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락(陷落)


* 사제물(성인-미성년자)




4월 중순에 담임이 되었다.

 2학년 1반의 담임을 맡고 있던 교사가 급하게 휴직을 신청했기 때문이었다. 검진 결과 임신 초기로 유산 위험이 높다고 했다. 타당성 있는 사유에 누구도 이의를 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자리가 있으면 그것을 채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1반 담임은 같은 과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라는 교감의 은근한 권유에 담임을 맡고 있지 않은 교사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휴직 신청을 한 장영아 선생은 국어과의 2학년 문학 담당이었고, 국어과 교사들 중 담임을 맡지 않고 있던 것은 교감 승진을 앞 둔 나이 지긋한 50대 교사와 저 둘 뿐이었다. 씹.. 잇새로 욕을 삼켰다. 교사 인력이 잘 교체되지 않는 사립학교 특성 상 근무 3년차에 접어 들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막내였다. 더러워도 까라면 까야지.

“ 제가 2학년 1반 맡겠습니다. ”
“ 그래, 다니엘 선생 잘 생각했네. 수고 많은 거 아니까 고과 특별히 신경 써줌세. ”

예의상 목례를 했다. 작년에 3학년 담임을 맡았다가 희대의 문제아에게 된통 당한 뒤로 귀찮은 잡무를 다 떠맡더라도 올해만은 담임을 쉬게 해달라고 간청했었다. 그게 얼마나 되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담임 업무를 떠넘기지. 반질반질 기름이 흐르는 교감의 얼굴을 보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1반 담임이 휴직 신청을 한다고 했을 때 일이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했다. 그럼에도 가시지 않는 이 찝집함은..

축축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도 처다 보는 저 애새끼 때문에.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1반 애들은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놀란 척도 안하고 히죽 웃으며 장난을 걸어온다. 거 봐. 내가 강 쌤 막내라 빼박 우리 담임 맡는다고 했잖아. 아씨... 500원 내놔. 담임 맡을 선생을 두고 내기라도 했는지 저들끼리 시끌벅적 난리 통에 고요하게 저를 응시하는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지나가다가도 한 번 쯤 돌아볼 만큼 곱상하게 생긴 애새끼는 지나치게 집요했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시선을 오롯이 느끼고 있노라면 꼭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게 학기 초부터 무려 한 달 반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눈빛에 무슨 간곡한 사연이라도 있나 했더니 다른 수업 시간에는 그러지도 않는단다. 집안 사정도 괜찮고 교우 관계도 원만한 아주 모범적인 아이.

그런데 씨발.. 왜 나한테만 그래 지훈아.

“ 자, 다들 조용하고. 벌써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길게 설명은 안한다. 담임 바뀐다고 뭐 달라지는 거 없으니까 하던 대로 공부 하고. 너네 고3 되는 거 금방이야. ”
“ 에이.. 쌤 재미없어요!! ”
“ 너네한테 재밌고 싶을 생각 전혀 없으니까 알아서들 잘 하자. 5교시 문학이지? 그 때 보자. 조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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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파랑을 비유한 자연물에는 달, 수풀, 잣나무가 있는데 각각은 기파랑의 어떤 특성을.. ”

애들의 고개가 하나 둘 푹푹 꺾인다. 점심시간 직후의 문학시간, 그것도 따분하기 그지없는 고전을 읽으라니..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했다. 책상 사이를 가로지르며 수마에 함락된 애들을 하나 둘 깨우는데 2분단 중앙의 박지훈은 여전히 꼿꼿하다. 제 옆의 짝은 이미 엎드려서 숙면을 취하고 있는데 졸음이 뭐냐는 듯 말똥한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칠판을? 아니 나를. 오늘도 어김없이 뒷통수로 꽂혀오는 진득한 시선이 느껴진다. 진짜.. 언제까지 할래, 지훈아. 순식간에 고개를 돌려 그 맹랑한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책으로 고개를 처박는 꼴이 우습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면 말이야, 적어도 샤프 쥐는 시늉은 했어야지. 필기 하나 없이 말끔한 책을 펼쳐놓고 못 본 척, 안 본 척 하는 깜찍한 짓은 어디서 배웠는데 도대체.

“ 다들 너무 졸려 하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개별 상담해야 하니까 이따 자율활동 시간에 장영아 쌤이랑 상담 한 애들 제외하고 그 다음 번호부터 국어 교과교실로 와. 지금 자는 애들한테 전달 확실히 해주고. ”

“ 네!! ”

 수업 종료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자 필사적으로 졸음을 참던 아이들도 책상 위로 엎어진다. 반 이상이 엎드려 잠을 청하고 나머지는 저들끼리 조잘조잘 떠드는 동안 박지훈은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흘끔 흘끔 나를 훔쳐본다. 정말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가? 순진한 건지. 아니면 뭘 알고 그러는지. 하도 집요한 시선을 받다보니 온 신경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한다. 그게 그녀석의 의도였다면 아주 성공 한 거다. 애새끼는 입술 주위가 자주 트는데 그걸 지분거리다가 상처를 덧내는 아주 사소하고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또 새카맣고 둥근 눈동자를 굴릴 때면 커다란 눈이 툭 떨어질 것이 위태롭다가도 감으면 짙은 속눈썹에 감춰져 감쪽같다. 또 책 위에 가만히 올려놓은 손은 작고 뭉툭한데... 또, 또... 애새끼를 더는 나무랄 수 없게 되었다. 이정도면 누가 누굴 처 보고 있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상념을 종식시키는 종이 울렸다. 고요했던 주위가 소음으로 가득 차오른다.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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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아 선생의 휴직이 가져온 유일한 이점은 바로 교과교실 관리가 내 몫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예산을 받았으니 뭐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교장의 일념 하에 주요 과목에 해당하는 교과교실을 증축했다. 최근에 완공된 교실은 최신 시설 뿐 아니라 그 안에 작은 교재 연구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교재 연구실은 남들의 눈을 피해 휴식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남교사 휴게실이 있지만 아직 막내 뻘에 속하는 제가 자주 들락거리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교무실에서 쉬기에는 더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 새 학기에 학급 아이들과 개별 상담을 진행할 때 굳이 상담실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더기로 쌓인 아이들의 생활 기록부를 차곡차곡 쌓았다. 몇 번까지 상담했다고 했었지.. 11번이었나, 12번이었나. 교과교실 문이 열리는 소음이 옅게 들려왔다. 무심코 종이를 넘기다 12번 박지훈이라는 이름 밑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고동색 머리를 한 남자애의 증명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종이자락을 넘기려던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달칵-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사람을 멈칫하게 만드는 실물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 어, 그러니까.. 종합전형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동아리 활동이랑 수상 경력 챙겨야 하고... ”
“ 네... ”
“ 봉사 활동 시간도 미리미리 채워 놓는 게 좋고. ”
“ 그럴게요.. ”

대화가 자꾸 겉도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 마디 이상 대답하지 않는 박지훈 때문에 슬슬 열이 오르고 있었다. 다른 아이가 이런 식으로 상담했더라면 아마 숫기가 없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 수업시간에는 샤프도 안 쥐고 내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애새끼가 막상 독대하고 앉으니 내외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극명한 온도차에 실소가 나왔다. 모아 앉은 무릎 위에서 아까부터 곰지락대던 손가락 끝이 붉어져 있었다. 튼 살을 뭉툭한 손톱으로 뜯어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씁-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놀랐는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박지훈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또, 또... 눈가가 축축하다. 사내새끼가 운 것도 아니면서 왜 항상 눈꼬리가 젖어 있는 거지.

급하게 짐을 정리했는지 연구실 서랍에는 물건 몇 개가 남아 있었는데 그 중에 연고를 봤던 것 같기도 했다. 두 번째 서랍을 열자 바로 보이는 연고를 꺼내들어 박지훈의 손을 끌어당겼다. 당기는 대로 끌려오는 폼이 고분고분하다. 불투명한 빛깔의 연고를 뭉툭한 손끝에 꼼꼼하게 발라냈다. 내려 깐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이는데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얘도 애다. 멋모르는 평범한 고등학생. 애초부터 어린애를 상대로 심각한 고민을 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치부하고 나니 짐덩이를 하나 덜어 낸 기분이었다. 진득하게 꽂히는 시선도, 잠식당하는 기분을 들게 하는 축축한 눈빛도 모두 그저 덜 자란 애새끼의 뒤틀린 관심 정도라고.. 그래, 그러면 되는 거였는데..

“ 다른 고민은 없고?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얘기해도 ㄷ.. ”

급박한 고민이라도 되는지 인사치레가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고 들어온다.

“ 저... ”

“ 그래, 말해봐. ”

말하지 마, 제발. 마음속의 외침이 반대로 튀어나갔다.

“ 저, 사실.. 남자가 좋아요.. ”

씨발..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하고서 내뱉는 말이 가관이다. 박지훈이 그 어느 날의 수업 시간처럼 나를 빤히 처다 본다. 미묘하게 다른 한 쌍의 눈꼬리가 물기에 젖어 번져 있었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불덩이라도 삼킨 것처럼 뜨거운 게 속에서 울컥 올라왔다. 나보고 어쩌라고 지훈아. 화가 나는 건지, 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

공감하고 위로하기, 매뉴얼대로.

“ 남들과 성 정체성이 다르다고 느낄 수 있어. 아직 자아 개념이 불안정한 청소년기에는 더더욱 그렇고.. ”

진심을 담아 조언하기. 매뉴얼대로.

“ 그런데 지훈아... ”
“ ........ ”
“ 나 좀 그만 처 봐. ”
“ ..네?”

매뉴얼은 무슨, 좆 까.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의아함 가득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질리는 게 보였다. 애새끼는 감추는 법을 모른다. 그 때 그때 감정이, 하는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까부터 고여 있던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는 붉어진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는 얼굴이 하나도 추하지 않고 예뻐서 헛웃음이 났다. 단전 한 구석이 찌릿했다. 이게 좆같은 건지 좋은 건지 분간이 안됐다. 그냥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더 망쳐버리고 싶다는.. 원초적 본능이 속에서 꿈틀댔다. 교복 셔츠로 눈가를 몇 번 벅벅 문지르던 박지훈은 문을 쾅 닫고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바깥의 문은 닫지도 않았는지 여는 소리만 크게 울리고 닫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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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은 더 이상 나를 보지 않는다. 끈질기게 달라붙던 시선이 사라진 자리는 어쩐지 홀가분하다기보다는 허전한 느낌이었다. 애새끼는 내 요구를 성실하게 수행하겠다는 듯 문학책에 고개를 처박고 50분 내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판서된 내용을 필기해야 할 타이밍에도 칠판 대신 제 짝의 책을 베껴 적는 모습은 일종의 시위를 연상시켰다. 진도가 애매하게 남아 쉬는 시간을 주자 아이들이 하나 둘 엎어진다. 엎드린 애들 틈으로 늘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던 박지훈은 이제 가장 먼저 엎어지는 애들 중 하나가 되었다. 혼복 기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모두 하늘빛 반팔 셔츠를 입었다. 오랜만에 미세 먼지가 없는 날이라는 예보에 활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봄볕이 쏟아졌다. 자리를 바꾸었는지 박지훈은 2분단 중앙에서 창가 자리로 옮겨가 있었다. 결 좋은 고동색 머리카락이 미풍에 스르륵 흔들렸다. 발소리를 죽이고 책상과 책상 사이를 거닐다가 창가 앞에 섰다.

자연광을 받은 얼굴이 반짝였다. 붓으로 그린 듯한 눈매 사이사이 속눈썹이 촘촘하게도 돋아나 있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결대로 날리던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었다. 박지훈은 제 머리를 만지는 낯선 기척에 선잠에서 깨어난 듯 몸을 일으켰다. 이내 제 앞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매섭게 눈을 치떴다. 아직도 제 정수리에 올려 져 있는 내 손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반동으로 떨어져나간 내 손을 흘끗 보더니 이번에는 아예 엎드린 채 제 머리통 위에 책을 펼쳐 올려버렸다. 뭐, 건들지 말라는 뜻인가. 꼭 손 타지 않은 고양이가 할퀴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배 아래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저릿한 성욕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고분고분하게 굴 때에는 왜 이만큼 동하지 않았나 했더니... 역시 난 함부로 구는 쪽이 취향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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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청소구역 바꾸는 일을 반장에게 일임했더니 옆 반에서 항의가 들어올 만큼 난리가 났다. 고등학생이라는 것들이 진짜 나이는 어디로 먹은 건지. 내가 교실에 들어서도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조용하라고 몇 번 주의를 주자 큰 소리는 못 내고 지들끼리 속닥거린다. 개발새발 기어가는 글씨로 칠판에 쓰인 청소구역 목록과 담당을 훑다가 ‘국어교과교실:박지훈’을 보고 멈춰섰다. 아, 그래서 아까부터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이었구나. 제 옆의 짝과 무어라고 속닥거리던 박지훈은 제 짝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보나마나 청소구역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했겠지.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애새끼는 하는 행동의 사이즈도 쉽게 예측 가능하다. 국어교과교실은 꽤 너른 공간에 비해 청소 담당이 한 명밖에 배정되지 않는데다가 제 담임이 관리하는 교실이니 청소 검사도 빡셀거라는 추측은 정설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이유 때문에 박지훈의 부탁을 거절했을 것이다. 박지훈이 무슨 연유로 청소 구역을 바꿔 달라 부탁하는지도 모른 채.

박지훈은 지옥문을 열고 들어오는 표정으로 교과교실에 들어왔다. 내 얼굴을 보고 고개만 까딱- 하고는 교실 구석구석을 쓸어냈다. 대강 마치고 가려는 낌새가 보이길래 짐짓 엄한 목소리로 불렀다. 교재연구실 안도 청소 해야지. 애새끼 표정이 아주 보기 좋게 구겨진다. 감출 줄 모르는 건지, 감추려는 마음이 없는지. 아주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하고서는 또 청소는 꼼꼼하게 하는데 자꾸 피실피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건드려서 즉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 비스듬히 앉은 나를 박지훈이 툭툭-쳤다. 못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애새끼가 아씨.. 하는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는 게 다 보였다. 귀여워라. 괴롭히고 싶어서 진짜 어쩔 줄을 모르겠다.

“ 책상 밑에 쓰레기통 비워야 해요. 비켜주세요. ”
“ 아아, 난 또. 진작 말하지. ”

내가 살짝만 의자를 틀어 비켜준 탓에 제법 안쪽에 있는 쓰레기통을 꺼내려 안간힘을 쓰던 박지훈이 책상 밑에서 고개를 빼다가 그만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쿵- 도 아니고, 빡- 하는 묵직한 소리가 조용한 연구실 안을 울렸다. 아으.. 앓는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앉아 제 머리를 쓱쓱 문질렀다. 그리고는 번뜩 고개를 들어 눈물이 대롱대롱 달린 눈으로 나를 죽일 듯이 올려다보는데 그게 너무... 펠라가 버거워 울음이 터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지훈이 청소도구와 쓰레기통을 양 손에 움켜쥐고 쿵쿵 소리를 내며 나가는데 인사하는 척도 못했다. 어느 새 앞섬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미쳤네 진짜.

너무 오래 안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클럽을 찾았다. 적당히 술에 취해 여자 하나와 클럽을 빠져나왔다. 근처에 있는 적당한 모텔에서 적당하게.. 아니, 아주 미친 듯이 섹스했다. 밑에 깔린 여자애가 자지러지는 소리에 귀가 다 따가웠다. 박지훈의 결 좋은 고동색 머리칼을 움켜쥐고 부르튼 입가가 찢어지도록 좆질 하는 상상을 하면서 몇 번이고 사정했다. 아주 돌아버린 게 틀림없다.

숙취에 절은 머리통을 붙잡고 일어났더니 간신히 지각은 면했는데 도저히 집에 들를만한 시간은 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어젯밤 대충 벗어놓은 옷을 다시 껴입었다.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여자의 엄지손가락을 살짝 빼내어 협탁 위에 놓인 핸드폰 홀드를 풀었다. 지갑이라도 훔쳐봤는지 알려준 적 없는 이름이 떡하니 저장되어 있었다. 망설임 없이 번호를 삭제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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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다니엘 쌤 어제랑 옷이 똑같네? ”
“ 아.. 늦잠을 자서요. 급하게 아무거나 주워 입고 나오다보니.. ”
“ 흐흐, 다니엘 선생 정도면 한창 때지 뭐. 여자 친구 집에서 자기라도 했나봐? ”

 아침부터 긁어대는 오지랖에 짜증이 확 올라온다. 남의 일에 관심이 얼마나 많으신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서류를 뒤적이는데 누가 어깨를 제법 세게 툭- 치고 지나갔다. 진짜 별게 다 거슬리네. 누군가 해서 봤더니 익숙한 뒤통수가 종종걸음으로 교무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저 머리통을 휘어잡고 좆질 하는 상상을 했다. 애새끼는 있지도 않은 내 여자 친구가 퍽 심기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저렇게 대놓고 화난 티를 내는걸 보면.. 좆같았던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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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쟤네 그렇게 물장난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하고 있네, 자식들.. 선생 말이 아주 그냥 우습지. ”

 동료 교사의 푸념이 쏟아진 자리를 바라보니 막 체육시간이 끝난 후에 수돗가에 모인 아이들이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영우.. 성재.. 지한이.. 그리고, 박지훈. 아, 우리 반이구나. 진짜 더럽게도 말 안 들어 먹지. 다른 반이었으면 못 본 척 지나쳤을 테지만 담임을 맡은 반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주의를 주려 발걸음을 옮길수록 어렴풋하게 보이던 아이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찬다. 박지훈은 이미 흠뻑 젖어 짙게 내려앉은 머리를 하고 물줄기를 피해 도망 다녔다. 커다란 동공이 모두 감춰질 정도로 눈을 접고 웃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붉어진 뺨 위로 볼록 앞광대가 솟아있다. 누구는 지금 지 때문에 심란해 뒤지겠는데 해맑기도 하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눈앞에서 박지훈이 물웅덩이를 밟고 미끄러졌다. 균형을 잃은 몸뚱이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아주 운 나쁘게도 수돗가 가장자리에 머리를 쿵- 하고 박은 후에.

무슨 정신으로 뛰어가서 모여든 아이들을 밀어내고 그 앞에 앉았는지 몰랐다. 어렴풋하게 뜨인 박지훈의 눈을 보고 잠시 마음을 놓기도 전에 뒤통수에서 조금씩 핏방울이 새어나왔다. 씨발. 살짝 벌어진 입에서 하으..아파요.. 하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 꼭 어린 시절 죽고 못 살던 솜뭉치가 난도질당하는 기분 같았다. 발 빠른 아이가 데려온 양호 선생이 박지훈 머리의 상처를 살폈다. 어떡해. 죽는거 아냐? 미쳤냐? 내가 아까 쫓아가지만 았았어도.. 쌤 지훈이 괜찮아요? 지훈아 괜찮아? 애들 입에서 가지각색으로 터져 나오는 말들이 흐릿하게 들렸다. 속에서는 뭔가가 들끓는데 머릿속은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 두피가 좀 찢어진 것 같은데.. 많이 심각해 보이지는 않아요. 일단 응급 처치는 해놨으니까 병원 데려가서 좀 꼬매고 뇌진탕 있는지 검사 해봐야 할 거 같네요.  ”
“ 제가 데려갈게요. 학생부장 쌤이랑 교감 선생님한테 잘 좀 전해주세요. ”
“ 아아, 네. 그럴게요. ”

양호 선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축 늘어진 박지훈을 들어 올려 안았다. 제법 골격이 탄탄한 몸에 힘까지 빠져서 읏- 소리가 날 만큼 묵직했다. 수돗가 뒤편에 세워놓은 차로 향하는 동안에도 박지훈은 계속 앓는 소리를 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아주 사람 돌아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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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은 네 바늘을 꼬매고 가벼운 뇌진탕 소견을 받았다. 생살에 바늘이 꽂히는 게 제법 아팠을 텐데 손끝이 하얘질 만큼 주먹을 말아 쥐고 꾸역꾸역 참았다. 근성 있네. 요 근래 발견한 새로운 면모다.

“ 부모님한테 연락해야 하니까 번호 줘. ”
“ 지금 두 분 다 출장 중이셔서 어차피 못 오세요.. 괜히 걱정만 할 거에요. ”
“ 못 오셔도 알고는 계셔야 해. 빨리 번호 내 놔. ”
“ 아.. 진짜 괜찮은데.. ”

나는 안 괜찮아. 단호한 목소리로 재촉했더니 느릿느릿하게 제 핸드폰을 내민다. 또래 사내아이들한테는 찾아보기 힘든 ‘엄마♥‘라는 저장명에 살풋 웃음이 튀어나왔다. 귀여운 애새끼. 저를 비웃는다고 생각했는지 또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다.

박지훈의 부모님은 아주 젠틀하고 상식적인 분이셨다. 어머니 쪽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버지 쪽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이가 다쳤다는 말에 흥분할 법도 한데 사고 경위를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더니 금세 납득하셨다. 그리고는 지금 부부가 모두 외국 출장에 와있어서 하루 만에 갈 거리가 아니라는 사정 설명과 함께 저녁에 제 동생, 박지훈의 이모를 집으로 보내겠다는 믿음직한 대안도 제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이 담긴 말에 살짝 감동도 받았다. 진상 학부모를 하도 만나다 보니 가끔 가다 나오는 정상적인 학부모가 반갑기 그지없다. 통화를 넘겨받은 박지훈은 몇 번 응, 응. 알았어. 하는 대답을 이어가더니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나두..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무슨 타박이라도 들었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아주 기어 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나두 사랑해.. 한다. 확실히 사랑받으며 자란 태가 났다. 그리고는 내가 들었을까 바로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살피는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 모양이었다. 내가 지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처럼 매섭게 눈을 뜬다. 애새끼는 내가 그걸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무섭기는 커녕 아주 좋아서 돌아버리겠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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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빼올 테니까 여기 있어. ”
“ 혼자 택시타고 가면 돼요. ”
“ 어머님한테 너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거짓말쟁이 만들기 싫으면 얌전히 타고 가라. ”
“ ...... ”

말은 저렇게 해도 주차된 차를 끌고 나오면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을 안다. 안 그런 척 하면서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애새끼. 자꾸 입맛이 다신다. 내가 돌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축축한 눈망울을 한 사내새끼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씹어 먹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 여기 우리 집 아닌데요. ”
“ 알아, 내려. ”
“ 뭐 먹을 기분 아니에요. ”
“ 속 다친 거 아니니까 고기 먹을 수 있지? ”

지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고깃집에 끌고 온 터라 혹시 안 먹는다고 시위하면 어쩌지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알맞게 익는 족족 박지훈의 앞 접시로 고기를 가져다 줬는데 아주 잘 집어먹는다. 애새끼가 드셔보라는 말도 안하고.. 꼰대 같은 생각이 좀 들 뻔 했으나 오물오물 꼼꼼하게도 씹어 삼키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싹 가신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아들래미 밥 사 먹이는 아버지라도 된 것 같았다. 아, 그건 아닌가. 보통의 아버지들은 아들이랑 섹스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니까.

알려준 집주소로 착실히 차를 몰았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와 주차를 할 때까지 박지훈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먹인 게 고기가 아니라 꿀이었나. 안전벨트를 풀어내고 곧 내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박지훈은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안내려? 라는 물음을 건네지 않는 것은 사실 박지훈이 내리지 않았으면 해서다. 차 안에 고요와 어둠이 내려앉았다. 말소리가 없는 정적 속에서는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 이를테면 새근새근- 내쉬는 숨소리 같은 것들. 숨소리만으로도 설 것 같으면 진짜 미친놈이겠지. 더 난잡한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다행히도 박지훈이 입을 열었다.

“ 왜 잘해주세요. ”

너무 당연한 질문을 심각한 말투로 묻는다.

“ 담임이 자기 반 학생한테 잘해주는 게, 뭐가 문제지? ”

태연한 목소리를 꾸며내서 말하자 박지훈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 지 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앞니에 눌려 하얗게 질렸던 입술이 전보다 더 붉은 색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하얘지고 또 빨개지는.. 단조로운 변화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한 입에 삼켜버리고 싶다.

“ ....... ”
“ 못 해주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

이미 거슬린 심기 아예 불편해지라는 심통으로 덧붙였다. 숨을 한 번 길게 내 쉰 박지훈은 침을 삼켰다. 올라갔다 내려가는 목울대가 연한 핑크빛이다. 너는 어떻게.. 그것도 꼴리게 생겼지.

“ 선생님은, 진짜.. 개새끼에요. ”

박지훈은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폭탄발언을 던져 놓고 그대로 내리려는 듯 문고리를 잡았다. 그건 안되지. 그 개새끼가 어떤 개새끼인 줄 알고 그냥 가. 문고리를 잡은 손 반대편 손목을 급하게 잡아당겼다. 갑작스럽게 가해진 힘에 놀란 몸뚱이가 그대로 끌려왔다. 의아함, 당혹감, 약간의 짜증, 순간적으로 스치는 두려움..이 점철된 얼굴이 바로 눈앞에 놓였다. 마주친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급하게 감쳐 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윗입술을 살짝 빨았다. 상황 인식이 덜 된 듯 벙쪄 있던 박지훈은 혀가 다시금 입 안을 파고들자 그제야 어깨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반항은 아주 미약하기 그지없어서 찍어 누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입 안의 여린 살을 훑어 내자 온 몸이 잘게 떨렸다. 민감하구나. 꾹 눌린 입술 틈으로 드나드는 공기로는 부족했는지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숨이 차서 어깨를 퉁퉁- 두드리는 행동에 살짝 입술을 떼어냈다. 박지훈은 발갛게 열이 오른 얼굴로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키스가 서투르면 보통 김이 새는데.. 이 애새끼는 버거워 하는 얼굴조차 사람을 꼴리게 한다. 호흡이 제법 안정 됐는지 고른 숨을 내쉬던 박지훈이 지긋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얼굴을 바짝 붙여서 내 아랫입술을 핥아내고 떨어져나간다. 네가 미친거지, 진짜.

“ 또 해요, 이번에는 잘 할 수 있어ㅇ... ”

발칙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손으로 턱을 잡아 당겨 입술을 맞췄다. 끝맺지 못한 음절이 입 안에서 사라진다. 애새끼의 부르튼 입가가 터져 핏물이 비치도록, 그게 침과 함께 입가에 흥건해 질 정도로 거칠게 혀를 박아 넣었다. 으응.. 아.. 하는 앓는 소리가 한 줌 남은 이성조차 하얗게 태워버린다. 돌았다. 돌아버린게 아니고서야 이 순간이, 이 행위가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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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은 입술과 입 주변이 자주 튼다. 그래서 교재 연구실 서랍에 립밤을 종류별로 가져다 두었다. 향은 다르지만 전부 무색으로. 이미 물고 빨고 하느라 발갛게 부어오른 입술에 굳이 다른 색까지 덧입힐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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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피자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애새끼는 퇴근길에 피자집에 차를 세우자 그게 아니라고 했다. 뭐가 아닌데. 가게에서 먹는 피자 말구요, 시켜먹는 피자 먹고 싶어요. 선생님 집에서. 나름 비장하게 설명하는 박지훈의 속내가 너무도 투명해서 피실피실 웃음이 새어나온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배고파요. 빨리 쌤 집에 가서 피자 시켜요. 아니다, 지금 시키고 갈까? 그럴 바에 지금 여기서 포장해서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충고는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주 나 오늘 섹스하고 싶어서 죽겠어요. 라는 말이 얼굴에 쓰여 있는 애가 뭐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평소라면 절대 채택하지 않았을 비효율적인 선택지를 주워들고 차를 몰았다. 흘긋 조수석을 훔쳐보자 들 뜬 마음이 볼록 솟아오른 광대로 다 티가 났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게 그대로 드러나는 직통의 알고리즘이 짜증날 정도로 사랑스럽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죄책감은 당장 눈앞의 사랑스러움에 속수무책으로 자취를 감춘다. 더는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감보다 되돌리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더 강해진다. 애초에 견고하지 않았던 벽이 가장자리부터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조각들은 손에 닿기도 전에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도착하자마자 피자를 시켜 먹고 입술도 몇 번 빨았더니 금세 창밖이 어두워졌다. 아직 옅은 빛이 남은 것 같은데 9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해가 길어진 것이 실감이 난다. 자리에서 일어나 차키를 챙기자 박지훈의 시선이 그대로 딸려왔다.

“ 오늘 자고 갈거에요, 엄마 아빠 출장가셨어요. ”
“ 까불지 말고, 잠은 집 가서 자. ”
“ 왜 나랑은 안자요? ”

맹랑하게도 물어온다.

“ 뭐? ”
“ 왜 나랑은 섹스 안하냐구요. 다른 여자랑은 하면서. ”

속이 좁은 애새끼는 아직도 지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 날의 앙금이 남아 있나보다. 지훈아 넌 그 여자를 질투할 필요가 없어, 그날 니 생각 하면서 존나 박았거든. 차마 내뱉지 못할 말을 집어 삼키고 가만히 섰다. 섹스가 뭔 지는 알고 저러는 걸까. 키스 할 때 숨 쉬는 법도 모르던 애가 섹스를 해봤을 리가 없다. 아는 거라고는 기껏해야 조잡한 살색 영상과 또래 아이들 사이의 음담패설이 전부일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욕이 넘치는 모습에 살짝 골이 난다. 내가 생각해도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 끝까지 가면 되돌릴 수 없어, 지훈아. ”

골이 나서 내뱉는, 마음에도 없는 말에

“ ... 되돌아 갈 바에는 무너질래요. 아주 산산조각 날 만큼. ”

온 진심을 다해 대답하는 너를, 나는 어떡하면 좋을까.

 몸보다 마음이 먼저 동해서 마주 선 박지훈을 끌어안았다. 뒤통수를 쓸어내리며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방금 전까지도 물고 빠느라 살짝 부어오른 입술이 알맞게 벌어진다. 벌써 수십 번이나 맞댔는데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것처럼 갈급하게 굴게 되는..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동해서 그런 거였다. 단지 섹스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옆에 두고 싶어서, 옆에 두고 오래 오래 보고, 만지고, 숨결 하나하나를 느끼고 싶어서 자꾸만 갈증이 나는 거였다. 이 애는 알까. 아니 몰라도 상관없었다.

너는 나를 무너지게 해라.
나는 기꺼이 네게 무너져 내릴테니.

나의 해롭고 예쁜 지훈아.




함         락(陷落)   完

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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