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이름이 뭐였더라










“선생님.”


배주현은 그 호칭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란 걸 몰랐다. 선생님, 선생님 하던 목소리는 멀리서부터 귀찮게 따라왔다. 선생님이 누구길래 대답도 안 하고 저러지 생각하던 배주현의 손목이 턱 잡혔다. 반 강제적으로 몸이 뒤틀린 배주현은 눈앞에 들어오는 말간 얼굴에 동기들의 농담을 떠올렸다.

너 그러다가 교생실습 나가서 가르치던 애들이랑 학교 같이 다닌다.


“와씨, 진짜. 대박.”


배주현은 약간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그 얼굴은 익숙한 거 같기도 하고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마냥 싱그러운 얼굴을 하고 웃더니, 저예요. 강슬기. 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기억나세요? 기억. 배주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교생을 맡았던 반 어디인가 앉아 있던 강슬기. 하얀 하복에 달린 노란색 명찰에 쓰여 있던 강슬기. 그 다음 해 스승의 날에 기프티콘을 주기도 했던 강슬기.


“쌤.”


강슬기는 당황한 주현의 속내를 알지 못하고 빙글빙글 웃었다. 저 진짜 여기 왔어요. 선생님이 여기 붙으면 밥 사준댔는데. 배주현은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없었다. 있었나? 아마 대충 말했을 것이다. 귀찮게 치대는 어린애들을 달래려 했던 아무 말. 진짜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입바른 말. 선생님 거리면서 따라다니던 애들이 성인이 되고 신입생이 된다니.

계절학기 오후 수업 마치고 너무 졸려서 저녁도 안 먹고 여휴에서 뻗대며 자다 나온 주현은 영문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사복을 입은 강슬기는 교복을 입었을 때랑 다른 듯 비슷했다. 막상 이렇게 만나니 반갑기도 했고.


“졸업 아직 안 하셨네요!”

“…다음 학기면 졸업이야.”


강슬기는 악의 없이 웃었지만 배주현은 괜히 찔려서 다급하게 그랬다. 언어를 어느 정도로 정제해서 뱉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대였다. 공과 사 어느 부분에 강슬기를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여름 저녁의 캠퍼스는 습했지만 그렇게까지 덥진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캠퍼스는 녹지였다. 이름 모를 나무와 풀을 흔들며 바람이 살살 불었다. 슬기는 뭐가 좋은지 계속 웃으며 밥 사주세요, 그랬다.


“밥 아직 안 먹었어?”

“네?”

“사달라며.”

“지금?”

“나 안 먹어서. 너 괜찮으면.”


슬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좋다며 졸졸 주현을 따랐다. 저는 배 안 고픈데 쌤이 사준다고 하면 먹을래요. 배주현은 강슬기가 좀 귀찮기도 했고 좀 귀엽기도 했다.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쉬고 싶었지만 망가진 원룸 에어컨과 같이 있느니 귀엽고 귀찮은 애랑 좀 놀다 들어갈까 싶기도 했다. 배주현은 강슬기의 손을 붙잡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데, 이때 배주현은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잘 가는 술집에 들어갔다.

 

 

배주현은 자기만 혼자 도시락을 시키고 적당히 안주와 술을 시켰다. 신입생은 눈을 빛내며 배주현을 쳐다봤다. 너 방학인데 왜 있어? 저 계절이요. 술을 따라주면서 물으면 강슬기는 아직도 배주현이 선생님인 것처럼 잽싸게 대답했다. 무슨 과야? 인문대요. 너도 고생하겠다. 괜찮은데. 아직.

그래 아직 괜찮을 것이다, 학교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학교에 대한 묘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고 그 덕에 아직까지 괜찮을 수 있었다. 배주현은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고 술을 마셨다.


“사실 연락을 하려구 했는데….”

“응.”

“괜히 부끄러워서….”


아까는 귀찮음과 귀여움이 반반이었는데 술을 마실수록 술잔마다 귀여움이 조금씩 올라갔다. 언뜻 교생 때가 생각났다. 덩치가 주현보다 훨씬 큰 요새 애들은 치대는 걸 좋아하는 지 매번 몸으로 부대꼈는데 그때마다 그 십대 여자애들의 냄새가 아찔했다. 향수 없는 야생의 냄새 같은 그런 거. 새파랗고 새빨간 그 냄새. 강슬기는 그 중에서도 꽤 배주현을 따르는 편이었다. 배주현이 파편처럼 떠오르는 기억을 얘기했고 강슬기는 그 기억을 수정해 다시 이게 맞다며 대답했다.

에어컨도 잘 안 나오는 여름의 교실을 생각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덥고 습하고 햇빛은 쨍쨍했고 애들은 반쯤 졸았고 반쯤 딴 짓을 했다. 시험이 막 끝난 짜투리 기간이었는데, 슬기만 곧게 앉아서 주현의 말을 들었다. 더위에 질식하는 애들 속에서. 그래서인지 자주 눈이 갔다. 복도쪽 창가에 앉은 슬기는 머리가 흘러내리면 다시 한껏 머리를 올려 묶었었다. 뿅 올라온 머리는 상투 같았고 좀 귀여웠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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