학과를 복수전공하는 게 낫지 않았겠냐고? 당연히 세진 또한 마음 같아서는 사회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그가 다니는 대학에는 사회학과가 없었기에 그것 또한 선택지가 되지는 못했다.

이야기가 굉장히 산으로 가 버린 것이 없지 않지만, 배세진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거다. 21학점 중 12학점을 전공으로만 꽉꽉 채우고 9학점을 복전 과목─그것도 심화 전공으로만 꽉꽉 채우고도 4.0을 쟁취해 내는 사람. 그런 와중에도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겠다며 교내 동아리에서 만드는 영상이나 영화에 간간이 출연하며 커리어를 이어 나가는 사람.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세진은 1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군대를 한 번 갔다 오고 휴학을 한 번 하기는 했어도 성적 장학금을 놓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까, 3학년 1학기 까지는 그랬다는 거다.

……세진은 지금 3학년 2학기를 다닐 예정이고.


모든 것은 술이 원수였다. 그놈의 술만 아니었어도 지난 학기 마지막 기말고사를 날리지는 않았을 거고, 지난 학기에도 여전히 그는 교수님의 귀염둥이였을 거고, 이번 학기에도 여전히 성적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놈의 술은 세진의 기말고사를─심지어 전공도 아닌 1학년들과 함께 듣는 교양이었다!─하늘 위로 날렸고, 성적표를 받아든 세진은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고야 말았다. 미학의 이해, F. 만약 시험이라도 쳤다면 이전까지의 과제와 중간고사 성적이 있었으니 C0는 나왔겠지만, 안타깝게도 술에 꼬라박힌 세진은 시험을 치기는 커녕 그날이 시험인 것조차도 잊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게 다 하일준 탓이야……. 근본적으로 원망해야 하는 사람은 다음 날이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아끼는 후배가 소맥을 마는 게 아니라 소맥에 말아 먹히고 있다는 동기들의 말에 넘어가 결국 시험을 말아먹은 자신이겠으나, 자신을 술집으로 불러낸 건 그나마 친하다고 할 수 있는 동기 중 한 명인─대쪽같고 부러질 지언정 굽히지는 않는 세진의 성정상 친한 동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일준이었으니 성적표를 본 순간 세진은 본능적으로 일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시험을 날려먹은 것은 배세진 본인인 것을. 심지어 함께 술자리로 불려나간 체육학과 류청우─바로 그 양궁 국가대표가 맞다─는 하하하 웃으면서 쭉쭉쭉 술을 들이켰음에도 이번 학기 성적을 유지했으니─물론 그의 시험은 술자리 이전에 모두 끝나 있긴 했다─더 이상은 할 말도 없었다. 결국 A+로 점철된 성적표 속에서 반짝반짝하게 박힌 F로 인하여 이번 학기 세진의 성적 장학금에는 날개가 달렸고, 선량한─비록 세진을 술자리로 불러내긴 했지만 세진에게 술을 먹인 것은 그가 아니었고 세진은 술 때문에 고생하는 불쌍한 후배에게 화살을 돌릴만한 인성이 아니었다─일준은 세진의 원망 어린 한 마디를 웃으면서 넘겼으며, 어떻게든 학비를 감면해 보고자 학교 홈페이지의 장학 공지를 뒤지던 세진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20XX년 2학기 티원 버디 모집 안내」."


였다.




  MATE

차유진 X 배세진




Q. 버디란 무엇인가? 

A. 저한테 대체 왜 이러세요.


마치 소크라테스가 아고라에서 열심히 의견을 설파하던 소피스트들에게 다짜고짜 다가서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질문을 막 던지는 것 같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맞다. 아무 말이라도 해야 글이 이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원래 청중에게 질문을 던져야 청중이 발표에 집중을 한다는 말도 있으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우리에게 집중하고 있음을 알기 위해 질문을 계속 던져 보도록 하겠다. 그래서, 버디란 무엇인가? 대학을 다니고 있는 이라면─대학을 다니지 않더라도 일부 중고등학교에는 있기도 한다─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학에는 '교환학생'이라는 제도가 있다. 티원 대학교 국제 교류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잠시 설명을 빌려 보자면,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란 정규학기 중 해외협정체결 대학교에서 6개월 또는 1년 수학 후 본교학점으로 인정받는 교류 프로그램을 말한다. ……말은 이렇게 번지르르하게 하고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한 학기나 1년 정도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고 체험하고 살다가 오는 거다.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한 번도 해외 여행을 가 보지 않았거나, 가 봤더라도 해외 대학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거나, 해외에 있는 유명 교수들의 강의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대학 생활의 꽃 중 하나가 바로 교환학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여행이고 해외 대학이고 뭐고 일단 46개의 유전자쌍 이하 생략과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22조 이하 생략의 마수를 헤쳐 내며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새롭고 청렴하며 깨끗한 소속사와 계약하여 성인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기를 희망하는 세진은 교환학생은 무슨 국내 대학 사이의 학점 교류에도 관심이 없었다. 해외 여행?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촬영을 위해서 나갈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휴식기에 원하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다. 해외 대학? 글쎄, 그 또한 세진은 그리 끌리지 않았다. 만약 미국의 USC나 NYC, UCLA처럼 연극학과나 영화학과에서 높은 명성을 가진 학교들을 갈 수 있다면 세진의 마음 또한 동했겠으나, 티원 대학교의 교류 학교에는 그러한 학교가 많지 않은 편이었고 있다 하더라도 세진은 자신의 영어 실력에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교환학생을 가면 좋은 경험을 할 수는 있겠지만 어학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토익 점수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졸업을 위한 조건 취득에 가까웠으므로─교환학생을 가지 않아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과 교환학생을 간다고 하면 달려들 46개의 유전자쌍 이하 생략의 생활비 및 도박비 요구를 비교한다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할 것이었다. 세진은 감당하지도 못할 것은 생각하지도 말자는 주의였다. 게다가 교환학생을 가서 생길 새로운 인간관계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해외 교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조금 끌리긴 했으나 그 정도는 위튜브나 다른 온라인 강의 컨텐츠로도 어느 정도는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러한 사정으로, 세진과 교환학생이라는 단어는 면담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관계였다. 아마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세진은 그 단어와 면담 한 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진이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끌려 나간 술자리에서 술에 정신을 꼬라박고 성적을 저 하늘 너머로 날려 장학금 나올 구석을 찾아 헤매게 되지 않았더라면.


"…외국어 능력이 출중하지 않더라도 타문화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문화탐방을 진행하거나 외국인학생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학생이라면 지원 가능 합니다."

"…세진아, 너 처음 보는 외국인이랑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같이 고궁이나 박물관 돌아다니는 정도라면, 할 수 있을 테니까…."

"음……."


한국까지 와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는 사람이 그 정도로 만족할 것 같지는 않은데. 청우는 애매한 웃음을 입에 걸치면서도 오랜만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며 왼손으로 자신의 턱을 받쳤다. 물론 정말 한국에서 듣고 싶은 강의가 있거나 학구열이 높은 학생일 수도 있겠지만, 최근에는 K-Pop이나 K-드라마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눈 앞에 있는 작은─청우가 여전히 자신을 작은 세진이라 생각할 때가 있음을 알면 세진은 눈을 크게 뜨면서 허망한 표정을 지을 것이 뻔했기에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친구는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기도 하고, 어릴 적에는 천만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으니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나, 싶기도 했다. 게다가 저렇게 필사적으로 장학금을 찾게 된 이유의 1할 정도에는 자신도 기여했으니, 뭣하면 자신이 도와줘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교환학생이라는 새로운 관계가 생긴다면, 세진의 좁은 인간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겠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우연한 기회로─세진과 청우는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세진과 친해지긴 했지만, 3년 동안 지켜본 세진의 인간관계는 정말 좁고 작은, 말 그대로 햄스터 굴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배우 활동을 하게 되면 훨씬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며 활동해야 할 텐데, 정말 저런 인간 관계로 괜찮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작 세진 자신은 생활하는 데에 충분한 인간 관계라며 만족하는 듯 싶었지만, 친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편, 청우가 교환학생을 만나는 것이 자신의 좁은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특단의 방법일 수 있겠다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음은 상상도 하지 못한 세진은 비교적 깊이가 얕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외국어 능력이 출중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대화가 가능해야 교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영어를 아예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의 내용에 대해 물어본다면─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교수에게 물어보겠지─도저히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역시 무리인가. 교내 장학금은 이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역시 외부 장학금을 찾아봐야 하나. 잠시 생겼던 자신감에 올라가 있던 어깨를 폭, 주저 앉히며 세진은 다시 노트북 화면을 노려 봤다. 역시 술이 원수다. 박문대한테만 술을 금지할 게 아니라 자신 또한 술을 완전히 끊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며 세진이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린 순간, 세진의 인간관계와 교환학생 사이의 상관관계 분석을 끝낸 청우가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운을 뗐다.


"그 친구랑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세진아."

"……진짜? 그렇지만 영어 실력도 그렇고……"

"음, 배우로 활동할 때에는 영어 실력도 필요하니까 미리 연습해 보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때? 아마 그 친구랑 대화하다 보면 회화 실력도 많이 늘어날 거고, 배우가 됐을 때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대해야 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괜찮겠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버디 모집 안내문을 살펴보기 시작한 세진을 바라보며 청우는 바람빠진 웃음을 내보냈다. 처음엔 조금 힘들어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봐온 세진은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하는 친구였으니 괜찮을 거였다. 만약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자신도 도와줄 수 있고, 동아리 후배들 또한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가볍게 생각을 마무리 지은 청우는 자신의 노트북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종강을 하고 성적까지 나온 지 오래였지만 자신 또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몇 개 남아 있었다. 동의서를 작성하고 메일로 전송하면 끝나는 일이었지만, 아마 세진에게는 조금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니 메일 전송이 끝나면 세진이 좋아하는 케이크라도 한 조각 사서 먹이는 게 좋을 듯싶었다.


*


약 8천자에 달하는 이 분량을 끌고 왔음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겠지만, 세진은 당당히 티원 버디로 선발되었다. 어학 실력이 걸림돌이 되면 어쩌나, 싶었지만 졸업을 위해 취득해 뒀던 토익 성적이 국제 교류팀의 눈에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청우를 비롯한 동아리원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짜낸 활동 계획 또한 꽤 나쁘지 않았으니─처음 세진이 생각했던 활동 계획은 대부분 박물관과 고궁 견학에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활동 계획 완성에는 문대와 큰 세진의 큰 도움이 있었다─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선발과 함께 안내 된 오리엔테이션 내용 또한 큰 어려움은 없었고, 오히려 외국인 학생들의 학교 적응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국제 교류팀의 발언은 세진에게 큰 책임감을 안겨 준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후배들에게 모범이자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예를 들면 문대의 술을 금지하기 위해 촉각을 세운다던가─세진이었기에 해당 발언은 세진의 특성─해내고 싶어!─을 발현 시키는 데에 톡톡한 기여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천 공항으로 자신의 버디를 데리러 가는 날, 웰컴 피켓부터 한국 및 서울 안내 책자까지 챙기고 깔끔한 셔츠에 슬랙스 차림으로 연한 크림색 가디건을 걸친 세진은 입술을 꾹 말아물고 입국장을 응시했다. 버디의 이름은 차유진, 성별 남성, 나이는 21살. 캘리포니아 샌디애고에서 나고 자랐고 한국계이긴 하지만 한국어를 거의 못하며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와 스페인어─스페인어라는 단어를 봤을 때 세진이 얼마나 머리를 싸맸는지는 동아리 부원들만이 알고 있었다─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영어로 하는 편. 버디 선발 후 처음 정보를 받아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십번─어쩌면 몇 백번─을 반복해서 읽은 버디 정보였지만, 혹시나 틀린다면 최악의 첫인상이 될 지도 몰랐으니 세진은 한 번 더 버디 정보를 복기했다. 그래도 같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배정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하기는 했으나 한국어를 거의 못하기에 한국 사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입국 절차가 끝나면 기숙사 입소부터 도와주는 거였지. 그러려면 일단 같이 학교로 가야 하고……."


세진은 손가락으로 오늘 하루 동안 진행해야 하는 일정을 꼽았다. 버디가 모든 입국 절차를 마치면 학교로 이동하여 기숙사 안내와 함께 짐 정리를 돕는다. 어느 정도 짐 정리가 끝나면 학교 캠퍼스를 돌아 보며 간단히 학교 안내와 이후 강의 수강에 대한 안내를 함께 진행하고, 버디의 희망사항에 따라 서울 안내를 진행해도 좋다. 버디의 성향에 따라서 이후 일정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세진의 버디는 중학교 때부터 쿼터백을 해왔고 본래 다니던 학교에서의 교내 활동 또한 굉장히 다양하게 한 편이었으니 아마 서울 안내를 희망할 것 같았다. ……비록 세진은 안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조금 더 선호하겠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진은 버디가 원하는 일을 함께 진행할 자신─자신이라기 보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이 먼 이국 땅에서 믿을 사람이라고는 자신밖에 없을 텐데─실제로는 대사관도 있을 것이고 학교 국제 교류팀 또한 버디를 돕겠지만─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갑자기 불타오른 책임감에 세진은 할 일을 꼽아 보던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불끈 주먹을 쥐었다. 

세진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다시 손가락을 꼽는 동안 시간은 착실하게 흘렀고, 입국장이 열리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두명이 입국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붐비자 짐이라고는 작은 사철백 하나가 다였던 조금씩 밀려 났지만, 어떻게든 밀려나지 않기 위해 세진이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던 순간 세진의 눈에 익은 붉은 머리가 보였다. 처음 봤을 때 알아보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몇 번을 반복해서 봤던 버디의 얼굴이었다.


"──유진!"


이렇게 불러도 되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버디─유진의 이름을 부른 세진은 최선을 다해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 유진 또한 세진의 사진과 정보를 미리 받아 보았던 것인지 아하, 하는 얼굴로 세진을 향해 다가 왔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세진은 미리 준비한 인사말을 건네려고 했다. 그래, 만약 불쑥 드밀어진 붉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분명 세진은 준비한 인사말을 건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진의 버디는, 세진의 생각보다도 훨씬 활동적이고 쾌활하며 붙임성 있는 모양이었다.


[와, 한국 처음 와 봐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나라는 어떨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공항이 훨씬 크네! 배…세진? 맞아, 배세진이라는 3학년이 내 버디? 라고 하던데, 세진, 맞아요? 으음, 생각했던 거랑은 이미지가 조금 다르긴 한데……그래도 괜찮아요! 한국은 아직 잘 모르긴 하지만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러고 보니까 기숙사에서 살게 된다던데, 세진이 안내해 주는 거죠?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내 소개를 안 했네! 그러니까, 한국어로 하면……]

"안녕하세요, 차유진입니다! 잘 부탁해요!"

"…………아, 응, 네! ……잘 부탁해요!"


약 10문장에 달하는 유진의 말 중에서 세진이 제대로 알아들은 건 살짝 어눌하게 건넨 유진의 인사뿐이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제목 버디버디로 짓고 싶었는데 친구가 너 미쳤냐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근데 아직도 고민중이에요

언제쯤 당신을 만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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