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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mk x 영화관 알바생 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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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마 그 자식 (중) 

si         g         (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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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였다. 


"준히님."

"네?"

"혹시 NCT 아세요?"

"아~ 대단한 사람들이요?"

"많이 대단해요? 얼마만큼요?"

"아마 이 드립 모르는 정우님을 뺀 대부분의 젊은층 친구들한테 누땡 아냐고 하면 양 손 위로 올려서 돌릴만큼요?"

"아..."

"암튼 저 퇴근이요. 오늘 마감도 수고해요! 화이팅 마감요정!"


진짜 개오바였다. 반지의 제왕, 아니 이 마크. 아이돌이었다. 어쩐지 나한테 이메일 달라하던 속도와 딕션이 장난 아니더라. 솔직히 김정우 엔시티는 몰랐다. 근데 누땡은 알았다. 그제서야 모든 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새벽에 대부분 영화를 혼자 보러오며 그마저 꼭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나서야 입장하던 사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오던 모습. 영화관 불이 켜지기도 전, 어두울 때 먼저 나가는 행동. 또 반지에 대해서 얘기하자 애인은 아니라고 내뱉던 해명.  

사실 그 날, 첫 눈 반만 나눠달라던 그 새벽에 결국 정우는 뭐 원래 본인 거였으니 돌려달라면 돌려드려야지 하고 연락수단을 마크에게 전해줬었다. 물론 핸드폰 번호 말고. 연락처는 조금 그렇고 이메일도 괜찮다 하셨죠? 이메일 알려드릴게요.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드릴게요. 잠깐 메모장 들어가보시면... 아니, 그 볼펜으로 적어주세요. 네? 볼펜이요? 


네. 볼펜이요.


정우가 쥐고 있던 볼펜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가르키다 이내 볼펜 쥔 모양을 취하더니 자기의 다른 쪽 손의 손바닥이 메모장이라도 된 듯 보이지 않는 볼펜으로 그 위에 슥슥 무언갈 그려내는 모션을 보이는 마크였다. 확실히 외국인이다. 모션이 좀 크다.


어디다 적어드리면 돼요? 적어가실 데 있어요?

여기요.


그리고 사람 당황하게 하는 능력도 컸다. 볼펜을 찾아 위에 버튼을 달칵 눌러 심을 꺼낸 정우는 어디다 제 .com 을 적어드리냐 물어보니 느닷없이 제 오른쪽 손바닥을 들이대는 마크였다. 


종이라면 여기에도 많은데 그냥 거기다 적어드릴까요?

손바닥에 남기고 싶어요. 이상한 사람 아니고 그냥.. 그러고 싶어요. 

아, 알았어요. 

...

근데 알죠.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해 보이는 거.

아 지짜 아니에요. 진짜 솔직히 약간 이상해 보일 순 있는데. 

알았어요 알았어요 손 줘요. 


마크의 오른손바닥을 받은 정우도 자신의 오른손으로 영어를 적어낸다. 제이.. 더블유.. 아, 허공에서 쓰려니까 잘 안 써지네. 아무래도 밑에 아무것도 받치지 않고 글을 쓰려니 너무 삐뚤빼뚤 거렸다. 결국 왼손을 들어 마크의 뒤집어진 손 밑 손등을 살짝 힘주어 겹쳐 받쳤다. 그러자 잘 써내려지는 알파벳. 그리고 겹쳐오는 손에 닿은 온도의 출처는 아마 마크의 시선일 것이다. 


흑심을 품은 건 볼펜이 아닌 마크였음이 분명하다.


흑심의 주인은 살짝 닿은 손바닥에 조금은 놀라다가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떠 시선을 옮겨본다. 그 옆 작게 나온 정우의 새끼손가락 두번째 마디에 갔다가.. 손가락 끝이 약간 분홍색이네. 강아지인가. 귀엽다. 손목 얇은 거봐. 이 손목으로 어떻게 일을 해. 소매 끝으로부터 얇은 선 타고 올라가면 정우 유니폼 카라. 그리고 그 사이 틈을 지나 뒷목에 시선의 거처를 둔다. 엄청.. 하얗네. 말랐던데 그래서 턱선 되게 잘 보인다. 턱도 되게 조그만하네. 한 번 톡 튀어나온 턱 끝 호선 보고 몇센치만 더 올려다 보면 또 통하고 튀어나온 분홍빛 입술이 보인다. 손가락 끝보다는 붉네. 예쁘다. 코도 되게 높구나. 미끄럼틀 같아. 예쁘다. 눈..


달칵. 


그 사이 제 할 일을 다 한 흑심이 다시 한 번 버튼이 눌림과 함께 볼펜 속으로 쏙 들어간다. 

이마크의 흑심은 아직 더 일을 하고 싶었지만 들어가야만 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자, 다 썼어요.

속눈썹.

네?

네? 

속눈썹이요?

아, 아니에요. 고마워요! 메일 보내놓을게요, 꼭 봐요!

네. 이제 지인짜 안녕히 가세요.


아 아까워. 속눈썹까지 볼 수 있었는데. 이메일 주소 만들 때 필수로 50자 이상 쓰게 해야되는 건. 좀 오반가. 마크는 이내 자신의 오른손바닥에 다 써진 .com을 보며 사진을 찰칵 찍는다. 가는 길에 지워지면 어떡해. 두 번은 못 받을 거 같단 말이야. 그러고 제 오른손을 한 번 꾸욱 쥐고 입꼬리 끝에 초승달을 걸어낸다. 마크는 제 자신이 방금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는 걸 아마 모르려나. 아니다. 매사의 감정에 솔직한 이마크는 안다. 제 인생 속 씬들 중 방금 전 볼펜의 움직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미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더 뎌디게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리고 볼펜 탓을 하기엔 손바닥이 아닌 제 마음이 너무 간질거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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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크가 아이돌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뜬금없이 알았다. 알바 근무 투입하기 전 한 달동안 스페셜관으로 대관이 있을 예정이라는 업무 공지를 받았다. 보통 팬들이 돈 모아서 연예인의 이름으로 대관을 많이 하니까 이번에도 연예인 이름으로 대관이 왔나보다 했었던거지. 몇관에서 진행되나 보니 8관과 2관. 상영관 두 개 쓰는구나. 누구지? 


2관 (nct 마크 관)

8관 (nct 마크 관)


마크? 익숙한 이름인데, 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솔직히 대한민국 살아가면서 마크라는 이름을 얼마나 보고 살겠어. 정우는 보자마자 검은색 가죽 반지갑 속 증명사진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영화 시작 전 상영되는 광고가 잘 노출되는 지 확인하러 가는 정우는 고개만 갸웃거리다 이내 너무 앞서간 추측이라며 의문을 거뒀다. 설마, 아무튼 뭐 살아가면서 마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제왕만 있는 것도 아니구.. 교포 친구들이나 해외 거주 친구들 몇 명 더 있겠지. 그 친구들 중에 한 명이 데뷔 했나보다~ 아니면 그 친구들 중에 하나가 내가 아는 제왕이던가. 그치? 아하하.


라던 생각은 


"Enjoy your flight."


딱. 


정우가 확인하러 간 상영관 광고들 중 비행사 광고 속 제왕의 아니 이마크의 핑거스냅과 함께 파괴됐다. 마크의 핑거스냅 소리는 정우에게 앤드게임 타노스의 핑거스냅 소리가 된 격이었다. 너 진짜 뭐예요? 왜 나한테 제왕이었다가 이마크였다가 타노스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스크린 속 춤 추는 이마크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쟤가 나한테.. 연락수단 알려달라고 했었던거구나. 그리고 난 저 사람을 몰랐던 거구나.. 아니, 모를 수도 있지. 버거운 인생 이만큼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대단한데 뭐 연예인 한 명 모를 수도.. 아니 근데 일반인 치고는 너무 잘생기긴 했었잖아. 안 잊혀지는 얼굴이긴 했었잖아. 봐봐, 너 지금도 안 잊고 그 증명사진이랑 모자 벗은 얼굴 자동적으로 떠올리고 있잖아. 


"히이마크으.... 너 진짜 뭐세요..."


진짜 뭐세요.. 뭔데 오늘 새벽에는 영화보러 왜 안 오세요. 또 근무용 메모지에만 볼펜으로 북북. 혼자 잘만 진행되던 새벽이 어느 날에 누군가의 개입으로 NG만 몇번 째 나고 있는지. 레디 액션. 다시 갈게요. 등장하세요. 


그렇게 오늘의 새벽도 바라던 누군가의 등장 없이 몇 번의 슬레이트만 쳐대다 끝났는지 모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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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랑 같은 하루들이었다. 알바도 안 가는 날이었기에 정우는 미뤄왔던 일들을 해야했다. 다른 대학생들과 같이 도서관에 가서 기간 넉넉하게 공부와 과제를 미리 끝내놓기도 하고 또 미처 몰랐던 어떤 과제는 욕하면서 쫓기듯 끝내기도 했다. 영화관에서가 아닌 그냥 하루의 마무리를 매듭지으니 사실상 영화관에서의 마무리 시간과 다름이 없기는 했지만. 자취방에 도착해 잘 채비를 마친 정우는 책상 위 스탠드를 켜내고 가만히 앉아 다이어리를 연다. 오늘 해야 했던 일들의 목록을 하나씩 지워내다 보면 잠에 들 시간에 더 가까워졌다.  


🔔  onyourmarky__@nmail.com 님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메일을 받았다는 알림을 받기 전까지는. 


"온..유어 말키? 말키는 또 뭐야."


해외 피싱메일인 줄 알았다. 액정을 누를까말까 고민하다 mark라는 네글자에 어느새 든 안도감은 뒤이어 의문으로 변화했다. 이걸 뭐라 설명해야하는 마음인지. 곡선과 직선 몇개의 이름에 서운함이 들기도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하고 궁금해지기도 하고.


   제목 : 오늘은 없네요. 

보낸 사람: onyourmarky__@nmail.com

받은 사람: jeusjw021998@nmail.com

다른 사람이 제 표 받았어요. 괜히 미웠어.

  

알람을 눌러 천천히 읽은 세 문장에 저도 모르게 말리는 입술 끝. 큼, 헛기침을 토해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들키면 안 된다는 듯이 표정관리를 한다. 누가 미웠다는 거예요, 내가요? 미움의 주체는 사실 물어보지 않았어도 됐는데 자꾸 이 사람은 내가 약한 새벽에만 찾아와 나를 건든다. 


🔔  onyourmarky__@nmail.com 님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제목 : .

보낸 사람: onyourmarky__@nmail.com

받은 사람: jeusjw021998@nmail.com

 아니 정우씨가 왜 미워요!!! 그냥 오늘 새벽에 있던 사람이요.. 또 언제 새벽에 있어요??

 

제가 밉냐는 말에 급했는지 온점의 제목이 도착했다. 급한 온점의 원인이 자기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시리 또 뒷목이 간지러워지는 정우였다. 표면적 간지러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뒷목을 한 번 슥 긁어낸 정우는 답장을 적어 보낸다. 토독 톡. 똑똑.


  으음. 비밀이에요~ 사실 오늘 마크님 아이돌인 거 알아서 놀랐거든요. 그래서 펜팔 친구 된 것도 지금 조금 어색하거든요. 실제로 또 보면 제가 더 어색할 거 같아요. 

  🔔  어색한 것도 궁금해요. 언제 보여줘요?

  ㅋㅋㅋㅋㅋ 뭐야 이상해 

  🔔 안 이상한데?? 저 진짜 지금 솔직히 진지해요오...


밤과 새벽 그 간극에서 두드려지는 소리는 핸드폰의 액정인지 누군가의 마음인지. 속에서부터 압축 돼서 참아오는 듯한 기분좋은 답답함에 어느 감정 하나 나가지 못하게 정우는 괜히 입술을 꾹 다문다. 다문 입술의 종착지는 폭 들어간 보조개로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오는 미소는 정우마저 참아내지 못했다. 


  궁금한 거 있어요. 물어봐도 돼요? 

  안 된다하면 내가 더 궁금할 거 같으니까 제발 물어봐줄래요.

  ㅋㅋㅋㅋㅋ 아 알았어요 진짜 이상햌ㅋ  영화 매일 늦게 들어오잖아요. 그리고 또 일찍 나가고. 그러면 영화 내용에 몰입이 되긴해요? 


핑퐁이 되던 메일은 잠깐의 끊김이 있었고 정우는 괜한 걸 질문했나 스스로 곱씹던 중이었다. 근데 자기가 제발 물어봐달라고 했는데. 그냥 앙 무는 오복이 사진이나 보낼 걸 그랬나. 아, 이건 좀 에바고.


🔔  onyourmarky__@nmail.com 님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제목 : 안 물어봐줄까봐 걱정했어요 오늘 이마크 잠 잘 자겠다

보낸 사람: onyourmarky__@nmail.com

받은 사람: jeusjw021998@nmail.com

으으음.. 솔직히 처음엔 잘 안 됐는데 이게 또 사람이 적응이 되다보니까.. 이젠 오히려 엔딩을 잘 못 봐요. 무조건 처음과 끝을 다 봐야지 직성이 풀리는 약간 그런 성격이었는데 직업이 또 이렇게 되다보니까 같은 공간 안에 사람들의 눈이 더 부담스러워 질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의 처음과 끝을 포기하고 안 보는 게 더 익숙해진 거 같아요. 좀.. 그래가주고 어두울 때 들어갔다가 어두울 때 나오게 되는. 뱀파이어 같나 ㅋㅋㅋㅋ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될 지 몰랐었다. 얼추 엔딩을 못 보는 건 맞췄는데 그 이유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였을 줄은 몰랐다. 내가 아이돌이면 그치, 진짜 부담스럽지~ 모자 푹 눌러쓰고 왔는데두 알아본다니까 막? 이렇게 대답이라도 시원하게 해줬을텐데. 아이돌의 이마크와 시급생 김정우의 갭차이는 현저히도 존재했다. 아.. 그럴 수 있죠? 피곤하겠네요. 아, 이건 좀 아닌 거 같고. 스포 당하면 괜찮지 않나요? 아 이건 무슨 미친발언이야. 아냐아냐. 새벽에 맡겨. 


   제목 : 그럼

보낸 사람: jeusjw021998@nmail.com

받은 사람: onyourmarky__@nmail.com

그럼 시작이랑 엔딩 궁금한 작품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요. 저는 영화관 알바해서 시급상 관마다 영화 시작과 끝을 같이 해야되거든요.
시작하는 영화 잘 시작하는 지 앞에 부분들 봐줘야하구 그 영화 끝날 때는 사람들 나가는 거 퇴장문 열어줘야 되니까 영화 끝나기 전에 미리 들어가 있다가 엔딩 장면까지 다 봐야 하구.. 그래서 앤드게임도 다 스포 당했잖아요 ㅜ 완전 실엉.. 이번 스파이더맨도 다 스포 당했어요

아무튼 물어봐요. 아는 건 알려줄게요.

마크씨는 중간을 알고 있고 나는 처음과 끝을 아니까.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 메일을 성공적으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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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질거림의 줄을 애태우던 새벽을 보낸 정우는 그 이후로 생각보다 더 마크를 생각하게 됐다. 며칠정도를 서로의 .com 주소로 안부와 시덥지 않은 문장들을 보내고 받았다. 김정우는 카카오톡의 알람은 꺼놔도 포털사이트의 메일 알람은 꼭 켜 놓는 사람이 됐고 그 사이 정우의 탁상 달력은 11월에서 12월의 페이지로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메일은 끊겼다.

아무래도 아이돌이란 직업을 가지다 보니 연말의 마크는 너무나도 바빴다. 지방 공연도 많았고 메일은 주고 받지 못했지만 그 후로 인터넷에 찾아보면 당일치기로 해외 공연이나 촬영도 다녀오는 듯 싶었다. 그렇게 갭차이는 더욱 느껴졌다. 분명 앞에 있었는데 인터넷에 있다. 나만 빼고 다 알거라던 같이 일하는 근무자 말이 맞았다. 인터넷 창에 이름 두 글자만 적어 검색키 눌러도 오늘 뭐했고 어제 뭐했고 엊그제 뭐했는지. 내일 뭐할 거고 내일모레는 뭘 하며 일주일 뒤 한 달뒤엔 뭐할 건지가 다 주르륵 나왔다. 심지어는 내가 직접 앞에서 봤는데 그보다 더 선명하게 웃고 있는 마크의 고화질 사진들도 엄청 많았다. 

하지만 정우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길게 잡을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 자기 인생을 계속 헤엄쳐야 했기에. 그렇게 정우도 마크를 조금은 뒤에 둔 채 연말의 김정우의 삶을 나름 열심히 보냈다. 맞아, 뭐.. 길게 본 사이도 아니고 스치듯이 보고 얘기라고 칠 것도 몇 마디 나누고 잃어버린 거 찾아준거고. 아는 것도 메일 주소가 단데. 그게 다잖아. 연락처도 없는 사인데 뭘. 


그래도 가끔은


   제목 : 바빠요? 

보낸 사람: jeusjw021998@nmail.com

받은 사람: onyourmarky__@nmail.com

영화 좋아할 거 같은 거 개봉했는데.. 요즘 많이 바쁜거 같아요. 그래도 덕분에 새벽에 한 번은 사람 없는 상영관 나와서 퇴장문도 안 열어도 돼요. 짱 좋아요. 


.
.

진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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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지 않나. 모든 게 뭐같고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나를 위해 이렇게 안 될 수가 있나? 하는 되는 거 하나 없는 날. 굿이라도 한 판 해야 될 거 같은 날 말이다. 아, 갑자기 마감기간 앞당긴 교수님 덕분에 미친 듯이 쫓기 듯 과제 제출하다 지각 할 뻔 했을 때 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어제 갑자기 누구 한 명이 아프다면서 다음 날 근무 대타를 정우가 한다고 했을 때 부터였나. 시험기간 전 미리 정리를 다 해놔야만 알바를 병행하면서 남들과 같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정우는 갑자기 변경 된 여러가지 일들에 최근 무리를 하더니 몸에서부터 골이 났다. 온 몸에 감기 기운이 핑 돌았고 힘은 쭉 빠졌다. 그렇지만 일은 해야 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조금은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된 것들 중 하나였다. 아픈 건 나지만 나를 살려야 하는 것도 내 스스로임을. 

식은 땀 틈틈히 닦아가며 그 날 하루 조금 잘 안 풀리려나 하고 흘러가는 듯 싶었다. 애 뛰어다는데 안 말리는 부모님을 보며 애 콜라 엎을 거 같은데 하고 지켜봤더니 진짜 와장창 콜라를 쏟기 전에는. 그 찐득한 걸 닦는데 팝콘 맛이 왜이러냐며 다 먹어 놓고 환불해달라던 진상이 오기 전까지는. 자기들이 표 잘못 예매해놓고 영화 시간 한참 지나 와서 다른 영화 들어가게 해달라고 땡깡부리는 젊은 꼰대 오기 전까진. 자기가 분실물 잃어버려놓고 그것도 왜 못 찾냐며 지랄해대던 사람 오기 전까지는... 진짜.. 나는 그냥 평소대로 잘 하루 마무리 하려고 했다. 마지막 상영관 퇴장문 열어주고 나가는 고객님 배웅해주던 정우는.


"영화 진짜 드릅게 재미없네. 이런 것도 영화라고 표 팔아요? 아휴.."


한 마디 톡 하고 나가는 미친 새끼 하나 때문에 무너질 뻔 했다. 그럼 정우, 평소대로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입술 한 번 꾹 깨물고 감정을 안으로 우겨넣어 참는다. 사람 다 나간 상영관 안 사람들이 앉았던 좌석 하나하나 청소하고 분실물 놓고 갔나 보고 마신 음료 컵 안 가지고 나가는 거 하나 씩 챙겨서 버릴 준비도 하고. 그런데도 억울하고 짜증나고 오늘 진짜 나 죽으라고 만든 날 같기도 하고. 왜 이렇게. 얘는 또 왜 쓰레기도 안 버리고 나가아.. 진짜 짜증나게에... 

접혀진 영화 좌석의 시트 위로 쓰레기 하나가 얹어져있었다. 진짜 매너 없다. 잘 보니 연노랑색 접착식 메모지.


'고개 들어서 입구쪽 봐줘요'


이게 뭐지. 톡 떼어내서 천천히 글씨를 읊은 정우는 착한 건지 아니면 반항할 힘이 없는 건지 고갤 들어 쪽지의 말대로 상영관 입구 부근을 쳐다봤다. 그리고 보이는 


"안녕."


이마크. 


"진짜 개짜증나.. 진짜 사람이 왜그렇게 매너가 없어요? 왜, 왜 영화보고 쓰레기를 여기다 버리고 가. 누가아.. 누가요흐... 이거 허으.. 이거 그러면 다, 내가 또 치워야, 흐.. 되잖, 되잖아요.. 흐으..  "


그리고 끝내 이마크의 나타남은 억지로 꾸욱 우겨넣은 김정우의 감정을 끌어내다 못해 터뜨렸다. 이마크는 김정우가 약한 새벽에도 찾아와 김정우를 꺼낸다. 


-


"다 울었어요?"

"네. 민망하니까 말하지 말아줄래요."


아학, 알겠어요. 근데 열심히 울던데. 하면서 웃어대는 이마크다. 이마크를 살짝 째려보던 김정우였지만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놀리려는 게 아닌 걱정 담은 눈빛임을 알아 대답 대신 킁 하고 코 한 번을 더 먹는다. 이마크는 우는 저를 보며 놀라다가도 급하게 다가와 아무런 단어 하나 얹지 않고 그저 안아줬다. 제가 꼬옥 쥐고 있던 쓰레기도 다 바닥에 두고서는 그냥 안아줬다. 등 부터 찬찬히 토닥토닥. 그리고 어깨도 토닥. 한 번씩 울음에 숨이 깊어질 때면 제 뒷머리칼 사이로 손을 넣어 머리카락 갯수를 하나하나 셀 것 마냥 다정을 담아 가득 쓰다듬어줬다. 왜 이 사람은 이렇게도 다정해서 나를 울게 만드는지. 보자마자 모든 걸 말하고 싶게 하는지. 문장의 내뱉음 전에 왜 감정이 앞서게 하는지. 그냥 정우도 이 모든 걸 담은 손가락으로 저를 안은 이마크의 팔 바깥 부분의 셔츠만 꾸욱 쥐어냈다. 

그러다가도 킁. 이라며 고개를 들은 정우는 퇴근시간이라 정시퇴근카드 찍어야 돼요.. 기다려요. 가지마요.

라면서 씩씩하게 다시 쓰레기도 주워서 버리고 제 할 일을 하러 갔지만. 그리고 영화관 앞에서 마크는 정말 정우를 기다렸다. 롱패딩과 모자에 가둬진 마크. 분명 아까 저기에 안겨서 엄청 운 거 같은데 괜히 울고 나니 머쓱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네?"

"퇴장문 안 열어도 돼서 좋았어요? 진짜로?"

"..네?"

"저 없는 동안에 사람 없는 상영관 많이 나왔다면서요. 그래서 퇴장문 안 열어도 돼서 짱! 좋다던데."

"누가..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너가요."


말도 안 된다. 분명 메일 발송 취소 누른 거 같은데. 허겁지겁 자기 핸드폰을 찾아 보낸 메일함으로 들어가 보니 해당 메일은 있었다. 수신확인을 눌러보니.. 어어.. 어 뭐야!!!


✉ 
onyourmarky__@nmail.com
 바빠요? 
12/18 04:29 (읽음)


미쳤다. 발송 취소 창에서 확인 칸을 안 누른 게 분명했다. 갑자기 얼굴이 확 붉어졌다. 바깥으로 나가는 입김도 더 진해진 기분이었다. 정우는 제 핸드폰 읽음 글자와 저를 보며 얄밉게도 생긋 웃어보이는 이마크를 번갈아 봤다. 그리곤 이내 아악!! 소리를 내지르며 열심히 마크를 뒤에 두고 달렸다. 쪽팔림의 달리기는 뒤에서 들려오는 이마크의 와하학 웃음소리와 정비례 되어 웃음이 커질수록 속도도 빨라졌다. 


"아 그만 뛰어요! 다리 길어서 그른가 되게 빨러. 아, 안 놀릴게요. 일로 와요, 진짜."

"네. 놀리지 말아줘요."


저러다 진짜 나만 두고 가겠는데? 마크는 뒤이어 모자도 벗어던진 채 열심히 김정우를 향해 뛰었다. 쪽팔림의 원동력은 도무지 이마크가 이길 수 없었고 결국 안 놀린다는 조건을 내건 하에 정우는 달리기를 멈췄다. 둘 사이에는 뜀박질의 증거인 듯 숨이 찬 소리들과 아까보다 더 뿌얘진 입김들이 나타나다 이내 겨울 새벽 중에 연해져 흩어졌다. 


"근데 왜 메일 봐놓고 답 안 해요? 펜팔 친구 먼저 하자던 거 그 쪽 아녔나? 내가 이제 그 쪽 연예인인 거 알아서 그래요?"

"진짜 좋냐고."

"엥? 그러면 저 또 뛰어요??"

"아니, 아니 가지말고. 좀 들어봐요. 진짜 좋았냐고 직접 물어보려고 왔어요."

"..."

"그니까. 답 메일 쓰려다가 직접 보고 싶어서. 아니 듣고 싶어서요.

진짜.. 진짜 저 없어서 좋았어요?"


예상치 못한 말에 정우는 버엉 한 상태로 이마크만 쳐다본다. 저 문장을 들었음에도 새벽 까만 하늘이 마크 흑발이랑 되게 잘 어울리는구나 이런 생각 들면.. 나 얘한테 꽂힌 거 맞겠지. 이마크도 다를 게 없었다. 제가 없어 좋았냐고 물어보면서도 추운 겨울 탓에 귀끝, 코끝, 볼, 입술 버얼게진 김정우를 보며 진짜 또 예쁘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눈 감고 앞에 있는 사람 그려내라면 그릴 수 있을 만큼의 농도로 서로를 쳐다본 둘은 정우의 대답으로 더 짙어졌다. 


"...좋았겠어요?"

"Wait, what??"

"와, 진짜 캐나다네. 인터넷에 국적 캐나다라 했을 때 뻥인 줄 알았는데."


너무 놀라 눈이 더 커진 마크를 보자 괜히 더 덤덤해진 정우는 저 갈래요. 집가서 진짜 퇴근 맞이할래요. 라면서 제 자취방을 향해 걸어갔고 이마크는 허허 웃으면서 아 한 번만 더 말해주면 안 돼요? 응? 그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자취방을 향하는 골목 가로등이 괜히 오늘 따라 더 환한 거 같았고 또 괘앤히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더 그림자 진 곳으로 걷는 정우였다. 그렇다고 숨겨질 하루도 아닌데.

사실 마크가 저를 데려다 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정우는 제 자취방 앞에 도착하자 마크에게 이만 가보라며 말을 건넸다. 


"진짜 가봐요. 저 여기 살고 메일 할게요."

"메일.. 그래요."

"아, 맞다. 첫 눈. 반 줄게요. 온 김에 가져가요. 위에 두 컷 줄까요, 아니면 밑에 본인 같이 찍힌 두 컷 줄까요?"


잊고 있었다. 손바닥 위 메일 주소의 시작은 제가 준 첫 눈의 반을 얻기 위해서였다는 걸. 마크는 갑자기 뭐라도 깨달은 듯 멍해졌다. 첫 눈의 반을 얻기 위해 시작 된 거잖아. 그럼 첫 눈의 반을 받으면 이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도 모르고 김정우는 티켓도 가져갈 거예요? 티켓 근데 시간이 조금 지나서 영수증 글씨 좀 날라갔어요. 그래도 가져갈거면 줄게요. 

이마크는 다급했다. 새로운 전개를 생각해내야만 했다. 12월 중순을 넘어 후반부로 날짜가 넘어가는 지금, 한국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저 첫 눈 사진 핸드폰에도 있어서 괜찮아요."

"뭐야. 그럼 왜 달라했대. 알았어요."

"그 대신.. 한국 12월에 눈 왔어요?"

"..음.. 아뇨? 그러고 생각해보니까 비만 왔네."




"그럼 나랑 12월 첫 눈 오는 날 내 하루의 반만 되어줘요."

"..."

"Half."




-




씨네마 그 자식 (중) fin









별로 안 추천 드리지만 워크맨 영화관 알바 보고 오시면 정우가 무슨 일 하는 지 대충 아실 거 같아요! 제 포타 보다가 장성규 생각 나실까봐 근데 안 추천드리고싶은 ...ㅜ 


11월 마무리 씨.그 랑 잘 되셨으면.. 좋겠네용.. 안뇽..

12월에 만나여.. 


건강 유의하시고 감기 조심 맘마 잘 챙기시구..... 

포타 문체 어색한거나 오타는 수시로 확인하면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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