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에 자극적 요소(납치, 감금, 폭력)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개에 필요한 서술과 묘사 외에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관련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은 감상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용관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대기실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암소공포증으로 패닉이 왔던 헤어 스태프는 쓰러져 있고, 기절해 있다 가까스로 깨어난 메이크업 스태프가 그를 보살피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목하는?”

“팀장님, 목하가, 목하가.”

“진정하고 이야기해 봐. 무슨 일이야?”

“누가…누가 목하를 강제로 데려갔어요. 따라갔어야 했는데 지은 씨는 패닉이 왔고 저는 그 사람한테 공격당하고 쓰러져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가까스로 제정신을 잡은 용관은 하나씩 차근차근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회사에 상황을 알렸다. 주최측에는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크게 놀란 목하가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병원에 가는 바람에 출연이 어려워졌다고 둘러대고, 관객들에게는 개인사정 정도로 알려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은 간단한 병원 치료 후 경찰에 목격 사실을 진술하게 되었다.

무명의 연습생이 아닌, 이미 방송에서 화제가 되었던 인물의 실종 혹은 납치는 언론에서 충분히 좋아할 만한 소재였다. 알엔제이 엔터테인먼트는 경찰 측에 수사 내용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단순 실종이 아닌 납치 정황을 목격한 증언이 있었기에 경찰은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거의 암흑에 가까운 상태에 있었기에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범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다행인 것은 목하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채로 실종되었다는 거였다. 경찰은 체육관 안팎의 CCTV 영상을 확보하고, 휴대폰 위치추적을 실시하기로 했다.

용관이 회사 인트라넷에 있는 목하의 비상시 연락처를 찾아 제 휴대폰에 입력하자 N번째 전성기 강보걸 피디의 이름이 떴다. 경찰서로 와 달라는 전화를 끊은 지 오래되지 않아 곧 그가 나타났다. 용관이 담당 형사에게 그를 안내했다.


“형사님. 이쪽은 강…”

“정기호라고 합니다.”


처음 듣는 낯선 이름에 놀란 용관이 고개를 홱 돌려 기호를 쳐다보았다. 기호가 나중에 설명하겠다고 눈짓을 했다.


“서목하 씨랑은 무슨 관계시죠?”

“제가 서목하 씨 남자친굽니다.”


담담히 대답한 기호가 떨리는 숨을 억지로 꾹 삼켰다.




“..왜 저를 여기로 데려오셨대요?”


봉완이 인자하게 웃으며 딴 소릴 했다.


“목하야. 어떤 것 같냐? 이 집 말이야. 아주 아늑하고 좋아 보이지 않니?”

“글쎄요. 아재 혼자 살기에는 쪼매 큰 거 같기도 하고요.”

“잠깐 내가 혼자 살고는 있다만, 이제 곧 네 사람이 살게 될 곳이니 이 정도 크기는 되어야지.”


이 사람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싶어 목하가 허 하고 헛웃음을 웃었다.


“아재. 아직 제 질문에 대답 안 하셨는데요. 제가 왜 여기 있는지.”



한때 경찰공무원이었던 사람으로서 공권력에 대한 봉완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경찰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받게 되는 다른 이들의 존경어린 시선이 좋았다. 경찰이었을 때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은 경찰의 이름 아래 행해진 정당하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그는 그렇게 믿었다. 아내와 아들들, 그리고 그 가족을 데리고 도망친 놈을 검찰에 고발했을 때도 그 정의로운 공권력이 이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은 처벌을 받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진 가족을 품는 관대한 가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대질조사날 검사가 자신을 부당하게 몰아간다고 느꼈지만 애써 일시적일 거라 믿었다. 어쨌든 내 가족을 내가 찾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니까. 내 잘못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아니지만 명백하게 법을 어긴 건 저쪽이니까. 그리고 가족의 연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것이니까. 검찰로부터 발송된 등기우편을 뜯을 때까지만 해도 설렘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가 신봉했던 공권력은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검찰에서 보내온 것은 처분을 알리는 결과처리통지서 외에 하나의 우편물이 더 있었다.

봉완이 대웅의 차에 말벌을 넣어 상해를 입혔던 사건 관련 조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의 통지서였다. 얼마 후면 참고인으로, 그리고 아마도 곧 피의자로 검찰에 다시 출석해야만 하게 되었다.


자신이 감히 덤빌 수 없는 대상으로 인해 갖게 되는 분노는 굴절되어 약자를 향하곤 한다. 봉완의 분노는 재경과 아들들에게로 향했다. 특히 기호. 그 놈만 아니었으면 절대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기호가 도망쳐서 봉완을 신고했던 그 때부터 모든 일이 꼬였다. 경찰이라는 직장과 번듯한 가족. 그의 자부심이었던 두 가지를 모두 잃은 게 그 때부터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찰에서 온 서류들을 갈기갈기 찢어 식탁 위에 던져버린 봉완은 몇 달 전 이곳으로 찾아왔던 기호를 떠올렸다.

이제 좀 컸다고 겁도 없이 집까지 찾아온 놈은 덩치만 컸지 예전과 하나 다르지 않았다. 변함없이 건방지고 겁이라곤 없었다. 일부러 찾아와 심기를 건드려 놓고선 아주 치밀하고 교활하게 녹취를 했다. 그것도 봉완이 찾아낼 걸 생각해 기계를 두 개나 준비해서.

그 다음을 생각하던 봉완의 표정이 미묘하게 밝아졌다.

그날, 목하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만 했는데 그놈의 눈이 확 도는 게 보였다. 그래도 꼬박꼬박 아버지라 부르며 대접은 해 주던 놈이, 목하를 건드리면 아버지고 뭐고 없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래, 너의 약점은 서목하구나.

약점을 건드려 주마. 그것도 아주 아프게.

내 걸 건드렸으면 너도 똑같이 겪어 봐야지.


봉완은 서목하의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 스케줄을 검색했다. 3일 뒤, 어느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위치를 알아보던 봉완의 눈이 번뜩했다.

한강구 시민체육관. 춘삼도로 발령나기 전 그가 근무했던 지구대의 관할 아래 있는 곳이었다. 크고 작은 행사가 많이 열리는 곳이라 교통 통제나 사고 예방을 위한 지원 인력으로 여러 번 간 적이 있기 때문에 내부 구조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경비 일을 할 때 입는 근무복을 입은 채 사전 답사를 갔을 때, 누군가가 봉완을 불렀다. 이곳에 처음 방문한 듯한 젊은 커플이었다.


“저기요, 아저씨. 여기 매점이 어디 있어요?”

“예? 아… A출입구 쪽으로 나가서 두 층 내려가시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워낙 자주 드나들던 곳이고 지원 근무를 할 때 매점 위치 질문은 하도 많이 받았어서 갑자기 묻는 말에도 기계처럼 대답이 술술 나왔다. 체육관 경비를 담당하는 용역업체의 근무복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다 보니 방문객들이 이 체육관의 경비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뜻밖의 힌트를 얻은 기분에 봉완은 퍽 만족스러웠다.


공연이 열리는 당일, 그는 마찬가지로 경비 근무복을 입은 채 현장에 도착했다. 특별하게 정체를 숨기지 않았음에도 옷차림 때문에 모두가 별 의심없이 자신의 행동을 신경쓰지 않았다. 기계실로 숨어들어 중앙 전원 공급망의 메인 스위치로 연결되는 전선을 찾아 피복을 벗기고 손상시켰다. 의도한 대로 손상된 전선끼리의 충돌과 합선이 반복되면 잠시 후 이곳의 모든 전원이 꺼질 예정이었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정전시 작동하는 비상전력 공급장치는 완전한 정전 후 15분 뒤부터 자동으로 작동한다. 대기실까지의 동선을 고려하면 대강 20분 내외의 시간이 있었다. 봉완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난 뒤 대기실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전원이 꺼지고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봉완은 이 체육관에서 침착을 유지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미리 준비한 플래시를 켜고 대기실 복도의 문을 살펴 목하의 이름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방 안에 남자가 없는 건 꽤나 행운이었다. 여자 셋, 아니, 패닉에 이미 완전히 굳어버린 스태프 하나를 뺀 여자 둘이라면 일도 아니었다. 하나는 밀쳐 넘어뜨린 뒤 목하를 기절시켜 들쳐메고 사람의 이동이 없는 비상통로를 이용해 빠져나갔다.



“지한테 원하시는 게 있으니께 이러신 거 아녀요?”


봉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목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느리게 움직이는 얼굴에 비치는 미소가 지금 이 차가운 공기에 어울리지 않게 인자해서 소름이 끼쳤다.


"내가 노리는 건 그놈이야. 정기호. 넌 미끼고.”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것네요.”


목하가 짐짓 뻔뻔한 얼굴로 받아쳤다. 소파에 앉은 봉완이 자세를 좀 더 편하게 고쳐앉았다.


“내가 보니까, 기호 그놈은 네 일이면 정신을 못 차려. 그놈이 이성을 잃고 나한테 달려드는 순간을 기다리는 거지. 내가 다치기만 해도 내 보험금은 그놈에게 돌아갈 수가 없고, 존속상해죄로 고소도 할 수 있고, 죽이면 평생 아비 죽인 놈 딱지가 붙는 거지. 싹싹 빌면서 돌아오겠다고 한다면 생각해 보겠지만.”


증오와 집착만 남은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관계를,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고 하는 게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보다도 한참 못한 것을. 


"나가 기호한테 그랬어요. 아재는 기억될 자격도 읎다고. 그러니께 기호 그만 괴롭히셔요. 지한테 이런다고 기호가 아저씨 뜻대로 안....."


맵고 날카로운 짝- 소리와 함께 목하의 고개가 홱 돌아가며 눈 앞에서 불이 번쩍였다. 목하가 얼른 다시 고개를 돌려 봉완을 노려보았다. 


"제 아버지 신고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중2병이 오래도 가는구나."

"아재도 이라면 범죄인 거 모르셔요?"

"왜 모르겠니. 내가 경찰인데. 어차피 난 이 건 아니어도 이제 감옥 갈 인간인데, 내 억울함은 풀고 가야지."


정말이지 지독하게 자기연민만 가득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맞은 뺨의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견디며 목하가 봉완을 노려보았다. 봉완이 짐짓 목하를 못 본 척 테이블 앞에 있는 신문을 펼쳐 들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또 손 대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야.”


목하의 양 손목은 소파의 한쪽 다리에 묶여 있었다. 몸을 크게 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뒤로 묶인 손 주변으로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저 그 좁은 반경이라도 최대한 부지런히 움직여 보는 것밖에 없었다.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훑다가 다리를 넣어 본 소파 아래에서 얇은 무언가가 걸리는 게 느껴졌다. 조심스레 꺼내본 그것은 아마도 어떤 통조림의 뚜껑 같았다. 예전에 무인도에서 쓰레기를 주워가며 살 때, 햄 통조림에서 떨어져 나온 뚜껑을 칼 대신으로 썼던 기억이 났다. 이걸로라면 어떻게든 끈을 자를 수 있지 않을까. 



경찰은 목하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했고, 정중동 재개발 2구역의 건물임을 알아냈다. 경찰 인력들이 분주하게 이동하는 것을 본 기호가 담당 형사 최 경위에게 물었다.


“정중동입니까?”

“...예.”


친부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 대답 끝이 침통했다. 기호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이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혹시 주변에 짐작가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기호는 자신과 가족에게 원한을 품은 친부의 소행일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철거가 확정되어 대부분이 이미 이주해 나간지 오래인 정중동 재개발 2구역에 아직까지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면서 목하에게 마수를 뻗칠 사람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었다. CCTV에 찍힌 모습은 영상 화질이 낮아 정확한 식별이 어려웠지만 십오 년 가까이 얼굴을 보고 산 친아들이 모를 수 없었다.


「 엄마는 이제 괜찮아. 나랑 아빠 있으니까 걱정 말고. 」

「 소식 업데이트되는 거 있으면 바로 좀 알려줘. 부탁한다. 」


기호에게 온 건 채호의 메시지였다. 아까 집에서 출발할 때 기호는 사실 채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동행을 부탁할까도 생각했는데, 방금 전에 관련 진술을 위해 경찰이 다녀가면서 소식을 들은 재경이 잠깐 실신했을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어서 차라리 형을 집에 남기고 온 선택이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봉완은 그런 얘길 했다. 경찰은 사람의 급소가 어딘지도 다 배운다고, 나는 일부러 급소를 피해서 때리는 것이니 고마워하라고. 다 너희가 잘 되라고 때리는 사랑의 매니까 감사하게 맞으라고.

그 때도 말도 안 되는 자기 포장 같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런 말조차도 하지 않고 기꺼이 아들의 약한 델 골라 쑤셔대는 인간이 되셨네. 기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 목하의 소식을 듣고는 초조하고 속이 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사건의 내막이 자신의 예상대로라는 생각이 들자 불안함 한편으로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기호가 찾아갔던 그날, 봉완이 목하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마자 속에서 무언가가 확 끓어올랐다. 분명 어떻게든 그게 제 표정에 드러났을 테고, 어릴 때부터 기호보다 늘 한 수 위였던 봉완이 그를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봉완의 작은 움직임에도 극도의 경계 상태를 유지하던 목하가 문득 다가오는 봉완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봉완이 목하의 앞에 서서 잠시 살피더니 긴 사각형 모양으로 약간 튀어나온 오른쪽 주머니를 뒤졌다.

목하가 아까 기호의 연락을 기다리느라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봉완이 휴대폰을 꺼내 지문 인식으로 풀게 되어 있는 잠금화면을 보자 목하의 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주 약간의 신체접촉도 끔찍하게 싫었던 목하가 기를 쓰고 손이 닿지 않으려 몸부림을 쳤다. 손목을 비틀듯 잡아 잠금을 해제한 봉완의 시선이 그 다음 찰나에 들린 소리로 다시 액정을 넘어왔다. 소리의 정체를 확인한 봉완이 비싯 웃었다.


"..요것 봐라?"


통조림 뚜껑이 짤그랑, 하고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정중동 2구역으로 향하던 경찰 승합차 안, 바위처럼 앉아 미동도 없던 기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목하였다.


"형사님, 목하 폰으로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알겠습니다. 재선아. 차 세워. 유정이한테 실종자 휴대폰 발신위치 요청 다시 하고, 이동중인 병력에는 일단 도착 후 대기하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최 경위가 같은 팀의 김 경사에게 후속 조치를 지시했다. 곧 세운 차에서 모두가 뒷좌석에 모여 통화에 집중했다.

최 경위가 노트를 뜯어 무언가를 적더니 기호에게 보여주었다.

「 범인일 수 있으니 너무 자극 x. 최대한 침착하게. 」

메모를 확인한 기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바로 스피커폰 모드로 설정하자 자잘한 잡음 소리가 조용한 차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목하야."

[ 내 아들 기호야. 오랜만이구나. ]

당분간은 들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목소리에 기호가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자식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만 같은 다정한 목소리에 주변에서 듣고 있던 형사들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목하는요? 무사한 거죠?"

[ 이 아버지는 네 목소리가 참 반가운데, 받아주지도 않고 이거 참 섭섭하구나. 그러니까 내가 이럴 수밖에 없지 않니. ]

"..제가 어떻게 하면 목하 보내주실 건데요."

[ 내가 언제 다른 것 바랐니? 돌아오면 된다. 셋이서 다 같이 말이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한테 준 상처도 다 잊고 용서할 테니까 다른 것 아무것도 필요없고 그저 오기만 해. 안 그러면 목하 안전은 나도 보장 못한다. ]

"목하는 이 일이랑 아무 상관 없잖아요. 목하는 보내주시고 이야기하시죠."

[ 이러지 않으면 너희가 내 말을 들어주지도 않....]

[ 기호야, 나여, 목하! ]


봉완의 말을 자르고 들어온 목하의 목소리에 기호가 깜짝 놀라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가까스로 다시 쥔 휴대폰이 마치 목하의 숨인 것처럼, 기호가 두 손으로 휴대폰을 꼭 쥐고 애타게 목하를 불렀다. 


"목하야. 괜찮아? 다친 덴 없어?"

[ 나 괜찮애. 그러니께 위험한 생각 허지 말고.....]


목하의 말이 끝나기 전, 무언가 와장창 깨지고 구르는 소리와 함께 목하의 목소리가 뚝 멎었다. 가슴 속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걸 느끼며 목하를 부르는 기호의 목소리에 물기가 끼었다.


"목하야! 서목하!"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 전화 너머 목소리는 다시금 봉완의 것으로 바뀌었다. 


[ 아무튼 현명하게 판단했으면 좋겠구나. ]


방금 전의 소음과는 무관한 것처럼 너무나도 평온한 목소리와 함께 일방적으로 통화는 끊겼다. 전화를 잡고 있는 기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목하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혹시 다친 건 아닐까. 당장이라도 뛰어들어가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자꾸만 열이 오르는 눈시울을 애써 손으로 눌러 막으면서 최 경위에게 간청했다.


"형사님. 빨리, 빨리 가서 목하 좀 구해 주세요. 제발요."

"경위님. 현 위치 정중동 제2구역 맞다고 합니다. 이동하겠습니다."


본청으로부터 발신 위치를 확인받은 김 경사가 소식을 전하며 시동을 걸었다. 차가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은 봉완이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앞에 있는 물잔에 목하의 휴대폰을 툭 하고 밀어넣자 물이 찰랑대다 흘러넘쳤다. 

분명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했고, 전화를 걸 때도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했는데 이 맹랑하고 겁도 없는 것이 감히 제 말을 멋대로 끊고 하지 말라는 짓을 했다. 바닥으로 던진 꽃병이 산산조각이 나자 그제야 입을 닫았다.  


"네가 자꾸 이러면 아저씨도 어쩔 수가 없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했잖니."


봉완은 겁에 질려 얕은 숨만 몰아쉬는 목하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참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되는데, 꼭 그걸 해서 사람을 화나게 만들어."


일어서는 봉완을 보던 목하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래되었을지언정 절대 지워질 수 없는 기억과 경험은 때론 앞일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주기도 했다.


기호야. 그 때 니 가방에 있던 사진들 보고 니도 나랑 비슷한 시간을 버텼구나 알았어야.

근데, 내가 너의 시간을 인제 와서 겪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잉.

나는 혼자였지만, 니는 어머니랑 형도 지키고 싶었을 텐께. 을매나 도망치고 싶었을까.

나도 아부지 생각이 나서 힘들지만서도, 니 생각하면서 버틸 것이여.

니는 이 지옥을 15년을 견뎠구나. 아직 하루도 채 안 지났지만서도, 지옥은 지옥인 것이제.

이 성에 누구라도 아재의 말을 거역하면 대가를 치르는 곳이구나 싶어.

통조림 뚜껑으로 손목 끈을 자르고 도망치려 한 죄. 조용히 하라는 말을 어긴 죄.

어짜든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틸 것이여. 너무 긴 밤이 되지 않으면 좋겄는데.

기호야. 

보고 싶다. 

여기라 혀도 니랑 있으면 천국이 돼블 것 같은디.





약점 

다음 편에서 계속







불필요한 자극적인 묘사가 들어가지 않도록 수위는 가능한 한 조절하였습니다. 근데 분량 조절은 실패네요; 조금 자르고 나머지는 3편에 넣을까 몇 시간을 고민하다 그냥 전부 올리기로 했습니다.

경찰의 수사 절차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으니 너그럽게 넘어가주세요 😅

어제 2편을 쓰면서 목하본 팬콘서트(라 쓰고 서목하 콘서트라 읽는다) 직캠을 보는데 객석에 있는 봉완본을 보며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 😂 목하 공연에 온 봉완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마침 이런 모습이라니

어둡고 좀 보기 힘든 내용일 수 있기도 하고 제가 이런 분위기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사실 반응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의외였어요.

다음 편도 열심히 써서 가져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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