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재생







   9시 정각이 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임무복 그러니까 쉽게 제복이라고 하자. 한쪽에서는 남색 제복을 입은 한국 센터 소속 센티넬들이, 또 다른 반대편에서는 흰 제복을 입은 미국 센터 소속 센티넬들이 모습을 드러냄. 정갈하게 각으로 잰 듯 걸어오는 미 센티넬들과는 달리...


“고작 훈련하는건데 뭔 임무복을 입으래.”
“그러면서 제일 먼저 입고 나왔던 게 누구더라..?”


투덜거리며 괜히 어깨에 붙은 먼지를 떼는 이해찬 옆으로 한 손으로 턱 만지작 거리며 꼽 주는 나재민. 그리고 이해찬의 살벌한 눈빛에 난 아무것뚜 못 봤어요 못 본 척하며 뒤에 있던 준희 옆으로 다가가지. 그렇다, 이쪽은 상당히 자유분방한 편ㅋ..

드림애덜이 아무래도 제일 개쎄다보니까 선두로 나섰는데 127들도 미 센터에서 제일 쎄니까! 당연히 선두에 있었음. 준희는 드림애들 틈 사이로 얼핏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에 자꾸만 발걸음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백 스탭을 하고 있지.



한미 연합 훈련. 이 유대관계를 이어온지는 어언 10년이 넘었음. 그만큼 이제는 어느덧 전통이 되어버린게지. 아직까지도 성별 나이 장소 불문 나타나는 센티넬들의 발현을 막고 반정부에 대항하고 더 큰 일을 행하기 위함. 사실 이건 전부 껍데기 일뿐이고 내막은 따로 있었음. 옛적부터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뿐이라고, 한국과 미국 미국과 한국. 알게 모르게 은근히 두 나라는 겉으로는 단단하지만 서도 금방 물러 터질 것만 같은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임.


“I won.”



한국 미국 둘 다 어쨋든 간에 동맹이지만 언제 어느 때나 강대국의 전쟁으로 발발할 수 있었음. 미 센터장은 127 전체 인원뿐만 아니라 전례와 달리 자국의 센티넬들을 추가로 보낸 이유. 



“I win.”



귀한 인력인 S급 가이드 시준희가 별안간 한국으로 가버렸을때, 한국이 반 정부군을 몰살했다는 전언을 들었을 때, 센터 내에서 알아주는 센티넬인 김도영이 법을 어겼을 때 미 센터장은 어쩌면 초조해졌었음.



“I will win.”



우리(USA)는 언제나 그들(KOR)의 위에 있어야만 하는데. 

미 소속 대표 김도영의 선언을 끝으로 우렁찬 박수소리와 함께 연합훈련이 시작된다.









[機密][기밀]  연합 훈련 보고서
2022 . xx. xx - 2022. xx. xx 총 7일


KOR 소속 센티넬 62명 참가

비고 | USA 소속 멀티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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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소속 센티넬 49명 참가
비고 | Team 127 전원 참석







    제 1 훈련장 안 엄숙하다 못해 개미 새끼 조차 지나갈 수 없었음. 숨 막히는 정적 속 준희가 저 반대편에서 귀에 무전을 차고 있던 127 힐끔 거리다가 이태용과 딱 눈이 마주쳐버림. 이태용 너무 반갑고 그래서 그냥 해맑게 웃으면서 손 방방 흔드는데 이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손 흔들려던 준희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외면. 이태용은 그런 준희 모습에 상처 씨게 받을.. 뻔.. 했지만 옆에 있는 김도영이 무전이나 제대로 차라면서 타박함. 우리 준희 보러 온 게 아니라 훈련하는 거람서 따끔하게 지적까지.


“너도 빨리 차야지 뭐해.”
“저요..?”
“응. 나 안 나가는데.”



박지성이 아직 병상에 누워있고, 남은 드림이들이랑 준희까지 합쳐서 총 일곱인데 127팀은 여섯이라 한 명이 빠져야 하는 상황. 당연히 준희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내가 빠지는 거겠지 하고 그나마 다행이다 하고 왔는데 지금 자신에게 무전 내미는 종천러에 읭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지. 자꾸만 묻는 준희 손에 턱 하고 종천러 자신은 안 나가기로 했다면서 무전기까지 친히 쥐어준다. (여기서 무전은 귀에 차는 무전임. 손으로 들고 쏼라쏼라 말하는 옛날 핸드폰 같은 무전이 아님)

아니.. 진짜 내가 나간다고 나 고작 B급인데? 누가봐도 망했어요 이해가 가지 않아요 표정 지으며 초점 없는 눈으로 귀에 무전 채우는 준희 가만히 바라보던 이제노가 다가와서 엉터리로 낀 무전 다시 제대로 귀에 꽂아줌.


“훈련하는 것 뿐이야.”


애써 준희 다독다독. 준희는 이제노 말에 눈에 초점 돌아오고 그래 이 기회 아니면 언제 S급.. 센티넬들이랑 싸워보겠냐 하면서 수긍하지.


“봤어? 아니 저 자식이..!”
“좀 참아. 그냥 무전 채워준 것뿐인데 뭘.”
“그러는 형은 주먹이나 풀지?”


이제노와 시준희 모습 보면서 이태용이 허! 참! 남발하면서 옆에 있던 문태일 향해 따지니 문태일 침착하고도 차분한 얼굴로 대꾸한다. 야 참아 참아 뭐 별거라고~ 하지만 손은 거짓말을 못했다고.



“...”


그런 127들 사이로 모습을 보인 낯선 센티넬. 긴장한 티가 팍팍 나는데도 그 누구 하나 말 거는 이는 없었음. 이 센티넬은 페로키네시스(Ferrokinesis)라고, 철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인데 리커버리인 김정우 대신 투입되는 센티넬 되시겠다. 물론 127들이 직접 요청이나 데려온 것이 아닌 정부가 그저 멋대로 끼워 넣은 것.



“잘 부탁해요.”



아무도 말 안거는 와중에 김도영이 그 센티넬 앞에 손을 내민다. 한국말하는 김도영 보고 화들짝 놀라서 손을 맞잡음. 그때, 그 식당, 아니 한국인? 눈을 힐긋거리며 훑어보니 미국 소속임에도 대부분의 멤버들이 한국인인 듯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손을 훅 빼는 김도영. 이 상황에서 전말 아는 김정우만 팔짱 낀 채 의자에 기대 보고 있고 다른 127들 쟤가 왜 저럴까~훔 싶음.



“아 아무튼, 난 시준희 걔 S급 아닌 거 같아.”



“준, 아니 저 여자 분만 상대해줘요.”



입버릇처럼 준희 이름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아낸다. 하필 보내도 이런 애를 보내고 난리야, 김도영 속으로 씹으면서도 사적인 감정이 혹 훈련에 방해가 될까 애써 억누른 채 굳은 뒷목을 품.




“정확히 10분 후에 시작하겠습니다. 훈련 상세 내용은 화면을 봐주세요.”


천장 구석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안내음이 들리자 준희의 심장이 주체를 못 하고 뛰어댐. 긴장 안 하는 능력은 없냐 진짜.. 그러면서 훈련 시간, 승리 조건, 룰 등 이 적힌 화면을 바라봄. 훈련 시간은 총 30분. 승리 조건은 상대의 기지 안 숨어있는 종료 버튼을 누르면 가상공간이 없어지며 승리. 규칙은 뭐 악의를 품고 능력 사용 불가, 아무리 가이드와 리커버리가 있지만 심각한 상해 금지 등 뭐 이런 거 주르르 나열되어 있는데 한 자 한 자 읽는 준희 와는 달리 드림이들은 몸 풀거나 예를 들어 이제노 이마크 황인준 아니면 싸우거나ㅋ.. (예를 들어 이해찬 나재민)



“그러고 보니까 이렇게 전부 오는 건 또 처음이네.”
“그러게? 어쩐 일로 다 가라고 했대?”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그 속을.”


127들은 이제까지 2~3명 많아야 4명만 훈련에 왔었는데 이번에는 전례에 없는 전체 참석. 김도영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서쟈니가 동의한다. 어쩐 일로? 이에 이제까지 조용히 있던 정재현이 고개를 돌리며 대꾸함. 티엠아이로 준희가 한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도 제일 제일 말렸었고, 화냈었던 사람이 정재현. 지금까지도 그때 준희를 보내던 센터장 속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걸 어떻게 이해하겠냐고. 지금이나 이때나 센터장님 마음에 안 드는 정재현 되시겠다.


“모두 훈련장 안으로 들어가주세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난 10분. 간단히 이마크가 대강 둘둘씩 조 짜고는 상황 봐서 흩어지던 셋넷으로 모이던 하라는 짧은 말과 함께 먼저 훈련장 안으로 걸음을 옮김. 그리고 하나 둘 뒤를 따라 훈련장으로 들어가는데, 별안간 마지막으로 가던 준희가 뒤를 돌아 벤치에서 핸드폰 게임하고 있던 종천러에게 다가감. 종천러는 반짝이는 화면 위 생긴 그늘에 고개를 든다.


“.. 꼭 이기고 올게요.”


이까짓 훈련이 뭐라고.. 반정부 때와 맞먹는 결의의 표정에 종천러 살짝 당황스러움. 잠깐의 정적 이후 종천러 대충 고개끄덕이고는 그대로 다시 게임에 집중. 그리고 우리 준희는 훈련장으로 힘차게 당당하게 자신있게 걷기. 멀어지는 준희 뒷모습 힐끔 본 종천러 눈빛이, 꼭 또 다칠까 걱정하는 눈빛 같으면서도 아닌 거 같기도... 그게 참, 아리까리하긴한데



아 뭐 내가 알 바인가. 종천러는 지금 게임이 더 급한 모양.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핸드폰을 다시 고쳐 잡고 들어 올림과 동시에,



“새로운 팀원이랑 많이. 친한가 봐요.”



스무스하게 김정우가 옆자리를 차지해버리는 거다. 







자급자족 역하렘 들이부은 센티넬물 







   스타트 지점에 마지막 준희가 발을 들이고 스르륵 철문이 닫히더니 주변이 순식간에 건물 잔해들이 가득한 폐허로 변함 대부분의 건물들은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했고 여기저기 튀어나온 철심들이나 잔해들에 쉽사리 발을 떼기도 힘들었음. 게다가 폐부를 찌르는 탁한 공기까지 정녕 이게 가상공간이 맞나 싶은 준희가 입을 가리고 작게 콜록거림.

이마크가 먼저 발을 떼자 기지를 지키는 황인준 이해찬을 제외하고는 드림이들 둘씩 찢어짐. 그리고 바로 황인준은 다 떨어져 가는 건물에 얼음 막을 침.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좀 불리하겠는데.”



준희 어깨에 팔을 걸친 나재민이 턱을 쓸며 말하기를, 우리가 불리하단다. 준희가 나재민을 올려다보자 눈웃음치면서 말해주기를 우린 자연 계열이 반이잖아? 이해찬 이제노 황인준. 숲이라면 몰라도 이 폐허에서는 아무래도 자연계열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이마크가 황인준과 이해찬을 기지에 배치한 건가 준희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림. 



“근데 나한테도 이런데는 쫌 별론데.”
“그래요?”
“아.. 그래?”



걸어가면서 갑자기 이 폐허는 별로라는 말에 나재민에 준희가 나재민 능력이면 괜찮지 않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긴장했나 싶어 무의식적으로 존댓말 하니 나재민이 어깨에 손 떼고 뒤로 물러나며 놀라니 준희가 멋쩍게 웃으며 정정함. 준희가 정정하고서야 나재민 멈췄던 걸음 다시 움직이며 장난스럽게 째린다. 그리고는 이유 물어봐줘~ 얼른~ 이러는데 준희 잠시 얼빠져있다가 왜? 하고는 물어봐줌. 옛다 이런 느낌ㅋ...



“내가 지냈던 보육원도 이렇게 됐거든.”
“...”
“나랑 이해찬 빼고 다 죽었어.”



이해찬..? 진지하다 못해 위로도 쉽사리 할 수 없는 말임에도 당사자인 나재민은 평온한 얼굴로 내뱉었음. 옆에 있는 준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눈 이리저리 굴리기만 함.




   나재민의 능력. 폭환사. 그 능력은 이미 일찌감치 주인을 알아보고 어린 나이에서부터 발현을 시작했음. 아무것도 모른 채 펑펑 제 손에서 터지는 폭환을 해맑게 웃던 아이를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나재민의 부모였음. 치유, 방어형 능력을 가진 나재민의 부모는 공격형으로써 최적화된 그런 아들의 능력을 줄곧 무서워했으며 결국에는 그가 자고 있는 동안 모가 능력을 써서 그 조그맣한 아이를 보육원 앞으로 *워프 시켰음. 

*워프 : 외형은 블랙홀과 비슷, 위치 또는 대략적인 장소를 생각하고 대상을 블랙홀 안으로 보내면 그 대상이 워프 센티넬이 생각했던 그 위치로 옮겨지게 됨(블랙홀 밖으로 나오는 것) 비슷한 능력으로는 텔레포트가 있는데 텔레포트는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능력 사용이 가능하지만 워프는 자신에게는 안됨. 그래서 워프 센티넬들은 보통 뒤에서 가이드들이랑 서포트.



그때 나재민의 나이 고작 6살. 부모는 제 이름 따뜻하게 한번 불러주지 않고 자신을 버렸다.


보육원 원장이 이를 발견하고 이름을 물어도, 나이를 물어도 어떻게 왔는지 물어도 답 없는 나재민에 보육원 모두가 께름칙하다며 피할 때, 만난 사람. 보육원에서 나재민보다 일찍이 지내고 있었던 이해찬이었음.


벙어리 새끼.


이 한마디로 나재민과 이해찬은 어린 나이임에도 땅을 구르며 주먹을 들어 서로의 얼굴을 때렸으니 보육원 선생 셋이 다가와 둘을 찢어놓을 때까지도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벌로 3일 동안 각 방 안에 홀로 갇혔었는데 하필 또 이 둘이 옆방, 게다가 방음도 안 되는 이 구식 보육원 덕에 서로의 욕을 중얼거리면서 뭐 이 새끼야? 하고서 으르렁거렸지. 시간이 흘러 이윽고 마지막 셋째 날 밤. 이해찬은 벽에 기댄 채 나재민을 향해 입을 열었음.



네가 왜 말을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

너도 이름은 있을 거 아냐. 너네 엄마 아빠가 지어준 이름.



마지막 한마디에 나재민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에 눈물을 터트리고 씨발 연기하냐? 나재민의 흐느낌에 거칠게 말하면서도 당황한 이해찬이 왜 저래 이러면서 중얼. 곧 나재민은 이해찬과 똑같이 벽에 몸을 기댄 채 앉는다.


... 그러는 넌, 이름이 뭔데.
그걸 아직까지도 몰랐다고. 개빡친다 너.
뭐냐고 그래서.
이해찬인데 뭐.



해찬. 이름을 곱씹던 나재민이 피식거리니 이해찬이 씨발 너 왜 비웃냐며 중대노.



니 얼굴이랑 이름 안 어울려.



이에 나재민이 반박하니 이해찬이 씩씩대다가도 주춤거리며 숨을 한번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어.



... 우리 엄마도 그랬었는데.
...
자기가 지어준 이름이면서 한 번도 안 불렀다.



이해찬의 말을 끝으로 잠시, 정적이 지속되더니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나재민이 무릎을 딛고 일어섰음. 그리고는 뒤를 돌아 벽에, 그러니까 이해찬에게 말을 건다.



너 잠깐 뒤로 가봐.
뭐? 왜.
다치기 싫으면 가.



구시렁구시렁거리며 이해찬이 벽에 등을 떼고 한 두 발자국쯤 물러나니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작은 연기 뒤로 벽 잔해가 우수수 떨어지고 나재민의 모습이 보인다. 이 새끼가 지금 뭐한 거지? 상황 파악을 하려는 이해찬 뒤로 나재민이 이해찬 방으로 다가와 손을 뻗는다.


나재민.
...
내 이름이야.



가만히 나재민 손 바라보던 이해찬. 나재민 얼굴 한번 손 한번 흘기더니 곧 시선 괜히 옆으로 돌려서는 손 뻗어서 나재민 손바닥 툭 치고 만다. 



너희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작지 않은 굉음을 듣고 달려온 원장이 이해찬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해찬이가 그랬어요.
뭐? 씨발?


나재민은 입꼬리를 올리며 뻗었던 그 손을 들어 이해찬을 가리킨다. 쟤가 그랬어용. 하고. 이해찬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상황에 욕이 나오니 원장은 나재민 능력을 몰랐을 때라 이해찬이 또 능력 썼구나 해서 이해찬 귀만 잡아당겨. 나재민은 이 상황을 남몰래 웃으며 보고 있고, 이해찬은...


너 뒤졌어 나재민. 씨발!



나재민이 이해찬의 이름을, 그러니까 해찬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러한 과거가 밑받침이 되었기 때문.

   그러던 와중 나재민이 보육원에 적응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발발한 전쟁. 보육원의 삼분의 일이 센티넬 나머지는 노멀.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 폭탄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능력에 나재민은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았고, 이해찬도 어린 나이에서부터 높은 등급으로 태어났기에 뭐, 폐허가 된 이 보육원을 내리쬐는 볕 아래 멍하니 바라만 보던 나재민과 이해찬이 있었다.


야 해찬아
...왜.
우리 센터로 가자.



나재민과 이해찬. 이해찬과 나재민. 이 둘은 보육원에서부터 센터로 들어가기까지, 줄곧 둘이 함께였다.










   “대충 이런 별 거 없는 이야기?”



별 거 없는 게 아닌데..? 나재민의 말을 심각하게 듣고 있던 준희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음. 이 비극을 들으면  누가 들어도 이러한 표정을 짓지 않을까. 안타깝고 안타까워. 준희가 나재민을 힐긋거리니 나재민도 그런 준희를 힐끔 내려다보고는 어깨를 으쓱임.



“걔랑 나한테 맨날 시비 거는 능력 믿고 깝치던 애 한 명이 있었는데,”
“...?”



나재민이 말을 잇지 않더니만 어느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갑자기 성큼 준희에게로 껴안 듯 다가와서는 양쪽 귀를 두 손으로 막음. 당황한 준희가 밀어내려하기도 잠시 상상조차 못 했던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굉음이 귓가를 파고든다. 바로 귀를 막지 않았더라면 고막이 터졌을지도 모를 굉음이. 얼마나 소리가 강했냐면 준희 뒤로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건물들이 와르르르 무너졌으니 뭐...



“...섬광탄?”



섬광탄. 비살상 수류탄의 종류로 폭발 대신 강력한 섬광(Flash)과 폭음(Bang)을 내뿜어 일시적으로 시각과 청각을 마비시키는데 이용됨. 이 섬광탄의 빛이 얼마나 센 것인지 만들어내는 장본인 또한 고글을 썼다면 말 다 함. 정재현 입장에서 방금 던진 섬광탄은 그저 위협용에 불과한 것. 연기가 서서히 걷히자 보이는 나재민과 그 옆의 준희에 정재현의 표정이 더욱 굳는다. 준희한테 던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걔 능력이 염광력이었어, 하도 나대길래 나랑 이해찬이 개발랐거든.”



그 어마 무시한 섬광과 폭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나재민이 히죽이며 아까 잇지 못했던 말을 다시 잇는다. 준희는 아직까지도 마치 비행기를 탄 듯 귀가 멍했음. 127 팀일 땐 몰랐는데 직접 정재현의 섬광탄을 맛보니 죽겠더라. 힐끔 아 저 오빠는 왜 고글까지 썼냐고.

나재민 말이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 귀로 흘러 한귀로 나가는 듯.. 정신을 차리기 위해 두 눈을 세게 깜빡이는 준희의 어깨를 돌린 나재민이 그대로 등을 가볍게 민다.


“너 여기 있으면 실명 될지도?”


라는 시답잖은 말과 함께. 이 말 뜻을 어렴풋 이해한 준희가 나재민의 손짓에 가볍게 밀리다가도 갑자기 발을 멈추고 홱 고개를 돌림.



“...무리하지마.”
“어?~ 지금 나 걱정 하는거야?”

“...응.”

“…”

“그러니까 다치지 말고.”


사실 준희 정재현이 얼마나 센지 알고, 또 잘 쓰지도 않는 섬광탄 날린 거 보니까 존나 진심이다 싶었음. 정말  순수하게 나재민이 걱정돼서 다치지 말라는 말 남긴거임. 그 물에 줄곧 장난스러운 표정의 나재민이었는데 말이야, 이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짓기에 혹시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나 싶은 준희.



“무리 하지 말고, 다치지 않게.”

“…”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아 나는,”

“네가 다치면 날 뛸 애들이 한 둘이 아니라.”



씰룩 웃으며 준희의 머리를 쓰담 쓰담. 평소의 나재민이네. 그 생각이 듦과 동시에 준희가 눈동자를 옮겨 뒤에 있던 정재현을 힐끔. 주먹을 꽉 쥔 손 하며 어금니를 세게 무는 것인지 울긋 불긋해진 턱 하며 제가 여기 있어봤자 나재민한테 방해만 될 것이었지. 나 먼저 가볼게. 이윽고 등을 돌려 준희가 이곳을 빠져나감.


“이러면 너무 보내기 싫어지는데.”



준희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재민이 준희를 쓰다듬었던 손을 꽉 말아쥠. 그리고 빙그르르 등을 돌려 굳은 표정의 정재현과 상반된 표정으로 묻는다.



“보시다시피 사이가 제법 좋아서요.”



혹시 모르잖아요. 붙잡으면 다시 안 돌아갈지 누가 알아요?







자급자족 역하렘 들이부은 센티넬물 







   다시 기지로 갈 수는 없으니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반대편에 있는 127 기지로 가야겠다 싶던 준희가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바람에 주위를 둘러보다 부서진 건물 하나 뒤로 이제노의 뒷모습이 보임.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사람. 팔랑이는 날갯짓의 나비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이태용. 이태용은 지금 골똘히 고민 중이었음. 자신의 능력, 그러니까 독기는 상대방의 몸에 닿았을 때 발휘되는 능력인데 (물론 독기를 내뿜기도 하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이제노는 자신의 몸에 제 능력을 둘렀다. 나비가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날아가 사라졌음. 만나도 꽤나 상극인 상대를 만난 거지 그런 거지~



“...”



그리고 고심하던 이태용의 주변의 별안간 많던 그 나비들이 이태용 뒤로 한데 모이더니 순식간에 금방이라도 부화할, 대략 따지자면 사람의 10배 정도 크기의 날개를 아직 피지 않은 상태의 나비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만 부는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는 이제노의 미간이 찌푸려짐. 저게 뭐야.


상황을 파악하려는 이제노와는 달리 이를 뒤에서 모두 지켜보던 준희는 입을 떡 벌린 채 부화 전인 나비를 훑다 그 앞의 여유로워 보이는 이태용을 바라봄. 저 나비는 이태용의 독기들을 한데 모아 만든 일련의 집합체. 저 거대한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지고 날갯짓 한 번에  이 가상 현장에 있는 공기들은 모두 독기로 변한다. 그러니까 산소가 사라진다고,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 그냥 바로 끽 즉사.


그도 잠시 이제노 또한 제 뒤로 나비의 크기에 맞춰 스멀스멀 회오리를 생성. 바람을 더하면 더할수록 기세는 더욱 커져가고 주변에 있던 잔해들이 하나 둘 회오리에 날아감. 이 광경에 이태용은 놀라 이제노를 향해 중얼거림. 한국에도 이런 애가 있었네하고. 127 중에서도 이태용과 김정우는 연합훈련을 잘 가지 않았음. 김정우는 굳이 정하자면 수비용 능력이고 이태용은 귀찮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은 보통 몰래 뒤를 밟는 쉽게 말해서 암살 쪽으로 더욱 효과가 있었으니 전면전이 주를 이루는 연합 훈련은 자신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음.



“제법... 하는데?”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나 보네. 흩날리는 바람이 꽤나 매섭다고 이태용은 생각한다.



   바람에 눈을 찡그리도 잠시, 준희 시야에 이태용과 이제노 건너 저 멀리 어렴풋 보이는 127 기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다른 건물 과는 달리 아주 견고하게도 반듯한 바위들이 건물을 지탱하니, 아무래도 문태일의 능력인 듯. 견고하게도 놓인 기지를 향해 준희가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뜀박질을 하기 시작함. 아 저 안에서 버튼을 어떻게 찾지. 드림이들 중 누구라도 만나면 좋을 텐데.


 
“...아.”



한 블록 정도 남았을 때 준희 앞을 막는 철로 이뤄진 날카로운 검... 칼도 아니고 장검이야.. 크고 날카로운 장검. 누구 만나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게 상대편 그것도 처음 보는 센티넬일 줄 누가 알았겠나. 아무래도 공격형이 아닌 능력, 김정우 또는 김도영 대신으로 들어온 듯, 준희가 생각을 마칠 틈도 없이 제 앞을 스쳐가는 검에 재빨리 바닥을 구르며 피함. 날카로운 것도 날카로운 것이지만 단단하다 못해 깡깡! 한 검을 어떻게 뚫냐고.


10 minutes over.


터질 듯 뛰어대는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벌써 10분이 흘렀다는 알림음이 훈련장 안 곳곳에 가득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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