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나 옹성우

-아!.. 네.. 선배님

-밥 안먹었음 같이 먹자. 어디야?

-집인데.. 

-그럼 나와. 너 학교 앞에서 자취한다며? 정문으로 와. 30분 후에. 괜찮지?

-30분이요? 아.. 네..


성우의 손길을피해 자리를 박차고 나간 후 다니엘은 한참을 뛰었다. 무엇인가에 도망치듯. 그렇게 한참을 달려 숨이 차서 더이상 다리를 움직이기 힘들때가 되어서야 멈추었다. 헉헉.. 거침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렸을 때,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과를 하려고해도 연락처를 모른다는 사실도.


알아내려면, 알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옹성우의 연락처는. 우진과 한조를 이룬 하성운 선배가 같은 학번 동기라고했던가. 그를 통해서라면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테지만, 전화해서 무슨 설명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문제였다. 아니.. 설명을 한 후 성우의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두려웠다. 지금까지 자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다음 날 오후 늦게 성우에게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성우는 정문 앞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해가 짧아 이미 하늘은 어두워졌는데, 그 어두운 하늘에 뭐가 그리 새로운 것이 있는지 성우는 연신 옅은 미소를 띄며 보고 있는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꽤 급하게 걸어오는 다니엘은 잠시 멈춰 그런 성우를 바라보았다. 아.. 저 사람 참 아름답다... 다니엘의 가슴 속에 성우의 모습이 그렇게 각인된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누군가를 보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미쳐 깨닫기도 전에.


“저.. 선배님..”

“어! 왔어?”


성우는 정말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니엘을 반겨주었다. 어색하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다니엘에게 형이라고, 편안하게 말하라며 다니엘의 어깨를 툭치며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어제..죄송했어요. 좀 놀래서..”

“너 눈가에 점...이지? 난 뭐 묻은 줄 알고. 떼주려고 하는데 뛰어나가서 좀 놀랬다.”

“아.. 점..제가 좀 트라우마가 있어서.. 얼굴 만지려고 하면.. ”

“미안미안. 다음부턴 조심할게.”


성우는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하곤 대화를 이끌어갔다. 낯가림이 심한 편인 다니엘은 성우와 대화를 하며 조금씩 벽을 허물어갔다. 간단한 신상조사부터 학교 수업에 관한 충고, 그리고 발표 안무에 대한 간단한 생각들까지.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소품 사용할 수 있으면 전.. 의자 썼으면 좋겠는데요..”

“오. 그거 괜찮네. 1개 2개?”

“흠.. 2개가 좋지 않을까요. 각자 따로. 그러다 마지막에 의자 하나 빼는 걸로.”

“일단 킵. 의자 동선까지 생각해서 일단 안무 생각해보자.”

“근데.. 형.. 왜 저랑 같은 조하려고 했어요?”

“.. 니가 맘에 들었으니까. 그냥 한눈에 맘에 들었어.”


잠깐 멈칫한 것 외엔 거침없는 답변이었다. 서울아들은 다들 이렇게 뻔뻔하게 말잘하나.. 혼자 중얼거리니 나 서울 아닌데, 인천인데? 하고 싱긋 웃으며 다니엘의 말을 정정해준다. 성우가 찡긋거리며 웃는 순간 다니엘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성우는 다니엘의 얼굴색이 하얀색에서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하얀색이 되는 그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곤 또 다니엘 귀엽네~하고 웃어주니 또 얼굴색은 변한다. 


“성우야”


다니엘 얼굴 감상을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성우를 불렀다. 다니엘과 성우의 시선이 향한 곳은 훤칠한 미남과 순둥순둥하게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오~ 황민현. 밥 먹으러 왔어?”

“어. 같이 앉자. 우리 밥도 아직 안나왔어. 다니엘 괜찮지?”

“아.. 네..”


안그래도 언제 한번 소개시켜주려했다며 성우는 반색을 표했다. 실음과에 다니고 있고, 성우의 편곡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다며 웃으며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다니엘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번 신입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재환은 쭈뼛거리며 인사를 하더니 곧 그 분위기에 녹아들어 대화에 참여했다. 금방 다니엘과 절친이라도 된 듯 말을 해서 당황스러우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아! 너 부산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냐?”

“어. 다니엘이랑 같은 고등학교 다닌 거 같은데?”


이 대답에 가장 놀란 것은 다니엘이었다. 다니엘은 자퇴를 결정한 이후 자신의 고등학교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때의 기억은.. 좌절뿐인 순간이었다. 왕따를 내내 당하던 중학교 시절보다 오히려 더더욱 좌절을 느꼈던. 높은 곳에서 떨어질때가 더 아픈 법이니까.


“오!~ 다니엘 너 민현이 기억 안나?”

“네. 전 한학년 다니다가 캐나다로 가서..그리고 검정고시 봐서 들어왔어요. 고등학교 친구는 우진이 밖에 없기도 하고.”

“우진이가 내 이종사촌이야.”

“에에!? 진짜 세상좁네”


아.. 우진에게 들은 적은 있다. 사촌형이 같은 고등학교에 있다고. 그게 이 사람이었나.. 같은 대학이라고는 듣지 못했던 거 같은데. 있다가 한 번 전화해봐야겠네..


“그땐 다른 이름이었는데, 그래서 혹시나 하고 빤히 봤네. 기분 나빴으면 미안.”

“뭐야~! 다니엘~완전 비밀 많아. 그 전에 이름은 뭐였어?”

“..강의건이요..”

“의건이..의건이.. 그 이름도 좋은데?”

“아..부산에서는 제대로 발음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맨날 짝눈으로 불렸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다니엘은 자신의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다니엘~ 이쁜 입술 망가진다.”


하며 성우는 손을 뻗어 다니엘의 입술을 살짝 쓰다듬었다. 어어.. 하며 순간 고개를 확 뒤로 빼며 일어서려는 것을 성우가 잡았다. 


“남의 얼굴에 함부로 손대는거 예의없는 짓이야. 옹성우.”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옹성우를 타박하는 민현의 목소리가 들렸고, 성우는 미안, 하고 짧은 사과를 하며 다니엘과 시선을 맞추려고 했다. 다니엘은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과 이마에 맺힌 땀들로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저 눈을, 저 시선을 피해야 하나 짧은 고민이 들었지만, 만약 피한다면 지금 당장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때마침 식사가 나왔고, 애써 다니엘은 별 일 아니란 듯 제대로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4명은 이것도 인연이라며 주말에 다시 모여 술이나 마시자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헤어졌다. 재환을 제외하곤 3명은 자취를 했는데, 성우와 민현은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어서 같이 집으로 향했다.


“재환이란 애 싹싹해서 괜찮은 거 같아. 다니엘이랑 친해지면 좋겠다.”

“뭐야.. 지 후배한테 편곡노예 소개시켜주려고 오늘 밥값도 계산한거야?”

“야, 서로 상부상조지. 그게 무슨 노예야.”


황민현은 낮은 한숨을 쉬며, 그래.. 니 멋대로 생각해라. 그래도 다니엘에게 친구는 있었으면 좋을테니까..하며 보호자같은 말투로 말했다.


“성우야. 강의건.. 아니 다니엘... 조심스럽게 대해줘.”

“내가 언제 사람 막대했냐?”

“다니엘도 그렇지만, 너도 다칠 수가 있어.”

“뭐?”

“너도, 다칠 수가 있다고. 저 강아지같이 순둥순둥한 애가 늑대로 변하는 건 한 순간이니까.”


성우는 도대체 민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다니엘의 얼굴에 무언가 있다는 걸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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