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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비행

for 동동님





하늘은 아직도 아름다운가.

스러져가던 숨이 작게 내뱉은 질문은 답해줄 이를 찾지 못한다. 이내 토해낸 마지막 숨결은 그가 원치 않았을 아름다운 하늘의 한 조각이 되어 사라졌다.

모든 것에 무감한 검은 눈이 숨이 멎은 것을 확인하듯 가만 응시하고는, 습관처럼 삐뚤어지지도 않은 안경을 고쳐 썼다.

“11-b, 처리 완료.”

눈처럼 무심한 목소리가 고해진다. 동시에 포켓에서 익숙한 손길로 꺼낸 동전과 닮은 무언가를 퉁, 튕겼다.

둥글게 잘 다듬어진 엄지손톱에 퉁겨져 포물선을 그린 그것은 정확하게 시체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인프라가 뒤떨어질 대로 뒤떨어진 11-b 구역임에도 깨끗한 통신망을 타고 귓가에 박히는 상투적인 찬사를 한 귀로 흘리며 걸음을 옮긴다.

동전과 비슷한 무언가, 시체처리용 폭탄은 정확히 그가 걸음을 뗀 지 10분 후에 터졌다.

그로부터 채 10분이 지나기 전, 전 구역에 <니체, 4구역 관리자 살해> 라는 속보가 요란스레 떠다니기 시작했다.

 



“하.”

높낮이 없이 떨어진 목소리는, 그래도 전과는 달리 약간의 감정을 담았다. 의외란 의미였다.

혹여 제가 저지른 살인이 어불성설 ‘니체’의 짓으로 날조된 것이 의아한가. 누군가 궁금해한다면. 정답은 아니오, 다.

“애를 데려오라고?”

그는, ‘무명’이라 불리는 여성이 되물었다. 평소 묵묵히 긍정을 표하는 편이긴 하나 그럴 수밖에. 여성은 그 무명이다. 겨우 어린애 하나 데려오는 데 돌릴 인력이 아니다. 무언가 위험 요소가 있다면 또 모를까. 멋대로 떠벌리는 목소리에 전해 듣기로, 그 아이 주변에 무명이 상대해야 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인물은 없다고 한다.

‘아주 쉬운 배달 임무’라며 입을 놀리는 상대방의 표정이 떠올라서 조금 불쾌해졌다. 그 얼굴에 주먹을 날려 주리라, 결심하는 귓가에 익숙한 이름이 들려온다.

박 목련 소장님이 특히 신경 쓰는 안건.

어차피 거절할 생각도 없었으나, 넌지시 절대 거절해선 안 되는 특별한 임무라는 것을 전해오는 방식이 달갑지는 않다. 그냥 두 단어. ‘소장님의 지시’라고 말했다면 묵묵히 따랐을 테니까.

이렇게 비비 꼬아 전해오는 것도 분명 제 반응을 즐기는 상대방의 짓이다. 쯧, 가볍게 혀를 차며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무언가로 지켜보고 있을 터이니, 구태여 입 밖으로 대답해줄 필요는 없다.

역시나 긍정의 뜻을 알아차린 통신기 너머에서 뒷사정이 흘러나온다.

“천사?”

무명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아니.

날개가 꺾일 천사라면 19금 스플래터 장르인가.

“알겠다고 박 소장님께 전해.”

천사의 날개는 톱으로 잘리려나.






소름이 돋았다. 위기감이 위잉위잉 어린 뇌를 점령했다. 어쩌면 주변에 실제 경보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곱슬머리 소녀는 당장이라도 뒤를 돌아 멀어지려 했으나, 몸은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아마도 틀림없이 눈앞의 여성 탓이었다.

도저히 이 구역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말끔한 차림새의 여성이 나타났다. 혹여 음식이라도 구걸할 수 있을 만한 상대인가,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다 저를 빤히 응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성은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지저분한 제 얼굴을 쓱쓱 소매로 닦아냈다. 꽤 오래 제대로 씻지 못해 얼룩덜룩한 얼굴은 그 정도로는 쉬이 닦여지지 않았다.

여성은 살짝 이마를 찡그렸지만, 이내 차분히 시선을 옮겼다. 자신의 등 뒤쪽. 옷으로 숨기기엔 너무나 도드라진 날개로.

여성은 지나치게 진지하게 제 날개를 응시했다. 잠시 뒤 품에서 무언가 병을 꺼내는 손길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일순 깨닫지 못했다.

경계심이 쑥, 솟아났다.

안경 너머 검은 눈동자는 얼핏 저를 쓰레기 취급하는 어른들과 같은 것 같았으나, 이내 조금 다름을 깨달았다. 긍정적인 깨달음은 아니었다. 둥근 눈매와 다르게 날개를 바라보며 마치 물건의 품질을 재는 듯한 무심한 검은 눈은 어린 소녀에게 위기감을 일깨웠다.

‘위험한 사람일지도 몰라.’

잠시 멈췄던 사고가 흐르는 순간.

“너를 구해주러 왔어.”

쓸데없는 생각은 말라는 듯, 겨우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 말은 구원의 뜻을 품었다.

“가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줄게. 이곳은 위험하거든.”

잘 알고 있겠지만.

덧붙인 말은 상냥한 문장이었으나, 어쩐지 섬뜩했다. 안전과 위험을 거론하는 목소리에는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어린들 살기 위해 이곳에서 버틴 지가 몇 날 며칠인가. 소녀는 그 목소리에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기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 자신의 날개를 바라보고 품질을 재는 듯한 시선.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

믿을 수 없다. 이 사람은 위험하다는 결론에 쾅, 도장을 찍었다. 순진하게 남을 믿을 수 있다면 이곳에서 이만큼 살아남지도 못했다.

“일단 빵이라도 좀 먹을래.”

며칠이나 굶은 상태였다. 사고는 도망을 종용했으나 어린 육체는 이제는 고통으로 변질한 공복에 약간 망설였다. 그리고 여성은 그 망설임을 놓치지 않았다.

여성은 잘 걸치고 있던 둥근 안경을 벗었다. 그리하여 마주한 마치 뱀과 같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보랏빛 눈.

신비로움에 잠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허나 이내 몸이 말을 듣지 않음을 깨달았다.

여성의 입술이 가볍게 호선을 그렸다.

병을 든 손이 뻗어져 왔다.

그리고…….

 


 

“……흡……!”

토해지려는 숨을 억지로 막으며 눈을 떴다.

익숙한 어둠이 시야에 어른거린다.

“……허억.”

고르고 골라 내뱉은 숨소리를 죽이며 한 손으로 거칠게 이마를 닦았다. 제멋대로 뻗친 곱슬머리가 거친 손놀림에 엉켜 들어 따끔, 고통을 낳았다.

차라리 잘 됐다. 고통이 느껴진다는 건 그 빌어먹게 효과 좋은 마취제를 먹고, 날개를 강제로 잘리는 순간이 아니라는 것이니까.

육체는 움직이지 않고.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정신은 또렷하게 제 몸에 붙어있던 날개가 잘려 후드득 피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피 냄새가 났다. 죽을지도 모른다. 날개가 잘려 나간 것처럼. 어딘가 잘려 나갈지도 모른다. 그 공포의 순간이 절로 되살아나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작은 움직임에도 낡고 구멍 난 침대가 끼익 비명을 질렀다. 성장기에 급격히 길어진 신체를 구겨 넣기에는 슬슬 한계가 가까운 모양이었다.

반사적으로 움츠러드는 손가락을 펴며 소리 없는 심호흡을 반복했다. 지금 자신을 위협할 일이 없다는 것을 인지시킨다.

박영영. 제 신체의 일부를 무자비하게 잘라버린 이는 자신의 이름을 그리 고했다. 뜻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이리저리 멋대로 옮겨지다가, 이번에는 기어이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정신을 잃고 난 후 고해진 이름이었다.

어느새 후드를 푹 눌러 쓴 여성은 처음의 말끔한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약간의 짜증을 짓씹는 어조에 겁을 먹었다. 자신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 항상 남의 눈치를 살피던 소녀는 빠르게 눈치챘다. 본능적으로 저의 생사여탈을 움켜쥔 여인에게 납작 몸을 숙였다.

“오늘부터 너는 ‘박명’이다.”

이름까지 주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라고 말했다. 제 보호자가 되어 주겠다며, 마치 상냥한 것처럼.

‘달가워하지도 않는 주제에.’

여전히 죽어있는 안경 너머의 눈을 마주치기 두려워 눈을 내리 깐 채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날부터 소녀는 저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린 부모가 준 이름을 버리고 ‘박명’이 되었다.

어감이 좋다고는 못할 이름이다. 슬쩍 생각이 솟은 날도 있으나 제 운명과 그리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목숨을 걸어준 부모의 이름도 외면한 채, 자신이 살기 위해 선택한 이름이니 그리 아름답기만 했더라면 오히려 더 찜찜했을지도 모르지.

박영영은 박명에게 많은 것을 제공했다. 이슬을 막아 줄 집. 추위를 막아 줄 옷. 더는 고통을 느낄 필요 없는 매 끼니의 식사. 안정적인 생활.

반대로 박영영이 바란 것은 많지 않았다. 등 뒤.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날개의 수술. 타인과의 단절.

눈에 뜨이지 않을 평범한 사람이 되어 보이라고 했다. 공부도 운동도 적당히. 타인과 대화는 최소화. 친구는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게 전부 단 하나. 돌연변이인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기 위한 방법이라며. 너는 오롯이 그것만을 지켜주면 된다고 했다.

함께 속삭여오던 돌연변이의 최후는 박명을 겁먹게 하기 충분했다. 사람들은 인어의 꼬리를 먹고 뿔 달린 인간의 뿔을 달여 마시며, 날개 달린 인간은 탕으로 끓여버린다고 했다.

꾸준히 들려주는 수많은 끔찍한 이야기들은 원래도 내성적이던 박명을 더욱 내성적이고 눈치 보도록 성장시켰다.

그러나 성장해 나가며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들이 도시 괴담에나 나올 법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조금 반발심도 가졌다.

하지만 이내 꺾였다. 도시 괴담 같은 이야기로 겁줬다고 반항하기에는, 일 년에도 몇 번씩 돋아난 날개를 잘라낼 때의 공포가 생생하니까.

지금도 귀신같이 날개가 돋아날 시기를 알아차리고 그때처럼 무심한 눈으로 바라봐오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반항이고 뭐고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으니까.

여전히 박영영은 박명의 생사여탈을 움켜쥔 상대다.

그 때문에 박명은 과거의 꿈을 꾸고 공포에 몸을 떨면서도 그것을 입에 담지 않는다. 박영영에게는 말할 수 없고. 박영영 외에 대화할 사람도 없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그저 혼자만의 공포를 삼킨다. 바깥은 깜깜하지만 곧 인공태양이 떠올라 밝아질 것이다. 공포도 어두컴컴하지만 이내 가라앉겠지. 다만 그 태양이 진짜 태양이 아닌 것처럼, 공포도 가짜로 가라앉힐 뿐.






무심한 걸음을 옮긴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흐르는 모든 것에는 시선을 주지 않고, 반투명한 단말 너머에 펼쳐진 건조한 활자나열에만 시선을 던진다.

활자는 건조해도 내용은 건조하지 않다.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를 뇌리에 그려내는 것은 즐겁다. 저의 존재가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져서인가, 때때로 공감되는 부분이 나오니 몰입도 쉽다.

조용히 반투명한 단말 너머 길을 힐끔 확인할 뿐, 반복되는 걸음은 평소와 다를 바 없다.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삼삼오오 떠드는 아이들 무리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금씩 구석으로 밀려나는 것까지 똑같다.

다른 것은 코끝을 스치는 짙은 라벤더 향.

라벤더의 계절은 아닐 터. 그래, 이건 섬유유연제의 향이다.

향기에 이끌려 흘끗 시선을 던진다. 버스 정류장보다 조금 앞. 가로수 아래, 등을 기댄 금발의 여자가 있다.

여자의 손가락이 공중을 가볍게 누빈다. 마치 피아노를 치는 듯한 손길을 따라 나뭇잎이 춤춘다.

“아, 담임 짜증 나.”

쑥, 가운데 끼어든 것은 어느새 미끄러져 들어온 스쿨버스에 탑승하는 아이들의 무리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차례로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들을 따라 무심히 스쿨버스에 탑승한다. 제 자리를 찾아 착석하고 정면 유리창을 응시한다. 왼쪽 필러 사각에 살짝 걸린 여자가 살짝 고개를 움직인다. 시선을 마주하고 활짝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띡. 띡. 띡.

건조한 기계음이 고막을 스치는 평범한 아침에 눈을 뜬다.

부스스하게 흘러내린 곱슬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면 손가락에 엉겨와 두피가 당겨진다. 아프지 않게 살살 손을 빼내며 눈을 찌르는 인공 햇빛에 얼굴을 찡그렸다.

평범한 아침. 평범한 루틴을 반복한다.

알람을 끄고, 싸한 락스 냄새가 나는 화장실에서 세안을 마치고. 버릇처럼 거울을 노려보고. 평범하지 못한 것에 못마땅함을 품다가 이내 포기하고 등교 준비를 서두른다.

작은 냉장고에서 에너지바와 우유를 꺼내 위를 채우고, 부엌과 거실의 경계가 애매한 공간에 설치된 1인용 소파에서 몸을 구긴 채 잠든 여성, 박영영을 바라본다. 때때로 자주 부재중인데 오늘은 있어서 다행이다.

일어날 기척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박영영 앞, 작은 로우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종이에는 가정통신문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 전날 그가 올려 둔 것이다. 시선을 스윽 움직여 확인란에 정자로 ‘박영영’ 세 글자가 적힌 걸 확인한다. 내용은 확인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알게 뭐람. 이걸로 당분간 담임에게 쪼일 일은 없겠다, 싶어 통지문을 가방에 쑤셔서 넣었다.

시선을 옮겨 시계를 확인하니 스쿨버스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옆에 놓인 메모지에 ‘씻고 자, -박명.’ 글자를 적어 넣는다.

확인도 안 하고 서명한 박영영의 둥근 정자와는 달리 급하게 날아가는 ‘박명’이라는 두 글자를 외면한다.

 



“선배!”

키가 멀대 같이 큰 남학생이 반갑게 저를 지칭했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와 짙은 눈썹. 쳐진 눈매의 건장한 체격. 보송한 얼굴이 환하게 웃어 친근함이 물씬 묻어나는 강아지 같지만, 박명은 불쑥 귀찮음을 느꼈다.

아침부터 담임의 핀잔을 흘려들으며 가정통신문을 제출한 것도 기가 빨리는데, 하굣길에는 무슨 의도로 자신을 졸졸 쫓아오는 것인지 모를 청소년이라.

타인과의 단절. 그것은 박영영이 처음부터 요구해온 것이며, 박명이 줄곧 실천해오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박명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박영영이 당부한 몇 가지는 철저하게 지켜온 편이었다. 박영영은 뭣도 모르고 박명에게 여전히 말이 많다고 타박하지만, 타인이 아닌 이에게 말할 수밖에 없기에 박영영에게 과하게 말을 쏟아내는 것일 뿐이다.

아무튼 결론은, 박명은 저에게 지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상대가 부담스러웠다는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남궁아영我詠 으로, 딱히 궁금하지 않았으나 본인이 한자까지 덧붙이며 멋대로 소개했다. 사람이 없을 때만 기가 막히게 찾아왔다. 그리고는 실없게 말을 걸고는 가곤 했다만. 오늘은 좀 다른 것 같다.

어차피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만 찾아오면서, 한 번 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활짝 웃었다.

딱히 미추에 집착하지 않지만, 참 잘생긴 얼굴이다 싶다. 시선이 쏠린 것을 무슨 의미로 해석했는지, 반갑게 눈을 빛내며 남궁아영이 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앞머리에 가려진 이마 한가운데는 밴드가 붙어있었다. 그 밴드마저 술술 가볍게 떼어내자, 특이한 모양의 붉은 점이 보였다. 비교하면 연꽃 모양 같았다.

“와아. 너 멋지네.”

“아닌 거 알아요, 선배.”

키득키득. 장난에 성공한 소년처럼 키득거린 남궁아영이 몸을 살짝 숙여왔다. 한걸음 물러설까, 하다 멈춰선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왔다.

“저는 선배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주춤, 한 걸음이 뒤로 내디뎌진 것을 자각한 순간 박명은 전력을 다해서 도망치고 있었다.






“……인공호수를 탐사한 탐사자에 의하면 이번에 발견된 괴생물체의 정체는 인어라고 합니다.”

TV 속, 뉴스 아나운서가 절제되게 놀란 얼굴을 했다.

“도시 괴담 같은 이야기네.”

박명이 입을 열었다. 도시 괴담. 판타지. 괴이한 것. 흥미가 솟아 근질거린다.

“근데 바깥 지구에는 있을 법도……”

“과학자들은 괴생명체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인어의 신변을 양도…….”

박명과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겹치는 순간 뚝, 박영영이 TV 전원을 껐다. 늘 걸치고 있는 안경 안쪽 검은 눈동자가 조금 서늘하다.

“밥 먹자.”

“응.”

박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그 여자다.

조금 전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금발의 여자가 짙은 라벤더 향을 풍기며, 지난번과 같은 위치에 서 있다.

우연인가?

여자의 손을 따라 따뜻한 라벤더 향 바람이 불어온 것 같다.






“뭐야.”

오늘은 아침부터 무슨 일이람. 늘 하굣길에 슬쩍 나타나던 남궁아영이 오전부터 박명을 찾아냈다. 조용히 판타지 소설이나 읽고 싶었는데. 지난번에 느꼈던 공포심을 지우지 못하고 주춤 뒤로 몸을 물리며 경계의 한마디를 던진다.

“아. 놀라게 해드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친화력이라는 게 기준이 모호하단 말이죠.

조용히 알 수 없는 소리를 덧붙이며 남궁아영이 마치 항복이라도 하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이것부터 말씀드릴 걸 그랬네요. 죄송해요. 저는 돌연변이에요.”

마치 오늘 아침은 된장국을 마셨어요. 말하듯 부드럽게 튀어나온 말에 박명이 두 눈을 깜빡였다.

“이마의 이거, 이거는 제 능력의 일부에요. 누나처럼요.”

“나, 나는 너랑 달리 이마 멀끔해!”

허둥지둥 제 이마를 까 보이며 텅 빈 이마를 강조했다.

“그러니까, 날개 있잖아요. 저번에 들었으면서.”

주춤, 박명이 반걸음 질질 끌리는 발을 물린다.

“아! 그러니까, 저희 같은 편이거든요! 선배 모르시나? ‘니체’라고.”

“……니체?”

도망칠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을 눈치챈 것인지, 갑자기 남궁아영이 실실 미소를 흘린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데아가 생겨난 이후, 각가지 능력을 갖춘 능력자들이 태어났어요.”

그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사라졌다. 세상에는 마치 도시 괴담처럼 그 흔적이 퍼졌다. 사라진 이들은 사실 신 백야 연구소라 불리는 곳에 잡혀갔다. 그들은 모두 실험체가 되었다.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한 숭고한 희생, 이라는 이름하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일을 당해왔다. 니체는 그 연구소에서 탈출하거나 붙잡히기 전에 빠져나온 이들이 이룬 단체다.

그것이 남궁아영이 한 말의 요지였다.

“그러니까, 저도 그런 종류고.”

누나의 그 날개도요.

덧붙이는 말에 주춤, 멈췄던 다리가 완전히 한걸음 뒤로 물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긴장한 기색이 완연한 박명을 바라보며 여전히 실실 웃으며 남궁아영이 무언가를 손바닥 위에 꺼내 보였다.

“……이건?”

작은 도자기로 만들어진 피리다. 형태는, 새 피리인가.

“위험할 때 사용하세요.”

당장이라도 거절하고 돌려줘야 할 텐데. 찜찜하고 불쾌한 감각에 침잠하면서도 거절할 생각이 뒤로 밀려났다.

잽싸게 남궁아영의 손바닥에서 피리를 낚아채고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오늘은 쉬자. 더 학교에 있을 기분이 아니다.

  


 

오늘은 참, 모든 게 이상한 날이라고 박명은 속으로 한탄했다.

1차로는 버스 정류장의 금발 여성. 2차로는 남궁아영.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기이함이 어째서 집에서 3차로 들이닥쳤는가.

박명은 인생을 곱씹었다. 박영영과 10년을 함께 살며 그 무심함, 때때로 알 수 없는 섬세함을 느껴왔다. 그것에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집으로 돌아오니 박영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웬일로 밤에 일을 나가는 그가 일찍 집을 비운 모양이었다.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딱히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다행이지 뭐.”

혼잣말을 내뱉으며 가방을 1인용 소파 위에 던져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달칵, 전등을 누르고 문을 연다. 열리는 문 틈새로 아침, 평소처럼 락스 냄새가 나던 화장실 바닥에 기이한 것이 보였다. 물고기 꼬리. 하지만 그 크기는 일반 물고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크고, 마치 사람의 골반처럼 생긴.

락스 냄새 대신에 스멀스멀 코에 잊을 수 없는 향이 들러붙었다. 급하게 자리를 피한 듯 군데군데 치워졌으나 완벽하지 못한 뒷정리. 곱슬기 없는 긴 갈색 머리 뭉텅이가 하수구에 뭉쳐있다. 커다란 물고기 꼬리 뒤쪽에 툭, 떨어져 있는 작고 긴 모양새는 사람의 손가락인가.

사고가 멈춘다. 욱. 헛구역질이 밀려들어 입을 틀어막으며 화장실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명아.”

거기 평소와 다른 박영영이 서 있었다. 조금 더 창백한 얼굴로 비닐 옷을 걸치고. 장갑 소매가 피로 젖은.

박명은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무언가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가 아닌 충동의 결과로. 그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망치는 걸음이 이내 달음박질이 된다. 헉헉, 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거칠게 토해지는 숨소리와 함께, 그리 멀어지지 않는 곳에서 계속해서 명아, 명아 돌아와. 대비되듯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박영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가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나 좀 봐, 박명.”

반항은 헛되다. 버둥거리지만 어깨를 움켜쥔 손아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억지로 어깨를 비틀 듯 몸을 반 바퀴 돌게 한 무명이 무심히 안경을 벗어냈다.

“우리 일 어렵게 만들지 말자.”

목련 이모가 저녁 먹으러 오래. 같이 가자. 응?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는 듯. 어제와 같은 오늘과 내일이 될 거란 의미를 품은 말은 안정은커녕 도리어 반발심을 훅, 키워냈다.

애초에 말과는 천양지차로, 안경을 벗은 순간부터 행동은 강압적이다. 저 눈. 보랏빛 눈동자에 검은 동공이 가늘게 찢어진다. 몸이 뻣뻣하게 의지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대화로 해결할 생각은 미량도 없는 태도에 헛됨을 알면서도 몸을 흔든다.

퉁.

뻣뻣한 몸을 억지로 뒤틀다 난간에 부딪힌다. 후드 주머니에 넣어 둔 새 피리가 쨍강, 바닥에 추락해 산산이 조각났다.

“명아, 조심 좀 하라고 그렇게…… 윽.”

후욱, 짙은 향임에도 불구하고 불쾌하지 않은 라벤더 향과 함께 돌풍이 사납게 불어 닥쳤다.

어깨를 붙잡은 강압적인 손길이 떨어져 나갔다. 바람에 반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뜨니 금발의 화려한 미인이 보였다. 버스정류장에서 보던 그 여성. 그리고 그 옆에는 물안경을 쓴 붉은 머리의 소녀와, 앞머리를 넘긴 남궁아영이 함께 하고 있다.

“너……!”

목소리를 훅 높이려다, 내뱉을 말이 없어서 공중으로 흩어졌다.

“부를 줄 알았어요.”

그거, 깨지면 저를 소환하는 거거든요.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슬쩍 가리키며 남궁아영이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박명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궁아영의 뒤로 무수한 새들이 떼 지어 날고 있다. 기이하고 현실감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 더 놀랄 기력도 솟지 않았다.

“가요.”

뒤에서 윽, 익숙한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냈다. 직전까지 저를 사로잡은 공포감이 툭, 팔을 밀어낸 것처럼 남궁아영의 손을 잡았다.

말랑말랑한 인상과 다르게 단단한 남자의 손은 박명의 체온보다 조금 높다.

앗, 하고 외마디를 흘리기도 전에 위치는 바뀐다.

하늘 위에 둥실 떠오른다. 발밑이 지면에서 까마득해진다.

본능처럼 쫓은 시선이 하얀 얼음덩이를 후두둑 떨어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작아지는 인형을 잡아챈다.

인형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렸다. 헛웃음을 흘리고 있는 거다.

“도망치려거든 도시를 벗어나.”

빠르게 멀어지는 와중에도 그 목소리만은 선명하게 박명의 눈과 귀에 박혀 들었다.

“내 눈은 이 아시아 지구 구석구석을 모두 볼 수 있으니까.”

그 말은 마치 혹여. 제가 떨쳐내지 못한 미련 어린 감정과 같은 것인가. 늘 두려워했던 보랏빛 눈이 처음으로 보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이성이, 손을 마주잡은 조금 높은 체온이 고해온다.

훨훨 구름 위로 날아오르면서 반대로 떨쳐낼 수 없는 미련만이 납보다 무겁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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