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듣기엔 너무 남사스러운데.”

“해가 중천에 떴거든요.”

“인마, 내가 지금 눈 떴으면 이른 새벽이고 그런 거야.”

 

입에 물고 있는 연초 탓인지, 윤기 형의 발음이 뭉그러졌다. 담배를 끊을 거라며 호언장담할 때는 언제고. 윤기 형의 모니터 앞 재떨이는 이미 담배꽁초로 만석이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그다음에는 길게 숨을 내뱉고. 희뿌연 연기를 내뱉는 윤기 형의 표정은 꽤나 만족스럽다. 이래서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나 보다. 그러게 금연은 무슨 금연. 그동안 형이 사 모은 사탕과 금연 패치가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담배를 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건강은 게임 오버인데, 그럼 행복이라도 챙겨야지. 한동안 소확행이라는 말이 꽤 오래 유행했는데, 윤기 형은 그런 것도 모르나 보다.

 

“저 진지하다니까요.”

 

그나저나 내 나름대로 진지하게 얘기 중이었는데, 윤기 형의 말 한마디로 맥이 끊겨 버렸다. 김태형이 나가기 무섭게 후다닥 뛰어온 건데. 한 명은 담배나 뻑뻑 피우고 있고, 또 한 명은 이미 흥미가 떨어진 표정이다.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남준이 형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기 바빴다. 자기 집은 외풍 때문에 춥다나 뭐라나. 윤기 형 집은 난방이 잘 되는 덕에 바닥이 뜨끈한 편이었다. 남의 집 바닥을 아랫목 삼아 몸 지질 생각 말고 전기장판을 사는 게 빠를 텐데. 좌우, 어느 쪽 하나 더 나을 거 없이 답답한 형들이다.

 

“맞아. 이른 아침부터 남의 집 쳐들어올 정도면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거로 생각해. 없어도 있어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정국아?”

 

윤기 형이 또 한 번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쯤 되면 담배 연기로 도넛 만들지 않는 거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주 약간의 진지함은 남아 있는 거니까 말이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하긴요. 나는 옷 멀끔하게 잘 입고 있는데, 보면 모르겠냐고 했죠.”

“김태형이 오해해서 미안하대?”

“아뇨. 덮쳐서 미안하대요.”

“…뭐?”

 

드러누워 있던 남준이 형은 내 말을 듣고 놀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게다가 윤기 형은 매캐한 담배 연기가 목구멍에서 걸리기라도 한 건지, 무어라 말도 못 했다. 눈꼬리에 눈물 한 방울을 매단 채, 연신 캑캑거렸다. 하긴 당사자인 나도 어이없는데, 형들이라고 오죽할까. 김태형이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챙겨준 건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돌아갔다면, 나 또한 윤기 형 집으로 달려오지는 않았을 거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자, 김태형은 제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거짓말하지 말라며 소리를 지른다거나, 달려들지 않아서 감사할 지경이었다. 집에 CCTV도 없는데, 오해한다고 한들 두 눈 가까이 들이밀 증거 같은 게 없으니까 말이다. 한참을 쭈뼛거리던 김태형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한 글자씩 힘겹게 내뱉었다.

 

'내가 덮... 쳐서 미안해요. 이렇게까지 취하지 않는 편인데. 아무래도 어제 술이 과했나 봅니다.'

 

충격이었다.

첫 번째로는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나간 김태형의 대답이 충격이었다. 대체 어떻게 생각을 해야, 본인이 덮친 거로 방향을 틀 수 있는 거지. 나체에 가까운 상태로 깨어났고, 그 옆에 내가 있다는 거에 큰 충격을 받아서 사고 회로가 마비된 건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다음으로는 덤덤한 저 얼굴이 충격이었다. 8년 전만 해도, 여자만 만나던 제 인생에서 내가 첫 남자라고 하던 김태형이었다. 그랬던 김태형이 남자인 나와 몸을 섞었다는 데도 덤덤한 얼굴이다. 나 또한 김태형이 내 인생 첫 남자였고, 그 후로 이 남자 저 남자 만났다고는 하지만... 형도 그럴 줄은 몰랐다. 물론, 너만은 순결을 지켰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쓰레기 같은 사고방식은 아니었다. 다 커버린 어린 왕자 같았다. 침착하고 차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김태형은 허둥지둥 대지도 않았다. 김태형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기껏해야 직장 동료와의 원나잇이 가져다주는 난감한 정도가 전부였다.

오히려 넋이 나간 건 나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오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거지. 갑자기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숙제를 짊어지게 된 기분이었다. 김태형은 입을 떡 벌리고 서 있는 나를 쓱 보더니, 잘도 스쳐 갔다. 집안 여기저기에 흩어진 제 옷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하나둘씩 챙겨 입었다. 마지막으로 구겨진 자켓을 입고 나서야,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비밀로 해줬으면 해요. 알려지면 곤란한 건 정국 씨도 마찬가지니까요.'

'..….'

'월요일에 회사에서 뵐게요.'

 

그 말을 끝으로 김태형은 홀랑 나가버렸다. 아주 홀랑.

 

“한 대 줘?”

 

얘기가 끝나고 입을 꾹 다물자, 윤기 형이 담배를 내밀며 물었다. 전자 담배만 피우는 걸 알면서, 윤기 형은 꼭 이따금 연초를 내밀었다. 이쯤 되면 내가 뭘 피는지 기억하려 노력조차 안 하는 게 분명했다. 와중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남준이 형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다.

 

“그래서 해명은 안 했다는 거네?”

“그럴 정신이 없었다니까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머리 아파요.”

 

관자놀이 부근이 또 한 번 지끈거렸다.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대자, 남준이 형은 갑갑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형은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 라는 말 뒤에는 온갖 종류의 욕이 숨어있었다. 어쨌든 내가 잘못한 건 맞는 거라 맞받아칠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준이 형의 시선을 피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윤기 형은 담배를 다 태운 모양이었다. 재떨이 위로 수북한 담배꽁초 위에 불씨를 지져 끈 형은 늘 그랬던 것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태형이 덮친 게 맞는 척하면 되겠네.”

“네?”

“너 어떻게든 김태형이랑 얘기해보고 싶잖아.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면 되는 건데, 뭐가 문제야.”

“형 그래도 그건...”

“안 내켜? 그럼 지금처럼 모르던 사이처럼 지내면 되겠네.”

 

윤기 형의 계획은 어이없을 만큼 단순하고 깔끔함, 그 자체였다. 형은 내게 닥친 이 상황이 무슨 게임 심 시리즈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일단, 김태형한테 덮친 게 맞으니 날 책임지라는 식으로 말하란다. 김태형 성격에 난 모르겠다는 식으로 지나치지 못할 게 뻔하고, 그러면 두세 번 만나면서 좀 가까워지면 괜찮지 않겠냐고. 그리고 나중에 사랑하는 마음이든 정이든 뭐든 생기면 그때 실토하란다. 사실은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거짓말 좀 했다고.

이게 무슨 쌍팔년도에나 먹히는 대사냐고. 그 당시에는 상남자라고 먹혔겠지만, 요즘 시대에 저런 대사 쳤다가는 쌍놈의 새끼라고 돌팔매질 당하기 딱 좋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괜찮은데?”

 

이 미친 계획에 얼빠져 있는데, 남준이 형은 오히려 괜찮은 것 같다며 윤기 형을 두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셋 중에 정상은 오직 나뿐인 게 분명했다. 대체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두 형은 내심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봤다. 이렇다 할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일단은 형들이 알려준 대로 해볼게요. 식의 대답을 바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미쳤어, 진짜. 하는 수없이 대답 대신, 윤기 형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 대만 주세요.”

 

소리소문없이 김태형이 사라지고 난 후 시작한 담배였다. 그렇지만 연초만큼은 단 한 번도 입에 대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전자 담배로 어쭙잖게 김태형을 흉내 내보는 게 전부였다. 처음 펴 본 연초는 꽤나 독했다. 윤기 형도 윤기 형이지만, 김태형은 이걸 잘도 피던데. 다들 담배 끊는 놈들만큼 독한 놈이 없다던데, 내가 봤을 땐 이렇게나 독한 걸 몇 년째 피는 저 둘이 더 독해 보였다.

주말 내내 한숨을 푹푹 쉬어가며 고민했지만 마땅한 해답이 나오질 않았다. 윤기 형이 하라는 대로 했다가, 추후에 벌어질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한 번 사라졌던 김태형인지라, 어느 날 또 사라지지 않을까 초조했다. 그래도 그때는 군대와 담배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회인이 된 이상, 내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김태형이 도망칠 상황을 제공해서도 안 되었다.

 

“정국 씨, 거래처에서 저번에 요청한 자료 팩스 넣었다고 전화 왔거든요. 확인하고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나서, 저한테 확인시켜주세요. 그쪽에서 기입한 환율이랑 우리 쪽 선적일 기준 환율 잘 체크하고요.”

“..….”

“전정국 씨.”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김태형은 제 아랫입술을 꽉 깨물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부터 계셨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그랬다간 신입 주제에 업무 시간에 일 안 하고 딴짓만 했다는 걸 인증 시키는 꼴이었다. 하는 수없이 변명할 여지도 없는 입을 꾹 다물었다. 김태형은 제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내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뒤로 빼고 있던 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얘기 좀 합시다.”

“…넵.”

“퇴근하고 나서요.”

“…...”

“근데 그거 양이 꽤 많거든요. 빨리 안 하면 정국 씨 혼자 남아서 야근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

“그럼 얘기도 못 할 테고요.”

 

어떻게 저런 소리를 미소 한번 없이, 무표정으로 잘도 내뱉는다.

김태형은 8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날 어르고 달랬다. 이쯤 되면 내가 그때 그 김태형이다, 너랑 불같은 사랑을 했던 그 사람이다! 하고 광고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그걸 당사자가 몰라서 문제였다. 다른 꿍꿍이를 갖고 힌트를 흘려주면서 아닌 척하는 건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었다. 그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결과,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건 아니었다. 물론, 모르는 사이였던 척하며 피하는 것 자체는 맞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형 이거 나한테 했던 말이잖아요 하고 지적해 줄 수는 없었다. 괜한 소리로 인해 집착이 심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나 혼자 속으로 김태형 귀여워 죽겠다며, 킥킥거리는 게 전부였다.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비장한 표정으로 김태형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살짝 느슨해진 넥타이를 고쳐 매며 말했다.

 

“퇴근 전까지 꼭 마쳐 놓겠습니다.”

 

급한 마음 때문인지 시간은 꽤 빠르게 흘러갔다. 사실 마음보다는, 이건 어디까지나 김태형이 넘겨준 서류 때문이 컸다. 사실 금방 끝낼 줄 알았다. 그러면 6시를 기다리며 따뜻한 믹스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미리 화장실도 다녀오고. 간 김에 옷맵시와 머리를 단정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6시 땡 치면 김태형과 함께 분위기 좋은 곳으로 향할 속셈이었다. 애초에 김태형에게 건네받은 서류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었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상대 거래처였다. 그리 많지 않은 양이라고 만만하게 봤다가, 예상 못 한 변수 때문에 제대로 한 방 먹은 꼴이 되었다. 어쩜 그렇게 멍청이들로만 골라 뽑은 건지, 원. 계산기가 있어도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인 게 분명했다. 계산기 두드릴 줄 모르는 회계팀이라니. 10건에 하나씩 오류가 있어도 문제인데, 여긴 어떻게 된 게 건마다 자잘한 오류가 있었다. 어떤 건 환율이 틀렸고, 어떤 건 원 단위 이하를 올림 했고 등등. 아주 가지각색의 방법으로도 틀려놨다.

자잘한 게 하도 많은 탓에, 처음에는 이메일로 주고받아 보기도 했다. 근데 외국인도 아니면서 한국어를 어찌나 못하던지. 상세하게 써놓았건만, 그래도 말귀를 도통 못 알아듣는 탓에 결국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어찌나 많이 걸고 받았는지, 이러다 전화기가 고장 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고개를 살짝 돌려 김태형을 흘끔 봤지만, 형은 이런 내 상황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국 씨, 남은 건 내일 하는 게 어때요? 어차피 이제 남은 건 다 자잘한 것뿐이니까...”

 

지긋지긋한 거래 내역 맞추기에서 먼저 항복을 외친 건 거래처 곽 차장님이었다. 앞으로 퇴근까지 딱 30분 남아 있었다. 곽 차장님 말대로 자잘한 전신료 같은 것만 남아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나도 그만하고 싶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싶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싶으니까.

 

“…곽 차장님.”

“정국 씨, 이거 혹시 급한 건이면 내가 내일 아침 9시 되자마자 바로 전화할게요. 제가 오늘은 진짜 급한 일이 있거든요.”

“많이 급한 일이에요?”

“그럼요. 별로 안 급한 일이면 내가 이렇게까지 부탁 안 하죠.”

 

곽 차장님은 정말로 꽤나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인지,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생생하게 들렸다. 문제는 김태형이었다. 분명 내게 다 했냐고 물어 올 테니까. 그럼 거기에 대고 곽 차장님 때문에 자잘한 몇 건은 내일 하기로 했다고 해야 하고. 그랬다간 김태형이 날 변명이나 하는 놈으로 볼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일로 미룬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차장님, 저도 되게 급한 일이 있거든요.”

“정말요? 정국 씨도 마음이 급하겠네요. 그럼 내일 아침에…”

“네, 많이 급합니다. 그래서 지금 빨리 끝내고 가야 하거든요. 곽 차장님이 얼마나 급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8년 동안 기다려온…”

 

뒷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누군가 수화기를 낚아채 갔다.

 

“네, 안녕하세요. 곽 차장님. 저희 직원이 열정이 넘쳐서 무례를 범한 거 같아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요. 신입 때가 다 그렇잖아요? 급한 건 아니니까 내일 낮에 천천히 처리해주세요. 네, 들어가세요.”

 

꼭 오늘 끝내야만 말을 섞어줄 것처럼 했으면서. 인제 와서 김태형은 가자미눈으로 날 흘겨봤다. 이제, 약간을 시도 때도 없이 섞던 김태형 대신 거래처와 물 흐르듯 유창하게 대화하고 있는 김태형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내 생각보다 못 보고 살았던 그 8년이라는 시간이 꽤 크긴 했나 보다.

통화가 끊긴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태형은 제 앞머리를 깊은 한숨과 함께 쓸어넘겼다. 억울하긴 하다만, 하는 수없이 일단 입은 다물었다. 괜한 말로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김태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표정만 살피고 있는 날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정국 씨, 일하라고 시켰더니 거래처를 끊어 버리려고 하면 어떡해요.”

“..….”

 

오늘 안에 끝내라고 하길래, 그거 지키겠답시고 한 건데. 꽤나 억울했지만 어쨌든 김태형이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는 중인지라 굳이 내 억울함을 어필하진 않았다. 제자리로 돌아간 김태형은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많은 파일철과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제 책상이 깨끗해졌다 싶을 정도가 되고 나서야, 날 쳐다봤다. 김태형은 여태껏 제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와 기꺼이 눈을 맞추더니, 동그란 코끝을 긁적이며 말했다.

 

“하던 거 정리하고 퇴근 준비해요. 맥주 괜찮죠?”

 

괜찮고말고. 지독한 냄새로 악명 높은 취두부라도, 김태형이 먹자고 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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