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Stark! I need you help!”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대뜸 도와달라는 피터의 말에 아직 도색 작업을 거치지 않은 새로운 아이언맨 마스크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거뭇거뭇 기름이 묻은 수건에 대충 손을 닦으며 느리게 걸어오는 토니가 답답한 것인지 발을 동동 구르던 피터가 토니의 코 앞 까지 다가와선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워워- 무슨 일이길래 그래?”

“홈커밍이요! 홈커밍에 갈 준비가 하나도 안되어 있어요!”


‘맙소사.’ 토니는 대략 25여년 만에 듣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어린애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것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토니는 새삼 피터와의 나이 차이에 아침에 더미가 건낸 녹즙을 마시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팔로 얼굴을 가린 토니는 아랑곳 않고 흥분에 홍조 띈 얼굴을 한 피터가 이번에 열리는 홈커밍 파티가 얼마나 멋있을 것인지를 설명하다, 그 파티의 담당자 아이를 이야기 하며 수줍어하자 토니는 눈치가 빠른 자신이 싫기도, 좋기도 했다. “그 애가 일을 아주 잘 하나보지?”노련하게 던지 떡밥을 덥썩 문 피터가 그 아이에 대해 열을 올리며 설명을 했다. 딱 봐도 지금 자신이 하는 것과 피터가 하는 것이 그다지 다른 것이 아니라 토니가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니 피터가 신나서 이야기를 하다 수줍게 자신의 홈커밍 파트너라고 밝혔다. 덕분에 목을 삐끗할 뻔한 토니가 큰 소리로 헛기침을 하며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능력 좋네. 그렇게 인기 좋은 애랑 파트너가 되다니.”

“사실 거의 반쯤 포기 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가다가 복도에서 딱 마주친거 있죠! 그래서 용기를 냈는데 다행히 그 쪽에서도 저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나봐요! 스타크씨 이정도면 괜찮은 사이인거 맞죠?”


괜찮은게 아니라 아주 좋아보였지만 토니는 굳이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피터가 조금 시무룩하는게 보였지만 어쨌든, 짝사랑 하는 상대가 다른 사람과 잘 되어 가는 것을 좋아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니 토니는 작은 양심이 치졸하다고 속삭이는 것을 못 들은 척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입고 갈 옷은 준비 했어?”

“어- 아마 메이한테 벤이 입던 양복이 남아있을거에요!”

“그건 너한테 안 맞을테니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 보이고 싶다면 군말없이 따라오는게 좋을거야.”


말로는 잠깐이라고 했지만 랩실에서 작업중이던 토니의 상태가 당장 나가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 피터는 토니가 씻고 나올 때 까지 토니의 랩실 구석에 앉아 숙제를 했다. 스페인어 시험을 위해 미리 정한만큼의 단어를 외웠고, 그걸로도 모자라 다음주까지 제출 기간이 남은 물리 숙제도 미리 끝내 놓았다. 이제 남은 숙제도 없고 할 것도 없을 때 까지 오지 않는 토니에 지루해진 피터가 이참에 토니의 랩실을 제대로 둘러보고자 일어났을 때 들어온 토니로 인해 피터는 아쉬움 반 반가움 반인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뭐해? 이제 가자.”


혼자 민망해하던 피터는 아무렇지 않은 토니의 모습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가방을 챙겨 그의 옆에 섰다. 새삼스래 아까와는 다른 토니의 차림새를 보니 저도 모르게 계속 눈이 갔다. 검은 나시에 편한 바지, 그리고 기름냄새가 나던 남자가 고급 수트에 그와 닮은 향을 풍기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피터는 그랬다. 해피는 일이 있다며 직접 운전석에 오른 토니와 함께 이동하면서도 피터는 흘끔흘끔 그를 훔쳐봤다. 피터는 토니가 모를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토니는 시선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매스컴에 노출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늘 시선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 했지만 단단하게 다물어진 턱이 살짝 올라가는 습관을 숨기지는 못했다. 피터는 알아차리지 못했기에망정이지, 옆에 해피가 있었다면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도착한 곳은 피터가 작년 메이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왔었던 백화점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면 지금은 직원들과 토니, 그리고 자신밖에 없다는 점이다. 커다란 건물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정확히 말하면 토니)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은 너무너무너무 부담스러웠다.


“스타크씨 설마 여기를 빌린건 아니죠?”

“정답이야. 이거 입어 봐.”


마치 옆자리 짝꿍에게 지우개를 빌렸다고 이야기 하는 것 만큼 가벼운 말에 피터는 새삼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과 함께 있는지 실감이 났다. 자신의 품에 턱턱 안겨주는 슈트 세트들이 얼마나 비쌀지 감도 안잡혔다. ‘이거 한 벌에 샌드위치 몇 개를 살 수 있을까?’ 피터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토니가 안겨준 산더미 같은 옷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왔다. 아행히 따라 들어오려는 직원들을 토니가 막아준 덕에 (토니는 다른 직원이 피터의 몸을 보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몰래 가격표를 확인한 피터가 다급히 나와 토니의 손을 이끌고 나가려던 헤프닝이 있었지만 어쨌든 피터는 약 10벌의 슈트를 갈아입어야 했다. 내내 아무말 없이 피터를 유심히 보기만 하는 토니의 행동에 피터는 역시 자신은 슈트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토니는 어떤 옷이든 전부 다 잘어울리는 피터에 말을 잃은 것 뿐이었다.


“지금 입고 나올 옷 까지 전부 계산해줘요.”

“네, 스타크씨.”

“이제 더는 못 입어요!”


마지막 옷을 입고 나온 피터가 토니의 옆에 쓰러지듯 기대 앉으니 토니가 제 손을 들어 시간을 체크하곤 일어서 피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손은 자신의 주머니에, 다른 손은 자신에게 뻗고있는 토니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 같았다. “그만 가자.” 얼른 잡고 일어나라는 듯 살짝 흔드는 손을 덥썩 잡은 피터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다시 흐느적거리며 탈의실로 가려는 것을 손에 살짝 힘을 줘 자신의 옆으로 오게 만든 토니가 그냥 입고 가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아직 놓치않은 손을 따라 허둥지둥 토니를 따라가던 피터가 그냥 나오는 것이 걸리는 듯 연신 뒤를 돌아보자 토니가 살짝 미소를 띄며 말했다.


“절도가 벌금이 얼마였더라-”

“네? 스타크씨 잠시만요! 저 옷 갈아입고 올게요!!”

“농담이야 피터. 이미 내가 결제 했으니까 그냥 와.”


그냥 농담한거였는데 단숨에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와 다시 가게로 돌아가려고 하는 피터를 보며 토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메타휴먼은 맞는 것인지 어느새 저 멀리까지 가있는 아이를 부르자 못 믿겠는지 주춤주춤 하는 꼴을 보며 직접 가서 다시 손을 잡고 데려올 수 밖에 없었다.


“진짜요? 진짜 결제하신거 맞죠? 저 돈 모아둔거 있어요!”

“그래 맞아. 결제 내역 보여줘?”

“볼 수 있어요?”

“아니 못 봐.”


볼 수 있을 것처럼 말하더니.. 피터는 토니의 장난에 씩씩거리며 그의 뒤를 쫒았다. 슈트 한 벌이 얼마나 비싼지 알고 있기 때문에 피터는 토니의 장난이 그저 장난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미안했다. 피터는 토니를 따라 차에 올라타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그런 피터를 흘끔 본 토니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녁 먹고 가자.” 토니 역시 피터가 불편해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탈의실에 혼자 들어갔으니 분명 붙어있는 가격표를 봤을 것이다. 입고있는 옷이 구겨질까 어색하게 앉아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토니는 일부러 뒷좌석에 놓인 쇼핑백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스타크씨-”

“피터. 네가 매일 찢어서 가져오는 슈트에 비하면 그정도 옷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쓰지마. 그리고, 내가 누군지 모르는건 아니지? 내 입으로 말하면 재수없다고 그래서 안하려고 했는데 오늘 산 옷들 정도는 금방 다시 벌 수 있는 정도거든?”

“잠깐, 옷들이요? 이거 하나만 산거 아니었어요?”

“피터 진정하고 30초만 세봐.”


마침 신호에 걸려 멈춰선 토니가 화들짝 놀란 피터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숫자를 세자 피터가 얼떨결에 그를 따라 숫자를 세었다.


“...29, 30 이게 뭐에요.”

“방금 네 옷 값에 쓴 돈에 두 배를 벌었어.”


강조하듯 손으로 브이자를 만들어낸 토니가 다시 액셀을 밟았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굳이 또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피터가 잠시 고민하다가 작게 감사 인사를 건냈다. 토니는 그제서야 만족한다는 듯 웃으며 손을 뻗어 피터의 머리를 헝클였다. 정답이었다.

그 후 토니와 피터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가 두툼한 스테이크를 먹었다. 추가로 시킨 파스타도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난 뒤, 토니는 피터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양 손 가득 쥐여진 쇼핑백들을 물끄러미 보던 피터는 다시 한번 토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토니 스타크 도움은 이 정도야.”


돌아온 토니의 말에 피터가 웃음을 터트렸다. 양 손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내일도 또 와. 아직 못한거 많으니까.” 차에 올라타며 자연스럽게 다음 만남을 잡는 토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던 피터가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예상했던데로 오늘 하루동안 입어봤던 옷들이 곱게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마를 긁적이자 옆에 있던 메이가 가끔은 어른의 호의는 받아도 되는 것이라며 피터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숙모마저 토니와 비슷하게 이야기 하니 피터는 어깨를 으쓱이곤 토니가 선물한 옷들을 옷장에 하나씩 걸어놓았다. 비슷한 모양의 체크셔츠들과 맨투맨, 후드티 다음에 줄줄이 걸려있는 명품 슈트들이 어울리지 않았다. 피터는 그것들을 빤히 보다가 옷장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도 약속한대로 토니를 찾아갔다. 회사로 오라는 연락을 미리 받은터라 뉴욕 한가운데있는 스타크 인더스트리로 가서 여러 절차를 거친 후 토니를 만날 수 있었다. 어제와는 달리 흐트러진 슈트 차림의 그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목에 대충 걸려있는 넥타이와 팔꿈치까지 걷어부친 소매, 답답한 듯 풀어헤친 단추까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지만 이또한 그와 매우 잘 어울렸다.


“스타크씨!”

“왔어? 잠깐만 기다려. 이것만 처리하고.”


급한 일인지 페퍼와 함께 두툼한 서류뭉치를 보며 심각하게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던 피터는 조용히 한쪽에 있는 쇼파에 앉아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토니가 여러명의 사람들과 화상 회의를 하고 있어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무섭게 집중하는 모습에 잠시 들어온 해피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좋은 애라니까. 금방 끝난 피터의 숙제와는 달리 토니의 일은 꽤 오래걸렸다. 한숨을 내쉬며 몇 시간 만에 의자에 편히 기대 앉은 토니가 피터를 봤을 땐 곤히 잠들어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어둠이 몰려오려 붉게 타오른 하늘을 한 번 곤히 잠이 든 피터를 한 번 그렇게 보고있자니 토니에게도 잠이 몰려왔다. 막 깊은 잠에 빠져드려던 그때, 피터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토니는 분명 아주 오래 잤을 것이다.


“죄송해요! 깜빡 잠들어버렸어요..”

“괜찮아. 애초에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오늘은 넥타이 매는 법만 하고 가야겠다.”


조금 많이 피곤해 보이는 토니의 모습에 피터가 주섬주섬 가방을 뒤적여 샌드위치 프렌차이즈 집에서 산 쿠키를 꺼냈다. 스타크 타워로 오는 길엔 달마르 샌드위치를 들를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다른 프렌차이즈 집으로 간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잘 간 것 같다. 누가뭐라고 해도 피곤할 땐 당분을 섭취 하는게 최고니까.


“스타크씨 이거 드세요!”

“난 단거 별로 안좋아하는데.”

“그래도 피곤할 땐 한 번씩 먹어주는게 좋아요!”


초콜렛이 꾸덕하게 묻은 쿠키를 반으로 잘라 건내주는 것을 빤히 보던 토니가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다. 쿠키를 쥐고 있던 손가락과 토니의 입술이 부딪치는 순간 마주친 눈에 피터는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맛있네.” 그리고 토니의 말에 다시 끌어올려졌다. 피터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자연스럽게 “그렇죠?” 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몫으로 남겨놓은 쿠키를 먹고,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 열이 오른 얼굴을 숨겼다. 정확히 말하면 토니가 그 모든 것을 모른 척 한것이지만, 어쨌든 피터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타이는 그냥 이걸로 하자.”


토니가 자신의 목에 대충 걸려있던 타이를 끌어 풀어내는 모습에 피터는 또다시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히려 노력했다. ‘내가 왜 이러지?!’ 머릿속에 토니가 쿠키를 먹던 장면과 넥타이를 풀어내는 장면이 반복해서 재생됐다. 눈 앞에 있는 토니는 그런 피터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고, 피터는 진정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주기율표를 외우며 토니를 따라 프라이데이가 만들어낸 홀로그램 앞에 섰다. 거울처럼 토니와 피터의 모습이 보이는 것에 피터는 일부러 토니쪽을 보지 않았다.


“피터, 보고있는거야?”

“네? 네, 그럼요 이렇게 해서 안으로 쏙 넣으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한번 해봐.”


이런. 사실 피터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주기율표를 외우느라 토니가 하는 말이 하나도 안들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본 건 있어서 어설프게 봤던걸 따라하니 요상한 모양의 리본이 만들어졌다. 슬쩍 쳐다본 토니는 팔짱을 낀채 어디 한 번 계속 해보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피터는 어색하게 웃다가 내내 같은 표정을 유지하는 토니를 보더니 곧 시무룩해졌다. 토니는 시무룩해진 피터를 보며 몰래 웃음지었다.


“집중해 피터.”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든 것인지 피터는 토니를 따라 곧잘 따라했다. 하지만 직접 자신의 목에 매는 것과 상대방이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 꽤나 헷갈리는 일이라 피터가 버벅대고 있자 토니가 피터의 등 뒤로 와 직접 매는 것을 도와줬다. 어깨 위로 넘어온 팔이 유려하게 멋들어진 모양의 매듭을 지어내는 동안 피터는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정갈하게 잘 매어진 넥타이가 숨통을 조이는 느낌이었다. 자신을 옭아매는 모양의 토니의 팔 때문인지, 익숙하지 않은 넥타이 탓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었다. 다만, 그 조임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홈커밍이 언제라고?”

“내일 모레요!”

“춤 연습은 한거야?”

“사실 그게 제일 문제에요.. 춤은 한번도 춰본 적이 없어서..”

“일어나봐.”


나른하게 쇼파에 기대어 앉아있던 토니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목에 걸려있던 넥타이를 풀러낸 피터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자 토니가 조금 넓은 공간으로 걸어가 손을 잡지 않은 손으로 피터의 허리를 감쌌다.


“프라이데이 적당한 음악 하나 틀어줘.”


똑똑한 인공지능은 대답대신 잔잔한 음악을 틀었다. Nick Cave의 O Children이 사무실에 잔잔하게 울렸다. 토니는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흔들었다. 천천히 스텝을 밟으며 능숙하게 리드하는 토니를 따라 어색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그가 팔을 들어 피터가 한 바퀴 빙글 돌도록 만들었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웃음이 입꼬리를 맴돌다 두 사람 사이로 흘러나갔다. 피터는 마치 토니와 자신의 모습이 얼마전 우연히 본 해리포터의 한 장면과 같다고 생각했다. 같은 음악과 영화 속 두 사람처럼 춤을 추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해 토니 몰래 배시시 웃었다.

토니는 이 순간이 마치 슬로우 모션 카메라를 쓴 것처럼 천천히 보였다. 한 바퀴 뱅글 돌아 자신의 품에 안긴 피터가 배시시 웃는 모습이 잊지 말라고 뇌에 직접 각인해 넣은 것처럼 선명했다. 토니는 다시한번 인정했다. 자신이 어린 꼬맹이에게 푹 빠져버렸다고.


“피터 준비 다 했니?”

“네- 금방 나가요!”


고민하다 토니와 함께 식사를 했던 검정 슈트를 입은 피터가 거울을 보고 배운대로 넥타이를 맸다. 마지막 매듭을 지으니 거울속에 어색한 모습의 자신이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피터는 그것이 홈커밍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넥타이를 매어주던 토니가 떠올라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색하게 걸어오니 메이는 피터의 모습을 보며 아주 잘어울린다고 칭찬해주었다. 피터는 머쓱하게 웃다가 준비한 코르사주를 챙기는 것도 잊어 메이가 챙겨줘야 했다. 메이의 차를 타고 파트너의 집 앞에 도착한 피터가 손에 쥔 코르사주를 만지작거렸다. 무언가 가슴에 턱 걸려 불편했다. 이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기엔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벌컥 열린 문으로 인해 피터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파트너의 성격처럼 단란해 보이는 가정과 훈훈한 분위기에도 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코르사주를 달라는 듯 계속 쳐다보는 파트너의 눈길도 모른 척 괜히 그것을 꽉 쥐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학교 앞에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어서 들어가자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파트너를 멍하니 보다 피터는 결국 사과를 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 뒤돌아 뛰어가는 피터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파트너를 모른척 피터는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가서 토니가 준 시계를 통해 캐런을 불렀다.


“캐런누나! 스타크씨는 지금 어디계셔요?”

“스타크씨는 지금 뉴욕 자택으로 가고 계셔.”

“고마워요!”


뉴욕 자택이라면 저번에 한 번 가본적이 있다. 피터는 그 길로 토니에게 뛰어갔다. 다행히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구두를 신은 채로 뛰기엔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는데도 피터는 쉬지 않고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니 머리가 맑아졌다. 그동안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혼자서 배실배실 터져나오던 웃음의 이유를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토니에게로 가는동안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출처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이는 토니의 집과 가까워지면서 점점 사그라들었지만 피터는 크게 한 번 심호흡 하고 벨을 눌렀다. 얼굴을 알고있는 프라이데이가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었고, 이제 막 도착해 옷을 갈아입으려고 한 것인지 반 쯤 풀어진 셔츠와 바지차림의 토니가 의아한 얼굴로 걸어왔다.


“피터? 지금쯤이면 파티를 즐기고 있을줄 알았는데, 무슨일 있는거야?”

“아, 그게, 그게요-”

“피터?”

“제 홈커밍 파트너가 되어주세요!”

“뭐?”

“스타크씨가 좋아요..”


당황한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토니를 본 피터가 눈을 꾹 감아버렸다. 코르사주를 내밀고 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게 꼴사나워 보였다. 생각과는 달리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슬쩍 눈을 뜬 피터가 내내 자신을 보고있던 토니와 눈이 마주쳤다. 토니는 피터가 눈을 뜨길 기다렸는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를 보인 토니가 등을 돌려 가까운 방으로 들어갔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피터가 눈물이 고여있는 눈만 깜빡이고 있으니 아까와는 달리 옷을 제대로 갖춰입은 토니가 시계를 차며 걸어 나왔다.


“데이트 신청을 이렇게 엉망인 상태로 받을 수는 없지.”


피터의 앞에 서며 이야기 하니 피터가 눈물을 퐁퐁 흘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뒤어오면서 꼭 쥐어 찌그러진 코르사주를 보다 시계를 차지 않은 손을 내미니 피터가 코를 훌쩍이며 코르사주를 꺼내 토니의 손목에 묶어주었다. 자신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것과 셋트인 것이 토니의 손목에 있는 것을 보니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음이 흘러 나왔다.


“좋아해.”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피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말을 혹시 입 밖을 낸 것인가 생각해봤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토니가 코르사주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피터는 자신이 잘못들은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그러고 있으니 토니가 코르사주를 매고 있는 손으로 피터의 손을 잡았다. 손의 여린 부분을 느리게 문지르는 엄지 손가락이 단단했다.


“좋아해 피터. 먼저 용기 내줘서 고마워.”

“정말, 정말이요?”

“응, 정말정말.”


몇 번이고 확인하던 피터가 토니의 손을 잡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토니는 피터가 진정될 때까지 계속해서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배운대로 잘 맸네.”

“킁- 스승이 훌륭한 사람이었거든요.”

“춤 스승도 훌륭한지 한 번 볼까?”


잡고있던 손을 이끌어 넓은 곳으로 온 토니가 저번처럼 피터의 허리를 감쌌다. 말 하지 않았음에도 똑똑한 인공지능은 저번과 같은 음악을 틀었다. 피터는 토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음악에 맞춰 천천히 리듬을 타며 두 사람은 똑같은 웃음을 지었다.


“홈커밍 파티 기대했던거 아니었어?”

“제 생에 최고의 홈커밍이에요!”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하는 피터를 보며 토니가 손을 당겨 피터를 품에 안았다.


“내 생에 최고의 홈커밍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제 파트너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 작 중 피터는 미성년자이지만 피터가 성인이 될 때가지 스킨쉽은 일절 없을 예정입니다. 힘을 내요 스타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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