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 날조 빻빻 오타 주의



제이크 로클리에게도 공포스러웠던 순간이 있었을까? 콘슈를 처음봤을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공포영화속 주인공 마냥 도망다녔던 스티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상처받는 것이 걱정스럽고 두려워 모든 것을 감추려했던 마크, 반면 오히려 악인들의 악몽이나 마찬가지인 제이크 로클리도 무언가를 두려워 한적이 있었을까?


먼저 정답을 알려주자면 있다. 제이크 로클리에게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쏙 빠질만큼 두려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제이크가 자신의 의지로 기억저편에 파묻어놔 버렸을 수도 있다. )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마크 스펙터라는 안락한 집안에서 여러 인격이 태어나고 죽어가고 사라져가는 것을 지루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 정신세계에서 가장 오래 남아있는 인격은 스티븐 그랜트와 제이크 로클리이다. 그 다음으로 오래 남아있었던 인격은 스티븐 그랜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왠 재벌같은 놈이었는데 얼마안가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스티븐그랜트와 저가 이렇게 오래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마크가 자신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잊혀진다는 것은 곧 죽음과 같았다. 그 세월동안 여러인격이 생겨나고 사라지면서 절규했다. 잊혀지고 싶지 않다고 좀 더 오래 남고싶다고. 


가끔 마크가 이곳으로 오기도 했다. 문처럼 열고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씩 스티븐이 옅은 신음을 내뱉으며 주저앉거나 괴로운 소리를 내고 난 뒤엔 늘 마크로 변해있었다. 표정도 항상같다. 무언가를 보고 겁에질린표정, 마치 살인마에게 뒤쫓기다 겨우 안전한 집으로 대피해 들어온 사람같은 표정으로 이 곳에 들어왔다. 


제이크를 보고도 인사하나 하지 않는 그 무심함도 그대로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이크는 섭섭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아마 마크 스펙터 저가 제일 밝히고 싶지않은 제 모습이니...


이야기가 잠시 다른곳으로 새었지만 다시 한번 '제이크 공포의 순간'으로 돌아오자. 늘 변함 없이 저 너머의 마크를 인식하고 있는 그때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스피커 스위치를 눌러 픽 하고 꺼버린 것처럼. 


고개를 돌려 스티븐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스티븐 그랜트.....?"


스티븐도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오직 자신만 남은 느낌...원래라면 마크가 보고느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며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들리거나 보이지도 않고, 마크의 감각도 희미해져갔다. 그 순간 소름이 끼쳤다. 


마크가 저를 잊으려고 한다. 아니 어쩌면 한동안 얌전한 범생이처럼 지내는 척 하느라 저를 잊고 지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잊혀질 수 없어. 이렇게, 이대로 사라진순 없어.  


"¡Joder!!(X발!)"


절규하듯 욕설을 내질렀다. 정신을 차렸을 땐.......


"마크 스펙터.....?"


왠 강의실 같은 곳에서 저가 한 가운데에 서있고, 주변의 사람들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줄 곧 비슷한 얼굴을 한 인격들만 익숙한 공간에서 생기고 사라지는 것만 봐왔는데, '타인'이라는 것을 봤던 기억도 까마득했던 제이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기가, 스티븐과 마크만 줄곧 봐왔던 세상이구나, 저는 구석에 꽁꽁 묻어둔채 봐왔던 것이.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여성은(아마 강사인것 같다. 안경에 무슨 책같은 것을 들고 있었으니) 무언가 종이에 써서 자신에게 건냈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벌이라고 하며 이 강의실로 가라고 지시했다. 제이크는 어찌된 영문인줄도 모르고 "sí ,sí ......"라고 대답하여 교실밖으로 쫓겨났다.


손을 뻗어 머리를 더듬어보니 제가 늘 쓰던 모자도 없고, 옷은 야구점퍼같은 것에 청바지, 반팔티셔츠하나뿐이었다. 뭔가 좀 허전하다. 모자가 없으니.......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 아무 캐비넷을 열어 캡모자 하나를 꺼내 쓰고 쪽지에 쓰인 곳으로 발을 뻗었다. 신선한 공기, 처음 보는 광경들, 하지만 마크의 의식과 어느정도 연결은 되어있었으니 아주 낯선 곳은 아니었다. 


그 교실의 문을 연다. 문을 여니 왁자지껄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저보다 키도 덩치도 조금 더 큰 놈들이 농구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멈추고 마크, 아니 제이크를 바라본다.


"이야, 이게 누구야, 마크 스펙터?"

"별일이네 스펙터가 여길 다 오고?"


럭비공을 들고있던 한 놈이 제이크의 머리방향으로 공을 던졌다. 툭 하고 머리를 치며 공과 모자가 떨어졌다. 제이크는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지도 않고 바닥에 떨어진 공과 모자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온다. 이 느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저를 태어나게 한 근본, 제 존재의 원천. 


제이크는 공을 들고 제게 공을 던진 놈을 빤히 바라보았다. 삐딱하게 저를 바라보던 놈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뭔가 당황한듯한 눈빛이다. 제이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을 있는 힘껏 그놈의 얼굴에 정면으로 집어던졌다. 강한 타격음이 들리며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놈은 괴로운듯 소리를 지르며 제 얼굴을 감쌌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교실에 있던 서너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온다.


제이크는 그들의 반응이 아주 반가웠다. 그리고 기꺼이 응해주기로 했다. 가장 먼저 가까운 놈의 멱살을 잡아 냅다 주먹을 꽂아버린다. 제 뒤를 포박하기 위해 다가온 놈은 얼굴을 뒤로 세게 젖혀 머리로 얼굴을 찧어버리고 손에 잡히는대로 물건을 집어던졌다. 


잡히는 대로 던지고 때리며 발에 닿는대로 무자비하게 밟아 짓이겼다. 그들이 반동으로 저를 가격할때마다 생소한 통증이 느껴졌다. 신체적으로 괴롭기는 하지만, 그 자극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자신이 존재하고 있기에 이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상대방에게는 무서운 상황이 아닐 수없다. 때리는데도 웃고 있고, 맞고있는데는 웃으면서도 눈에 묘한 쾌감같은 것이 엿보여 더 무서웠다. 얼마나 싸움박질을 해댔을까, 결국 수적으로는 상대가 우세하기에 제이크는 금방 맥이 빠져버렸다. 헉헉 거리며 축늘어진 제이크의 뒤를 누군가가 순간적으로 다가와 포박하듯 잡는다.


그제서야 아픈게 가라앉은 듯 처음에 얼굴에 공을 맞았던 놈이 껄렁거리는 걸음으로 제이크에게 다가온다. 제이크는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쳐보라면 더 쳐보라는듯 사납게 상대를 바라보았다. 증오와 함께 '고통'이라는 기이한 쾌락을 탐했다.


"처음으로 체벌실 오니까 억울해서 정신이 해까닥 돌아?"

".......무슨 소린진 모르지만 진짜 할말이 뭐야? 엿같냐?"

"왜 이렇게 겁대가리 없이 굴지? 누구한테 까분건지 알긴해?"

"니가 누군데, 알바야? estas loco(미친놈아)

"야 이새끼 꿇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조무래기로 보이는놈들이 제이크를 억지로 무릎꿇힌다. 그리고 주변에 어디서 구해왔는지 단단한 로프를 가져와 제이크의 손목을 세게 묶었다. 살이 집혀 아팠지만 제이크는 아까보다 훨씬 덜한 그 고통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이제 동네 북마냥 흠씬 두드려패겠지,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그때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제게 손을 뻗은 놈은 얼굴을 떄리는 것이 아니라 입안에 손가락을 두 세개 억지로 밀어넣었다. 입안에 들어오는 두껍고 긴 손가락들이 제 혀를 이리저리 억지로 얽어대고 있다. 영문을 몰라 크게 뜬 눈으로 그 놈을 바라보니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손가락을 더욱 깊숙하게 넣는다. 목구멍에 손끝이 닿을락 말락 하여 헛구역질이 컥컥 올라왔지만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하려는거지.......'

"이정도 들어가면 몇개나 더 물수 있냐, 큰 놈 두개정도?"

'뭘 말하는 거지, 고문이라도 하는건가.'


손가락을 뺴내고 제이크를 콜록거리며 기침을 해댄다.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져만 간다. '철컥'하고 강의실의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강의실의 불도 꺼져버린다. 한 두명씩 겉옷을 벗거나 지퍼를 내리른 소리가 들려왔다.


"¡Joder!...(X발...)"

근양 이것저것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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