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추가 작성)

입장문을 쓰기 전 제가 무엇을 우려했는지 아주 잘 나타내주는 반응이라 상단에 고정합니다.

물론 2차 가해의 정확한 용례도 모르시는 분이니 긴 입장문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우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저는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상대측의 수정 전 입장문 전문과 개인적으로 보내온 사과문에서만 드러난 경위를 낱낱이 오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는 이번 일 이전부터도 꾸준히 악플을 모아 시기 별로 고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안에 대해서 저에 대한 조롱과 비방을 발견하신 분께서는 언제든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caesim@naver.com

그리고 다른 대다수 상식적인 상대 작가님의 팬분들은 그저 마음 아파하며 저를 지지해주시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누가, 왜, 어떤 의도로 뱉는지 일반화는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모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



<울어라 마왕> 출판사 대원씨아이와 저의 입장문 전문 :

https://blog.naver.com/dw_romance/222681633489


<포르말린 보이즈> 출판사 블리뉴와 김순열 작가님의 입장문 전문 :

https://blog.naver.com/blynue/222681603756

참고 부탁드립니다.




하기 입장문은 3월 21일(월) 공개를 예정하여 작성된 저의 최종 입장문입니다.

양측의 입장문이 준비된 뒤 게시일 조율하던 중, 블리뉴 측과 김순열 작가님께서 저의 최종 입장문을 확인하고 싶다고 요청하셨고, 소통의 단절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저는 아래 내용을 게시 전 미리 상대방에게 공유했습니다.

이후 김순열 작가님께서는 다시금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해오시며 현재의 입장문으로 내용을 수정하셨습니다. 맥락 상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런 연유임을 감안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으로 일은 종결되었지만 대중에게 그간의 일이 타의로 낱낱이 공개되기 직전에야 현재의 입장을 취하셨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낍니다.

저희에게 컨택을 하기 전부터 이미 충분히 유사성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었고, 수정 혹은 출간 취소라는 선택지를 예상하고 계셨으면서도 이를 감추고 저와 제 출판사에게 답을 종용했던 것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슬프지만 이 업계에는 흥행 키워드, 클리셰라는 명분 아래 뚜렷한 유사성이 존재해도 ‘재밌으면 그만/잘 팔리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침묵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이 사실입니다.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이 어렵기에 더욱 그러하지요. 그래도 저는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유통하는 업계인들에게는 각자 도덕적인 자기 기준이 있다고 믿으며 활동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유사성이 있더라도 ‘선발 작가의 합의’를 이끌어내면 이를 방패 삼아 진행하겠다는 의도가 읽혀졌기에 그러한 믿음이 깨져 더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김순열 작가님께서 개인적으로 전달해주신 사과는 제가 믿고 싶은 진심에 가까운 형태였습니다. 논란이 두려웠던 것도 같은 작가로서 충분히 공감합니다. 덕분에 지금 제 심정은 공감과 원망과 연민이 섞여 복합적입니다. 저를 상처 입힌 것은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으로는 최선일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달 간은 부끄럽지만, 이 일로 인해 업무에도 많은 지장을 겪었습니다. 그간 ‘말못할 개인 사정’이라는 명목으로 심려를 끼쳐드린 업계 동료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논란을 제보해주시고 그 와중에도 저를 걱정해주셨던 독자분들께 면목 없는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소설을 읽고 즐기시기만 해도 모자랄 독자분들께 그 이상의 부담을 지워드린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것으로 지난 시간 제가 느꼈던 심정적 고통과 회의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나, 거기 매몰되어 있다고 얻을 것은 없기에 저 역시 이 시점부터는 모든 번뇌를 접으려 합니다. 남은 생채기도 시간이 봉합해주기를 기다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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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체심입니다.

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작년 12월 말 경, 기 출간작인 제 작품 <울어라 마왕>과 조아라에 무료 연재 중이던 김순열 작가님의 <포르말린 보이즈> 간 유사성 논란에 대해 최초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긴 시간 숙고하여 문제를 검토했고, 실제로 두 작품 간 심각한 유사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대해 상대 측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 끝에 블리뉴 측은 작품의 출간 취소를 결정했으며, 김순열 작가님께서도 사과문을 전달해주셨습니다.

논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후속 조치로 저희는 서로가 각자의 입장문을 작성해 공개 게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상대방에게 유책 사유가 있는 만큼, 입장문 게시 전 저와 대원씨아이가 상대방 측의 입장문을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요청드렸습니다.

그러나 김순열 작가님께서는 입장문에 <포르말린 보이즈>는 본인의 전작인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을 차용 및 발전시켜 독립적으로 구상한 작품이라는 문구를 수정 삽입하셨고, 저는 이에 대해 극심한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이는 유사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완벽히 대치되는, 작품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대 측의 입장문이 두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분들께 혼란만 가중 시킬 것을 우려했고, 두 소설이 실제로 얼마나 비슷했는지, 선발 작가의 문제 제기는 과연 적절했는지 등등 또 다른 파생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두 소설 사이에 심각한 유사성이 있다고 판단하게 된 모든 근거를 제 입장문에 자세히 기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4개월 간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쳐 아직도 증상을 전부 떨치지 못한 상태입니다. 긴 시간 동안 의견을 주고 받았으나 유사성에 대한 내부적 판단 한 줄 없이 유사성을 부정하는 자료를 전달해왔던 블리뉴 측과, 최종 입장문에서는 끝내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구절을 삽입하신 김순열 작가님을 상대하는 것이 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 문제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1. 최초 제보와 당시 입장


제가 처음 문제를 인지한 것은 21년 12월 말이었습니다. 유사성 논란은 다수의 독자분들로부터 직접, 혹은 출판사를 통해 제보 받았으며 다수의 커뮤니티 캡쳐 등으로 이미 작년 가을부터 논란이 번져 있던 상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자분들 사이께서 주로 말씀해주신 포인트는 소설의 설정과 키워드, 캐릭터성이 겹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울어라 마왕>과 <포르말린 보이즈>의 간략한 공, 수 캐릭터 설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수에게 집착하고 그를 통제하려 드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자각하지 못한 이성애자 공.

-외모나 행실 때문에 얼핏 양아치로 오해받지만, 속은 무르기 그지없고 자존감이 낮은, 성실한 성격의 짝사랑 미남수.

-학창 시절부터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20대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


장르물에서는 무척 흔한 구도이고, 얼마든지 겹칠 수 있는 캐릭터 설정입니다. 이번 기회에 말하지만 저는 창작물, 특히 소설에 있어서는 소재나 캐릭터 설정만으로 고유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소재, 설정, 아이디어, 장르의 키워드 같은 것들은 누구 한 명의 점유물이 아니며, 선점을 할 수 있는 영역의 것도 아니라는 기조를 갖고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동시대를 사는 창작자들은 ‘트렌드와 클리셰’라는 명목 아래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과거의 고전으로부터도 무형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아무리 신선한 소재를 생각해 낸다 한들 그것은 ‘발견’이지 ‘발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소설이 독자적인 고유함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같은 소재를 다루어도 작가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다른 이야기를 써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울어라 마왕> 역시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이제껏 제가 좋아하고 영향 받았던 취향의 총체이며, 이것들을 저라는 인간의 안에서 잘 삭인 후 추출한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저는 <포르말린 보이즈>를 읽어보기 전에는 이 논란이 ‘같은 소재’를 다루었기에 생기는 오해라고 생각하며 접근했습니다.

또한 독자분들의 제보만으로 함부로 유사성을 속단 할 수는 없으며, 작품을 직접 읽어보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덩달아 이것이 만약 근거 없는 논란일 경우 상대 작가분께 치명적이기 때문에, 빨리 제 입장을 정리해 논란을 진화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혼란에 빠져 계실 상대 작가님의 마음이 작가로서 무척 공감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입장은 당시 제 출판사인 대원씨아이와 주고받은 메일에도 잘 나타나있으며, 출판사의 동의 하에 추후 공개도 가능합니다.




2. <울어라 마왕>과 <포르말린 보이즈>의 유사성 확인과 그 근거


그러나 조아라에 공개되어 있던 <포르말린 보이즈>를 읽은 후 저는 도리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포르말린 보이즈>는 <울어라 마왕>과 부정할 수 없는 유사성이 있었으며 이는 단순히 키워드와 캐릭터 설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두 주인공의 관계성이 변화하는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전개’가 유사하다는 점을 특히 심각하다고 보았습니다. <포르말린 보이즈> 현재 시점에 해당하는 여러 회차에서 이런 유사점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장르적 특징을 넘어선 클리셰 바깥의 영역이었으며 설령 같은 아이디어, 비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울어라 마왕>과 <포르말린 보이즈>는 비슷한 줄거리를 가졌다고만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디테일이 동일하거나 유사했습니다.


문제가 되는 <울어라 마왕>과 <포르말린 보이즈>의 주요 전개 유사점을 축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수가 다른 동성애자 남성과 섹슈얼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공은, 이성애자이면서도 수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대신 관계를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공을 짝사랑하던 수는 육체적인 관계만이라도 맺고 싶어 이를 받아들이나, 도리어 이는 짝사랑을 접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아래는 위의 주요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 상세 설정 및 에피소드, 이에 따른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입입니다. 조아라 연재분을 참고하여 발췌가 불가능 했던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수는 친한 형의 가게에서 일을 한다. 이 가게를 공 역시 알고 있으며 소설의 전개에 필요한 배경으로 종종 등장한다. 수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들은 모로 봐도 건실한 직장은 아니기에 공은 수의 아르바이트 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는 얼굴에 피어싱을 하고 있고 이는 타인의 이목을 끈다. 피어싱을 하게 된 이유는 공 때문이며, 공은 이 사실을 모른다.

-수는 날티 나는 인상으로 양아치로 오인 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처럼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성격은 무른 편이고, 이는 작중에서 ‘세상을 좋게만 본다거나(울어라 마왕)/거절을 못한다는(포르말린 보이즈)’ 식으로 표현된다. 공은 수의 이런 면을 고쳐야 할 단점으로 여기는데, 이는 사실 수가 저 아닌 타인과 엮이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타박하지만 실제로 공은 무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수를 걱정하고, 동시에 자신이 보호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공은 자신이 수에 대해 무척 잘 안다고 믿고 있다. 이 때문에 수는 공을 속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이는 소설 속에서 ‘윤이화가 모르는 백연건(울어라 마왕)/서해경이 모르는 유인호(포르말린 보이즈)’가 있다고 동일하게 표현된다.

-수는 스쿠터/오토바이를 몬다. 공은 수가 스쿠터/오토바이를 모는 것을 탐탁지 않게 느낀다.

-소설의 현재 시점에서 공은 여자친구가 있는 상태이며, 공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계기에는 수가 영향을 미친다.

-수는 공의 여자친구에게 억하심정이 없으며, 싫어하지도 않는다. 공의 여자친구 역시 수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공을 제외한 둘만의 유대 관계도 있다. 또한 공의 여자친구는 수가 괜찮은 남자라고 여겨 다른 이에게 소개팅을 시켜주려고 한다.

-공은 수에게 짝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논조로 말하고 편견 어린 시선을 내비친다. ‘연예인 팬에 비유(울어라 마왕)/마조히스트(포르말린 보이즈)’ 수는 상처받는다.

-공은 여자친구와 이별을 마음 먹은 후 금세 마음 정리를 한다.

-공이 여자친구를 냉정하게 차는 모습을 수가 목격한다.

-짝사랑하는 것은 수인데도 대체로 수를 먼저 찾아오는 건 공 쪽이다. 공은 수의 집이나 가게 앞으로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 이러한 상황 설정이 후의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수에게는 일터를 통해 알게 된, 수에게 성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남성 조연이 존재한다. 수는 자신이 남자를 좋아하고 또 짝사랑 중이라는 것을 그 남성 조연에게만 털어놓는다.

-수는 남성 조연과 성적인 접촉을 하고, 섹슈얼한 관계인 것을 공에게 의도치 않게 들킨다. 이는 앞서 말한 상황적 설정인 공이 수의 생활 영역으로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공이 수의 일터로 찾아와 알바생들을 견제하는 상황이 등장한다. 공은 그 알바생들이 수와 동료 이상의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봐 불안해 한다.

-수가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공은 수에게 부정적인 발언, 특히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발언을 한다. 이는 사실 공의 평소 신념과는 관련이 없으며 그저 수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통제하고 싶다는 심리에서 기인한 것이다.

-공은 수를 통제하고자 하는 명분조차 수가 제공했다고 믿고 있다. 과거 수는 공에게 ’좋아하는 사람과 첫 경험을 하고 싶다거나(울어라 마왕)/평범하게 살고 싶다는(포르말린 보이즈)’ 소망을 내비친 적이 있고, 공은 이 소망을 위해 수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으려는 것을 말린다. 물론 명분은 핑계이고 실제로는 질투에서 기인한 마음이다.

-공은 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수가 ‘마음대로 안 된다(동일 표현)’며 답답해 한다.

-수는 공이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대면하고 상처받는다. 짝사랑의 한계를 직면하고 상심한 수 역시 공에게 부정적으로 대한다. 이는 둘 사이의 격렬한 폭언 혹은 폭력으로 표현된다.

-다툰 뒤에 공은 수가 자신과 멀어지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게 될까 봐 초조함을 느낀다. 이 감정은 사랑에서 기인한 질투이나 이 시점에서 공은 스스로의 감정을 알지 못한다.

-공은 수에게 다른 남자와 만나지 말 것을 종용하며, 굳이 남자가 필요하면 자신이 관계를 해주겠다고 한다. 이때의 태도는 시혜적이라 수에게 상처가 된다. 그러나 공을 너무 좋아한 수는 이를 받아들인다.

-관계를 맺기 전, 공은 수가 ‘동성간의 관계’를 좋아하고 원한다고 오해하는 상황이다. 수는 이런 오해를 할 여지를 직접 제공하며 오해를 굳이 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기 전, 공은 남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서리라고 믿지 않는다. 

-이성애자였던 공은 남자와의 관계에 무지하기에 수가 자신을 범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이 때문에 두 사람은 관계 직전 포지션 때문에 헤매는 모습을 보인다.

-막상 시작된 관계에 공은 자각하지 못한 소유욕과 수를 향한 욕정을 주체할 수 없어 험하게 대하고 만다. 수는 자신이 꿈꾸던 사랑을 나눈다는 의미와 동떨어진 행위에 마음 깊이 상처를 입는다. 동시에 자신이 강압적인 관계를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육체를 지닌 ‘남자’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공은 행위 중에 수가 한 발언이나 행동을 다른 남자들에게도 똑같이 보여주었거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질투심을 느끼고, 그 행동을 단속하려 든다.

-공과의 관계 후에 비로소 수는 이제까지의 짝사랑을 내려놓을 결심을 한다.


이처럼 소설의 핵심 내용과 그에 이르는 과정, 사이에 배치된 에피소드들, 각 에피소드로 인해 촉발된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감정선), 장소와 상황적 설정, 조연의 활용 등이 수없이 겹치고 있습니다.

물론 소설에서 비슷한 키워드,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을 때 전개는 예상되는 익숙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우리는 이를 클리셰라 부릅니다. ‘우정을 위해 짝사랑을 접으려는 수/우정이라는 명분 아래 수를 소유하려는 이성애자공’이라는 설정은 장르 소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구도이고, 위에 서술 된 유사점들 중 일부는 다른 BL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클리셰적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슷한 키워드를 지닌 인물들이 같은 전개의 흐름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수많은 상세 설정이 똑같이 존재한다는 점, 또한 이 크고 작은 설정들이 전개에 개입하고 활용되는 방식까지 동일하다는 점에서 저는 <포르말린 보이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울어라 마왕>과 유사한 디테일은 클리셰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초 독자분들께서 제보해주신 논란을 살펴보면 전개보다도 키워드나 인물 설정에 주목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가장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쉬운 부분이라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두 소설의 캐릭터들은 비슷한 키워드 안에 묶이기는 하나, 각각 고유의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그것이 두드러지는 곳은 <포르말린 보이즈>의 과거 시점 부분으로,  <울어라 마왕>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서사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현재 시점에 와서는 <울어라 마왕>과 스토리가 거의 동일하게 전개됩니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제게 의문을 남긴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토록 구별되는 과거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 소설이 진행되며 같은 전개로 향해간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덧붙여서, ‘두 소설에 부정할 수 없는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짧은 결론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동안 수많은 확인 작업과 수많은 고뇌를 거쳤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일의 당사자로서, 제 자신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지 못하고 치우친 판단을 내리게 될까 봐 결론 짓기를 무척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이 혹시 피해 의식이 아닌지, 저만의 생각은 아닌지를 의심하며 주변 업계 분들께도 함께 확인을 부탁드렸습니다. 대원씨아이 측은 물론, 웹소설 업계에 종사 중인 제3자들의 교차 확인을 통해 유사성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확인하려 노력했고, 공통적으로 ‘전개상의 심각한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의견을 받았습니다. ‘양 소설 간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이 결론 자체는 단순하지만, 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음을 말씀드립니다.




3. 블리뉴 측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


이렇게 두 소설을 한창 비교 확인하던 도중 1월 7일, <포르말린 보이즈>와 정식 계약한 출판사 블리뉴 측으로부터도 연락을 받게 됩니다. 블리뉴는 저희에게 이 논란을 알고 있는지, 또한 해결하기 위해 합의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동시에 <포르말린 보이즈>가 김순열 작가님 고유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글임을 주장하는 자료들을 함께 보내왔습니다.

자료는 <포르말린 보이즈>의 줄거리 축약본과 아직 연재 되지 않은 이후 분량의 트리트먼트(플롯의 밑그림), 그리고 이 소설이 김순열 작가님의 전작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에서 파생된 소재임을 주장하는 두 소설 간의 유사점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줄거리 축약은 마침 본편을 확인 중이었기에 함께 확인했고, 전작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에서 뻗어나간 작품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확인하기 위해 전작 역시 함께 구매해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포르말린 보이즈>와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의 인물 설정과 인물 간 관계성에서 일부 설정이 중첩되는 것은 확인했으나, 문제가 되는 핵심 스토리 전개까지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상대 측에서 직접 작성한 유사점 대부분은 대체로 설정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마저도 스토리에 대해서는 다르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를 첨부합니다.


-이로 인해 공은 수가 남자를 그만 만나게 하려고 통제함. 남자친구와 같이 있는 수를 일부러 계속 오라고 종용하여 헤어지도록 조종하고, 이후로도 남자를 만나는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움(굴돌노).

-그 자리에서 바로 스킨십하던 상대를 위협하고 수를 다그쳐 수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아냄. 거절에 서툰 수가 문란하게 남자를 만나고 다니리라고 생각하여 대신 관계해 준다고 제안하고 수를 제집에 두려고 함(포말보).

-출처 : 블리뉴 송부 자료 ‘포르말린 보이즈_설정’ 중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 와의 유사점 발췌.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와 <포르말린 보이즈>의 초반 설정은 비슷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설정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위와 같이 완전히 다르게 향합니다. 그리고, <포르말린 보이즈>가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와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 바로 <포르말린 보이즈>와 <울어라 마왕>이 가지고 있는 전개 유사점의 핵심 부분입니다.

저는 블리뉴 측에서 이처럼 전개 상의 가장 중요한 차이를 짧게 축약하여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과 <포르말린 보이즈>의 유사점으로 묶어 보낸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혹시 자료에 빠진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를 직접 구매해 읽어본 것입니다.


앞서 저는 키워드나 캐릭터 설정이 겹쳐도, 소재나 아이디어가 같아도 작가들은 매번 충분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소설이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내용, 이야기가 지향하는 결말, 이를 조망하는 작가의 시각이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와 <포르말린 보이즈>가 바로 이처럼 비슷한 설정에서 출발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의 좋은 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순열 작가님의 두 소설은 ‘오랫동안 해온 짝사랑에 지쳐 다른 남자와 만나는 수/수에 대한 감정을 수에게 접근한 다른 남자로 인해 깨닫는 공’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축약하면 내용이 얼핏 닮아 보이나 실제 소설에서는 인물의 심리와 상세 에피소드, 사건으로 인해 촉발되는 감정선이 달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나아갑니다.

소설을 읽지 않으신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포르말린 보이즈>와 <울어라 마왕>의 공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수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수가 제게 잡히지 않을까 봐 불안해 하는 반면,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의 서브공은 수의 순애를 눈치챈 상태로도 일부러 상처 주거나 무심하게 굴곤 합니다. 이처럼 인물이 수의 마음을 짐작하는지, 아닌지의 단순한 차이는 독자가 인물에 대해 갖게 되는 감상을 완전히 바꿉니다.

또한 <포르말린 보이즈>와 <울어라 마왕>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수가 잠깐 만나는 것으로 묘사된 남성 조연이 갈등을 촉발하는 소설적 도구로만 활용된 반면,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에서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메인공은 반대로 수의 감정을 쟁취하고 짝사랑을 끝내게 만들어줍니다. 이처럼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감정선과 두 소설이 목표로 하는 결말이 다르면 비슷한 설정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울어라 마왕>과 <포르말린 보이즈>는 다루고 있는 감정선, 목표로 하는 결말이 동일하기에 더욱 더 같은 결의 이야기로 보입니다. 이 두 작품은 기본적으로 ‘수가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관계를 해주겠다고 제안하는 공과, 미련 때문에 이를 수락하는 수’라는 동일 전개를 주요 사건으로 두고 진행됩니다. (이 핵심 전개는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 작품의 공들은 수를 우정 이상의 감정으로 신경 쓰면서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 합니다. 수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나서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것, 꼭 남자를 만나야겠다면 내가 자주겠다고 시혜적으로 말하는 공통적인 행동이 바로 이런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작가는 바로 이 통제 행위가 공이 수를 독점하고 싶어하고, 다른 남자를 질투하기 때문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도록 서술을 하여 독자의 감상을 유도합니다.

반면,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의 서브공의 행동은 의뭉스럽고, 무심해보이고, 수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입니다. 작가가 의도한 방향에 따라 독자들은 그의 사랑이 진정한 애정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며 수 역시 나중에 이를 ‘사랑이 아니라 학대였다’고 표현합니다.


소설을 모두 읽어본 뒤, 저는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와 <포르말린 보이즈>에서 일부 비슷한 지점을 찾을 수는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클리셰의 영역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포르말린 보이즈>가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를 차용해 발전시켰다는 상대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며, <울어라 마왕>과의 전개 유사점을 해명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제 다른 소설인 <디스 매직 모먼트>에도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와 동일한 구도의 관계성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두 소설의 인물 구도(수와 수의 짝사랑 상대)는 <포르말린 보이즈>보다도 훨씬 닮아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들도 유사성을 보인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포르말린 보이즈>가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에서 파생된 이야기라는 주장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클리셰 이상의 일관적인 특징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았으며, 그 비슷한 수준이 타 작품들에서 찾을 수 있는 클리셰적 유사성보다도 훨씬 적었다는 뜻입니다.

여기 언급된 네 작품 모두 ‘헤테로공/짝사랑수’의 기본적인 구도 아래 일부 설정은 비슷하다 여길 수도 있으나, 핵심적인 전개와 디테일이 모두 같은 것은 <울어라 마왕>과 <포르말린 보이즈> 뿐이며,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4. 이후 저와 대원씨아이의 입장


유사성을 확인했으니 다음은 일의 처리에 대해 고민할 차례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대원씨아이의 편집팀, 법무팀과 함께 문제 해결 방법을 다각도로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포르말린 보이즈>의 전개 일부를 수정 제안하는 방법이었는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아무리 제가 선발 작가라 해도 타인의 작품에 마음대로 수정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유사한 부분이 바로 소설의 핵심이고 그 범위 역시 방대한데, 이것이 과연 수정을 할 수 있는 부분인가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따라왔습니다.

만약 상대 측과 수정에 대해 합의에 이른다 하더라도 유사한 부분을 덜거나 수정을 해버리면 <포르말린 보이즈>가 본래의 원형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보였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포르말린 보이즈>가 <울어라 마왕>과 얼마나 유사한 지에 대한 방증도 되겠지요.


상대 측에서 추가적으로 전달해 주신 <포르말린 보이즈>의 이후 연재 분의 스토리도 제게 깊은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후에 풀어나갈 이야기조차 <울어라 마왕>과 갈등 해결 구조가 거의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연재 되지 않은 부분으로, 블리뉴 측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참고해 축약한 <울어라 마왕>과 <포르말린 보이즈>의 후반부 전개의 공통점입니다.


-짝사랑을 끝낸 수는 해외로 떠날 생각을 한다. 해외 지역은 소설 초반부터 수와 정신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여성 조연 캐릭터가 거주하는 곳이며, 자연스럽게 수가 떠나기를 고려하는 첫 번째 장소가 된다.

-해외에 있는 여성 조연은 공과도 면식이 있으며, 이는 재회의 실마리가 된다.

-마음을 자각한 공은 수를 찾아 해외까지 찾아오고, 그곳에서 여성 조연을 만나 수의 행방을 묻는다. 이후 공과 수는 재회한다.


이제까지 공개된 내용은 물론이고 이후 연재 될 내용까지 전개가 비슷해, 이대로 진행이 되면 논란이 진화 되기는커녕 연재 기간 내내 더 큰 논란이 계속해서 번질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포르말린 보이즈>가 이대로 연재를 마치고 출간이 된다면, 논란이 생길 때마다 김순열 작가님은 물론이고, 저의 작품 역시 함께 원치 않게 도마 위에 오르게 될 거라는 사실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이는 이미 제보 받은 논란 글들의 면면을 통해 쉽게 예측할 수 있었는데, ‘유사성 논란은 허상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는 쪽에서는 필연적으로 <울어라 마왕>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함께 깎아내리는 의견을 동반하더군요.

저는 앞서 말했듯이 소재나 아이디어는 어느 한 작가가 점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러나 소설은 소재, 아이디어, 설정, 키워드만으로 설명되는 창작물이 아니며 작가 고유의 스타일과 저마다의 독창적인 전개, 이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제 의식이 버무려져 고유성을 획득합니다. <울어라 마왕>과 <포르말린 보이즈>는 설정 뿐만 아니라 전개와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무척 유사했으며, 해당 전개가 바로 소설의 심장부이기에 이대로는 제 소설의 고유성을 크게 훼손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러 방향으로 고민한 끝에 저희는 일차적으로 ‘두 소설이 굉장히 유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논지의 의견을 2월 3일(목) 날짜로 공식 전달했습니다. 덧붙여 제 소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의지 역시 표명했습니다. 이때 메일은 공식적인 의견을 담고 있기에 대원씨아이 법무팀의 검수를 받아 작성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5. 입장문에 이르러.


메일을 보내고 5일만인 2월 8일(화), 상대 측에서 답변으로 연재를 중단하고 출간을 취소하기로 했다는 의견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동시에 같은 날 <포르말린 보이즈>가 조아라에서 습작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김순열 작가님께서는 이에 대해 제게 사과문을 별도로 보내주셨으며, 저 역시 어려운 결정을 내리신 것에 대해 존중하며 유사성에 대한 추가 논의는 덮어두기로 했습니다. 

유책 사유가 상대 측에 있는 만큼 저희가 바라는 후속 조치를 물으셨기에, 저는 양측 입장문을 공식 채널에 동시 게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논란이 독자 분들의 제보로 시작되었고 커뮤니티 등지에서 이미 번져있는 사안인 만큼 독자분들께도 공식적으로 문제가 종결되었음을 알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때까지 이미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일이 최대한 빨리 마무리 되기만을 바랐지만, 출간 취소 결정 이후 한 달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입장문 조율은 사실상 원활한 방향으로 진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실은 상대 측의 입장문을 받아보기 전에 개인적으로 우려했던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상대방이 출간 취소라는 결론을 비교적 빨리 내린 만큼 유사성 수준에 대해서 양측이 충분히 소통하는 과정이 없었던 점. 둘째, 소통 과정 내내 상대 측에서 유사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점. 셋째, 김순열 작가님께서 제 작품을 접한 시점을 모호하게 표현했다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입장문을 받아보면서 그간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저는 ‘유사성에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확인 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저 상대방이 이 유사점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안다면 동의하는 지가 궁금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래 또 한 번 서술하겠지만 <포르말린 보이즈>의 출간 취소 원인과 그 책임이 어디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장르 소설을 즐기는 독자분들 역시 잘 아시리라 믿지만, 법적 표절 기준을 통과하는 것은 무척 까다롭고, 사실상 법의 기준 안에서 유사성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이 업계의 종사자와 독자분들의 윤리 기준이 법의 기준보다는 더 낫다고 믿고 있습니다. 상대 측 역시 이런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작품을 접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참 묘하게도 상대방은 내부젹으로 판단을 하기는 커녕, 소통하는 과정 내내 두 소설의 유사점 자체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와 <포르말린 보이즈>를 비교하며, 논의의 주제에서 오히려 <울어라 마왕>은 빼놓는 식이었지요. 사과도 하고 출간 취소도 결정하셨지만, 입장문을 적기 직전까지는 유사성을 인정한다는 워딩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제게 적잖은 위화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물론 출간 취소까지 결정했으니 자연히 유사성 문제에 동의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에 대해 상대방은 ‘선발 창작자이신 작가님께서 전송 드린 자료를 검토해 보시고 매우 유사하다고 느끼신 이상 추가적인 논의에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대방의 이런 태도가 출간 취소의 원인을 교묘히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려했습니다. 출간 취소까지 이르게 된 경위는 명백히 ‘두 소설의 심각한 유사점’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사성 문제를 빼고 과정만 놓고 보면 마치 선발 작가의 항의 표시 때문에 이런 결론에 이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 측 입장문을 보기 전까지는 이처럼 세세한 유사성 근거를 정리해 공개할 예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출간 취소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신 만큼 상대 측을 존중하고, 이어질 논란에서 보호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역시 제가 대원씨아이와 주고받은 메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입장문에 팩트와 다른 부분이 있어 수정을 요청하자 수정해온 입장문에서는 오히려 <포르말린 보이즈>가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에서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구를 삽입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1월 초의 논지로 회귀한 입장문을 보고 허탈함을 느꼈으며, 제게 보내오신 사과문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게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그것마저 저희가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다만 팩트 체크는 정확히 해야겠습니다. 상대 측 입장문에는 ‘<포르말린 보이즈>의 연재 중, 독자 커뮤니티에 유사성 언급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작품을 연재 중단하고 저희 쪽에 연락해왔다’는 식으로 써있으나 이는 선후 관계가 사실과 다릅니다. 이렇게만 보면 유사성을 인지한 후 스스로 책임을 느껴 글을 내리신 것으로 읽히지만 실제로는 논란을 알고도 저희 쪽에 연락해 유사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시다가, 저희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후에야 습작으로 돌리신 것 아닙니까?

고의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이처럼 상대방이 진실을 교묘하게 숨기거나 바꿔서 문제를 축소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과정 내내 계속 있었습니다. <포르말린 보이즈>가 조아라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는 점, 유사성 논란이 번질 때마다 <울어라 마왕>은 클리셰고 흔한 이야기라고 치부하며 이를 부정하는 입장들이 존재했다는 점 때문에 제게도 입장문을 준비하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굴러온 돌도 노력을 한다>와 <포르말린 보이즈>, 그리고 <울어라 마왕> 세 작품을 모두 읽고 판단할 수 있는 독자분들의 교집합이 가장 적을 수밖에 없기에, 이 세 작품을 모두 읽지 않았거나 혹은 일부만 읽은 독자분들의 오해나 과도한 추측이 우려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상대 측 입장문은 제가 우려했던 대로, 이런 오해와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제 판단의 근거를 상세히 기술할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김순열 작가님께서는 지난 날 겪지 않아도 될 일에 휩쓸려야 했던 제게 사과를 전해오셨지요. ‘소중한 작품이 이러한 논란에 불필요하게 오르내리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일지는 상상조차 어렵고, 그간 겪어야 했을 고통에 진심으로 거듭 사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제가 겪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고려하셨다면 이처럼 저와 <울어라 마왕>을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입장문을 쓰지는 마셨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 시점에 와서 저는 작가님이 대체 무엇에 대해 사과해주신 것인지도 알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울어라 마왕>은 이 문제의 중심에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사성 논란은 실상 저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제가 글을 쓴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 사실상 저는 책임도, 권리도 없으며 유사성 논란에 대한 것은 철저히 김순열 작가님께서 해명해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 측과 소통하는 과정 내내 이 일은 제가 판단과 책임을 져야 하는 형태로 흘러왔으며 제게는 이 과정이 너무나 벅차게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나 괴로운 마음으로 장문의 입장문을 써내려 간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저는 이 일을 그만 끝내고 싶습니다. 더는 상대 측과 발전 없는 이야기를 끌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회의감도 더는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뺏겼고, 이 일에 묶여 있는 동안 일은 물론이고 원래의 일상을 영위하는 것조차 지장을 받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이 시점 이후로 이 논쟁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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