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임 결혼 한다면서? 반년 만난 남친이랑. 아니 무슨 그런 말을 저녁 맛있게 먹었냐는 듯이 묻냐구요. 툭 던지는 대리님의 말에 화들짝 놀란 내가 나도 모르게 봐야할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나를 보고 있던 정재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걸까 생각에 잠겨있던 내게 김주임?하고 재촉하듯 부르는 대리님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아, 어디서 들으셨어요?"



내 물음에 대리님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턱짓으로 정재현을 가리켰다. 뭐지? 설마 그가 제 입으로 사내 연애의 비밀을 오픈한 건가 싶던 때에 곧이어 들려오는 대리님의 뒷말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왜, 정 팀장 아는 사람이라던데. 정 팀장이 다리 놔줬다면서."



아, 그런 식으로 둘러댔겠다? 정재현을 가는 눈을 뜨며 바라보자 그는 미소로 화답했다. 비밀 연애는 지키면서도, 내게 곧 결혼할 사람이 있다는 걸 못 박은 게 딱 정재현의 해결 방식스러웠다. 그러나 정재현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이럴수록 김정우는 더 여유롭게 굴 것이었다. 위기에 몰릴 수록 침착해지는 김정우에게 상대가 저로 인해 불안해한다는 것을 눈치챘으니.



"허어... 팀장니임, 괜찮은 사람 있으면 저도 소개시켜주세용... 그럼 혹시 정팀장님은 연애 생각 없으세요?"



때를 놓치지 않은 홍 사원이 정재현에게 다가가 콧소리를 내며 은근슬쩍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정재현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한번도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해준, 사람. 정재현은 그런 홍 사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혜원씨 남자친구 없어요? 당연히 있는 줄 알았는데."

"어머 팀장님두 참, 저 헤어진 지 한 달도 넘었어요. 그런데에 팀장님은 왜 연애 안 하세용? 너무 잘나셔서 그런가."

"제가 잘났나요?"

"어머, 아시면서 왜 이러세요."



그러면서 정재현의 팔을 잡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웃는 꼴에 기분이 나빠졌다. 은근하게, 아니 대놓고 끼를 부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건지 정재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제 이마를 가리켰다. 미간 피라고? 재밌냐? 마우스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손 위로 따뜻한 손가락이 살짝 닿자 화들짝 놀라 손에서 힘을 뺐다. 내 손에 손을 얹은 주인공은 내 옆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주임님, 결혼 할 사람을 겨우, 반년 만나서 어떻게 알아요."



난 삼 년 만나도 모르겠던데. 김정우의 작은 중얼거림은 나만 들을 수 있었다. 이 즈슥이. 어휴, 그래도 짝은 하늘에서 이미 정해져 있을 거에요. 대리님은 그의 중얼거림은 못 들으셨는지 박수를 쳐가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나도 와이프랑 2년 연애 했는데도 결혼하니까 또 다르더라고? 그러는 김 사원도 연애 하는 사람 있어?"

"네."

"어쩐지. 김 사원 성격 좋고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대리님이 김정우의 칭찬을 늘어놓았고 김정우는 고개를 저으며 볼이 붉어졌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칭찬에 익숙했기 때문에 지금 부끄러운 척을 한다는 것을. 어쩐지 손을 내젓는 김정우의 오랜 반지가 자리하던 네 번째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김정우는 급하게 주먹을 쥐는 것만 같았다. 뭐지? 새로운 반지라도 끼고 있던건지, 그렇다면 따로 만나는 사람이 생긴 건가. 아무려면 어떤가 이제 김정우랑 나랑은 쫑 났는데 싶으면서도 어쩐지 연애를 한다는 김정우의 말이 신경 쓰였다.



"그러고 보니 정우씨랑 김 주임이랑 같은 학교 출신이던데. 둘이 아는 사이야?"



읏, 네? 과장님은 언제 그런 걸 아셨나. 하마터면 혀를 씹을 뻔했다. 김정우는 팔을 뒤로 하고는 머리를 베고 허리를 젖히더니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어쩐지 그의 대답이 걱정이 되었지만 김정우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당연히 알았죠. 유명했어요, 여주씨."



아니 주임님. 하고는 얼른 말을 덧붙인 김정우가 미소를 지었다. 유명하긴, 자기가 더 유명했으면서. 











내가

왜 

다시


(兩者擇一)

Phrase














김정우는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었다. 우연히 신입생 환영회 때 옆자리에 앉게 된 김정우는 잔뜩 굳어있던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술 잘 마셔? 그... 왜? 내 대답에 김정우는 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나는 소주 두 잔이 주량 최대거든. 취하면 곤란한데... 그의 흘리듯 한 말이 내게 알 수 없는 보호본능을 일으켰다. 김정우는 하얀 얼굴로 소주잔을 만지작거렸고 나는 그의 손목을 턱하고 잡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응? 뭘? 김정우는 멍하니 날 바라보았지만 잔뜩 결의의 찬 내 마음까지는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김정우의 술잔을 지키는 기사가 된 것 마냥 나는 그의 앞을 막아서며 그를 당황시켰으니까. 이름이 정우라고? 귀엽네, 술 받아. 하는 선배를 막아섰다. 선배님, 정우는 술을 마실 수 없어요. 응? 왜? 정우는요 몸이, 몸이 연약하거든요. 크흡. 한순간에 몸이 연약하신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이 되어버린 김정우는 내 말에 물을 뿜으며 정말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죽을듯이 기침을 해 모두의 안쓰러운 눈빛을 얻어냈다. 사실 사레에 들린 것이었지만 김정우는 테이블 밑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진짜로 기사와 사랑에 빠진 공주님이라도 되듯.

그리고 그 날 이후 나는 연약한 182의 성인 남성 김정우를 지키는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김정우는 알 수 없는 보호 본능을 가지고 저를 보호하는 나를 보며 늘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진짜 귀엽다. 귀엽긴, 네가 더 귀엽거든? 아 진짜 너무 웃겨. 누가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데. 웃기는 애야 진짜로. 어디 가서 웃긴단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김정우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댔다. 그렇게 시작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뭐로 유명했어, 우리 김주임이?"

"당연히, 예쁜 거로 유명했죠."



그리고 나는 김정우의 말에 텀블러에 담긴 물을 마시다 콜록댔다. 자연스레 내 등을 토닥이는 김정우의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이고 책상 밑에서 연신 기침을 해댔다. 김정우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마치 몇년 전 그 때의 상황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역할만 바뀌었을 뿐, 한 사람은 당황시키고 한 사람은 사레 들렸던 그 상황. 어이없이 당한 어택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김정우는 어퍼컷을 날렸다.



"그래서 주변에 주임님 탐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김정우 사원님."



그만하라는 의미로 그를 불렀다. 정우는 사실이잖아요. 하며 예쁘게 미소지었다. 탐 내긴 개뿔, 그런 틈 조차 주지 않았던 게 누구 때문인데. 김정우와 내 시선이 짙어질 때였다.



"김 주임이 워낙 예쁘고 사람이 괜찮으니까 그랬나보죠? 그래도 곧 결혼 하니까 더 이상 건드는 사람은 없겠죠."

"사람 일 모르는 거죠." 



아주 좋게 돌려 말했을 정재현의 미간이 좁혀지는 것이 느껴졌다. 김정우는 신경도 안 쓰는 듯 제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마저 말을 했다.



"전 반년 전만 해도 제가 이렇게 이 회사에 들어올 줄 몰랐거든요."



김정우는 해맑게 웃었다. 그 해맑음 뒤엔 쓰디쓴 고통은 김정우의 옆에 있던 나만 느낄 수 있던 감정이었다. 김정우는 타고 나기를 재능이 많았지만 늘 운이 따라주지 않아 순탄치 않았다. 100을 가졌다면 150 아니 170은 노력해야 겨우 80으로 나타나는 김정우였다. 그랬기에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 정우씨 근데 어제 술 잘 마시더라? 대리님이 물어오자 정재현의 옆에 있던 홍 사원도 궁금했는지 정재현의 어깨를 쿡 찌르며 헤헤 웃었다.



"그러니까요. 왜 이렇게 둘이 달렸어요?"

"그러게, 정팀장 술 약한데 달리더라."



시선이 곱게 나가질 않을 것 같아 키보드에 시선을 고정했다. 김정우는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팀장님과 친해지려고 차 안에서 내기를 좀 했거든요. 거짓말. 제가 술이 약해서 졌구요. 정재현은 어쩐지 순순히 제 패배를 인정했지만 김정우에게 훅을 날렸다.



"덕분에 여주 씨가 저 때문에 고생을 좀 했죠."



마지막 선택은 결국 나야. 하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언제까지 이 기 싸움을 이어가야 할까? 나는 키보드를 신경질적으로 누르며 억지로 웃었다. 하하. 두 분이 많이 취하셔서... 부장님 카드는 제가 출근 하자마자 책상 위에 올려뒀습니다. 확인 했어요. 고생했네, 김 주임이. 가까스로 말을 돌리고는 달라진 주제들에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아, 그리고 주임님도 결혼 직전에 아니다 싶으면 확 뒤집어엎어요."



소곤대는 듯한 제스처를 했지만 누구 들으라는 듯 크게 말하는 김정우가 귀여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정재현은 얼굴을 잔뜩 굳히고는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정재현과 김정우, 두 사람은 정말 다른 결의 사람이었다. 정재현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굴곡이란 없는 평탄한 길을 걸었고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져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론 그가 여태껏 갖지 못했던 건 없었다. 내가 그의 것이 된 이후에는 그에맞는 사랑과 대우를 받았기에, 나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정재현은 지금 몹시 불안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렵게 얻은 것을 다시 돌려놔야 할까봐.



"결혼 직전에 파혼 하는 커플도 많대요. 제 생각엔 결혼 하기 전에 헤어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요. 그쵸, 팀장님?"



김정우의 말에 모두가 맞장구를 쳤지만 정재현은 말 없이 그를 뚫어지라 바라볼 뿐이었다. 저마다 말을 얹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선택들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한참을 말 없이 서 있던 정재현은 제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만들 하고 회의 곧 시작할 거에요."

"커피는, 늘 마시던 걸로."



모두가 부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나도 모르게 챙기려던 지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김정우의 팔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김정우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커피, 사러 가야 하는데."

"아 커피요?"



까다로운 이 사무실의 취향을 외우는 데도 오래 걸렸는데.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어디 잘 들어보시던지. 아이스 라테 디카페인으로 휘핑크림 빼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샷 추가, 자바 칩 프라푸치노, 돌체 콜드브루,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자몽허니 블랙티 클래식 시럽 빼고 자몽 시럽으로, 그리고 하나는 김 사원 먹고 싶은 걸로 사 오시면 돼요. 마치 랩 같은 말을 빠른 속도로 적고 있는 김정우를 바라보다 홱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것들을 잘 사 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김정우는 내 팔을 덥석 잡았다.



"다시 한번 말해줘요?"

"그게 아니라."



그럼 왜요? 나는 잊고 있었다.



"같이 가요, 주임님. "



상대는 김정우라는 걸. 김정우는 내가 죽어도 거절 못하는 필살기를 사용했다. 예쁘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 잠깐 사이에 틀리지 않고 적힌 메뉴들을 빼곡히 적어둔 김정우였다.



"내가 왜요?"

"실수 할 수도 있잖아요."

"안 하실 것 같은데요? 그리고 가시려면 홍 사원이랑 같이 가요."

"제 사수는 주임님이잖아요."



한 마디를 안 지는 탓에 나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래, 같이 가줄게. 애초에 김정우 사원이 아니라 다른 신입사원이었다면 나는 처음부터 같이 갔을 것이다. 처음에 일 배울 때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생각으로 진짜 잘해줄 생각이었는데. 하필 김정우여서 잘해주기도, 나쁘게 대해주기도 어려웠다. 결국 그와 같이 사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러자마자 울리는 핸드폰을 흘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같이 가?



그렇다고 혼자 보낼 순 없잖아. 누가 보낸 지 확인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문자가 떠 있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자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던 김정우는 뭐가 그리 좋은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 꼭 사내 연애 하는 것 같다."

"뭔 소리야. 입조심 해."

"왜? 내가 꿈 꾸던 건데. 너랑 같은 회사, 같은 사무실, 그것도 옆자리."



넌 나랑 그러고 싶니? 속도 없이 웃는 김정우를 무시하고 먼저 문이 열리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주문을 하는 김정우 옆에서 삐딱하게 주문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옆으로 비켜 서서 핸드폰을 꺼냈다. 혼자 잘하면서 괜히 그러지 너. 정재현에게 답장을 하려는 순간 주문을 마친 김정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네 거는 따뜻한 걸로 바꿨어. 차가운 거 마시면 배 아파하면서 왜 자꾸 찬 거 먹어? 아휴, 정우 늙어."



김정우의 말에 나는 핸드폰을 움켜쥐고는 그를 쏘아보았다. 도대체 왜 친절하게 구는 건지, 구 남친이면 구 남친답게 굴어. 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회사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야."

"왜? 나 세심하지. 좀 설렜어? 그럼 다시 나한테 올래?"

"좀 닥쳐."



이 정도로 화를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김정우는 그런데도 웃음을 터뜨리며 내 팔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여주야아 근데 난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너 화난 것도 예쁘고 나 신경 쓰는 것도 예쁘고. 그냥 다 예쁘고 좋아."

"미친 놈. 너 사무실 가서 그러지 좀 마."

"나 여기서만 그러는데?"



김정우는 검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콕하고 찍으며 웃었다. 예전과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은 김정우의 말과 행동에 나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진짜 장난하나? 여자친구도 있다면서, 한번 바람 피운 내가 정말 우스운건가 싶었다. 그래서 결국 참다 참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야. 너 대체 뭔 생각으로 이래? 복수할 거면 복수만 해. 사귀는 여자도 있다며 처신 잘 해."

"뭐? 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문한 커피가 쏟아져 나오자 캐리어 하나를 들고 카페를 나섰다. 뒤에서 김정우의 발소리가 들렸지만 막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혼자 올라탔다. 닫힘을 빠르게 탁탁 누르자 저 멀리 김정우가 뛰어오는데 문이 스르르 닫혔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 잘 말해놓고 왜 화가 난 얼굴이야? 나는 내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는지, 도착한 엘리베이터 앞에는 팔짱을 낀 정재현이 서 있었다. 세상에 시련이 끊이질 않네. 이미 잔뜩 기분이 상한 난 정재현을 상대 할 자신이 없어 그대로 지나쳤고 그런 내 뒤로 정재현은 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주야. 그 말에 내 걸음이 멈춰섰다. 정재현은 그대로 내 뒤에 대고 말을 이었다.



"오늘 일어났을 때 네가 없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넌 모르지."

"왜. 내가 김정우랑 있었을까봐?"



이를 악 물고 뒤를 돌자 정재현은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쓸어넘겼다. 넌 내가 그렇게 불안하니? 굳어있는 정재현에게 한발자국 다가가 그의 셔츠 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왜, 내가 김정우랑 자기라도 했을까봐?"

"그런 말이 아니잖아."



정재현이 달래듯 말했지만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뿌예졌다. 정재현은 당황해서는 제 옷을 잡은 내 손 위를 감쌌다.



"...오늘 끝나고 얘기 하자. 일단 진정해 여주야."

"넌 날 그렇게 못 믿니?"



참다못해 뱉은 말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띠링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그의 뒤를 바라보자 한 손에는 커피들이 가득 찬 캐리어를 들고 다른 손에는 케이크 상자를 든 김정우와 눈이 마주쳤다. 여주야. 정재현의 뒤로 보이는 김정우를 바라보다 정재현의 말에 뒤늦게 그에게로 시선이 당겨졌다. 정재현의 숨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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